사랑에 이르는 신학 - 사랑이 결핍된 시대를 위한 대안
권혁빈 지음 / 두란노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그분을 통해 흘러가며, 결국 그분에게로 집약된다. 그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이 메마른 시대의 유일한 소망이다. 나는 그것이 신학의 역할이라 생각한다(19-20). 

청년부 목장에서 소그룹 나눔을 할 교재를 찾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처음 세워지는 청년부 목장이라 우리의 신앙고백(믿는 바)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성경적 진리 안에서 신앙의 뼈대를 튼튼하게 세우면서도, 복음의 은혜가 그 뿌리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교재를 원했습니다. <사랑에 이르는 신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교재라는 확신이 듭니다. 

<사랑에 이르는 신학>은 조직신학의 주제(신론, 기독론, 성령론, 인간론/죄론, 교회론 등)에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을 대입"하여 풀어낸 결과물로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사랑'으로 성경을 관통하는 "사랑의 신학"이라 할 수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듯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온통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며, 따라서 삶의 본질도 사랑일 수밖에 없으며, 이 사랑이 결핍된 상태가 바로 죄이며, 사랑의 절정인 십자가 사랑만이 사랑이 결핍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며, 사랑의 영이신 성령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에 이르게 하신다는 진리를, 날카로운 신학을 견지하면서도 성경을 사모하고 읽고 배우는 성도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따뜻하게 풀어주고 있습니다.

분명 조직신학 책이면서도 설교처럼 예화나 간증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그 진리에 다가가기 쉽도록 신학적 통찰을 잘 녹여 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귀한 진리를 담고 있어도 그 자체가 넘지 못할 장벽이 되어 마주 서 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신학서적도 많은데, 이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죽을 자가 아니라 부활하실 분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로 십자가를 지셨다. 그는 절망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 가운데 십자가를 지셨다. 그분이 지신 십자가는 결코 예수님을 움츠러들게 하거나 좌절하게 하지 않았다. 믿음의 삶은 언젠가 승리할 것을 알뿐만 아니라 지금 승리자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정체성의 능력이다. 내가 승리할 것을 알기에 오늘의 낮아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276).

기본적으로 글을 참 잘 쓰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문장들이 많은데, "존재함은 곧 사랑함이다"(27)라는 첫 메시지부터 아주 강렬합니다. '사랑의 영'(성령론) 파트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성자 예수님이 계시하시고, 성령님은 우리로 그 사랑을 알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다시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진리이며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진리로 나아간다"(329). <사랑에 이르는 신학>이 딱 그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랑을 통해 다시 사랑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나'가 참 '나'라는 사실 또한 기쁘게 깨닫게 해줍니다.

<사랑에 이르는 신학>은 거대한 책입니다. 진리를 담은 책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고, 성경 전체를 꿰뚫으며 관통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고,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답을 담았다는 뜻에서 그러하며, 우주와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을 설명해준다는 의미에서 그러합니다. 믿음의 지체들과 차분하게 다시 읽고 나누며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진리로 승부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주 따르는 청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때 교회는 사회와 시대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교회의 존재는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낼 때만 의미를 갖는다. 더 가지려는 것에 도취되어 온통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상에서 크리스천은 나누고 섬기며 사랑해야 한다(3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六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에드워드 호퍼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렸다가 그치고
불었다가 그치는
밤의 고요

- 오쓰지

이것은 일본 고유의 시, 하이쿠입니다. 하이쿠는 5 · 7 · 5의 17음(音) 형식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입니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은 1년 열두 달 매일 명화와 함께 시 한 편을 묵상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는 시화집입니다. 그중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시는 6월의 시화집입니다. 그리고 오쓰지의 저 하이쿠는 6월 26일의 시입니다. 요즘 한창 러시아 월드컵 때문에 밤의 열기가 뜨거운데, 승리에 연연하며 속을 태우다 아침을 맞이한 기분이 딱 저 하이쿠 속의 고요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입속으로 소리 죽여 발음해 봅니다. "내렸다가 그치고 불었다가 그치는 밤의 고요."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 중 6월은 윤동주 시인 외 17명의 시인들의 시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로 "현대 미국인의 삶과 고독, 상실감을 탁월하게 표현해 내 전 세계적으로 열렬하게 환호와 사랑을 받는 화가"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화집에는 약 45점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데 눈에 익은 작품이 많습니다. 시화 함께 유명한 명화를 감상하는 맛이 있는 시화집입니다.

