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숲에서 웬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고, 수리들은 그들의 어깨에 각각 내려앉았다. 남자는 짙은 눈썹에 눈이 크고 가슴이 유난히 단단해 보였으며 윗입술은 수염으로 살짝 덮여 있었다. 나이는 서른 살쯤 되어 보였다. 여자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며 깨끗한 인상에 미모도 빠지지 않았다. 그녀는 총명하게 빛나는 두 눈으로 소년을 살펴보더니 남자를돌아보았다. - P102

청량한 휘파람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두 휘파람 소리가 어우러져 강한 소리와 부드러운 소리가 조화를 이루자 그 위력이 한층 더 강해졌다.
이막수는 가슴에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며 스스로 자신이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부부는 함께 강호에서 활약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는데, 혼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자신의 신세를 떠올리니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일순간 모든 것들이 덧없게 느껴지고 시들해졌다. - P107

"성은 양이요, 이름은 과, 어머니는 목(穆)씨 아니더냐?"
황용의 목소리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바로 양과(楊過)였다. 갑자기 황용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소년은 너무 놀란 나머지 가슴의 기혈이 끓어오르고 팔에 남아 있던 독기가 솟구쳐 한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는가 싶더니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P110

"이게 무슨 무공입니까? 저도 할 수 있나요?"
"합마공이라고 한다. 네가 배우겠다고 한다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제가 이걸 배우면 아무도 저를 무시할 수 없겠지요?"
기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가 감히 내 아들을 무시해? 내 그놈의 힘줄을 뽑아버리고 껍질을 벗겨버리겠다."
그 기인은 다름 아닌 서독(西毒) 구양봉(歐陽鋒)이었다. - P115

"엄마가 도화도에 가면 뭐든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착하게 지내야 한다고 하셔서 ……. 하지만 여기서도 굶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그냥 여기서 지냈어요!"
곽정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황용은 양과의 말에서 그가 시키는대로 말 잘 듣고 착하게 지낼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도화도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 P121

곽정은 장력을 한 단계 더 높여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구양봉은 킬킬거리고 웃더니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 곽정의 장력이 거세질수록 그의 반격도 강해졌다. - P124

곽부는 모든 잘못을 양과에게 덮어씌웠다. 자기가 양과의 귀뚜라미를 밟아 죽인 거며, 무씨 형제가 둘이서 양과를 무자비하게 때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황용은 딸의 말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딸의 벌겋게 부어오른 볼을 보니 모든 게 사실인 것 같았다. 황용은 가여운 생각에 딸의 볼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 P160

"과야, 지나간 일은 모두 잊기로 하자꾸나. 네가 사조님께 무례하게 굴었기 때문에 난 더 이상 너를 내 문하에 둘 수 없다. 앞으로는 그냥 백부라고 부르면 된다. 내가 부족함이 많아 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구나. 며칠 후에 널 종남산(終南山)의 중양궁(重陽宮)으로 데려가 전진교(全眞敎)의 장춘자(長春子) 구진인(丘眞人)에게 맡길 생각이다. 전진파의 무공은 무학의 정종(正宗)이다.
중양궁에서 열심히 배우고 수양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 P179

"백부님, 궁금한 게 있어요."
"무엇이 궁금하느냐?"
"저희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돌연 곽정의 안색이 딱딱하게 바뀌었다. 가흥 철창묘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떨리기까지 했다. 곽정은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183

‘백부님 같은 무공을 배울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다 견뎌낼 거야. 그렇지만 어느 세월에 백부님처럼 될 수 있겠어. 곽부나 무씨 놈들은 복도 많지. 전진파의 무공이 백부님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나를 이 사람들에게 보내시다니 ….
양과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고 더 이상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어디 가겠는가? 결국 그는 또다시 넋을 잃고 싸움 구경에 빠져들었다. - P1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