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소설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마
나는 김병수, 살인자다. 그것도 연쇄살인마이다.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 완벽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큰 사고를 겪은 후에 나의 뇌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가족은 단 한 명. 은희는 내 딸이다. 친딸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죽였던 여자의 딸을 데려다 키웠다.
최근 내가 사는 마을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나는 범인이 누군지 안다. 박주태이다. 어느날 은희가 박주태를 데리고 왔다. 내 사위가 될 녀석이라고 한다. 아무도 박주태의 정체를 모른다. 나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은희를 지키려면 오랫동안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한 번 살인을 해야 할 것 같다.
문제가 있다.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기억이 머릿속에 저장되지 않는다. 주변의 상황이 이해못할 방향으로 흘러 간다. 수첩과 녹음기로 기억을 붙들어 두려고 하지만 불안하다. 오로지 내가 붙잡고 있는 기억은 하나 뿐. 은희를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주태를 죽여야 한다.

 

 주인공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마이다.


과격한 소재.. 긴박한 전개..
소재가 흥미롭다.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기억을 잃고 있어가는 연쇄살인마가 주인공, 김병수이다. 김병수의 생각을 1인칭 시점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김병수가 보는 것만 볼 수 있고, 기억하는 것만 기억할 수 있다. 연쇄살인마, 알츠하이머, 또다른 연쇄살인마, 자신이 살해한 여자의 딸을 입양해서 키우는 등 온갖 과격한 소재는 모두 끌어 모았다. 연쇄살인마가 또다른 연쇄살인마로부터 자신의 딸을 지켜야 한다. 굉장히 긴박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글을 읽는 사람 역시 긴박한 흐름에 금새 동화되어 버린다.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 한 문단씩 끊어서 글을 써 놓았기 때문에 호흡이 굉장히 짧다. 기억이 단절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찾은 방법인 것 같다. (김영하의 작품은 처음 읽는 것이라 다른 소설은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잘 모른다.)

 

작가 김영하. 

 

틈틈히 섞여 있는 블랙 유머
김병수는 연쇄살인마였지만 시적 재능이 뛰어나다. 심지어는 시를 가르치는 강사로부터 시를 직접 쓴 것이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시를 쓰는데 재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김병수가 쓴 많은 시들은 사실은 살인의 경험을 통해서 쓴 시이다. 상징이 아니라 실재이다. 게다가 연쇄살인마 주제에 불경을 읽는다. 인간 자체가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거기에 기억의 모순까지 더해진다. 이 부분에서 블랙 유며가 발생한다.

책장에서 괜찮은 시를 발견했다.
감탄하여 읽고 또 읽으며 외우려 애썼는데, 알고 보니 내가 쓴 시였다.
P. 96


노골적으로 반전을 암시한다
치매, 알츠하이머 혹은 기억상실증. 기억을 소재로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극적인 반전이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딱히 반전이 있다는 점을 숨기려 하고 있지도 않다. 이런 경우 작가는 굉장히 큰 부담감을 갖게 될 것 같은데, 독자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반전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뻔한 반전이라면 읽은 사람이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예상해 본 몇가지 반전이다.
1. 은희는 병수의 정체를 알고 있으며, 병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딸노릇을 하고 있다.
2. 사실은 새로 나타난 연쇄살인범은 병수이며, 살인을 한 후에 그 기억을 잊은 것이다.
3. 박주태와 은희는 사실 병수의 범행을 알고 있으며, 범행의 뒷처리를 해 주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영화 메멘토가 연상됐다.


기억이 왜곡되었다고..????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른 방향으로 결말이 났다. 잊어 버린 기억의 간극을 메우면서 반전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작가는 엉뚱하게도 기억이 왜곡되었었다는 것으로 결말을 만들었다. 결말까지 읽은 후에 나는 작가가 독자를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게임의 룰을 어겼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주인공은 기억을 하거나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룰을 세워놓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갑자기 기억이 왜곡되었다고 한다. 병수는 조현병 환자가 아니다.
소설을 작가가 창조한 세계라 하더라도 그 세계 속에 만들어 놓은 룰은 지켜야 개연성이 생기는 것인데, 이 책은 전체의 80%와 마지막 20%의 룰이 다르다. 그래서 결말에 대해서는 실망이 크다. 반전이 뒤통수를 치지 못해서가 아니다. 룰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속의 사족
큰 의미는 두지 말고 스릴러 읽듯이 읽으면 된다. 마지막에 작가가 다른 소설에서 쓴 말을 평론가가 인용한 말이 있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해당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좀 웃기고 가소롭다. 소설은 작가의 손을 떠나서 독자에게 넘어가는 순간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학술서적도 아닌데 어떻게 잘못 읽을 수 있다는 건지. 무지하고 이해력이 딸리는 독자를 계몽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재미있게 읽고 나서 기분 잡쳤다. 독자를 가르치려고 하는 평론이 왜 책 말미에 붙어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만약 작가가 독자를 대하는 태도가 항상 이런 식이라면 김영하의 책은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몰입감도 뛰어나다. 호흡이 굉장히 짧고 길이도 짧고 지루할 틈이 없기 때문에 인터넷의 자극적인 글에 익숙하고 호흡이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추천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두가지 부분, 결말과 책 속에 있는 평론은 불만스럽다.


