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칠웅
리산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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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분진 三家分晉과 전진찬제 田陳簒齊

천자의 나라였던 주나라는 견융의 침입으로 수도인 호경이 함락된 후 낙읍으로 천도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권위는 땅으로 떨어졌다. 이후 약 350여년간 중국대륙은 수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멸망하면서 흔히 말하는 춘추오패가 회맹을 통해 대륙을 호령하기도 했지만 주 왕실은 명목상으로나마 권위가 살아있기는 해서 나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주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진 晉(전국시대를 끝낸 진시황의 진 秦이 아니다)은 중원의 강자로서 춘추시대 초기에는 진문공의 선정으로 강대국이었으나 춘추시대 후반으로 갈수록 왕의 세력보다 강한 집안이 나타났고, 여섯 개의 집안은 서로 진의 땅을 나눠 가진 후 반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조, 위, 한 세 개의 집안이 나머지 세 개의 집안을 멸문시키고 진을 쪼개어 각자 나라를 세우니 이것을 삼가분진이라고 한다. 나라를 세운 것을 주왕에게 인정받은 것은 50년 후이지만 이미 주왕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의미는 없었다.


태공망 강상(강태공)이 제후로 봉해져서 봉토로 받은 곳은 지금의 산동 지역으로 산물이 풍부하고 역대로 제환공, 관중, 포숙아 같은 훌륭한 군주와 더불어 명재상을 배출한 전통의 강국이었다. 하지만 춘추시대 말기 전씨 성을 가진 가문이 몇 대 재상을 세습하면서 왕의 권력이 약해지고 급기야 전씨가 강씨를 왕좌에서 쫓아낸 후 왕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럿을 전진찬제라고 한다.


삼가분진은 그동안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많이 들어 봤지만 전진찬제를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처음 봤는데, 시기적으로 겹친 것인지 실제적으로 전국시대를 여는 신호탄으로 봐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전국칠웅》의 저자인 리산은 삼가분진과 전진찬제를 전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았다.

 


리산 李山 (1963 ~ ) 현재 베이징 사범대학 교수. 중국 CCTV의 인문교양 프로그램인 '백가강단'에서 강의를 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초기 전국시대부터 꼼꼼하게 다룬다

전국시대는 삼가분진이 이루어진 B.C. 453년부터 진이 중국 전역을 통일한 B.C. 221년까지의 약 230년간을 말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삼가분진이 주의 승인을 받은 B.C. 403년을 출발점으로 따지기도 한다.) 긴 기간을 책으로 옮기려면 아무래도 주로 부각되는 인물이나 사건이 있을테고 상대적으로 무시되는 것도 있다. 저자에 따라 취사선택이 되는 인물 중에서 지금까지 전국시대를 다룬 책들은 보통 위의 오기와 방연, 제의 손빈, 진의 상앙으로부터 시작하는 책들이 많았다. 이들은 전국시대 초기를 화려하게 수놓은 장수들이면서 삶이 극적이라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춘추시대의 백미가 합려, 부차로 이어지는 오와 구천의 월 사이의 전쟁과 오자서, 손무, 범려의 지혜대결인 것처럼 전국시대는 초기에 유명한 인물들이 몰려 있다. 반면에 전국시대에는 춘추오패와 같은 눈에 띄는 패자는 없어서 왕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도 않고 딱히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전국칠웅》에서는 초기 전국시대의 시대상황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서 초기 판도에 큰 영향력을 미친 위의 문후, 무후, 양혜왕부터 역사를 다룬다. 특히, 주로 인물의 뛰어난 점을 강조하여 장수 위주로 설명하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전국칠웅》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발전과 쇠퇴를 왕의 기량에 따라 판단을 한다. 그동안 이야기의 흥미로움에 밀려 무시되었던 부분을 자세히 살펴 놓았다. 아무리 훌륭한 인재가 있어도 왕이 발탁하지 않으면 재주를 떨칠 수 없으니 그동안 왕에 대해 너무나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칠웅도. 중앙에 진이 3개로 분열되어 만들어진 조 趙, 위 魏, 한 韓이 자리잡고 있고, 왼쪽에는 진 秦, 아래는 초 楚, 오른쪽에는 제 齊, 오른쪽 위 한반도와 맞닿은 가장 변방에 연 燕이 자리잡고 있다.

 


종횡가의 시대, 전국종횡가서를 다룬다

초기 법가 성향의 두 정치인인 오기와 상앙에 대해서 설명한다. 오기는 위를 전국시대 초기의 강국으로 이끈 명재상이고, 상앙은 진을 발전시켜 훗날 천하통일을 할 수 있는 강국의 기틀을 다져 놓았다. 이후 전국시대는 합종연횡이라는 단어로 정리되는 종횡가의 시대로 접어든다. 종횡가는 결국 외교(라고 쓴고 권모술수라고 읽는다)에 의해서 타국과 연합을 하고, 중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인데 그동안은 합종책의 소진과 종횡책의 장의로 대표되어 왔다.


