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열네 개의 북두진이 또다시 곽정을 향해 좁혀오기 시작했다. 곽정은 조급한 마음에 왼손으로는 현룡재전(見龍在田) 초식을 오른손으로는 항룡유회(龍有悔) 초식을 사용하며 좌우를 동시에 공격했다. 왼쪽의 북두진과 오른쪽의 북두진이 각기 곽정의 초식을막아냈다.
곽정은 모든 초식을 다 사용하기 전에 양손의 초식을 바꾸었다. 곽정은 좌우호박술(左憂互博術)을 써서 양손에 서로 다른 초식을 전개했다. 곽정이 사용한 두 초식은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 P214

곽정이 우선 일곱 명의 도사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낯익은 세 분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마옥, 구처기, 왕처일이었다. 그리고 젊은 도사 네 명도 함께 대적하고 있었는데 그중 윤지평(尹志平)의 얼굴이 보였다. - P219

마옥, 구처기, 왕처일 등은 곽정이 온 것을 보고 뛸 듯이 기뻐했다.
"곽정이 왔구나. 마침 잘 왔다, 잘 왔어."
곽정은 안도의 숨을 내쉬는 세 분 앞에 절을 했다.
"제자 곽정 문안 여쭙겠습니다."
마옥, 구처기, 왕처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221

마옥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아, 네 아들이냐? 영리하고 민첩한 것이 제 어미를 닮은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이 아인 제 의형제인 양강의 유복자입니다."
구처기는 양강이라는 이름을 듣자 깜짝 놀라며 양과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과연 눈매가 양강을 닮은 듯 싶었다.
양강은 구처기의 하나밖에 없는 속가(俗家)의 제자였다. 비록 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부귀영화에 마음을 빼앗겨 오랑캐를 아비로 삼기는 했으나, 구처기의 애제자임은 분명했다. 더군다나 그는 항상 자기가 잘못 가르친 탓이라며 애석해하고 있었다. - P231

사부님께서는 출가하신 후, 이 산에 있는 오래된 고묘(古墓)에 기거하시면서 몇 년 동안 나오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스스로를 활사인(活死人)‘이라 부르셨다. 말 그대로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같다는 뜻이지. - P236

그녀의 이름이 뭔지는 아는 사람이 없단다. 오늘 우리를 공격해온 적의 무리들은 그녀를 소용녀(小龍女)라고 부르더구나. 그러니 우리도 일단 소용녀라고 부르는 수밖에. - P245

양과는 자신의 잔꾀에 조지경이 결국 스스로를 미친 개로 인정하고 만 것에 신이 나 구처기의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구처기가 막 몸을 돌려 가려 하자, 조지경이 손을 뻗어 양과를 때리려 했다.
그걸 보고 양과는 큰 소리로 구처기를 불렀다.
"구 사조님!" - P269

옳지. 저 녀석은 우리 문파의 무공을 전혀 알지 못하니 현공의 구결만 가르치고 수련법은 가르쳐 주지 않으면 되겠군. 수련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수백 개의 구결을 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사부님과 사백님이 물어보시면 우선 되는 대로 핑계를 대고 양과가 열심히 배우지 않은 탓이라고 둘러대면 될 것 아닌가." - P270

노파가 위로를 할수록 양과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때 휘장 밖에서 고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멈, 왜 아이가 자꾸 우는 거지?"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 휘장을 걷더니 한 열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걸어왔다. 소녀가 입은 하늘거리는 흰색 비단옷이 마치 안개처럼 신비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선녀처럼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새까만 머리카락에 비해 피부가 백짓장처럼 창백해 보였다. - P291

‘저 낭자는 마치 사람이 아니라 수정으로 빚은 인형 같아. 눈으로 만든 설인(雪人) 같기도 하고, 하늘나라 선녀가 내려온 것 같기도 하고……. 혹시 귀신이 아닐까? ‘
양과가 이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노파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용 낭자는 이곳의 주인이시다.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게 좋아."
이 아름다운 소녀가 바로 활사인묘의 주인인 소용녀였다. - P292

"그 아이와 무슨 관계라도 있소? 대체 왜 끼어드는 것이오?"
조지경의 호통에 손 노파는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이 아이는 이제 전진교 문하가 아니다. 우리 소용녀 아가씨를 사부로 섬기게 되었으니 이 아이가 잘하고 잘못하고는 소용녀 아가씨만 간섭할 수 있다. 그러니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고 돌아가라."
이 말이 떨어지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무림 법규에 따르면, 사부의 허락이 있기 전에는 절대 다른 사람을 사부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역무도한 짓으로 모든 무림인들의 지탄을 받을 일이었다. - P301

