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곡가 바그너는 음악이야말로 인간의 창조적 노력가운데 가장 으뜸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종합예술을 창조하려는 노력에 음악이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여겼다. 그로피우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건축이 가장 중요한 예술 형태라 주장하며 "모든 창조적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건축이다"라고 말했다.
독일어로 집을 건축하다‘ 또는 ‘건축을 위한 집‘이라는 뜻의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 P289

실이었다. 그로피우스는 적을 많이 두었지만, 개중 가장 악독하고 강인한 적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한때 예술가이자 『나의 투쟁(Mein Kampf)』이라는 책을 쓴 작가이기도 했던 히틀러는 이제 현대미술과 지식인들을 증오했다. 바우하우스를 혐오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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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커서도, 너무 작아서도 안 돼. 두 손에 딱 잡힐 만큼의 크기, 그게 좋은 공이지. 물론 어깨는 조금많이 벌려도 좋아. 하지만 자기 두 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공이거나 아니면 두 손을 쓸 필요도 없이 한 손에 움큼들어오는 공은 그다지 좋은 공이 아니란다. - P263

너무 무거워서도, 너무 가벼워서도 안 돼. 공을 들었을 때 내가 이 공을 들고 있구나, 하는 느낌, 그 정도의 느낌이 이상적인 무게지. 그 공을 드느라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면 절대 좋은 공이라 할 수 없고, 또 반대로공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그래서 잃어버려도 느낄 수 없을정도로 가벼운 공이라면 그것 역시 안 좋은 공이야.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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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였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옳게보고 있었다. 난쟁이라는 것 외에,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 볼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P7

그 우주의 순리란 놈은 도대체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하필이면 나를 짧은 놈으로 만들어 놨느냐고요. 세상 천지에긴 놈도 쌔고 쌌는데. - P38

"합, 체, 니들은 아버지가 가지고 노는 이런 공 말고, 너희들의 공을 찾아야 해. 너희만의 진짜 공." - P43

"게바라 형, 수학여행 갔다 올 동안 집 잘 지키고 있으셔야해요."
그러나 게바라 형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언제나 그리운 눈길로 먼 데만 바라보고 있을 뿐. 국경 너머 아득한 혁명을.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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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시대에 진저리가 난 러스킨은 "현대 문명에 대한 증오를 천명하면서 분열을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본성, 무엇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도록 강요하는 점을 지적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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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공산주의를 위한 시각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했다. 구성주의자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전위파와 좌파 사이에는 영구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 P250

균형, 긴장, 평등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몬드리안의 작품은자유, 화합, 협동을 촉구하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문이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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