그런데 《전국칠웅》은 지금까지 읽었던 전국시대 관련 책과는 합종연횡의 내용이 많이 다르다. 소진, 장의가 한 문하에서 공부하여 소진이 먼저 출사하여 합종책으로 진을 궁지에 몰아 넣고 장의가 후에 진을 중심으로 한 종횡책으로 소진의 합종책을 깨뜨리는 것이 그간의 상식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장의가 먼저 나온다. 장의가 진에서 활약할 때의 상대는 주로 위의 혜시와 공손연이다. 연횡책의 시조로 장의를 내세운 것은 변함이 없지만 합종책의 시조는 송 출신이면서 위에서 활약한 혜시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1973년에 마왕퇴에서 발견되었다는 《전국종횡가서》의 연구성과를 적극 반영한 것으로 그동안 다른 책들이 사기의 소진, 장의 스토리를 그대로 답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비해 더 역사적인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소진은 장의 사후 20여년 후에 활동을 했다고 하니, 많은 전국시대 관련 책들이 개정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한 것 같다. 단, 소진과 장의의 합종연횡책 대결은 전국시대 가장 흥미진진한 내용중에 하나라서 버리기는 참 아깝다.

 


손빈. 위나라 출신으로 제나라에서 활약한다. 손자병법을 저술한 손무의 후손으로 알려졌으며, 동문수학한 방연에게 누명을 쓰고 위기에 처하자 지혜를 발휘하여 제나라로 피신하고, 후에 마릉전투에서 방연을 전사시켜 원수를 갚는다.

 


흥미로운 내용, 좋은 번역과 저자의 입담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인기있는 시기는 춘추시대, 전국시대, 초한쟁패기, 후한말의 삼국시대이다. 굉장히 어지러운 시기이면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매력적인 문신과 장군들이 즐비하고 온갖 인간군상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무한투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그중에서도 전국시대는 다른 시기에 비해 더 많은 국가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모든 지혜와 무력을 총동원하던 시기라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시기인 것 같다. 원래부터 재미있는 시기를 《전국칠웅》의 저자 리산은 꽤 그럴싸한 입담으로 옛이야기 풀어내듯이 역사를 풀어 나간다. 단지 이야기 뿐만 아니라 당시 각 국가의 상황과 배경,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적절하게 곁들여져 있어서 역사의 흐름을 읽어나가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종횡가의 대표적인 두 인물인 합종책의 소진과 종횡책의 장의에 대한 새로운 설명은 그동안 역사책에 있던 잘못된 정보를 잡아 주서어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은 《전국종횡가서》의 내용을 소개는 하면서도 대부분 이전에 알려졌던 내용을 답습하고 있다)


중간중간 적힌 저자의 입담도 읽는 재미를 더하는데, '초희왕의 일관된 모습으로 보자면, 그는 마치 척추신경으로 모든 일을 사고하는 듯 일을 처리함에 머리는 도무지 쓰지 않는 것 같았다. (p.309)'처럼 저자의 평가가 아주 적나라해서 통쾌함을 준다. 그리고 범저가 소진왕을 만나서 원교근공책을 설명하는 과정에도 재미있는 표현이 있는데, '그러니 다른 나라를 치려면 먼저 한나라와 위나라부터 시작하여 불도저같은 전략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면 바로 한 발자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p.507)'를 볼 수 있다. 아무리 전국시대에 각국이 발전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고 하고, 중국의 고대문화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설 정도로 발전했다고 해도 2,300년 전에 설마 불도저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라 들어 있는 표현일테니 걸고 넘어질 내용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다.

 


장의. 진에서 활동한 정치가. 연횡책을 구상했으며, 원교근공을 주창하여 이후 진이 전국통일을 할 수 있는 외교정책을 수립하였다.


약간 아쉬운 점도 있다

책의 여기저기에 확대경이라는 부분으로 글틀이 많이 있는데, 이게 별다른 내용이 아니라 그냥 책의 본문을 뽑아 글자를 크게 하고 굵게 해서 별칸에 다시 쓴 것일 뿐 다른 내용이 아니다. 정말 '확대'만 해 놓았는데 무슨 필요가 있나 싶다. 처음 보는 편집방식인데 쓸모있어 보이진 않았다.