TV도 보지 않고, 베스트셀러를 찾아 읽지도 않고, 그동안 한국소설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김영하라는 작가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조사해 보니 유명한 사람이더라.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인기도 많아졌고, 유명한 문학상도 많이 탔다. 영화가 나오는지도 몰랐는데 검색하다 보니 영화 포스터가 먼저 나온다. 그렇게 대단하고 유명한 소설가라면 이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그의 대표작은 아닐 거라고 추측했다. 다른 책을 한 권 정도는 더 읽어 봐야겠다.


감히 말하건대, 이 소설을 어렵지 않게 읽었지만 잘못 읽은 것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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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름 : 모모
성별 : 여
사는 곳 : 남쪽마을 작은 원형 경기장
나이 : 100살 혹은 102살
특기 : 듣기

 

어느날부터인가 마을에 이상한 남자들이 나타난다. 회색 양복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항상 시가를 입에 물고 있다. 즐겁고 여유있게 살던 사람들에게 나타나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구태여 알려 준다. 그리고 시간은행에 시간을 저축하라고 한다. 이자까지 듬뿍 쳐서 되돌려 준다고 한다. 허비해 오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냉큼 약속을 하고 나의 시간을 저축하기 시작한다. 삶은 바빠지고 돈은 더 많이 번다. 삶에 여유가 없어지고 뭔가 하고는 있지만 정리가 되지 않는다. 너무 바빠서 가족과 친구를 되돌아 볼 겨를이 없고, 누군가와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당신은 지금 기억은 못할지라도 시간도둑에게 시간을 도둑맞고 있는 것이다.


모모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꼬마다. 나이도 모르고 부모님이 누군지 모른다. 모든 사람의 친구이며, 듣는 것을 잘한다. 잘 읽지는 못한다. 누구든지 모모에게 얘기를 하다 보면 문제가 해결이 된다. 모모는 별로 말하지도 않는다. 그냥 얘기하다 해결이 된다. 모모가 시간도둑들의 정체를 눈치챘다. 시간도둑들도 모모의 존재를 성가시게 생각하게 됐다. 모모를 설득하려던 영업사원 하나가 증발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모모는 시간도둑들이 훔쳐간 사람들의 시간을 되돌려 받으려고 모험을 한다. 시간도둑들은 모모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눠 주는 '세쿤두스 미누티우스 호라' 박사를 찾아내서 시간을 통째로 훔쳐 내려고 한다. 모모와 시간도둑들의 한 판 대결이 시작되었다. 모모가 우리의 시간을 되찾아 올 수 있는지 기대하고 지켜 보기로 한다.

 

모모는 시간에 대한 우화이다. 동화고 판타지이다. 점점 바빠지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아끼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시간을 도둑맞고 있다고 가르쳐 준다. 사회가 바빠지면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 쓰려고 노력한다. 하루하루 시간을 아껴 쓰다 보면 나중에는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착각한다. 정말 그럴까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오늘 바쁘게 산다고 해서 내일 여유로워지는 것 같지는 않다. 내일은 더 바빠진다.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결실이 생긴다고 믿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는 당연히 잘 모른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책은 계속해서 묻는다.
너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거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고 어른도 읽을 수 있다. 읽는 사람마다 어떤 작중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는지에 따라 느낌은 다를 것이다. 아이들은 모모를 따라 모험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바쁘게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 보며 자기도 다를 것 없다고 한탄을 할 수 있다. 재미있고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 준다. 책을 읽다가 잠깐 덮어 두고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잠깐 고민을 한 후에 다시 읽을 수도 있다. 아니면 책 속에 살짝 숨어 있는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이같은 건 집어 치우고 판타지 소설로 읽어도 괜찮다.