6월을 노래한 6월의 시들은 마음과 하루와 인생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듯합니다. 봄처럼 사뭇 곱기도 하고, 여름처럼 볕이 비눌처럼 빛나기도 하고, 가을처럼 숲 향기가 숨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 겨울처럼 공포에 떨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6월입니다. 영원한 청춘을 노래하듯 영원히 밝고 영원히 개인 날의 6월은 그렇게 고요히 머물다 고요히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는 호퍼의 그림 때문인지 6월의 시들은 시간이 정지된 듯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림은 말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라는 뒤표지의 문구를 가만히 음미해봅니다. 시화집을 감상하다 보면 시가 그림을 해석하고, 그림이 시를 해석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루하루가 시처럼 다가왔다가 아름다운 명화처럼 남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를 모두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데, 그중에서도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라는 제목을 가진 10월의 시화집이 무척 궁금합니다. 10월의 시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와 함께 시를 감상하도록 꾸며져 있는데, 10월 11일의 시와 10월 11일의 그림을 먼저 만나보고 싶습니다. 나의 생일 시와 생일 명화를 확인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나의 생일 시와 생일 명화를 확인하러 서점에라도 나가봐야겠습니다.




6월이 오면, 인생은 아름다워라! _ 로버트 S. 브리지스

유월이 오면 날이 저물도록
향기로운 건초 속에 사랑하는 이와 앉아
잔잔한 바람 부는 하늘 높은 곳 흰 구름이 짓는,
햇살 비추는 궁궐도 바라보겠소.
나는 노래를 만들고, 그녀는 노래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건초더미 보금자리에,
아름다운 시를 읽어 해를 보내오.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팀 켈러,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복음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다이너마이트다

몇 년 전에 제 심령 가운데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 팀 켈러 목사님의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였습니다. 다이너마이트처럼 강력했던 그 메시지를 두란노에서 새롭게 번역한 책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훨씬 더 다듬어지고 깔끔한 모습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를 통해 "갈라디아서는 다이너마이트다"라고 선언합니다. 갈라디아서가 다이너마이트인 것은, 복음이 다이너마이트이기 때문이지요.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제대로 터진다면 우리 삶이 송두리째 변화되는, 다시 말해 완전히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제 삶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비신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비일비재하게 한다"(8)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복음이라고 하면 새가족 교육 대상자에게나 필요한 기초 교리쯤으로 치부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면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교리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가 가장 먼저 벼락 처럼 깨닫게 해주었던 진리는 복음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어야 할 '전부'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진수를 우리 심령 가운데 폭발시키는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는 진리를 아는 기쁨의 책이기도 하지만,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는 아픔의 책이기도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깨달아질 때, 심령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던 그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이 사실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처절할 정도로 아프게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 '나'를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는 그런 상태로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복음 안에서 완전한 해방을 선언하며 완전한 자유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는 진리입니다. 무엇보다 선명한  가르침은, 예수님은 우리를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 '건져주시러' 오신 분이라는 사실과, 복음은 본질적으로 지시나 조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다는 소식이라는
것과, 우리를 구원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할 일은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의 수준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27).



교회에 스며든
'변질된 복음'에 맞서라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라는 건 이미 복음이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주의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비신자가 아니라, '교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충격적으로 일깨웁니다. 왜냐하면 복음에 자꾸만 뭔가를 '더' 하려는 유혹에 시달리는 것은 비신자가 아니라,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비신자에게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복음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 일, 그리스도를 제대로 아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사가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복음에 헌신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복음을 믿고 있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 책에 담긴 복음의 진리가 이 땅 위에 다시 한 번 강력하게 폭발하기를 뜨겁게 소망합니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복음에 내포된 의미대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꿈꿉니다(10).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인간의 본성에 심히 걸림돌이 된다(5:11-12).
사람들은 자신이 너무 연약하고 죄가 커서
구원에 조금도 보탬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복음은 진보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에게 걸림돌이 된다.
그들은 복음이 배타적이라고 비난한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포하기 때문이다.

복음은 보수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에게도 걸림돌이 된다.
복음이 '착한' 사람도 십자가 없이는
'악한' 사람만큼이나 구제 불능이라고 선포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이 걸림돌이 됨은
십자가가 모든 자력 구원의 방법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종교"와 "도덕"을 높이 평가한다. 
도덕적 종교가 사회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십자가만은 걸림돌로 여긴다. 
그래서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박해를 당한다(21절).

십자가는 본래 걸림돌이다!


- 팀 켈러,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 pp.264-2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三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귀스타브 카유보트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봄 _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까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


이 책은 마치 "시를 감상하기 좋은 날은 어떤 날일까요?"라는 물음에, "일 년 열두 개의 달, 모든 날"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듯합니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는 매월 매일 시 한 편과 명화 한 점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라는 제목을 가진 이 시화집은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 중 3월에 해당하는 시화집입니다. 그러나 3월을 주제로 한 시, 3월을 주제로 그린 명화는 아닙니다. 3월을 연상케 하는 작품들을 선별했다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가 주로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윤동주 시인 외 18명의 시인(이장희, 노천명, 김소월, 이상화, 백석, 정지용, 박인환 등 국내 유명 시인은 물론 일본의 일본의 하이쿠(산토카), 에밀리 디킨슨 등)의 시도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 중 3월을 가장 먼저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시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3월의 명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 때문입니다. 제게는 낯선 이름의 화가였는데, 조용하게 시선을 끄는 그의 그림에 매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덕에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과, 사실주의 화풍을 공부하며 학문으로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도움을 주었던 가난한 인상파 화가들은 마네,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드가, 세잔 등이었다는 것" 등입니다(책의 앞 날개 中에서). 그림을 평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하지만, 그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림 못지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세잔과 같은 어마어마한 인상주의 화가들 뒤에 귀스타브 카유보트가 버티고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너무 적나라한 현실감 때문에 살롱전 심사위원들로부터 거부당했다"는 사연 때문인지,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물론, 3월의 시를 감상할 때에도 계속해서 시와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적나라한 현실감"을 찾으려 애쓰며 시와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새로운 시 읽기이자, 그림 감상법이었습니다. "봄이 시인의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그렇게 시가 태어나고,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의 털"이 화가의 손에 어리우어 명화가 태어난 듯했습니다. 