사진과 지도가 너무 적다. 사진이야 크게 필요없다손치더라도 지도가 너무 적은 것은 많이 아쉽다. 전국칠웅의 대략적인 위치나 강줄기를 머릿속에 넣어 놓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독자는 각국의 위치에 기대어 설명한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더구나 몇 개 있지도 않은 지도 속의 한자는 우리나라에 쓰는 정체자가 아니라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체자인다. 아무래도 중국에서 출판된 책의 지도를 그대로 따와서 붙인 것 같은데 성의없어 보인다. 한자는 알아도 간체자를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많다. 이 좋은 책에 가장 기본 적이 것이 허술해서 완성도를 깎아 먹으니 아쉽다.


진의 시황제. 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다. 하지만 사후 대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하지 않아 환관 조고, 막내아들 호해, 재상 이사가 배신하여 권력을 쥐게 되는 빌미를 주고, 결국 진은 전국통일 15년만에 멸망하고 만다.

 

★★★★☆


오랜만에 역사책을 남은 분량을 세어 보면서 아쉬워 하며 읽었다. 아쉬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전국시대 역사책 중 가장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다. 주로 열전의 인물 위주로 역사를 설명했던 기존 책들과 달리 왕과 국가의 관점에서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설명해서 전국시대 전체를 조망하기에 굉장히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대단한 입담꾼이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이 책의 전작으로 《춘추오패》라는 책도 있는 것 같은데 찾아 보니 국내에는 번역출판이 되지 않았다. 꼭 읽어 보고 싶다.


전국시대에 관한 책 한 권만 읽어볼 생각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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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세계사를 만나다 - 역사에 숨은 수학의 비밀
이광연 지음 / 투비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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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학이 좋다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수학성적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기억하기로는 고1 2학기 무렵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적이 올라가는 시점이 오는데 이때부터 수학 성적이 뚝뚝 떨어져서 점수가 썩 좋지 않았다. 대학에 갈 정도는 했지만 대학에서는 수학과 전혀 관계없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결국 손으로 수학문제를 풀고 계산할 일은 없어졌다.


수학이 단순히 문제를 풀고 계산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게된 것은 수학에서 손을 놓고도 한참 후의 일이다. 초보적인 수론이나 논리학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고, 머릿속으로 밥먹고 사는 것과 전혀 상관없이 뭔가 생각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 좋았다. (양자론이나 상대성이론도 마찬가지 이유로 좋아한다.) 지금도 수학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풀었던 미적분은 기호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상용로그나 삼각함수도 보면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밀레니엄 문제라든지 수학 7대난제같은 건 거의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나는 수학이 좋다.

 

 

저자 이광연. 현재 한서대학교 수학 교수.


세상사 모든게 역사 아닌게 뭐가 있겠어?

수학에 관한 교양서를 읽으면 마치 숫자와 기호만이 난무하는 수학책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학생 때 수학책이 다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런 책은 수학책이라기보다는 수학참고서를 생각하면 이해가 더 빠를 것 같다. 예전에 참고서에서 열심히 수학을 풀다보면 어느 구석엔가 '읽을거리'나 비슷한 이름으로 문제풀이를 멈추고 읽어보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어 있다. 혁명의 전사였던 갈루아가 여자문제로 결투를 예정한 전날 밤 죽음을 예감하고 급하게 논문을 쓰는 장면도 참고서에서 처음 봤다. 중국의 삼황 중에 복희씨는 굽은 자를 들고 여와씨는 컴퍼스를 들고 있는 그림도 참고서에서 처음 봤을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역사가 있고 연원이 있고 맥락이 있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는 가장 오래된 4대문명의 흔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학의 흔적부터 시작해서 세계사의 중요한 장면과 수학을 연결지어 설명한다. 수학참고서의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읽을거리를 수학만큼이나 큰 비중으로 늘려서 대충 1:1의 비율로 안내한다.

 

 

메소포타미아의 문자인 쐐기문자의 숫자


세계사? 수학사?

이제 슬슬 이 책의 정체를 살펴 보자. 이 책을 쓴 저자는 수학자이다. 아무래도 수학자가 수학에 세계사를 접목시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만 역사학자가 역사에 수학을 접목시키는 건 좀 상상하기 힘들다. 이 책은 수학자가 세계사에 관심을 갖고 세계사 속에 수학을 녹여낸 책이다. 그러니까 세계사 책은 아니다. 세계사 책이라고 하기엔 역사에 대해서 엄밀하지 않고 상식선에서만 다루었다. 그렇다면 수학사 책일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처음 4대문명의 초기 부분에서는 문명에 나타난 수학을 설명해 놓았는데 6장부터는 역사와 수학이 아무런 연관이 없다. 춘추전국시대와 조합을 연결지은 것도 그렇고 페르시아의 법과 진릿값을 연결지은 것도 그렇다. 아폴론의 신탁 부분에서 유명한 3대 작도 불능 문제를 다루어서 수학사인가 했다가 알렉산더가 자른 고르디오스의 매듭과 매듭문제는 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세계사의 중요사건을 펼쳐놓고 역사와 연관있는 수학사가 있으면 설명하고 없으면 역사를 소재로 수학의 이론을 설명한 책이다. 수학사도 아니고 세계사도 아니다. 앞에서 예를 든 것같이 참고서에 있는 '읽을거리'의 확장판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중인 복희여와도. 복희씨는 손에 직각자(곡척)를 쥐고 있고 여와시는 컴퍼스(규구)를 들고 있다.


