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말문이 트였을 때 처음 알게 되는 사실은 개는 할 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뭐든 그렇다. - P13

나는 바로 그런 온갖 일이 벌어지던, 모든 게 엉망진창이던, 스팩족의 시체들로 높이 터질 것 같고 인간의 시체들로 묘지도 남아나질 않은, 마을에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에 태어났다. 그래서 기억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소음이 없는 세상도 기억할 수 없다. - P22

이 세상에는 그저 끊임없이 나를 덮쳐오는, 사람들과 다른 생물들이 생각하는 소음만 있을 뿐이다. 전쟁 때 스팩족이 소음 세균을 퍼뜨린 후로 쭉 그랬다. 그 세균이 남자들 절반과 여자들 전부를 죽였는데, 우리 엄마도 피해 가지 못했다. 그 세균은 살아남은 나머지 남자들을 미치게 만들었고, 광기에 사로잡힌 남자들이 총을 들면서 스팩족도 멸망했다. - P27

나는 마을의 망할 모든 주민 하나하나가 내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그들의 소음은 홍수처럼, 타오르는 불길처럼, 하늘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괴물이 잡으러 오는 것처럼 어디에도 숨을 곳 없는 나를 향해 언덕을 타고 흘러온다. - P34

이 교회야말로 애초에 우리가 신세계에 오게 된 이유로 매주 일요일마다 우리가 왜 죄악과 부패로 가득 찬 구세계를 떠났는지, 그리고 이 새로운 에덴동산에서 어떻게 새롭고 순결한 삶과 형제애를 시작하는 걸 목표로 했는지 아론 목사가 설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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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바벨론의 창조 신화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와 비교 연구되어 왔다. 에누마 엘리쉬는 태고에 마르둑 신이 괴물을 물리치고 그 괴물의 찢긴 몸에서 나머지 신들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 P38

오늘날 창세기의 독자들은 본래 이 책이 고대 독자들에게 의도했던 대로 본문을 읽도록 노력해야 하며, 현재의 관점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가정과 의문을 본문에 적용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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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은 상대적으로 날것의, 가공되지 않은 방식으로 예수의 마지막을 묘사하고 있는, 이른 시기의 "십자가 처형 내러티브"를 보존하고 있다. - P297

이 책의 가장 이른 시기의 판본은 갑작스럽게 끝난다. 이 결말은 단지 희미하게 부활을 예견했을 뿐이며, 여전히 예수를 잃은 트라우마의 상처를 보존하고 있다.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부활한 예수를 실제로 보았던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추가함으로써 이러한 결말을 교정했다. - P302

후대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성전 파괴를 하나님이 유대교를 거부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인 새로운 "이스라엘"로서 기독교 교회를 받아들였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써 사용했다. - P307

기독교인들이 처음부터 때때로 이런 십자가 처형 전통을 과도하게 취했던 모습이 있었을까?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단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폭력을 단순히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추가적인 폭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은 어떠한가? - P314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현대 세계에서 신체적 학대를 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는 성서 전통이 여전히 기독교인들에게 분명 회피할 수 있는 고난을 수용하고 심지어 추구하도록 격려하는 교묘한 방식이 많이 존재한다. - P316

여기서의 요점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승리로 바꾸려고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다시 반복하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 P317

유대교와 기독교 경전은 공동체에 가장 깊은 고통을 가했던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해서 결국은 그런 고통으로부터 인도해낸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언한다. - P323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서들이 얼마나 특이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특히 유대교의 성서는 거의 승리주의적이지 않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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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끝내기 전에 설명해야 할 공동체적 트라우마가 한 가지 더 있다. 이는 우리가 현재 유대교와 기독교라고 부르는 종교의 기원에 있어서 근본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 트라우마는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였는데, 모든 형태의 유대교는 이 둘 중 하나에 초점을 맞추었다. - P258

예루살렘 파괴는 단순한 하나의 재앙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로마 이데올로기에서 사실상 로마에 대적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전형적인 파괴를 보여주는 신화적 사건이됐다. - P262

하드리안(Hadrian) 황제는 군단을 보내어 바르 코흐바의 군대를 쓸어버렸고, 예루살렘 내부에, 이전에 유대 성전이 있던 자리에는 이교도 신전을 세웠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발을 들여놓는 것조차 금지되는 죽음의 고통을 겪었다. 할례, 안식일, 토라 낭독은 수년동안 금지됐다. - P264

로마인들은 요나단 벤 자카이를 상당히 좋아했기에, 그가 야브네에 랍비 학교를 세워 유대교 율법의 다양한 문제에 관한 여러 규정을 논의하고 만드는 것을 허용했다. - P267

