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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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정쩡하게 성공한 변호사
벤저민 브래드포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월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변호사이다. 월스트리트라고는 해도 그다지 치열하지 않은 신탁유산 전문 변호사 일을 하면서 아름다운 아내 베스와 큰 아들 애덤, 태어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조시와 함께 살고 있다. 겉으로는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는 것 같지만 베스와 항상 사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베스는 원래 소설가를 꿈꿨지만 출판사로부터 여러차례 거절을 당한 후 벤저민의 아이를 갖게 된 이후로는 소설가의 삶을 포기하게 됐다. 둘째까지 태어난 이후로는 작가로서 사는 것은 이미 요원한 일이 됐다. 자신이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이 벤저민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원망하는 마음까지 갖고 있다.


벤저민은 어릴 때는 사진가가 되고 싶었고, 실력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갈등을 겪은 끝에 사진가의 꿈은 접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변호사가 되었다. 꿈은 비록 접었지만 집의 지하실에는 암실을 만들어 놓았고, 4만5천 달러에 달하는 카메라 장비도 구매해 놓았다. 지하실은 온전히 벤저민의 공간으로 벤저민이 유일하게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대학시절 애인으로 잠깐 동거를 했던 케이트 브라이머는 종군기자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부럽다. 케이트 브라이머는 별로 큰 역할이 없으니 책을 읽을 때 잊어도 상관없다.

 

더글러스 케네디 Douglas Kennedy, 1955년 ~ . 미국.


아내의 외도로 시작된 불행
베스가 심상치 않다. 갑자기 이상한 지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으로 벤저민에게 살갑게 대한다. 아내가 갑자기 변한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벤저민은 촉을 발동시키고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거짓말이 늘어나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발전한다. 언제나 나쁜 예상은 들어맞기 마련. 베스는 주변에 살고 있는 허접하기 짝이 없는 실패한 사진가, 게리 서머스와 불륜에 빠졌다. 아내와 게리가 키스하는 장면까지 목격한 벤저민은 오히려 아내와 사이가 틀어질까봐 걱정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게리의 집으로 찾아간다.


뻔뻔한 게리. 말다툼. 결국 벤(벤저민)은 홧김에 술명으로 게리를 내리치고 게리는 죽는다.

 

주인공인 벤저민은 월스트리트의 전도유망한 변호사로 나온다.


바꿔친 후 사라져 버리기
1부가 끝이 날 때(소설은 3부로 되어 있다) 단순 치정극이던 소설은 벤이 게리를 죽이면서 순식간에 스릴러가 된다. 벤은 살인자가 되고 여러가지 선택지를 놓고 순간적으로 고민을 한다. 자수를 해서 단번에 망가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보니 끔찍하다. 도망자가 되어 살 자신도 없다. 범죄자도 싫고 도망자도 싫었던 벤은 엉뚱한 결정을 하게 된다. 게리와 자신의 삶을 바꾸고 사라져 버리기로 한다.


게리는 천애고아나 마찬가지라 찾을 사람이 없다. 게리의 지하실에서 게리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게 가장 급하다. 게리의 모든 우편물들을 다른 곳으로 배달되도록 돌려 놓는다. 벤 자신의 얼굴로 사회보장카드를 만들고 게리의 신분을 훔친다. 아내가 찾지 않도록 게리 이름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메일도 보내 놓았다. 이후 친구의 요트에 게리의 시신을 싣고 자동항해 후 폭발하도록 장치를 해 놓는다. 물론 게리는 벤의 옷을 입고 있다. 결국 벤은 게리로 신분을 바꿔서 떠나 버리고, 게리는 벤이 되어서 요트폭발과 함께 시신은 산산조각이 되어 바다 속에 수장되어 버린다. 완전범죄가 성공했다.