"나에게 저 아이를 보살펴달라고?"
손 노파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께서 저 아이를…… 다른 사람이 괴롭히지 못하도록 평생 돌봐주세요." - P319

양과는 소용녀가 너무나 담담하게 생과 사를 이야기하자 자신도 더 이상 꺼릴 것이 없어졌다.
"날 못 나가게 한다 해도 당신이 죽으면 나갈 거예요."
"너를 평생 돌본다고 했으니 너보다 먼저 죽지는 않을 거야."
"왜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잖아요."
소용녀는 차갑게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 너를 먼저 죽일 테니까."
양과는 화들짝 놀랐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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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숲에서 웬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고, 수리들은 그들의 어깨에 각각 내려앉았다. 남자는 짙은 눈썹에 눈이 크고 가슴이 유난히 단단해 보였으며 윗입술은 수염으로 살짝 덮여 있었다. 나이는 서른 살쯤 되어 보였다. 여자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며 깨끗한 인상에 미모도 빠지지 않았다. 그녀는 총명하게 빛나는 두 눈으로 소년을 살펴보더니 남자를돌아보았다. - P102

청량한 휘파람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두 휘파람 소리가 어우러져 강한 소리와 부드러운 소리가 조화를 이루자 그 위력이 한층 더 강해졌다.
이막수는 가슴에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며 스스로 자신이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부부는 함께 강호에서 활약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는데, 혼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자신의 신세를 떠올리니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일순간 모든 것들이 덧없게 느껴지고 시들해졌다. - P107

"성은 양이요, 이름은 과, 어머니는 목(穆)씨 아니더냐?"
황용의 목소리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바로 양과(楊過)였다. 갑자기 황용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소년은 너무 놀란 나머지 가슴의 기혈이 끓어오르고 팔에 남아 있던 독기가 솟구쳐 한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는가 싶더니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P110

"이게 무슨 무공입니까? 저도 할 수 있나요?"
"합마공이라고 한다. 네가 배우겠다고 한다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제가 이걸 배우면 아무도 저를 무시할 수 없겠지요?"
기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가 감히 내 아들을 무시해? 내 그놈의 힘줄을 뽑아버리고 껍질을 벗겨버리겠다."
그 기인은 다름 아닌 서독(西毒) 구양봉(歐陽鋒)이었다. - P115

"엄마가 도화도에 가면 뭐든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착하게 지내야 한다고 하셔서 ……. 하지만 여기서도 굶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그냥 여기서 지냈어요!"
곽정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황용은 양과의 말에서 그가 시키는대로 말 잘 듣고 착하게 지낼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도화도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 P121

곽정은 장력을 한 단계 더 높여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구양봉은 킬킬거리고 웃더니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 곽정의 장력이 거세질수록 그의 반격도 강해졌다. - P124

곽부는 모든 잘못을 양과에게 덮어씌웠다. 자기가 양과의 귀뚜라미를 밟아 죽인 거며, 무씨 형제가 둘이서 양과를 무자비하게 때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황용은 딸의 말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딸의 벌겋게 부어오른 볼을 보니 모든 게 사실인 것 같았다. 황용은 가여운 생각에 딸의 볼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 P160

"과야, 지나간 일은 모두 잊기로 하자꾸나. 네가 사조님께 무례하게 굴었기 때문에 난 더 이상 너를 내 문하에 둘 수 없다. 앞으로는 그냥 백부라고 부르면 된다. 내가 부족함이 많아 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구나. 며칠 후에 널 종남산(終南山)의 중양궁(重陽宮)으로 데려가 전진교(全眞敎)의 장춘자(長春子) 구진인(丘眞人)에게 맡길 생각이다. 전진파의 무공은 무학의 정종(正宗)이다.
중양궁에서 열심히 배우고 수양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 P179

"백부님, 궁금한 게 있어요."
"무엇이 궁금하느냐?"
"저희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돌연 곽정의 안색이 딱딱하게 바뀌었다. 가흥 철창묘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떨리기까지 했다. 곽정은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183

‘백부님 같은 무공을 배울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다 견뎌낼 거야. 그렇지만 어느 세월에 백부님처럼 될 수 있겠어. 곽부나 무씨 놈들은 복도 많지. 전진파의 무공이 백부님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나를 이 사람들에게 보내시다니 ….
양과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고 더 이상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어디 가겠는가? 결국 그는 또다시 넋을 잃고 싸움 구경에 빠져들었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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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안개 자욱한 호반 위를 감싸고 있다. 노랫소리는 호반 위의 작은 배에서 흘러나왔고, 그 배에는 다섯 명의 소녀가 깔깔거리며 노래를 부르면서 연꽃을 따고 있었다. - P16

