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방은 성인 한 명이 웅크려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다. 누워 있을 수도, 발을 뻗고 앉을 수도 없을 만큼 비좁다. 하지만 이 방을 쓰는 기수는 누워 있을 이유도, 발을뻗고 앉을 이유도 없다. - P7
나는 3초 전까지 투데이의 등에 타고 있었다. 투데이는 흑마다. 빛이 반사되는 수면처럼 검은 털이 아름다운 암말이다. 투데이 이야기는 차후에 더 자세히 할 수 있으리라. 지금 중요한 것은 투데이가 나와 ‘호흡‘을 맞춘 경주마라는 점이다. 고로 나는 투데이와 ‘호흡‘을 맞춘 기수다. - P9
연재는 이번 경기가 끝나면 칠이 거의 벗겨진 내 몸체를 다시 칠하자고 했다. 어떤 색이 좋으냐고 물었다. 원래대로 초록색을 칠하는 것이 내 이름과도 잘 어울리겠지만 나는 2층 방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다 파란색이라고 말했다. - P9
연재를 만나기 전까지 콜리는 C-27로 불렸다. 2035년 미국과 중국, 일본에서 만들어진 부품들이 알맞게 조립되어 콜리는 한국 대전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콜리가 다른 기수 휴머노이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만들어지는 마지막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칩이 잘못 삽입되었다는 것이다. - P11
규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질서는 모두가 약속된 규정을 어기지 않아야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콜리에게도 그런 규정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 P20
세상에는 단어가 천 개의 천 배 정도 더 필요해 보였다.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혹시 세상에 이미 그만큼의 단어가 있는데 자신이 모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단어들은 어디에서 알 수 있을까. - P21
때때로 불쑥, 예기치 못한 곳에서 색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콜리는 몸속 어딘가에 문장을 담아두는 공간이 있고 문장이 거기에서 튀어나온다고 생각했다. - P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