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것이다.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에 프로그램 짜 넣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유전자가 다수의 다른 개체 내에 동시에 존재하는 분산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P. 166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을까?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이면서 아직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질문이다. 창조론은 유대교로부터 시작하는 거룩한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인 카톨릭, 개신교, 이슬람교의 믿음이다. 과학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설명을 하려는 시도와 함께 지적 설계론을 만들어 냈고, 믿음을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창조과학 이론까지 나타났다. 진화론은 발칙한 다윈이 처음으로 주창한 이후, 서양 역사를 지배하고 있던 창조론을 반박하며 주류 이론으로 대접받고 있다. 진화론 역시 처음 다윈이 생각했던 것과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는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개체의 진화가 아닌 유전자의 적자생존 관점에서 생명의 진화를 설명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1941년 ~ . 영국. 진화생물학자. 극단적인 회의론자이면서 당연히 무신론자이다.


생명 - DNA를 옮기는 그릇
책은 DNA와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번개같은 전기 방전에 의해서 물, 이산화탄소, 메탄, 암모니아같이 태양계에 흔한 흔한 화합물로부터 아미노산이 발생하고 유기물이 발생한다. 이 유기물은 원시의 바다에 점점 많아 지고 바다는 생물이 발생하기 전 단계인 원시 수프가 된다. 어느 순간 이 원시 수프에서 자기 복제자가 등장하고 성공적으로 자기 복제를 수행한 복제자가 DNA 분자로 발전한다. DNA 분자가 분화하면서 갖가지 다른 형태의 DNA가 나타났고, 이 DNA들로부터 생명이 탄생을 했다.


생명이 왜 탄생했을까? 도킨스는 이 질문에 대해서 (중간에 나오는 여러가지 설명을 뛰어넘고 나면) 생명은 유전자가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그릇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 부분이 전통적인 진화론과 다른 지점이다. 전통적인 진화론에서는 개체나 개체군, 또는 종 種을 단위로 해서 자연선택에 의해서 진화가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도킨스는 유전자가 진화의 단위라고 한다. 기존의 진화론에 비해서 훨씬 기계적인 관점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단위를 생명체가 아니라 유전자이다.


생명은 기계다 - 가치 따위는 없다
일단 진화의 단위를 생명체에서 유전자로 새롭게 설정하고 나서 모든 생명의 활동을 이 기준에 따라서 설명을 한다. 1장에서 4장까지는 DNA의 관점에서 생명체를 다시 설명한다. 유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같은 DNA를 최대한 많이 복제해서 번성하게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유전자와 합쳐져서 세포를 만들고, 그 세포들이 모여서 생명체를 이룬다. 5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유전자간에 자신의 복제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생명활동을 설명한다.


어떤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유전자를 공격하는 것이다. 게임이론을 통하여 유전자가 어떻게 살아남기 위한 가장 적합한 전략을 취하고 경쟁에서 승리해 나가는지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경쟁과 공격이 아니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생명체의 고귀한 덕목이라고 느끼는 이타주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극한 사랑까지도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한 전략이라고 도킨스는 설명한다. 정확하게는 살아남기 위해서 전략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그 전략을 선택한 유전자가 살아남은 것이다. 계속해서 이런 설명을 읽고 있다 보면 생명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생명체는 그저 이기적인 유전자의 전략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진화론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화를 낸 것과 마찬가지로 이기적 유전자론 역시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낸다. 인간이 오랜 역사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가치를 산산조각내 버리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이타적인 행동, 협력 등은 단지 유전자가 자기복제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


주의 - 읽는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들

"나는 어머니를 하나의 기계로 취급한다. 이 기계의 내부에는 유전자가 들어앉아 있고 이 기계는 그 유전자의 사본을 퍼뜨릴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P. 218


책을 읽다가 저런 문장이 나오면 누구라도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모성애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모든 생명체에 우선한다. 모성애 뿐만 아니라 협력, 도덕성 등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사실 생명의 본질적인 모습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택된 것일 뿐이다. 이건 도킨스가 의도하는 바가 맞다.