형님은 돌아가시기전에 자신을 증오하는 원수가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 이름은이막수(李莫愁), 별호는 적련선자(赤練仙子)로 무공이 높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자라고 했어. 형님이 혼례를 올린 지 10년이 되는 해에 형님은 그 자가 자신의 부부를 찾아와 복수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 - P34

어린 계집아이 둘은 사촌 간으로 한 아이는 성이 정(程)이고 이름은 외자로 영(英)이며, 또 한 아이는 성이 육(陸)이고 이름은 무쌍(無雙)이었다. 정영과 무쌍은 아홉 살이었고 정영이 여섯 달 먼저 태어났다. - P18

무 부인이 돌연 아이들에게 말했다.
"육 장주와 육 부인께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의 절을 올려라."
부인의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다소곳이 절을 했다. 육 부인은 황급히 아이들을 부축해 일으키고는 이름을 물었다. 이마가 깨진 아이는 열두 살 무돈유(武敦儒)로 형이고, 동생은 열한 살 무수문(武修文)이었다. 무학(武學) 명문의 자제인데도 이름에 문인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 P47

수문은 소녀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몸을 돌려보았다. 쇠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저는 노인이 보였다. 두 눈썹이 서리가 내린 것처럼 허옇고, 하얀 눈동자만 보이는 것이 장님이 분명했다. - P53

세상 사람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생과 사를 같이하게 한단 말인가? - P59

‘저 절름발이 노인은 누군데 저런 무공을 지니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노인의 두 눈동자가 흰자만 있는 장님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경악하며 소리쳤다.
"가진악이로군!"
장님에 절름발이 노인은 바로 강남칠괴(江南七怪)의 수장인 비천편복(飛天婦蝠) 가진악(柯鎭惡)이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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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양강 때문에 돌아가신 사부님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리지만 어차피 양강이 죽었으니 증오의 마음도 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곽정은 의형제를 맺었던 옛 정을 생각해 양강의 시체를 수습하여 절 후원에 장사 지내 주었다.
"양강, 오늘 내가 너의 시체를 장사 지내 준 은혜를 생각해서 용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다오. 그럼, 살아 생전에 네가 저지른 모든 잘못을 용서하마 - P65

구양봉은 다시 손을 뻗어 곽정의 장력을 받았다. 그 역시 항룡십팔장에 대해서는 훤히 꿰뚫고 있었다. 또한 곽정이 홍칠공에게 직접 전수를 받아 장력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정면으로 힘이 전해지니 뜻밖에 몸이 흔들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고수의 힘이 서로 부딪칠 때는 그 진기(眞氣)가 조금만 역류해도 중상을 입게 된다. 조금만 방심했더라면 곽정에게 당할 뻔했다는 생각에 구양봉은 크게 놀랐다.
‘내가 늙어 기운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그 전에 이 녀석에게 따라잡히겠구나.‘ - P109

곽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면 넌 무엇을 해주겠느냐?"
"앞으로 세 번, 선배님이 제 수중에 걸려도 목숨을 살려 드리겠습니다."
구양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웃음을 터뜨렸다. - P112

곽정은 황용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정작 이렇게 만나고 보니 놀라움 반, 기쁨 반으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서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봉우리 꼭대기는 온통 얼음이라 굉장히 미끄러웠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동시에 미끄러져 바닥에 쓰러졌다. - P137

"노독물이 견디다 못해 죽기로 작정했구나!"
황용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다 조금씩 표정이 바뀌었다.
"응? 이상하네? 어떻게 저럴 수가……."
지켜보고 있자니 구양봉의 몸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천천히 흔들리며 연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곽정과 황용은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높은 봉우리에서 떨어진다면 곧장 떨어져 가루가 되어야 하는데, 어찌 저 자는 저렇게 천천히 내려온단 말인가? - P147

"대칸께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테무친의 목소리는 깊이 잠겨 있었다. 곽정은 혼사를 취소하라던 황용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대칸의 환심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황용과의 인연도 물거품이 될 터였다. 그러나 눈앞에서 수십만 백성들이 비명에 죽어 가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마음을 수습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테무친도 곽정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 P163

구양봉은 심오한 무공을 가진 자라 곽정의 연공을 살펴보면서 경전 중 많은 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얻은 경전과 대조를 하니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아 더욱 곽정의 연공을 독촉해댔다. 그러니 곽정의 무공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오히려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 P184