'읽을거리'는 원래 재미있잖아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는 재미있다. 책을 사면서 나는 자세한 수학사의 에피소드가 담겨있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내용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책을 제목만 보고 살 때가 많아서 읽다가 후회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기대와는 달랐지만 책이 재미없지는 않았다.이런 것도 책을 읽는 재미 중에 하나다. 세계사와 수학을 엮는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정확히는 세계사의 에피소드나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수학지식을 풀어 놓아서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었다. 세계사 에피소드는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엄밀하지는 않다. 에피소드 위주로 소개를 했기 때문에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해 놓아서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흥미 위주로 가볍게 읽기 좋다.


역사와 연관해서 소개해 놓은 수학문제도 좋다.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에서 소개하는 수학문제들은 역사적 사건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오로지 추상적이기만 한 수학문제보다는 실생활에서 (꼭 적용가능하다고 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쯤 연결해 볼 수 있는 문제들이다. 혼자서 읽으면서 재밌고 끝나는 수학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강의나 수업, 아니면 친구들과 얘기할 때 분위기를 잘 타면 한 번쯤 꺼내볼 수 있는 수학 문제들이다. 그러고 보니 소개되어 있는 세계사의 사건도 마찬가지다.


흔히 보기 힘든 수학문제도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교양 수준에서 읽는 수학책들은 보통 수론이나 집합, 기하 등을 많이 다루는데 이 책에는 매듭, 수형도 같이 내가 그동안 본 다른 수학 교양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용들이 나와서 특이한 수학문제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델로스에 있는 아폴로 신전. 정육면체의 배적문제로 유명한 신전이다. 신전에 있던 정육면체보다 부피가 딱 2배 큰 정육면체를 만들라고 지시한 아폴론도 치사하지만, 그걸 또 자하고 컴퍼스만 가지고 두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끙끙댄 그리스인들도 참 고지식하다. 물론 그런 고지식함이 문명발전의 큰 힘이었을 테지.

 


잘 엮어 놓은 에피소드들

본격적인 세계사 책도, 수학사 책도 아니지만 나는 이 책이 좋다. 세계사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을 알 수 있도록 꽤 많은 내용을 담아 놓았고, 그에 연결되어 있는 수학문제도 흥미가 돋는다. 좀 억지스럽게 연결된 부분도 있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저자는 수학을 전공했는데 수학보다 오히려 세계사가 더 자세하다. 수학문제야 당연히 잘 알고 있겠지만 세계사까지 섭렵한 저자의 다양한 관심이 멋지다. 흔하지는 않겠지만 수학과 세계사에 둘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단, 글에서 계속 써놓은대로 에피소드 중심의 단편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본젹적인 세계사나 수학사를 책을 다루는 책은 아니라서 그걸 기대하는 독자는 실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수학부분도 너무 파편화된 내용만 있어서 좀 아쉽다. 즉, 단편적인 세계사와 수학상식을 머리 식힐겸  부담없이 읽고 싶은 사람에게 딱 적당해 보인다.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조각상. 아무도 풀지 못했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 버렸다. 창조적인 해결인지.. 억지인지.. 합리적인 그리스인들이라면 수긍하지 못했을 해결방법일 것 같다.

 


★★★★


각 단원이 읽기 편하게 나누어져 있어서 크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모르면 모르는대로 넘어가며 읽어도 좋다. 기본적으로 많이 어렵지 않고 흥미있는 내용 + 단편적인 잡다한 지식이 많이 들어 있어서 가볍게 세계사나 수학에 관한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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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과 리바이어던 - 협력은 어떻게 이기심을 이기는가
요차이 벤클러 지음, 이현주 옮김 / 반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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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통첩게임

어떤 심리학자(경제학자라고 해도 좋다)가 두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편의상 현주와 민수라고 하자. 둘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실험을 하는 동안 서로 마주치지도 않는다. 심리학자가 현주에게 10만원을 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민수에게 네가 주고 싶은 금액을 제안해 봐. 민수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제안한 돈은 민수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현주씨가 가지는 거야. 하지만 민수 씨가 제안을 거절하면 두사람 다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얼마를 제안할 거야?'