'모모'를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나 중학교 때인 것 같다. 이전에 써 놓았던 글을 보니 11년 전에 또 읽었다. 이번에 읽은 건 세 번째다. 어릴 때 어떤 기분으로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11년 전에 읽고 간단히 적어 놓은 것을 보니 모모가 내 시간의 꽃을 찾아서 해방시켜 주기를 절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굉장히 바쁘고 힘들 때 읽었었나 보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충격적으로 내가 회색양복을 입은 시간도둑 중에 한 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혹시.. 사실은 내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사람이 아닐까?

 


1973년에 처음 나온 책이다. 45년이 지났다. 모모는 아직도 모험을 하는 중이다. 시간도둑들로부터 시간의 꽃을 해방시키지 못했다. 11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모모가 빨리 내 시간의 꽃을 해방시켜 줬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든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책을 읽기는 해야겠는데 복잡하거나 집중해야 하는 책을 읽기는 싫고, 읽으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싶지만 깊이 생각은 또 하기 싫은 사람이 읽기 좋다. 두 번 읽어도 괜찮다. 읽고나서 아이들에게 던져줘도 좋다. 비룡소의 책들은 하드커버에 재생용지 비슷한 종이를 썼고 디자인이 예뻐서 읽은 후에 장식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집에 친구가 놀러 오면 그래도 이름은 아는 책이라고 한 번 펼쳐 보기도 한다. 이 책이 재미있으면 같은 작가의 '끝없는 이야기'도 함께 추천한다. 모모보다 덜 유명하지만 훨씬 재미있다. 그리고 훨씬 두껍다.

 

주의>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은 모모를 보면 '모모는 철부지~'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를 수 있다. 그 모모랑 이 모모는 다른 모모니까 괜히 아는 척하다 제대로 아는 사람한테 걸리면 망신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자. 노래에 나오는 모모는 로맹가리의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모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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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무면허 음주 과속 운전을 하던 남자가 한 여자 아이를 치었다. 여자 아이는 아직 숨이 붙어 있다. 하지만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인다. 운전자는 겁이 나서 주변에 있던 호수에 여자 아이를 던져 버린다. 호수에 빠지기 전 아이는 마지막으로 '아빠'를 부른다.
아이의 아빠는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분노에 휩싸인다. 복수를 위해 범인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복수는 7년에 걸쳐 이어진다.
어떤 사람에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마땅할까?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현실 때문에 책을 놓았다

첫 구절로 유명한 소설이다. 재미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소설이다. 이 책은 지난 해 10월쯤에 읽기 시작했다. 몰입감이 뛰어나서 순식간에 절반을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는 와중에 일어난 국정농단사태 때문에 책에 집중을 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손을 놓았다가 다시 읽었다. 국정농단은 최근 십년간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하는 명성을 가진 책을 놓게 만들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감정은 가해자에 이입된다

교통사고 후 살해를 당한 여린 여자 아이의 아버지는 오영제이고, 그 아이를 죽인 남자는 최현수이다. 책을 읽지 않고 무심하게 저 사실만 늘어 놓고 보면 누구라도 오영제를 응원하고 최현수에 대한 잔혹한 복수를 기대하게 된다. 오영제가 최현수의 아들인 최서원을 7년간이나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것도 심할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시점에 도달하니 나는 이미 최현수에게 감정몰입이 되어 있다. 오영제는 오히려 실수를 한 소심한 남자를 괴롭히는 악한 존재가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7년의 밤'은 읽으면서 괴롭고 힘들다.

 

 현수는 새로 이사갈 세령호의 집을 찾아가던 중 오세령을 치고 호수에 던져 버린다.

 

누가 더 나쁜 놈이냐

읽는 동안 '7년의 밤'은 끊임없이 누가 악한 사람인지 질문을 던진다.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악인인지, 그 원인을 발판삼아 더 큰 복수를 실행해 나가는 사람이 악인인지. 이미 최현수와 그 주변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해 버린 입장에서는 최현수의 악함이 더 심하다. 계속해서 압박해 오는 최현수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순간의 판단착오로 저질러 버린 죄악에 대한 가혹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7년의 밤'이 지닌 강력한 몰입감과 서스펜스의 원천이다.

 

현장감과 상황묘사에 뛰어난 소설

정유정의 책은 처음 읽었다. 문장이 간결하고 속도감이 있다. 장면의 묘사를 굉장히 자세하게 해 놓았기 때문에 현장감이 뛰어나다. 묘사해 놓은 장면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마치 내가 그 곳에 있는 것같은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자세한 설정을 오히려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처음 책을 읽을 때 머리속에 이 장면 설정이 잘 잡히지 않아 몇차례 읽은 후에야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앞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갈 예정이지만 '7년의 밤'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에 다른 책들에 대한 기대도 굉장히 커졌다.