"나의 이 두 손을 두 명의 적이라고 생각해라. 구양봉, 구천인 저 두 놈은 당연히 네 적이니까 너 혼자서 네 명의 적을 상대해 보는 거야. 한 번 해보자. 이런 재미있는 놀이는 너도 처음 해보지?"
곽정은 주백통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다가 갑자기 세 사람이 동시에 자신에게 맹공을 퍼붓자 죽을힘을 다해 피할 수밖에 없었다. 주백통은 계속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걱정 마, 걱정 말라고, 위험하면 내가 도와줄게." - P196

대칸은 품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어 각각 하나씩 건네주었다. 주머니 입구는 옻을 불로 지져 밀봉되어 있었는데, 옻 위에는 대칸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대량에 도착하기 전에 함부로 풀어 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주머니를 열기 전에 서로 주머니 입구에 손상된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아라." - P205

이평은 말을 하면서 곽정의 품에서 그 비수를 꺼내 손잡이에 새겨진 곽정‘ 이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구 도장은 네 이름을 곽정이라고 짓고, 양 숙부 아이의 이름을 양강이라고 지어 주셨단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구 도장께서는 저희들에게 ‘정강의 치욕‘을 잊지 말라는뜻에서 그렇게 지어 주셨습니다." - P215

이평은 곽정을 한참 동안 묵묵히 바라보았다. 아들을 바라보는 표정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얘야. 너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한다!"
이평은 말을 마치고 비수로 곽정의 손에 묶인 밧줄을 끊은 다음, 순식간에 칼날을 돌려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곽정은 손이 풀리자마자 급히 막으려 했지만 비수는 예리하기 그지없어 이미 손잡이만 남기고 가슴에 깊이 꽂혀 있었다. - P216

"저는 앞으로 다시는 무공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무공을 다 잊어버리게 되면 좋겠는데, 이미 익힌 무공을 잊어버릴수도 없고……. 방금도 저 때문에 장정 하나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 P229

차분히 내뱉는 서생의 말에 구천인은 고개를 쳐들고 크게 웃어 젖혔다.
"무공으로 하겠다면 당신들은 여럿이고 나는 혼자이니, 상대가 되지 않을 거요. 하지만 시비, 선악을 따진다면, 헤헤…… 나 혼자 이 자리에 있을 테니 평생 사람 죽여 본 일 없고, 죄를 저질러 본 적도 없는 자가 있다면 나서 보시오. 그런 사람의 손에 죽는다면 곱게 죽어 드리리다. 눈썹 하나라도 찡그린다면 내 사내대장부가 아니올시다." - P264

사부님은 평생 231명을 죽였다고 하셨지. 하지만 그들은 모두 악인이었어. 선량한 사람을 실수로 죽이지만 않는다면 마음에 거리낄 것도 없겠지. 구천인을 꾸짖을 때 사부님은 정말 당당한 모습이셨어. 구천인의 무공도 사부님보다 크게 떨어질 것 없지만, 악이 선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 사부님의 당당한 기세에 눌릴 수밖에 없는 거야. 나의 무공을 의롭고 선한 일에 쓸 수 있다면 굳이 잊으려 할 필요는 없겠지? - P271

곽정은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반듯한 용모를 보니 양강과 의형제를 맺은 일이 생각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라버니께서 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세요."
목염자의 눈물어린 부탁에 곽정은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아이의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었소. 끝이 좋지 않았으니, 나도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평생 한으로 남을 거요. 이 아이는 커서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오. 용아, 나는 글을 잘 모르니 네가 이름을 지어 줘."
황용은 그래도 될지 목염자를 쳐다보았다.
"그래, 오라버니의 기대를 넣어서 네가 아이의 이름을 지어 줘."
"그러면 이름은 양과(楊過)라 하고, 자는 개지(改之)라고 하는 것이 어떨까요?"
"좋아요! 아이가 오라버니와 용이가 바라는 것처럼 자랐으면 좋겠어요."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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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조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은 곽정이란 놈이 독수를 썼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네가 구처기에게 전하는 말을 듣고 난 뒤에야 전진교의 사악한 도사들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백타산에는 이제 계승자가 없으니, 내 너를 제자로 거두겠다."
양강은 큰 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제자의 절을 받으십시오." - P19

가진악은 너무 놀라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황용은 강남오괴를 죽인 사람이 구양봉과 양강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목숨을 버려 가며 아버지의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틀림없이 위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진악에게 자기를 죽인 사람이 누군지 황약사에게 알리라고 했던 것이다. 가진악은 괴로움과 후회로 몸을 떨었다. - P34

구양봉은 사랑하는 조카를 양강이 죽였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바보 소녀가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너무 놀란 구양봉은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소왕야, 네놈이 내 조카를 죽였다고? 하하하! 잘 죽였군, 잘 죽였어."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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