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땅, 코카서스 -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70일 여행기
현경채 지음 / 띠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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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 카즈베기 수도원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설정해 놓고 몇 년 동안 짝사랑을 시작했다. … 남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코카서스 지역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3국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5).

'사진 한 장 때문에 짝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인데 그곳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름도 생소한 나라인데 심장이 뜨겁게 반응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운명일까?'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짝사랑은 그렇게 3년 간 계속되었고,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른 여행자로 하여금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고 이름도 낯선 코카서스 지역을 기어이 찾아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미지의 땅에 대한 환상과도 같았던 그녀의 짝사랑이 결코 허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알수록, 더 알아갈수록, 알면 알수록 사랑이 깊어진다면, 그 사랑은 진짜인 것이겠지요. 그곳은 상상보다 더 예뻤고, 기대하지 못했던 음악들로 넘쳐났고(인류음악학 박사에게 그것은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이었겠지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고, 밟는 곳마다 들어가는 곳마다 홀딱 홀딱 반하기를 반복하다 정말이지 나만 알고 싶은 숨겨놓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고, 그렇게 이 여행은 신의 선물 같은 추억이자, 삶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온 목사님은 한 분 만난 적이 있는데, 신앙적인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아르메니아는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신앙을 지켜온 나라이며,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세계 최초의 나라이자, 노아의 방주가 멈추었던 아라라트 산이 있는 나라라고 했습니다(39). 그리고 그것이 내게 아르메니아라는 생소한 나라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고, 그 땅에 가봐야 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이 땅에 대한 여행 정보자나 가이드북을 찾을 수 없었는데, 바로 그때 운명처럼 70일 간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한 기록을 담고 있는 <매혹의 땅, 코카서스>를 만난 것이지요. 이 책이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의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가까운 이웃끼리 충돌과 학살과 분쟁을 반복하고 있는 슬프고 아픈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 슬프고 아픈 역사가 문화로 예술과 신앙으로 승화되며, 일상에 녹아들어 삶을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매혹의 땅, 코카서스>는 이 책 한 권을 들고 무작정 이 여행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싶게 만듭니다. 여기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며, 하나 다시 되새김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는 아르메니아,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 작가가 숨겨놓고 혼자만 가고 싶다는 조지아,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여행지입니다. 특히 "풍성한 볼거리, 저렴한 물가, 친절한 현지인, 맛있는 음식"(165)이라는 네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총족시키는 곳이라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여행지도 없을 듯 합니다.

꼭 여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 책이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가보지 않은 땅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이 어떤 역사 속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은, 내 삶을 작게 축소하여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만들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삶의 이야기를 가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눈을 뜨게 해주며, 그것은 곧 나의 일상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도 그 삶이 작지만 결코 하찮지 않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진짜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다른 사람에게 그 땅의 매력을 이처럼 생생하게 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행을 하려면 이 여행자처럼, 이라는 슬로건이 저절로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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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탕집탕 -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아버지 품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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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탕과 집탕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말씀의 홍수 속에 산다고 할 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고 설교 말씀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큰 영적 축복 속에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의 홍수 속에서도 유독 잘 들려오는 설교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들교회의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가 그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돌탕집탕>은 '돌아온 탕자'을 본문으로 한 설교 말씀을 모은 것입니다. <돌탕집탕>도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김양재 목사님의 큐티설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탕한 생활을 하다 '돌아온 탕자'가 '돌탕'이라면, 집에 있었지만 상한 감정과 아버지에 대한 불만으로 뒤틀린 맏아들은 '집에 있는 탕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돌탕집탕>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일명 '탕자의 비유'는, 처음엔 '집 나간 방탕한 둘째 아들'을 주인공으로 많이 설교되어지다,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그 아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라며 설교의 조명이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옮겨간 시기가 있었고, 최근에는 '집 나간 둘째 아들'뿐 아니라, 사실 '집에 있었던 큰 아들'도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할 아이들이라는 시선에 중점을 둔 메시지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조명이 집 나간 둘째 아들에서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옮겨 갔고, 다시 조명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집에 남아 있었던 큰 아들에게로 옮겨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돌탕집탕>은 "돌아온 탕자 비유의 궁극적인 주제는 탕자가 아니라,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이며, 인간의 불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130)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는 집 나갔다 돌아온 둘째 아들, 곧 '돌탕'에게만 전력 질주로 달려가신 것이 아니라, 상한 감정과 불만으로 아버지로부터 멀리 있었던 큰 아들, 곧 '집탕'에게도 전력 질주로 달려가셨음을 강조합니다.