잘 간직해 두었다가
포근한 햇살 가득 품은 3월이 다시 돌아오면, 이 책을 천천히 다시 음미해보고 싶습니다. 시 하나쯤 가슴에 품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던 어린 시절의 약속을 떠올리며 말입니다. 명화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건, 이 책이 주는 '덤' 같은 선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소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6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자 문득 신고에게 산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없다. 달은 보름달에 가깝게 밝지만 작은 산 위를 수놓은 나무들의 윤곽은 습한 밤기운으로 희미해진다. 그러나 바람에 움직이지는 않는다. 
……
아득한 바람 소리와 닮았지만 땅울림 같은 깊은 저력이 있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해서, 신고는 이명인가 싶어 머리를 흔들어보았다. 
소리는 멎었다.
소리가 멎은 뒤에야 비로소 신고는 공포에 휩싸였다. 임종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한이 났다(산소리, 20-21).

<산소리>는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숨겨진 명작'으로, 그의 작품 중에서도 '만년의 걸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독자로서 조금 민망해지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 속에 담긴 문장의 힘, 문장의 맛을 알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고 해도 해외 문학에서는 우리네 정서와 다른 생소함과 마주칠 때가 더 많은데, 일본의 문학은 그중에서도 우리네 정서와 닮은 데가 참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추리소설의 열풍을 생각하면 확실히 통하는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산소리>는 예순두 살의 '신고'를 통해 하루하루 생을 잃어가는 것처럼 느끼는 노년의 회한을 아주 감각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억압된 금기의 욕망을 꿈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출시키는 (다소) 몽환적인 소설입니다. 책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작품해설'을 참고하면, <산소리>는 전후의 일본, 다시 말해 '패전 후'의 일본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 살 많은 예순셋의 아내 야스코와 살고 있는 신고는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사실은 소년 시절부터 아내의 언니를 동경했으나 언니 대신 그 동생과 결혼을 했고, 오랜 세월 동안 부부로 함께 살아온 아내의 육체를 보며 노추(老醜)를 느끼는 신고가 아내의 몸에 직접 손을 대는 것은 코 고는 소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아내의 코를 잡고 흔들 때 뿐이지만, 며느리 기쿠코에게는 더 없이 다정한 시아버지입니다. 외도하는 아들 슈이치의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서도, 딸 둘을 데리고 폐인이나 다름 없는 남편과 이혼하려는 딸 후사코의 문제에 대해서는 손녀 딸린 딸을 다시 떠맡게 될까봐 우울해하는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신고가 최근에 자신이 꾼 음란한 꿈을 떠올려보니 대부분 상대는 소위 천한 여자였다. 오늘 밤의 아가씨도 그랬다. 꿈에서까지 간음의 도덕적 가책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

"앗." 그때 신고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꿈속의 아기씨는 기쿠코의 화신이 아니었을까? 꿈에도 역시 도덕의식이 움직여서 기쿠코 대신 슈이치의 친구 여동생 모습을 빌린 것이 아닐까? 더구나 불륜을 감추기 위해서, 가책을 감추기 위해서 대역인 여동생을 시시한 여자로 탈바꿈한 것이 아닐까?
만일 신고의 욕망이 원하는 대로 허용되어 그의 인생을 고칠 수 있다면, 신고는 처녀 적의 기쿠코, 즉 슈이치와 결혼하기 전의 기쿠코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상처 후, 319-320)

<산소리>를 읽으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떠올렸습니다. <엄마를 부탁해>가 장성한 자녀의 시선에서 노년의 엄마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 이해해가는 과정이었다면, 노년의 시선으로 그려진 <산소리>는 그 '노인'이 바로 '나'라는 충격을 던져주는 듯해서 말입다. 자녀가 노년의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은 산파적이었다면, 관찰자의 시점에서 시들어가는 지켜보던 그 노인이 바로 나라는 깨달음은 소름끼치는 일격입니다. 스스로를 청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고가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겠지만, 나이듦의 쓸쓸함을 아는 독자들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그려내는 노년의 감각이 징그러울지도 모릅니다. 기묘한 동질감과 반감이 동시에 느껴질 테니까요. 

<산소리>는 읽는 맛이 있는 소설입니다. "
달밤이 깊어져갔다. 깊은 밤이 자욱이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20). 이런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습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실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인데, 음미할수록 순수문학의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