 

실수로 게리 서머스를 살해한 벤저민은 서머스의 시신을 유기한 후 신분을 바꾼 후에 평생 꿈꾸던 사진가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잘 이해되지 않는 주인공의 행보
굉장히 미국적인 스릴러다. 여기서 미국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라면 과연 이런 바꿔치기가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라면 여기저기 수많은 CCTV가 달려 있다. 모든 국민은 지문날인한 신분증을 가지고 있고, 주민등록번호가 있다. 어디선가 월급을 받으려면 반드시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한다. 땅도 좁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식으로 신분 바꿔치기가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싸하긴 하다. 게다가 소설의 배경이 1995년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에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신분바꿔치기의 가능성보다도 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주인공의 행보였다. 벤은 게리를 죽인 후에 용의주도하게 살인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웠다. 게리의 모든 정보를 거머쥘 수 있었고, 게리가 다른 주로 여행하는 것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게리를 완벽하게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꼭 신분을 바꿔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은데.. 요트를 폭파시켜서 시체를 없앨 생각을 했다면 요트를 타고 바다 멀리 나가서 돌에 매달아 시체를 유기할 수도 있었다. 아마도 시체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딱히 사랑하는 가족(아내는 아닐 수 있지만 아이들도 못 만나잖아)과 헤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벤저민은 우연한 기회에 특종사진을 찍게 되고 명성을 얻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위기를 맞게 된다.


 

애인도 얻고 명성도 얻었지만..
신분을 바꾼 벤은 자동차를 달려 서북부 몬태나 주의 중소도시인 마운틴 풀스에 정착을 한다. 이 곳에서 꿈이었던 사진가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물론 자신의 이름이 아닌 게리의 이름으로 활동을 한다.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루디 워렌은 무례한 술주정뱅이이지만 사진을 볼 줄 아는 명칼럼니스트이다. 벤이 찍어 놓은 몬태나 주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몰래 몬태난 지에 보냈고, 이 덕에 벤은 몬태난 지와 사진 연재 계약을 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몬태난 지의 사진부장인 앤 에임스와 사랑에 빠진다. 벤은 자신의 사진에 반한 주디 윌머스와 계약을 해서 사진전시회까지 준비한다.


여기까지만 하지.. 주디와 함께 무스호수의 오두막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숲에 불이 나고, 벤은 생생한 화재현장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행운을 얻는다. 전국 단위의 모든 잡지에 이 사진들이 실리고 방송에도 나간다. 하지만 이건 행운이기도 하지만 벤에게는 불행이기도 하다. 게리 서머스의 이름이 전국에 널리 퍼지게 되고, 게리의 행방을 찾던 아내 베스가 게리를 찾아 사진전시회까지 들이닥치게 된다. 게다가 벤의 방을 뒤지던 루디 워렌은 벤의 범죄행각을 눈치채고 협박을 하기 시작한다. 벤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나는 벤의 행동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범죄를 치밀하게 감춘 사람답지 않게 마운틴 풀스에 정착한 이후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한다. 사라진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게리를 아는 누군가, 특히 아내가, 게리를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최소한 몇 년은 숨만 쉬고 살아야 완전범죄가 완성이 될텐데, 벤은 그런 경각심이 하나도 없다. 결국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또다시 위험에 처하게 된다.

 

벤저민은 모든 것을 알아챈 루디 워렌에게 협박을 받고,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하게 된다.


 

좀 아쉽지만 재미는 있다
발표된지 꽤 오래된 소설이다. 20년이 넘게 지났으니 현재의 시점과 비교해 볼 때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미국 소설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역시 꽤 많다. 시간과 공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주인공인 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좀 많다는 것이다. 주인공에게 완전히 몰입을 해야 더욱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 때문에 완전하게 몰입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이게 또 시간과 공간의 큰 차이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대체적으로 추천할 만하다.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까지 읽은 후에 문득 정유정의 <종의 기원>과 플롯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로 인한 살인, 그것을 숨기려는 주인공, 살인을 알아챈 사람, 그리고 결말까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종의 기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훨씬 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피의 농도가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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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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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잘 읽지 않는 종류의 책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쓸데없는 관심이 많아서 책을 좀 잡다하게 읽는 편이다. 한 권의 책은 다른 몇 권의 책을 낳고, 또 그 책들은 다른 책을 소개하고.. 그러다 보니 읽지 못하면서도 언젠가는 읽을 거라는 생각으로 사서 쌓아 두기도 한다. 사 놓은지도 모르고 기억에서 사라졌던 책들을 책장 구석에서 꺼내 읽고 나서는 너무 늦게 읽은 걸 아쉬워 할 때도 있다. 나는 책에 관해서는 잡식성이다.


