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속병원 앞 넓은 도로에서 시계탑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불쑥 나타나는 사거리, 하늘하늘 어린 가지를 흔들고 늘어선 가로수들 건너편 철골이 삐죽삐죽 하늘로 뻗쳐 있는 신축 중인 건물 쪽 어딘가에서 엄청난 수의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 P9

병원에는 실험용으로 기르던 150마리의 개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한 영국 여자가 잔인한 일이라며 신문에 투고하는 바람에 병원에서는 개들을 계속 기를 예산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한 번에 다 죽이기로 했고 자기가 그 일을 하청받았다고 했다. - P10

"그 역겨운 문화에 발을 들여놓을 셈이야?"
"발을 들여놓느냐 마느냐 하는 단계가 아니라, 모두들 이미 목까지 꼴까닥 빠져 있는 셈이야. 전통적인 문화라는 늪에 빠져 전신이 진흙투성이지. 간단히 씻어 낼 수도 없어." - P15

"개는 살해되어 쓰러져 가죽이 벗겨져 나가지. 그런데 우리는 살해되어도 이렇게 돌아다녀."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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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는 다른 윈도를 통해 유저 그룹의 토론 게시판을 살핀다. 오늘의 화제는 데이터 사유화 종식을 외치는 ‘정보 자유 전선‘의 최근 활동이다. 지난주 이 조직은 데이터 어스의 액세스 관리 프로그램의 상당부분을 크래킹하는 기술을 공개했다. - P148

‘정보 자유 전선‘의 해킹 툴을 이용해 디지언트 몸의 고통 차단 회로를 무효화하는 그리퍼의 녹화 영상이다. 희생자가, 새롭게 생성된 이름 없는 디지언트가 아니라 해킹 툴을 이용해 불법 복제한,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이라는 사실이 더욱 끔찍하다. - P151

디지언트 양육을 위한 안내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이나 어린아이를 키울 때의 방법론을 응용해도 성공 확률과 실패 확률은 반반씩이다. - P159

기계식 자동 보모는 1861년 런던에서 태어난 수학자 레지널드 데이시의 발명품이다. - P251

데이시는 재봉틀과 세탁기 제조사인 토머스 브래드포드 사와 계약을 맺고 기계식 자동 보모의 제작을 위탁했다. - P255

딸인 니콜이 아직 젖먹이였을 무렵, 앞으로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읽거나 쓰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음성 인식이나 합성 기술의 발달로 인해 머지않아 그런 능력이 불필요해지리라는 것이었다. - P269

지난 몇십 년 동안, 몇천만 명이나 되는 사용자들이 몸에 장착한 개인 카메라로 자기 삶 전체를 연속적으로 기록하는 라이프로그를 유지해왔다. - P271

영향을 받는 유일한 인물들이 서로 사적인 관계일 때는 곧잘 다른 목적들이 더 중요해지기 마련이고, 그럴 경우 엄밀한 진실 추구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 P279

잘 생각해보니, 그는 이제 사람들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단어를 식별할 수 있었다. 사람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데, 지징기는 이제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전체를 이루는 조각들에 대해 눈을 떴던 것이다. 지징기 자신도 줄곧 단어들로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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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후보에 오른 현 단계의 디지언트 생성물들은 마스코트로 보존될 것이고, 그 복제들이 판매될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대다수 사람들이 언어 획득 단계 이전의 어린 디지언트들을 구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자기 디지언트에게 말을 가르치는 일 자체가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 P113

"정지되는 거 싫어. 한 달 없어지는 거 싫어."
애나는 잭스를 최대한 안심시키려고 노력한다. "넌 걱정 안 해도 돼, 잭스."
"나 정지 안 시킬 거지. 그렇지?"
"그래." - P136

또 다른 일 년이 흘렀고, 이제 블루감마 사는 공식적으로 사업 종료를 앞두고 있다. 영구적으로 종순한 디지언트에게 기대를 걸려는 고객 수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 P138

고양이, 개, 디지언트.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정말로 돌봐야 하는 것들의 대용품에 불과해. 너도 언젠가는 아이의 의미를,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거고, 그러면 모든 게 바뀔 거야.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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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이 밖으로 나온 인간이었다. 확장된 뇌의 한가운데에, 해체된 조그만 몸이 위치해 있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형태로 내 몸을 배치해 놓고, 나는 나 자신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 P73

우주의 배경 기압은 실제로 증대하고 있었고, 그 결과 우리의 사고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 P79

탐험자여,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무렵 나는 죽은 지 오래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고별의 말을 남긴다.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경이로움에 관해 묵상하고, 당신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라. - P87

이것은 경고이다. 주의해서 읽어주기 바란다. - P91

그녀의 이름은 애나 앨버라도이고, 오늘은 일진이 사나운 날이다. 요 몇 달 구직 활동을 하다가 처음으로 화상 면접 단계에 도달해 일주일이나 공들여 준비했는데, 리크루터의 얼굴이 화면에 떠오르기가 무섭게 다른 사람을 채용하기로했다는 통고를 받은 것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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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위대한 칼리프시여, 대교주시여, 미천한 저에게 알현을 허락해주시니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제가 이보다 더한 복을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고할 이야기는 실로 기이한 것이라서, 설령 그것을 눈가에 문신으로 새긴다 해도, 그 외양이 보여주는 기이함은 그 내용이 말해주는 경험의 기이함을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경고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경고가 되고, 배움으로 여기는 자에게는 배움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 P11

바샤라트는 오른쪽에서 한 팔을 고리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하지만 고리 왼쪽에서 팔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대신, 마치 팔꿈치에서 팔이 잘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남은 팔을 위아래로 흔들어 보이고는 다시 팔을 뺐습니다. 팔은 멀쩡했습니다. - P15

"좀 전에 보여드린 것은 ‘초秒의 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월의 문‘
입니다. 이 문 양쪽은 이십 년의 세월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 P18

"마침내 찾아왔군!" 그가 말했습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네!"
"저를 기다렸다고요?" 하산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습니다.
"물론이지. 자네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나이 든 나 자신을 방문했거든. 너무 오래되어 정확한 날짜는 잊었지만, 자, 와서 저녁을 함께 먹지." - P21

"손님이 어떤 의도로 그런 여행을 하시려는지 여쭐 생각은 없습니다. 제게 말씀해주실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기억하십시오. 일어난 일은 결코 되돌릴 수 없습니다." - P45

공기 혹은 아르곤이라고 불리는 기체가 생명의 원천이라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이것은 실은 사실이 아니며, 나는 내가 진정한 생명의 원천과, 그 당연한 귀결로서 생명이 맞이하게 될 종언의 방식을 어떻게 이해하게 됐는지 설명하기 위해 여기 이 글을 새긴다. - P61

우리는 매일 공기를 가득 채운 두 개의 허파를 소비한다. 매일 가슴에서 빈 허파들을 꺼내 공기를 가득 채운 허파들로 교환하는 식으로 말이다. - P61

나는 세계의 끝까지 여행을 가 지면에서 무한한 하늘로 이어지는 견고한 크롬 벽을 본 적이 있다. - P63

이제 나는 나 자신의 뇌를 해부할 수 있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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