이런 신흥 랍비 학교는 성전을 상실하고 예루살렘에서 추방된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성전 이후의 유대교 형태를 발전시켰다. 여기서 랍비들은 바빌로니아 포로기에 조상들에 의해 시작됐던 종교적 혁명을 계속해서 확장했다. - P268

유대인들은 유일신론적 종교관습을 지속하는 것이 허용됐고, 유대교는 로마인의 관점에서 볼 때 "합법화된 무신론"의 형태가 됐다.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불법이었을)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황제에 대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대신에 황제의 안녕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이 허용됐다. 이러한 여러 특권에 대한단 하나의 조건은 이것이었다. 곧, 유대인들은 그러한 "무신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선교적 노력을 기울여서는 안 됐다" - P273

예수 유대교는 로마의 관점에서 볼 때 특별히 악독한 형태의 유대교를 대표했다. 유대교의 다른 형태들과는 달리 예수 운동은 이방인들을 이전의 신에 대한 숭배로부터 전향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 P275

타키투스의 논평들은 반-로마 폭동 선동가로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당한 인물을 따라 설립되고 칭해졌던 이 예수 유대교를 "치명적인 미신"으로 간주하는 로마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 P275

전통에 따르면 복음서는 예수 생애의 목격자들, 사도들, 동료들—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의해 쓰였다. 그러나 한 세기 이전에 성서학자들은 이 일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이 복음서들이 분명한 초기 전통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더 후대의, 사도 이후 교회의 관점으로부터 예수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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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모니아(Hasmoneans) 가문은 안티오쿠스의 군대에 대항해 게릴라 작전을 시작했다. 그들은 제국의 다른 지역들에 있는 여러 문제에 의해 약화된 셀류키드의 군대에 대항하여 지속적으로 승리들을 거두었다. 3년이 지나지 않아, 기원전 164년에 하스모니아 가문은 셀류키드 왕조와 대등하게 싸웠다. 안티오쿠스 4세는 자신의 유대교 금지를 철회하는 칙령을 제정했다. - P195

하스모니아의 왕들은 스스로를 그리스인에 대항하는수호자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 왕조는 헬레니즘의 문화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기치는 반그리스였지만, 그리스의 방식을 사용하여 그 기치를 촉진시켰다. - P197

하스모니아 왕조는 몇몇 성서의 책들을 권위있는 것으로 수집하고, 이 책들의 여러 사본을 표준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당시의 유일한 유대교 기관이었다. 그 이전이나 이후에 이와 비교될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진 유대교 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 P198

경전에 대한 집단적 트라우마의 영향에 관해 생각할 때 내가 얻었던 최초의 자극은 경전의 표준화를 트라우마 기억의 경직성과 유사하게 간주했던 것이었다. - P203

더욱 미묘한 것은 헬레니즘주의자에 대해서든지, 아니면 토라를 준수하는 반대자에 대해서든지, 헬레니즘 문화가 모든 유대교 관습 내부로 거침없이 유입됐다는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 그리스 문화의 매력과 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방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 P203

나는 하스모니아인들이 우리가 지금 구약성서 또는 유대인의 타나흐로 알고 있는 것을 형성하기 위해 더욱 중요한 일을 했다고 제안하는 바다. 헬레니즘의 도전에 직면하여 그들은 진정으로 영감 받은 히브리 경전들이 오직 토라와 헬레니즘 이전의 예언적 작품들의 고정된 모음집이라는 생각을 소개했다. - P206

많은 학자들은 마가복음 14-16장의 여러 부분이 마가복음 저자에 의해 사용된 초기의 십자가 처형 내러티브라는 데 동의한다. - P212

이 십자가 처형 내러티브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초기 반응의 본래성을 보여준다. 여기서 기억되고 있는 예수는 유창하게 연설하면서 고문과 죽음을 환영하는 영웅이 아니다. 그보다도 예수는 죽음을 피하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심문을 받을 때는 침묵하거나 얼버무린다. - P204

분명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은 아마도 예수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은" 또 다른 영웅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더 나아가 예수를 그러한 영웅들의 특별한 형태로,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의 모델로 본 것 같다. - P223

예수의 빈 무덤은 묻힌 장소가 알려지지 않았던 모세와 연결됐다. 오경은 모세가 묻힌 장소를 아는 자가 없다고 언급하면서 끝난다. - P226

바울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창출하는 열쇠로서 율법보다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그는 유대교 안에 전례가 없었던 일을 일구어냈다. 곧, 비-유대인들에게 이례적으로 개방된 유일신론적 믿음 형성 말이다 - P246

이스라엘인 호세아가 외국의 유산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유대교를 설립했다면, 유대인 바울은 유대인 형제를 이따금 추격하는 기독교를 설립했다. 각각은 부분적으로 과거의 애착에 대한 거부 위에 설립된 종교적 형태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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