유전자를 의인화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 읽는 사람들을 화가 나게 하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유전자가 독립적인 의지를 가지고 생명체를 조종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건 도킨스가 의도한 바라기보다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약간 편법을 쓴 것이다. 유전자에 무슨 의식이나 의지가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책의 초반에 도킨스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세 가지를 명시해 놓고 있다.


1. 나는 진화에 근거하여 도덕성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2. 이 책은 '천성이냐 교육이냐'라는 논쟁에서 어느 한쪽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3. 나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를 것을 주장할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사항을 먼저 충분히 머릿속에 담아 두지 않고 이 책을 읽으면 읽다가 집어 던지고 싶은 생각이 여러차례 일어날 것이다.

 

부모의 사랑까지도 유전자의 전략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르면, 이 책에 대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협력의 발생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에서 협력이 발생하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자연선택에 의해서 적당한 유전자가 살아남으려면 경쟁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또는 그릇인 생명체)의 협력에 대해서 책에서 설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도킨스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에 초판이 발행이 되었는데 개정판이 발행된 1989년 사이에 '로버트 액설로드'가 죄수의 딜레마를 토대로 협력이 발생하는 원리를 밝힌 <협력의 진화, 이기적 개인의 팃포탯 전략(이하 협력의 진화)>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마치 <이기적 유전자>라는 직소 퍼즐의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은 것같은 책이다. 도킨스는 <협력의 진화>의 내용을 12장에 추가했고, 이로써 <이기적 유전자>는 완전체가 된 느낌이다. 함께 읽으면 좋다.

 

로버트 액설로드 Robert Axelrod의 <협력의 진화>는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협력이 발생하는 원리를 밝히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문화의 유전자 - 밈 Meme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밈 때문이다. 밈은 인터넷 상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전용되어 사용하고 있지만, 문화의 유전자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유전자가 자기복제와 자연선택에서 의해서 번성해 나가는 것처럼 인간의 문화에도 밈이 있어서 복제와 자연선택(밈에 있어서는 인간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에 의해서 번성해 나간다. 밈은 유전자처럼 서로 경쟁해서 이건 밈은 번성하고 진 밈은 사라진다. 밈도 원시상태가 있었고, 생존을 위해서 몇 개의 밈이 합쳐져서 군 群을 이룰 수도 있다. 하나의 아이디어 차원에서 처음 제시되었지만 문화를 쪼개서 유사성이 있는 밈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명확히 했다는데 의의가 있어 보인다.

 

'유전자 : 생명체 = 밈 : 문화'라고 이해하면 된다. 밈은 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의미있는 단위이며 유전자와 같은 원리에 의해서 자기복제를 해 나간다.


<이기적 유전자>는 엄정한 논문이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적이다. 실례를 풍부히 제시하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증명이 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유전자나 밈의 전략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촘촘하게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기본 전제가 허술하다. 설명을 하는 방식이 '1.이렇다고 가정을 해 보자. 2.설명을 해 보니 그럴듯하지? 3.그러니까 이렇게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진행이 된다. 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밈 부분을 빼고 나면 리처드 도킨스가 독창적으로 생각해 낸 아이디어도 아니다. 여러 명의 과학자들, 사회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인식의 틀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이 점은 도킨스도 책에서 계속해서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정확한 정체는 그동안 쌓여왔던 진화론의 다양한 견해를 유전자의 관점에서 일반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설명해 놓은 교양서이다. 절대로 이 책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이미 진화론의 고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니 누구라도 한 번쯤은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읽을 때는 위에서 밝힌 세 가지 주의점을 잘 이해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책의 내용이 어려울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어렵지 않다.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적이므로 쉽게 읽을 수 있다. 단, 이상하게 읽는데 진도가 잘 나가질 않는다. 어려운 건 아닌데 문장이 잘 읽히지 않는다. 위에서 잠깐 소개한 '로버트 액설로'의 <협력의 진화>와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검색을 해 보니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한 책이 있는 것 같은데, 읽어 보고 싶지만 정식 계약에 의한 책은 아닌 것 같고, 절판되어서 구하기도 쉽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