<돌탕집탕>은 말씀이 쏙쏙 이해되면서도 성경적 깊이가 있고 뜨거운 은혜가 있습니다. 말씀을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풀어주는 큐티설교라 말씀이 삶에 적용되어지도록 인도하며, 말씀을 듣고 변화된 생생한 간증들이 말씀을 듣는 기쁨을 더해줍니다. 깊은 묵상 가운데로 인도하는 질문이 제공되어 있어 소그룹 모임 교재로도 활용 가능합니다. 말씀의 홍수 속에 살지만, 언제 어느 때고 마음만 먹으면 설교를 들을 수 있다 보니, 귀한 것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 않다 보니 오히려 은혜의 말씀에 갈증을 느끼는 영혼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에 갈한 영혼들에게 <돌탕집탕>을 추천합니다.


아버지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한 맏아들은

지금도 문밖에서 서성이는 탕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같이 살면서도, 아버지의 은혜를 모르고 있으니

집에 있는 탕자, 집탕입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집탕도

당신의 넓고 푸근한 가슴속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돌탕집탕, 12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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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로마서 주석 세계기독교고전 41
마르틴 루터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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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며 한국 교회는 "개혁된 교회는 항상(지금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외침을 다시 상기하며 종교개혁신앙의 뿌리를 찾는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종교개혁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 신앙의 자유, 자유민주체제는 종교개혁의 산물이며, 교육과 의료적인 혜택들도 종교개혁신앙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종교개혁신앙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겠지요. 종교개혁 전통을 이어가는 교회들에게 종교개혁신앙의 뿌리를 찾고 이어가는 일은 교회의 생명력과도 직결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도록 길을 인도하는 나침반이요, 신앙의 본질을 회복케 하는 방향키와 같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CH북스에서 세계기독교고전 시리즈의 하나로 발간한 <루터의 로마서 주석>은, 베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가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로마서 강해 강의안의 '요약본'입니다. 완전본이 아니라 요약본의 형태로 세상에 나온 것은 이 책의 목적이 "독자들에게 위대한 개혁자의 가장 중요한 사상들을 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10). 같은 시리즈 중에 <루터 선집>이 있는데, 그 책에는 <로마서 서문>만 실려 있었습니다. <로마서 서문>만 읽어도 벅찬 감동이 있었는데, 루터가 작업한 원고가 400년 만에 발견되어 이렇게 한 권으로 책으로 우리 손에까지 오게 되었음을 생각하면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루터 앞에 앉아 직접 강의를 듣는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루터의 로마서 주석>이 강조하는 바는 인간은 자신의 지혜와 행위로는 구원받지 못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은혜의 핵심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나는 정죄받아 마땅한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라는 것, 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력한 자라는 것, 그러나 하나님께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우리를 구원해주셨다는 것말입니다.

루터는 로마서 5장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사도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는 믿음의 힘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사망이 그 파괴적인 힘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성 바울은 이 장에서 큰 기쁨과 극도의 환희 속에서 이야기한다. 성경 전체를 통트레서 이 개가(凱歌)를 알리는 본문과 견줄 수 있는 장은 거의 없다"(112).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의 기쁨과 극도의 환희는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것, 나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을 때 주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복음의 핵심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품으로 달려가 완전히 안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베풀어질 수 없고, 결코 완성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루터의 로마서 주석>은 '의인'이 너무나 많아 시끄럽고 요란한 세상에서 구원은 오직 "예수로 말미암는다"는 진리를 다시 붙들게 해줍니다.

<루터의 로마서 주석>은 '의외로'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교회와 설교자들을 통하여 가르쳐지고 선포되어졌던 말씀의 기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성경공부를 한 성도들이라면 이미 익숙하고,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익숙함을 벗어던지고 전혀 새롭게 다시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이 믿음이 우리 삶에 강력하게 작동하여 정말이지 믿음이 이끌어가는 삶을 살아낼 수 있기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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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셀프 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은하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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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셀프트래블, 최신판이 나왔어요!

처음엔 붉은 정열로 대표되는 축제의 나라여서, 그 다음엔 사도 바울이 꼭 가보고 싶어 했던 땅끝의 나라여서, 그리고 이젠 산티아고 순롓길이 있는 나라여서 스페인은 나에게 꼭 가봐야 할 나라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셀프트래블>에서 소개하는 스페인의 첫 인상은 이렇습니다. "넓은 땅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여행을 할수록 가보지 않은 도시들로 넘쳐나고, 알면 알수록 호기심이 생기는 나라"라고요. 태양의 나라, 그리고 그곳은 굴곡진 역사가 흐르는 땅이라는 것도요.

다채로운 자연, 풍부한 미식의 향연, 다양한 문화와 예술, 스페인에서 즐기는 휴양 지중해, 스페인 역사의 나이테 톨레도, 소도시 여행, 축제의 나라 스페인을 여행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을 알고 싶다면, 특히여 여유로운 스페인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스페인 셀프트래블>과 함께해야 합니다! 실패 없는 스페인 여행을 위해 직접 발로 찾아다닌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여행을 설계해주고 있으니까요.