이 게임의 룰은 명확하다. 민수가 받을만한 제안을 현주가 하면 둘 다 돈을 가져갈 수 있다. 현주는 얼마를 제안하는게 좋을까? 5만원? 하지만 민수는 현주가 얼마를 제안해도 돈을 가져갈 수 있으니 이익이다. 5만원은 절반이니 너무 많다. 4만원도 많아 보인다. 이렇게 생각해 나가다 보면 이론상 현주가 천원만 제안해도 민수는 돈을 가져갈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이익이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성적이다. 그런데 정말 현주가 민수에게 천원을 제안하면 어떻게 될까? 나라면 어떨까? 아마도 십중팔구 현주는 누군지 모르는 제안자를 욕하면서 거절할 것 같고, 둘다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할 것 같다. 만원이면? 이것도 마찬가지. 나에게는 겨우 만원 던져주고 너는 9만원을 가져가겠다고? 만원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네가 돈을 가져가게 할 수는 없지.


민수의 이런 행동은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다.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민수가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은 이성이나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다. 천원만 받아도 민수는 이익이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같은 상황에 닥쳤을 때, 상대방을 욕하면서 거부할 것이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이것은 상당히 감정적인 문제이고 공평함에 대한 문제이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 소개하는 이 실험은 최후통첩게임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행동심리학(또는 행동경제학) 실험이며, 인간이 반드시 경제적인 이익만을 생각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실험 중에 하나다. 과연 인간은 이익(또는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 이상의 행동규범(협력)이 있을까?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이 문제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요차이 벤클러 Yochai Benkler 1964 ~ .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버크먼 센터 교수.

 


리바이어던, 보이지 않는 손, 펭귄

리바이어던은 성서의 욥기에 나오는 바닷속 괴물인 레비아탄의 영어식 발음이다. 토마스 홉스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규정했고, 이기적인 인간을 자연상태로 방치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즉 끝도 없는 혼란한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혼란을 막기 위해서 사회의 구성원이 계약하여 권력을 만들어 냈고, 이 권력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간의 이기심을 처벌하고 통제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이 권력을 비유한 말이 리바이어던이고, 가장 강력한 형태를 한 리바이어던은 국가이다. 홉스는 이기적인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력을 지닌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 역시 인간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홉스와는 좀 달랐다. 이기적인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판단을 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모든 사람이 이익을 위해 선택을 하면 결국 그 이익이 부딪히는 곳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를 볼 수밖에 없고,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조정과정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국가는 시장이 돌아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면서 간섭을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케인즈가 나오기 전까지 경제학의 모든 것이었던 '고전경제학'의 기본 철학이다.


리눅스는 간단하게 말하면 리누스 토발스라는 대학생이 만든 오픈소스 컴퓨터 운영체제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기여자들이 보상없이 프로그램 개발에 기여해서 현재는 세계 컴퓨터, 스마트폰의 절대 다수가 리눅스 기반의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발전한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다. 인간이 순전히 이기적이라고만 한다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리눅스의 상징이 책 제목에 있는 펭귄이다. 리눅스외에도 이기심보다는 협력에 의지하는 시스템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브리태니커의 영광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백과사전 자리를 차지한 위키피디아이다. 과연 인간은 이기적인 경향이 더 강할까, 협력적인 경향이 더 강할까?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던 1900년대 말까지 이기적이었다가 세기말을 지나 21세기가 되면서 협력적이 되었을까?

 

토마스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의 표지.


이기적인 인간이 협력하는 이유

저자인 요차이 벤클러는 인간이 이기적임에도 불구하고 협력이 발생하는 이유를 여러가지 연구성과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성장하면서 도덕성과 가치에 욕구가 강해지면서 협력하는 경향성이 강해진다고 한다. 더불어 상황이 어떻게 제시되는지에 따라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변하는 프레임 효과에 의해서 협력이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평판이나 인맥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반드시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협력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에게는 공감하는 능력이 있고 다른 사람과 연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감과 연대감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커뮤니케이션을 들고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면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결국 이기적인 마음을 누르고 손해를 보더라도 협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는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할만한 수많은 실험이 예시되어 있다.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 ~ 1790.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고전경제학의 아버지.

 


수많은 연구성과의 종합판, 그리고 리눅스와 위키피디아

《펭귄과 리바이어던》에는 저자인 요차이 벤클러가 수행한 실험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다른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유명한 실험과 책을 많이 인용했는데, 그동안 내가 읽었던 관련 서적들의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펭귄과 리바이어던》에는 위에서 설명한 최후통첩이론이라든지 공공재 게임, 신뢰게임 등 심리학과 경제학에 걸쳐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연구성과를 책 한 권으로 볼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책의 앞머리에는 협력이 창발하는 원인을 밝힌 유명한 책, 《협력의 진화》와 연관된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협력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두 책의 관점이 좀 다르다. 《협력의 진화》가 연속적인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자연적으로 협력이 창발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면,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인간의 본성에 협력이 창발할 수밖에 없는 씨앗이 있다고 설명한다.


