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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무면허 음주 과속 운전을 하던 남자가 한 여자 아이를 치었다. 여자 아이는 아직 숨이 붙어 있다. 하지만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인다. 운전자는 겁이 나서 주변에 있던 호수에 여자 아이를 던져 버린다. 호수에 빠지기 전 아이는 마지막으로 '아빠'를 부른다.
아이의 아빠는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분노에 휩싸인다. 복수를 위해 범인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복수는 7년에 걸쳐 이어진다.
어떤 사람에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마땅할까?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현실 때문에 책을 놓았다
첫 구절로 유명한 소설이다. 재미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소설이다. 이 책은 지난 해 10월쯤에 읽기 시작했다. 몰입감이 뛰어나서 순식간에 절반을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는 와중에 일어난 국정농단사태 때문에 책에 집중을 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손을 놓았다가 다시 읽었다. 국정농단은 최근 십년간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하는 명성을 가진 책을 놓게 만들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감정은 가해자에 이입된다
교통사고 후 살해를 당한 여린 여자 아이의 아버지는 오영제이고, 그 아이를 죽인 남자는 최현수이다. 책을 읽지 않고 무심하게 저 사실만 늘어 놓고 보면 누구라도 오영제를 응원하고 최현수에 대한 잔혹한 복수를 기대하게 된다. 오영제가 최현수의 아들인 최서원을 7년간이나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것도 심할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시점에 도달하니 나는 이미 최현수에게 감정몰입이 되어 있다. 오영제는 오히려 실수를 한 소심한 남자를 괴롭히는 악한 존재가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7년의 밤'은 읽으면서 괴롭고 힘들다.
현수는 새로 이사갈 세령호의 집을 찾아가던 중 오세령을 치고 호수에 던져 버린다.
누가 더 나쁜 놈이냐
읽는 동안 '7년의 밤'은 끊임없이 누가 악한 사람인지 질문을 던진다.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악인인지, 그 원인을 발판삼아 더 큰 복수를 실행해 나가는 사람이 악인인지. 이미 최현수와 그 주변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해 버린 입장에서는 최현수의 악함이 더 심하다. 계속해서 압박해 오는 최현수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순간의 판단착오로 저질러 버린 죄악에 대한 가혹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7년의 밤'이 지닌 강력한 몰입감과 서스펜스의 원천이다.
현장감과 상황묘사에 뛰어난 소설
정유정의 책은 처음 읽었다. 문장이 간결하고 속도감이 있다. 장면의 묘사를 굉장히 자세하게 해 놓았기 때문에 현장감이 뛰어나다. 묘사해 놓은 장면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마치 내가 그 곳에 있는 것같은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자세한 설정을 오히려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처음 책을 읽을 때 머리속에 이 장면 설정이 잘 잡히지 않아 몇차례 읽은 후에야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앞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갈 예정이지만 '7년의 밤'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에 다른 책들에 대한 기대도 굉장히 커졌다.
작가 정유정. 간호대학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동의는 못하지만 이해는 된다
초반에 잡아 놓은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개성있으면서도 명확하다. 오영제의 잔혹함이 정말 싫다. 오영제의 아내인 문하영의 무기력함도 짜증난다. 최현수의 소심함에는 답답하고, 아내인 강은주의 악착같은 성격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은 전혀 바람직하지도 않고 동의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해는 된다. 인물들의 과거와 초반의 행동들을 잘 보여주면서 캐릭터의 행동에 개연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세령호의 모습. 실재하는 곳은 아니다. 정유정의 소설은 설정이 치밀하여 현장감이 극대화된다.
약간의 아쉬운 점
마지막 장면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현수, 하영, 승환, 서원이 각각 행동한 것들이 너무 잘 맞아 떨어졌다. 하영은 힌트를 주고, 현수는 계획을 짜고, 승환은 무대를 만들고 서원이 실행을 했다. 이전까지 냉철한 모습으로 복수를 계획했던 영제가 너무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렸다. 범죄에 따른 복수, 그 복수에 따른 응징은 통쾌함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응징이 너무 잘 맞아들어서 오히려 아쉬움이 있다.
올해(2017년) 하반기에 7년의 밤이 영화로 개봉한다고 한다. 소설 속의 분위기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지가 흥행의 척도.
몰입감이 대단한 소설이고 읽는 동안 정신집중해서 긴장한 상태에서 읽을 수 있다. 조금 긴 소설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미 너무 유명한 책이라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읽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읽지 않았으면 반드시 읽어 보라고 추천한다. 소설 속에 중요한 장소는 등대마을과 세령호이다. 머리속에 두 장소를 그려 놓고 책을 읽으면 훨씬 재미있다. 읽기 귀찮은 자세한 설정도 꼼꼼히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꼼꼼함이 어느 순간 생생한 현장감으로 긴장감을 더 높혀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