좋다고 하는 책은 어지간하면 읽어 보려고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지만 잘 손에 잡지 않는 책이 있다. 첫번째로 자기계발서는 절대로 읽지 않는다. 이전에 읽었던 몇 권 되지 않는 자기계발서는 성공하는 방법을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한정된 경험과 그 경험을 증명하려는 의도를 가진 왜곡된 데이터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강요했다. 두번째로 에세이도 잘 읽지 않는다. 감성적인 글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책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을 중요시 하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꼭 정보가 없더라도 소설은 꽤 많이 읽는 편이고, 시집도 간혹 읽는 것을 보면 감성적인 글을 싫어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에세이는 읽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언어의 온도>를 읽은 건 내 독서 스타일에서는 꽤 벗어난 의도하지 않은 접촉사고와 비슷하다.

 

저자 이기주. 개인 프로필을 찾기가 힘들다. 검색하면서 몇 가지 알게 된 것은 있지만 그의 정치적 성향은 이 포스팅에서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섬세한 필치로 일상을 더듬어 나간다
<언어의 온도>는 글쓴이가 일상을 훑어서 감성을 담아낸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들을 그냥 지나치게 마련이다. 그 속에서 의미를 찾기에는 삶이 너무 바쁘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소소한 일상이라는 것은 훌륭한 글의 소재가 되는가 보다. 때로는 옆자리에서 하는 얘기를 엿듣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기도 하고, 친구한테 문자가 오기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도 하는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을 뽑아내서 그 속에 감성을 불어 넣고 그것을 글로 표현한다. 평범한 일상과 섬세한 감성, 각기 두 단어로 이루어진 두 개의 말로 이 책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어의 온도>의 첫 번째 대목은 '말'에 관한 내용이다.


편안하게 읽을 수는 있는 유려한 문장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문장이 굉장히 좋다. 감성적이고 따뜻함이 느껴진다. 글쓰기에 대해서 여성과 남성을 가를 수 있다면, 강인한 느낌보다는 섬세한 여성의 필치가 느껴진다. 글쓴이를 잘 알지 못하지만 글대로라면 굉장히 따뜻하고 섬세한 사람일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 글을 쓰려면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항상 주변을 잘 살피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보고도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섬세하게 살피는 것도, 그것을 써내려가는 것도 보통 사람은 하기 힘든 일이다. 책 전체를 통틀어서 대단한 철학이라든지 굉장한 지식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게 끝까지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글'에 대한 대목이다.


역시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
이제 내가 왜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를 얘기해 봐야겠다. 에세이는 도대체 읽어도 내가 뭘 얻을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좋은 소설은 치밀한 주제의식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좋은 시는 한껏 벼리어 놓은 글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지식에 관한 글이야 읽는 목표가 뚜렷한 것이 읽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떨까?


감성은 과잉되어서 일상적인 감정같지가 않다. 일상이라고 하지만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것같은 에피소드가 중간중간 들어가 있다. 일상을 통해서 얻은 통찰을 써 놓지만 통찰이 있어 보일 뿐이지 깊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읽어 본 에세이들은 대부분 진심을 담은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언어의 온도> 역시 다른 에세이들을 뛰어넘을 정도로 다른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세 번째는 '행동'에 대한 대목이다.


왜 베스트셀러일까?
이 책을 읽은 건 워낙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맨 앞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고 나서도 책 속에서 딱히 베스트셀러가 될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책의 외적인 면에서 그 이유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1. 제목이 정말 좋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제목 하나만큼은 굉장히 잘 지은 것 같고, 머릿글에서 밝혀 놓은 뜻도 굉장히 좋아 보인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고를 수 있어 보인다.
2. 책이 작다.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가장 크기가 작은 책이다. 한 손에 쏙 들어 온다. 남자들이라면 코트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좋고, 여자들이라면 핸드백 속에 넣고 다니다가 읽기에 좋다.
3. 표지가 눈에 확 띈다. 가지고 있는 책들을 살펴 보니 보라색 책이 거의 없다. 그것도 이 책처럼 선명한 보라색 책은 더더군다나 없다. 가지고 다니면 좀 있어 보일 것 같다.
4. 책을 읽으면서 감정의 동요를 크게 느낄 일이 없고, 집중해서 읽어야 할 부담도 없다. 차례대로 읽을 필요도 없이 중간을 펼쳐서 아무 곳이나 눈에 띄는대로 읽어도 된다. 책을 읽는데 대한 부담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부분은 있을 수 있지만 새로운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인터넷과 SNS에 떠도는 많은 감성적인 글보다 크게 훌륭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런 글들을 한 사람이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써내려가는 것도 멋진 일이다. 하지만 딱히 일부러 찾아 읽을 것까지는 없어 보인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들고 다니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니 추천할 만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독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거르고 지나가도 괜찮을 것 같다. 궁금하면 서점에서 몇 장 들춰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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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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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것이다.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에 프로그램 짜 넣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유전자가 다수의 다른 개체 내에 동시에 존재하는 분산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P. 166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을까?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이면서 아직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질문이다. 창조론은 유대교로부터 시작하는 거룩한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인 카톨릭, 개신교, 이슬람교의 믿음이다. 과학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설명을 하려는 시도와 함께 지적 설계론을 만들어 냈고, 믿음을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창조과학 이론까지 나타났다. 진화론은 발칙한 다윈이 처음으로 주창한 이후, 서양 역사를 지배하고 있던 창조론을 반박하며 주류 이론으로 대접받고 있다. 진화론 역시 처음 다윈이 생각했던 것과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는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개체의 진화가 아닌 유전자의 적자생존 관점에서 생명의 진화를 설명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1941년 ~ . 영국. 진화생물학자. 극단적인 회의론자이면서 당연히 무신론자이다.