요차이 벤클러가 협력의 결정체로서 가장 많이 예로 든 것이 위키피디아와 리눅스이다. 리눅스는 책의 제목에 상징물인 펭귄을 내세울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은데, 위키피디아는 오히려 리눅스보다도 더 많은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을 하고 있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브리태니커(우리 집에도 떡하니 한 질을 마련해 두고 자주 보고 있다) 사전의 명성을 불과 십수년만에 넘어서 버린 위키피디아는 수많은 사람의 기여로 만들어지고 있다. 저자는 우선 아무런 이익도 없이 기여하는 기여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내부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룰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라도 본문을 고칠 수 있지만 표제어 하나의 내용을 고치기 위해서는 제안을 하고 반론을 받고 토론을 하는 가운데 합의점을 찾아 내용이 수정되기도 한다. 물론 반달리즘이 없지는 않겠지만 협력의 큰 틀에서 봤을 때,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리누스 토르발스 Linus Benedict Torvalds 1969 ~ . 핀란드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리눅스 개발자.

 


★★★★☆

모든 구성원이 가장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때, 사회가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오래된 경제이론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폐기되었다. 인간의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를 기본적인 성격으로 규정하지 않고 이기적인 모습만을 본성으로 상정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이기적인 본성 외에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를 새로운 구성요소로 본다면 인간행동의 함수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워 지고 수학적인 그래프만으로 경제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해 질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이론에 문제가 있다면 복잡하더라도 새로운 (사실 이제는 그다지 새롭지도 않은..) 경제학 또는 사회학이 더 널리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위키피디아. 2001년 1월 15일에 탄생한 온라인 백과사전. 2018년 현재 약 4,500만개의 표제어(모든 언어)를 담고 있다.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사회는 몇 사람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네트워크의 발달 덕분에 집단지성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집단지성은 결국 이기심보다는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로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그런 면에서 그동안의 수많은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결론을 내려 놓은 결정판같은 책이다. 행동경제학, 협력의 창발에 관련된 책을 모두 읽는 것이 물론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부족하다면 이 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기본적인 개념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번역이 잘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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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을 넘어서 - 수학의 우주, 그 경계를 찾아 떠나는 모험
유지니아 쳉 지음, 김성훈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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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 dem Paradies, das Cantor uns geschaffen, soll uns niemand vertreiben können.
No one shall expel us from the Paradise that Cantor has created.
아무도 우리를 칸토어가 만들어낸 낙원에서 쫓아낼수 없다.
- David Hilbert 다비트 힐베르트 -


불가사의한 무한

숫자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유치원 때부터 1, 2, 3, 4를 배우기 시작하고 초등학교에서는 사칙연산을 배운다. 소수를 배우고 분수를 배울 때까지는 그나마 할 만하다. 하지만 무리수가 등장하고 드디어 허수까지 등장하면 이게 정말 숫자인가 싶다. 어떻게든 이해한 척하고 넘어가지만 마지막으로 도대체 수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끝판왕 '무한'이 등장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공부할 때, 삼각함수에서 일차로 공격을 받고 미적분에 들어가면 치명타를 입은 후에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가 되기 마련이다. 삼각함수나 미적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관련 전공을 하지 않는다면 그다지 입에 올릴 일은 없지만 '무한'이라는 말은 평생을 입에 달고 다닌다. 하지만 정작 무한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무한은 숫자일까? 아니면 한없이 커지는 상태일까? 밤하늘에 별이 무한하게 많고, 바다의 모래가 무한하다고 일상적으로 얘기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아무리 많아도 그 숫자는 '유한'하고 누구든지 별이나 모래알의 갯수보다 더 큰 숫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갯수를 알면 1만 더해도 되고, 갯수를 몰라도 어떤 자연수(제발 1은 고르지 말기를..)든 하나를 골라 계속해서 제곱해 나가면 언젠가는 넘어선다. 끝이 없이 큰 수, 도대체 '무한'이 무엇일까?


《무한을 넘어서》는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무한을 설명하는 책이다.

 

유지니아 쳉 Eugenia Cheng, 영국 햄프셔에서 태어났다. 셰필드 대학교 순수수학과 명예 선임연구원이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스쿨 과학자.


힐베르트의 호텔을 이용한 무한 설명

《무한을 넘어서》는 무한의 정체를 파헤쳐 나가는 책이다. '무한'이라는 개념은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표현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저자는 이해하기 힘든 무한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힐베르트의 무한호텔'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무한 개의 객실이 있는 호텔이 있어서 모든 객실에 손님이 가득차 있을 때, 1명의 손님이 오면 그 손님을 숙박시킬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무한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답은 모든 객실의 손님이 자기 방의 숫자에 1을 더한 숫자의 객실로 가고 새로 온 손님은 1번 방에 들어가면 된다.)