스페인 여행의 키워드는 '열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페인 셀프트래블>은 오히려 '여유'라고 말합니다. "신기하게도 많은 여행자들이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여유'였다고 했다. … 사람들이 말하는 여유의 종류는 다양했다. 한낮의 시에스타로 문이 닫힌 상점이라고 말하는 사람, 아직도 건축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라고 말하는 사람, 햇살이 내리쬐는 구엘 공원에서 가우디가 만든 벤치에 앉아 잠이 들었던 떄라고 말하는 사람 …."(프롤로그 中에서). 축제의 나라 스페인에서의 여유! 역시 삶의 축제는 여유에서 나오는가 봅니다.






일생에 한 번은 산티아고 순롓길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잠잠해진 가슴에 얼마 전에 종영한 '스페인 하숙'이 다시 불을 질렀습니다. 사실 20년 이상 일한 직장에서 퇴직할 때 저의 목표는 산티아고 순롓길 완주였는데 다시 새로운 일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습니다. 떠나지 못하는 이는 언제나 이유와 핑계가 많은 법이지요. 사실 산티아고 순롓길을 목표로 할 때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 선뜻 떠나지 못했는데, <스페인 셀프트래블>을 최신판을 다시 보면 스페인 자유여행을 한다면 소도시 여행을 해보고 싶은 새로운 소망이 생겼습니다. "절벽 위에 펼쳐진 론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중세 마을 알바라신, 시에라 네바다 산맥 아래 하얀 마을 라스 알푸하라스" 수식어만으로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스페인 셀프트래블>은 소도시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풍경과 꿀 같은 휴식을 약속합니다.

여행을 상상출판의 <셀프트래블>로 배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가이드북은 정보를 담고 있어 읽는 책이 아니라거나, 재미가 없다는 편견은 버려야 합니다. 여행하는 법 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누군가의 낯선 일상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는 일탈이 있습니다.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상상출판이 <스페인 셀프트래블>을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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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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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203).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대한민국 남자들 사이에서 '자기 공간 갖기' 열풍이 불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이 어렵다면, 하다 못해 여자들의 화장대와 같이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라도 말입니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공간"이야말로 내 아이덴티티라는 색다른 주장(?)을 펼치는 책입니다. "슈필라움", 즉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 공간"(6)의 부재가 우리 삶을 얼마나 불안하고 뻑뻑하게 만들고 있는지 곱씹어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공간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저 남쪽 섬 여수에서 현실로 구현해내고 있는 김정훈 화가(이제는 화가라고 불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는 자기 공간이 있어야 할 이유를 이렇게 피력합니다.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가 생긴다.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기는 거다. 한 인간의 품격은 자기 공간이 있어야 유지된다"(206).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서기를 바래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특히 남성들이 자기 이야기를 가진 매력적이고 품격 있는 인생을 살기 바라니까요.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11).

문화심리학자로 꽤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김정운 교수님이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와 '나름 화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소식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김정운 교수님의 인생 하프타임과 같은 시기의 기록입니다. 여수 남쪽 섬의 다 쓰러져가는 미역창고를 충동적으로 구입하여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김정훈 교수님은 그 공간을 여수만만(麗水漫漫)의 "미역창고"(美力創考)라 이름붙였습니다.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56)는 뜻이랍니다. "쿠바에 가면 헤밍웨이의 서재가 바닷가에 있다"(57)고 하는데, 여수에 가면 김정훈 교수님의 작업실이 바닷가에 있다고 말하여질 것 같습니다.

400만 원에 구입한 낡은 배를 수리하는 데는 900만 원이 들어가고, 다 쓰러져가는 창고를 시세보다 두 배나 비싼 값을 주고 산 '정신 나간 사람'이란 비웃음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것은,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남은 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정확히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은 그 바닷가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시간의 흐름이요, 그 공간과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문화와 사회에 대한 통찰이요, 그 흐름 안에서 민낯으로 마주하는 자기 성찰입니다.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그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221).

원래도 글을 잘 쓰시는 줄 알았지만,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특히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모든 남성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여유로우면서도 깊이가 있고, 무거운 주제도 흥미롭게 다루는 솜씨가 있습니다. "나는 책을 사려고 여행을 합니다"(272)라는 문장만으로도 김정운이라는 한 사람에게 반하기에 충분하고, 이 책이 얼마나 품격 있는 책인가를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책을 덮으며 까먹지 않으려고 다시 한번 읽고 밑줄 치며 되새김질 해보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여수 바닷가에 작업실을 마련하며 "정말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걱정을 김정운 교수님은 이렇게 간단히 정리했다고 합니다. 한 일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않는 일에 대한 후회가 더 오래간다고 말입니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 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 않는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심리적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비된다.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이야기다"(60-61).

바닷가 작업실을 보며, 누군가는 마냥 부러울 수도 있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신의 신세를 탓할 수도 있겠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그 에너지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에너지를 함께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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