생명 - DNA를 옮기는 그릇
책은 DNA와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번개같은 전기 방전에 의해서 물, 이산화탄소, 메탄, 암모니아같이 태양계에 흔한 흔한 화합물로부터 아미노산이 발생하고 유기물이 발생한다. 이 유기물은 원시의 바다에 점점 많아 지고 바다는 생물이 발생하기 전 단계인 원시 수프가 된다. 어느 순간 이 원시 수프에서 자기 복제자가 등장하고 성공적으로 자기 복제를 수행한 복제자가 DNA 분자로 발전한다. DNA 분자가 분화하면서 갖가지 다른 형태의 DNA가 나타났고, 이 DNA들로부터 생명이 탄생을 했다.


생명이 왜 탄생했을까? 도킨스는 이 질문에 대해서 (중간에 나오는 여러가지 설명을 뛰어넘고 나면) 생명은 유전자가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그릇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 부분이 전통적인 진화론과 다른 지점이다. 전통적인 진화론에서는 개체나 개체군, 또는 종 種을 단위로 해서 자연선택에 의해서 진화가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도킨스는 유전자가 진화의 단위라고 한다. 기존의 진화론에 비해서 훨씬 기계적인 관점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단위를 생명체가 아니라 유전자이다.


생명은 기계다 - 가치 따위는 없다
일단 진화의 단위를 생명체에서 유전자로 새롭게 설정하고 나서 모든 생명의 활동을 이 기준에 따라서 설명을 한다. 1장에서 4장까지는 DNA의 관점에서 생명체를 다시 설명한다. 유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같은 DNA를 최대한 많이 복제해서 번성하게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유전자와 합쳐져서 세포를 만들고, 그 세포들이 모여서 생명체를 이룬다. 5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유전자간에 자신의 복제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생명활동을 설명한다.


어떤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유전자를 공격하는 것이다. 게임이론을 통하여 유전자가 어떻게 살아남기 위한 가장 적합한 전략을 취하고 경쟁에서 승리해 나가는지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경쟁과 공격이 아니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생명체의 고귀한 덕목이라고 느끼는 이타주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극한 사랑까지도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한 전략이라고 도킨스는 설명한다. 정확하게는 살아남기 위해서 전략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그 전략을 선택한 유전자가 살아남은 것이다. 계속해서 이런 설명을 읽고 있다 보면 생명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생명체는 그저 이기적인 유전자의 전략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진화론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화를 낸 것과 마찬가지로 이기적 유전자론 역시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낸다. 인간이 오랜 역사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가치를 산산조각내 버리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이타적인 행동, 협력 등은 단지 유전자가 자기복제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


주의 - 읽는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들

"나는 어머니를 하나의 기계로 취급한다. 이 기계의 내부에는 유전자가 들어앉아 있고 이 기계는 그 유전자의 사본을 퍼뜨릴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P. 218


책을 읽다가 저런 문장이 나오면 누구라도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모성애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모든 생명체에 우선한다. 모성애 뿐만 아니라 협력, 도덕성 등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사실 생명의 본질적인 모습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택된 것일 뿐이다. 이건 도킨스가 의도하는 바가 맞다.