호텔에 오는 손님들이 유한할 때와 무한한 손님이 왔을 때 객실에 모두 투숙할 수 있다는 것까지 보여 준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무한 대의 버스에 타고 온 무한 명의 손님에게 객실을 배정하는 것까지 사고를 확장시킨 후 멋지게 그 방법도 설명해 놓았다. 책에서는 모든 무한 손님을 차례로 세운 후에 대각선으로 차례대로 배정하는 방법을 썼는데, 찾아 보니 소수(prime number)의 제곱을 이용하여 배정하는 방법도 있었다. 심지어는 이렇게 하면 객실이 남는다!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힐베르트의 무한호텔'은 무한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정말 탁월하다.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 ~ 1943. 독일의 수학자)는 무한한 객실이 있는 호텔을 예로 들어 무한의 개념을 설명했다. 이것을 힐베르트의 호텔(Hilbert's Hotel)이라고 한다.


무한도 크기의 차이가 있다

이후 자연수로부터 시작해서 정수, 유리수의 무한한 성질을 설명하면서 각각의 전체 숫자로 이루어진 무한집합의 개체 수가 같다는 것을 증명하는 법을 설명하고 실수가 유리수보다 숫자가 많다는 것까지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을 통해 설명한다. 알레프 (ℵ, Aleph)수를 설명하고 자연수, 정수, 유리수의 집합인 알레프0보다 실수 집합인 알레프1의 개체 수가 많다는 것까지 설명을 읽고 나면, 여기까지가 딱 내가 알고 있던 무한이다.


이후 저자는 사고를 확장시켜서 알레프의 단계가 더 늘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유리수와 실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데 실수의 집합보다 더 큰 뮤한집합을 만드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무한의 크기의 종류도 무한함을 보여 준다. 그러니까 알레프 수도 알레프0과 알레프1 뿐만 아니라 알레프2, 알레프3... 계속해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무한의 단계가 알레프0과 알레프1만 알고 있는 줄 알고 있었고, 딱히 두 단계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첫번째 장의 내용인데, 이해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게오르크 칸토어 Georg Cantor (1845~1918) 러시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안 수학자. 집합론의 창시자이다. 무한 연구하고 성질을 밝혀내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고 성과를 냈으나 그가 밝힌 무한의 성질이 직관과는 너무 달라서 당시의 수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궁핍하게 살다가 불행하게 사망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수학자 중에 한 명이다.


무한, 그 이상을 다루는 두 번째 장

《무한을 넘어서》는 두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앞서 첫번째 장에서는 수학적인 의미에서 '무한'에 대해서 설명하고, 무한을 다루는데 필요한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독자들은 첫번째 장을 읽으면서 무한이라는 개념에 익숙해 질 수 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안 그래도 기묘한 무한을 '수론'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본다.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무한으로부터 가볍게 시작하는 듯 하더니 차원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무한의 개념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 넣어 놓으면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들의 해결책이 눈에 보인다. 무한을 생각하면 보통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한대'인데, 무한에는 '무한소'도 있다. 대표적인 무한소에 대한 문제로 아무리 잘게 쪼개도 끝이 없는 무한소 때문에 발생하는 '제논의 역설'을 들어 설명한다. '제논의 역설'이 등장한 것이 굉장히 반가웠는데, 그동안 여러가지 설명을 들어도 딱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방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아니면 내가 명확히 이해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설명을 읽어 봐도 제논의 역설에 대해서 말끔해 지지는 않았다. 좀 아쉬운 점이다. 이후 정적분에 대해서 안내를 하고, 수열의 수렴과 발산이나 무한을 거꾸로 바라보는 방식같이 무한을 보는 다른 방식에 대해서 설명한다. 두번째 장은 첫번째 장과는 달리 처음 보는 내용들이 많아서 이해하기 좀 만만치 않았다. 후에 다시 읽어 봐야할 것 같다.

 

무한소의 문제를 다루는 '제논의 역설'.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은 여러 개의 역설을 주장했는데 결국 논점은 하나다. '두 점 사이의 거리는 무한하게 쪼갤 수 있기 때문에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제논은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은 모두 현상일 뿐이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인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수천년간 아무도 해답을 내리지 못하다가 칸토어가 무한의 성질을 밝힘으로써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난 아직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

무한은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복잡한 수식이 없더라도 생각을 확장해 나갈 수 있어서 나같이 수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부를 하고 수학기호만 보면 눈을 질끈 감아 버리는 사람도 조금만 머리를 쓰면 멋진 아이디어와 수학적인 사고를 즐길 수 있다. 또,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상한 세계를 만나게 되고 현실과 상관없는 새로운 세계로 나도 모르게 발을 들이는 것도 기묘한 재미가 있다. 이 책은 무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어서 꼭 수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에 관심이 있는 중고생들도 읽을 수 있고, 꼭 수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읽으면서 수학에서 사용하는 논리의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수식같은 건 거의 필요없으니 안심하고 읽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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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과 모기