 

작가 정유정. 간호대학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동의는 못하지만 이해는 된다

초반에 잡아 놓은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개성있으면서도 명확하다. 오영제의 잔혹함이 정말 싫다. 오영제의 아내인 문하영의 무기력함도 짜증난다. 최현수의 소심함에는 답답하고, 아내인 강은주의 악착같은 성격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은 전혀 바람직하지도 않고 동의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해는 된다. 인물들의 과거와 초반의 행동들을 잘 보여주면서 캐릭터의 행동에 개연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세령호의 모습. 실재하는 곳은 아니다. 정유정의 소설은 설정이 치밀하여 현장감이 극대화된다.

 

약간의 아쉬운 점

마지막 장면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현수, 하영, 승환, 서원이 각각 행동한 것들이 너무 잘 맞아 떨어졌다. 하영은 힌트를 주고, 현수는 계획을 짜고, 승환은 무대를 만들고 서원이 실행을 했다. 이전까지 냉철한 모습으로 복수를 계획했던 영제가 너무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렸다. 범죄에 따른 복수, 그 복수에 따른 응징은 통쾌함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응징이 너무 잘 맞아들어서 오히려 아쉬움이 있다.

 

올해(2017년) 하반기에 7년의 밤이 영화로 개봉한다고 한다. 소설 속의 분위기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지가 흥행의 척도.

 

몰입감이 대단한 소설이고 읽는 동안 정신집중해서 긴장한 상태에서 읽을 수 있다. 조금 긴 소설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미 너무 유명한 책이라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읽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읽지 않았으면 반드시 읽어 보라고 추천한다. 소설 속에 중요한 장소는 등대마을과 세령호이다. 머리속에 두 장소를 그려 놓고 책을 읽으면 훨씬 재미있다. 읽기 귀찮은 자세한 설정도 꼼꼼히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꼼꼼함이 어느 순간 생생한 현장감으로 긴장감을 더 높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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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종교 - 모차르트 - 바그너 - 브루크너 음악의 글 5
한스 큉 지음, 이기숙 옮김 / 포노(PHONO)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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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에 대해서 알아?

세상 모든 유명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모차르트를 잘 안다. 신동이라는 것도 알고 모차라트의 음악도 조금은 들어 봤다. 그런데 정말 모차르트를 잘 알고 있는 것 맞나? 라고 조금만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가..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워낙 유명해서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그런 유명인들이 꽤 많다. 예를 들어 내가 모차르트의 삶에 대해서 처음 관심을 가진 건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서다. 어린애같은 경박함에 진지함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지만 천재적인 음악가. 그런 모차르트를 종교와 연결지어서 생각하는 건 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 책은 감히 모차르트를 종교에다 연결하려고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저명한 카톨릭 사제의 음악 강연

저자인 한스 큉 Hans Küng은 스위스의 카톨릭 사제이다. 신부님이라는 뜻이다. 신부님으로는 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인데,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다 교황이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카톨릭의 교리를 강하게 비판해서 카톨릭계에서의 교수직을 잃은 사람이다. 하지만 파문을 당하지는 않고 사제직은 계속 유지를 했다.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더불어 굉장한 클래식 애호가이기도 한데, 이 책은 한스 큉이 유명한 세 명의 음악가인 모차르트, 바그너, 브루크너에 대한 강연을 묶어 놓은 책이다. 강연은 정확한 청중을 향해서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이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강연을 엮어 놓은 책을 좋아한다.

 

서양음악이든 동양음악이든 종교가 큰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지.

음악과 종교를 떼놓고 생각하기는 정말 힘들 것 같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신을 찬양하기 위한 음악의 형태는 있었고, 서양음악의 클래식에 한정해 봐도 모차르트 시대에는 왕이나 높은 귀족이 아니면 카톨릭의 주교쯤 되어야 대규모 음악을 의뢰할 수 있었고, 모차르트 정도 되는 천재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모차르트가 작곡한 많은 곡들이 교회와 연관된 곡이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진심으로 그 곡들을 작곡했을까? 한스 큉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모차르트의 곡에서 찾으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 같은 편견은 '모차르트는 교회음악을 작곡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것인데, 한스 큉은 아니라고 한다.

 

꼭 종교가 모차르트까지 탐을 내야 되는 거야?

