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경주였다.
‘빨리‘가 아니라 ‘천천히‘가 터져 나오는. - P276

콜리가 다리를 내려 곧게 앉았다.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는 이론에 대해서는 연재가 말해줬어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것이라고요. 제가 투데이와 함께 달릴 때 느꼈던 시간이 접힌 듯한 현상은 실제라고요. 생명은 저마다 삶의 시간이 다른 것 같아요." - P283

슬픔을 겪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것일까. 사실은 모두 멈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지구에 고여버린 시간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 시간들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 P285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살아 있다는건 호흡을 한다는 건데, 호흡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 진동이 큰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 P302

세상에는 원래 이유가 없었어. 인간들이 이유를 가져다 붙인 거지. 그러니까 순서를 따지자면 이유 없이 생겨난 게 먼저야. - P313

타인의 이해를 포기하면 모든게 편해졌다. 관계에 기대를 걸지 않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다. - P3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혜는 입만 꾹 닫았다. 보경에게 설명하고, 그로 인해 위로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은혜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P185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
.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보경은 콜리가 아닌 주방에 난 창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 P204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 P205

너도 나도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도움받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는 게 꼴 보기가 싫다. - P215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 P221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 P233

"조금 다른 연습을 하던데요."
"예?"
"가장 느리게 뛰는 연습요." - P2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친은 인생의 2막이란 원래 아무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보경이 보기에는 시대의 흐름에 탑승하지 못한 예견된 추락일 뿐이었다. 길거리에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낸 휴머노이드를 보고도 자신과는 엮이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도태의 씨앗이 된 게 분명했다. - P74

민주의 말처럼 휴머노이드의 사적인 거래가 불법이기는 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게 불법거래가 아니었던가.
.
.
단속은 했지만 실제로 불법거래 판매자나 구매자를 처벌한 경우는 몇 되지 않았다. - P94

콜리의 판단과 균형을 담당하는 모든 부분이 정상이라는 뜻이었고 이는 낙마의 이유가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했다. 연재가 고개를 돌려 콜리를 쳐다봤다. - P104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 P113

인간 역시 이따금씩 인간 취급을받지 못할 때가 있었으나 언제나 회생 가능했다. 하지만 말은 말취급을 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말은 지구에서 살아갈 이유를 얻지 못했다. - P1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서 잘 살아봐. 민주는 그렇게 말하고 콜리의 전원을 껐는데, 콜리는 민주가 자신에게 ‘살아‘라고 표현한 것을 잊지 않도록 메모리에 저장해두었다. - P34

연재는 어쩐지 이 기수의 말이 독특하다고 느꼈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휴머노이드의 언어 구사력과는 사뭇 달랐다. - P65

경마경기의 약점은 기수가 인간이라는 점에 있었고, 이는 말이 최고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인 중 하나였다. 인간보다 작고 가벼우며, 떨어진다 한들 생명과 연관되지 않는 새로운 기수가 필요했다. - P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수방은 성인 한 명이 웅크려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다. 누워 있을 수도, 발을 뻗고 앉을 수도 없을 만큼 비좁다. 하지만 이 방을 쓰는 기수는 누워 있을 이유도, 발을뻗고 앉을 이유도 없다. - P7

나는 3초 전까지 투데이의 등에 타고 있었다. 투데이는 흑마다. 빛이 반사되는 수면처럼 검은 털이 아름다운 암말이다. 투데이 이야기는 차후에 더 자세히 할 수 있으리라. 지금 중요한 것은 투데이가 나와 ‘호흡‘을 맞춘 경주마라는 점이다. 고로 나는 투데이와 ‘호흡‘을 맞춘 기수다. - P9

연재는 이번 경기가 끝나면 칠이 거의 벗겨진 내 몸체를 다시 칠하자고 했다. 어떤 색이 좋으냐고 물었다. 원래대로 초록색을 칠하는 것이 내 이름과도 잘 어울리겠지만 나는 2층 방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다 파란색이라고 말했다. - P9

연재를 만나기 전까지 콜리는 C-27로 불렸다.
2035년 미국과 중국, 일본에서 만들어진 부품들이 알맞게 조립되어 콜리는 한국 대전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콜리가 다른 기수 휴머노이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만들어지는 마지막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칩이 잘못 삽입되었다는 것이다. - P11

규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질서는 모두가 약속된 규정을 어기지 않아야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콜리에게도 그런 규정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 P20

세상에는 단어가 천 개의 천 배 정도 더 필요해 보였다.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혹시 세상에 이미 그만큼의 단어가 있는데 자신이 모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단어들은 어디에서 알 수 있을까. - P21

때때로 불쑥, 예기치 못한 곳에서 색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콜리는 몸속 어딘가에 문장을 담아두는 공간이 있고 문장이 거기에서 튀어나온다고 생각했다. - P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