유전자를 의인화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 읽는 사람들을 화가 나게 하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유전자가 독립적인 의지를 가지고 생명체를 조종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건 도킨스가 의도한 바라기보다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약간 편법을 쓴 것이다. 유전자에 무슨 의식이나 의지가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책의 초반에 도킨스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세 가지를 명시해 놓고 있다.


1. 나는 진화에 근거하여 도덕성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2. 이 책은 '천성이냐 교육이냐'라는 논쟁에서 어느 한쪽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3. 나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를 것을 주장할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사항을 먼저 충분히 머릿속에 담아 두지 않고 이 책을 읽으면 읽다가 집어 던지고 싶은 생각이 여러차례 일어날 것이다.

 

부모의 사랑까지도 유전자의 전략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르면, 이 책에 대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협력의 발생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에서 협력이 발생하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자연선택에 의해서 적당한 유전자가 살아남으려면 경쟁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또는 그릇인 생명체)의 협력에 대해서 책에서 설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도킨스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에 초판이 발행이 되었는데 개정판이 발행된 1989년 사이에 '로버트 액설로드'가 죄수의 딜레마를 토대로 협력이 발생하는 원리를 밝힌 <협력의 진화, 이기적 개인의 팃포탯 전략(이하 협력의 진화)>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마치 <이기적 유전자>라는 직소 퍼즐의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은 것같은 책이다. 도킨스는 <협력의 진화>의 내용을 12장에 추가했고, 이로써 <이기적 유전자>는 완전체가 된 느낌이다. 함께 읽으면 좋다.

 

로버트 액설로드 Robert Axelrod의 <협력의 진화>는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협력이 발생하는 원리를 밝히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문화의 유전자 - 밈 Meme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밈 때문이다. 밈은 인터넷 상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전용되어 사용하고 있지만, 문화의 유전자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유전자가 자기복제와 자연선택에서 의해서 번성해 나가는 것처럼 인간의 문화에도 밈이 있어서 복제와 자연선택(밈에 있어서는 인간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에 의해서 번성해 나간다. 밈은 유전자처럼 서로 경쟁해서 이건 밈은 번성하고 진 밈은 사라진다. 밈도 원시상태가 있었고, 생존을 위해서 몇 개의 밈이 합쳐져서 군 群을 이룰 수도 있다. 하나의 아이디어 차원에서 처음 제시되었지만 문화를 쪼개서 유사성이 있는 밈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명확히 했다는데 의의가 있어 보인다.

 

'유전자 : 생명체 = 밈 : 문화'라고 이해하면 된다. 밈은 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의미있는 단위이며 유전자와 같은 원리에 의해서 자기복제를 해 나간다.


<이기적 유전자>는 엄정한 논문이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적이다. 실례를 풍부히 제시하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증명이 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유전자나 밈의 전략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촘촘하게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기본 전제가 허술하다. 설명을 하는 방식이 '1.이렇다고 가정을 해 보자. 2.설명을 해 보니 그럴듯하지? 3.그러니까 이렇게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진행이 된다. 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밈 부분을 빼고 나면 리처드 도킨스가 독창적으로 생각해 낸 아이디어도 아니다. 여러 명의 과학자들, 사회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인식의 틀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이 점은 도킨스도 책에서 계속해서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정확한 정체는 그동안 쌓여왔던 진화론의 다양한 견해를 유전자의 관점에서 일반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설명해 놓은 교양서이다. 절대로 이 책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이미 진화론의 고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니 누구라도 한 번쯤은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읽을 때는 위에서 밝힌 세 가지 주의점을 잘 이해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책의 내용이 어려울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어렵지 않다.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적이므로 쉽게 읽을 수 있다. 단, 이상하게 읽는데 진도가 잘 나가질 않는다. 어려운 건 아닌데 문장이 잘 읽히지 않는다. 위에서 잠깐 소개한 '로버트 액설로'의 <협력의 진화>와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검색을 해 보니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한 책이 있는 것 같은데, 읽어 보고 싶지만 정식 계약에 의한 책은 아닌 것 같고, 절판되어서 구하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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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민중사
문익환 지음 / 정한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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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민중의 역사를 노예공동체인 하비루와 농민공동체의 해방운동으로 읽었다.. 생각보다 과격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경험도 녹아들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문익환목사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재발간된 멋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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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2018 창간호 - Vol 1 : 너무 많은 접속의 시대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1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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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인문학의 열풍 속에서 하나의 주제로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는 인문학 잡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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