위와 같은 관점에서 한스 큉은 모차르트의 생애와 음악을 훑어 보면서 모차르트는 진정한 카톨릭 교인이었으며, 그 삶과 음악에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책을 읽어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좀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모차르트가 작곡한 곡들의 음악적 형식과 성악곡의 가사를 세세하게 분석해서 설명을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내 느낌에는 이렇게까지 해서 모차르트를 카톨릭의 범주에 꼭 넣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욕심장이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이런 얘기들을 주욱 써놓기는 했지만 글의 내용에 비판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음악과 음악가를 보는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 외에 흥미로운 주제와 분석들

위에서 설명한 내용은 오직 첫 장의 내용이다. 그 뒤로는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에 관한 자세한 분석, 바그너의 작품인 '니벨룽의 반지'와 '파르지팔'에 대한 기독교적인 분석, 교회음악가로서의 브루크너에 대한 해석 등이다. 모두 음악가와 그들의 작품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사실 음악을 오로지 종교적으로만 분석을 한다면 결국은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종교라는 것이 원래 그런 거니까. 하지만 한스 큉은 종교인이기는 하지만 지식인이기도 하다. 억지로 음악에 종교를 입히는 것 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음악의 다양한 성격 중에서 종교성을 끄집어 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설명이 억지스럽지는 않다.

 

슥슥 읽히지는 않지만 골똘히 생각하면서 읽을만하다.

이 책은 포노 출판사의 음악의 글 시리즈 중 다섯번째 책이다. 포노 출판사는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출판사이긴 하지만 음악의 글 시리즈 책은 읽기 만만하지는 않다. 그리고 사실 상당히 마이너하다. 그리고 음악이나 음악사에 관심이 없다면 읽는 재미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마치 이순신 장군에 열광하는 사람이 난중일기를 한 번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이 책도 그렇다. 모차르트는 알지만 대관식 미사는 모르고, 바그너와 브루크너는 익숙하지 않다면 읽는 재미가 별로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고,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클래식에 크게 관심이 없거나 그냥 듣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기는 어렵고, 좀 깊이있게 음악을 듣는 사람은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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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 바로잡기 - 가람역사 41 조선사회사 총서 7
이상태 지음 / 가람기획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김정호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책

 

책을 좀 즉흥적으로 읽는 편이라 원래 뜻하지 않게 읽는 책들이 꽤 많이 있다. 이 책도 그렇다. 처음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에 관한 내용이 궁금해서 가지고 있던 몇십년전 잡지인 범우사의 역사산책에서 상세한 글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저자가 이상태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이 분은 어릴 때부터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 계셨고, 고지도 부분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 중에 한 분이시기 때문에 독도나 간도 등 옛 영토에 관해서 관심이 많으신 분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더 검색을 해 보던 중 이 분이 쓴 책 중에 관심을 끌만한 책이 있어서 바로 주문을 해서 읽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절판 중이라 알라딘의 중고서점을 이용해서 구했다.

 

 

우리가 몰랐거나 잘못 알았던 우리의 역사를 밝힌다

 

책의 내용은 책의 제목과 거의 같다. 김정호가 옥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세히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것처럼 이 책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잘 모르고 있던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근거가 되는 사료와 함께 밝혀 놓았다. 1부는 조선의 인물, 2부는 조선의 역사, 3부는 조선의 땅이라는 제목인데, 각 부마다 열 개 남짓의 글이 있어서 총 서른 개 정도의 글이 주제별로 있다. 각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3부 조선의 땅은 저자의 전공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찾기 힘든 굉장히 세부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자세하면서도 어렵지 않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가 역사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던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이면서 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관리국 등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연구자들에 비해서 역사적인 사료를 충분히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역사적인 궁금증을 자세한 역사적 사료와 함께 설명을 하고 있으니 역사를 서술하는데 있어서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읽는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는데, 저자가 저자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학생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쉽게 풀어서 글을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재미도 있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을 다룬 장은 사도세자의 보좌관이었던 이광현의 일기를 바탕으로 현장감있게 써서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평소에 인조에 의해서 독살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소현세자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제는 많이 바로잡힌 역사

날짜를 보니 2000년도에 출간한 책이다. 거의 20년 가까이 된 책이다. 그러니까 절판도 되었을테고..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 중 많은 것들이 이미 상식이 되어 버렸다. 오랫동안 왜곡되어 있었던 조선의 역사가 조선왕조실록이 완전히 번역이 되고, 이런 책들과 글들이 많이 나옴으로써 많이 바로 잡혔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온지 꽤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내용 또한 많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좀더 연구해야 결론이 나올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어쨌든.. 이 책이 나왔을 시점에서는 잘못알고 있었던 것들이 지금이 상식이 되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친구들하고 역사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정말 기본적인 사실조차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니 놀랍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좀 흥미있게 접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할 만하다. 특히 철저하게 사료를 분석하고 고증하면서 역사를 다루는 태도를 볼 수 있다는 점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태도에 대해서 이해를 한다면 흔하게 퍼져 있는 사이비 역사학에 매료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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