인류에게 가장 치명적인 동물은 무엇일까? 소제목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지만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동물은 모기이다. 전쟁이나 살인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는 숫자가 더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다른 인간에 의해 죽은 인간은 1년에 약 475,000명인데 반해 모기에 의해 죽는 인간은 약 725,000명이다. 뱀은 약 50,000명, 개가 약 25,000명이니 다른 살인동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간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동물이 죽이는 인간보다 모기가 죽이는 인간의 수가 더 크다. 별다른 천적이 없어 보이는 인간에게 모기는 거의 유일한 천적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기가 사람을 잡아먹거나 상처를 입혀서 죽이는 것은 아니다. 모기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와중에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인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병, 일본뇌염 등 수십가지 질병을 옮긴다. 게다가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한 다른 동물들에 비해 모기는 완전히 차단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에는 많은 질병에 대한 치료약이나 예방약이 개발되어 있어서 그나마 걱정이 덜하지만, 모기가 원인이라는 것도 모르고 약도 없었던 시대에 인간은 아무 것도 모르고 호되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은 모기에 의한 질병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열 가지 약에 대해 안내한다.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동물은 모기. 모기가 옮길 수 있는 치명적인 전염병은 22종류라고 한다.

 


인류를 구한 약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은 만약에 이 약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비타민 C. 비타민의 존재를 몰랐던 때, 사람들은 장기간에 걸친 항해에서 괴혈병에 시달렸다. 항해사고나 정박지에서 원주민과 충돌해서 사망하는 선원들보다 괴혈병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았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병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고, 괴혈병은 대항해 시대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결국 라임같은 비타민 C가 풍부한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통해 문제는 해결되었다. 간단한 약(정확히 약은 아니지만)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문병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말라리아도 마찬가지이다. 2차대전 중에 극성을 부렸던 말라리아는 일부 전장에서는 전투에 의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냈다고 한다. 각 군의 지휘관은 전투에 승리하는 것만큼이나 말라리아에 의해 죽는 병사가 없도록 관리를 잘해야 했다. 심지어 교황이 선종했을 때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도 말라리아는 큰 문제가 되었는데, 모든 추기경이 한 곳에 갇혀서 다음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성베드로 성당에서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교황으로 선출된지 8일만에 말라리아로 사망한 교황도 있었다고 한다. 청의 강희제도 치료제인 퀴닌을 섭취하지 못했으면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을 뻔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정말 약이 세계사를 바꾸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가지 약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개발된 이후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약들이다. 역사상 많은 인물들이 약이 없는 질병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고, 어떤 인물들은 개발된지 얼마되지 않은 약을 복용하여 살 수 있었다. 외과적인 치료에 없어서는 안되는 마취약이나 상처에 감염된 세균에 의한 합병증을 크게 줄여주는 소독약은 외상환자의 치료에 큰 기여를 했다. 책에서 언급된 모든 약이 중요해 보이지만 내 생각에 다른 어떤 약보다도 중요한 약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탄생해서 인류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한 항생제인 페니실린이다.

 


대항해시대에 모험가들이 가장 무서워 했던 것은 해적이나 풍랑이 아닌 괴혈병이었다. 괴혈병은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먹어 비타민 C를 섭취하면 예방할 수 있다.


약의 역사도 이렇게 흥미진진하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에서 다루고 있는 약은 지금와서 보면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익숙하다. 하지만 그 약들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병에 대해서 인간들이 너무나도 무력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의사, 화학자들이 고군분투를 한 끝에 지금은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병도 있고, 아직 정복되지 않은 병도 있다. 마치 인류라는 영토를 침범하려는 병의 침략에 대항해 싸우는 의사라는 장수와 그 밑에서 함께 저항하는 이름없는 병사들의 끝없는 전쟁같다.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잘못된 대응으로 이유도 모르면서 끝없이 죽어나가고 겨우겨우 실마리를 찾아 물리치는 과정을 마치 전쟁사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는데 약의 역사 역시 다를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었던 세균 및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위한 연구가 가장 극적이다. 세균도 그렇지만 바이러스는 더더구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미경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원인을 특정할 수 없어서 정확한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찌어찌 과학이 발전하면서 소독약, 살바르산, 설파제, 페니실린으로 이어지는 약에 의해서 한 순간 정복이 되는 것 같았지만 약에 대해서 내성이 생긴 바이러스가 다시 나타나면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또다른 항생제를 개발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쫒고 쫒기는 이 전쟁은 아마도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인류보다 생명력이 훨씬 강한 바이러스가 결국에는 최후의 승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바이러스는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끈질긴 녀석들..)


아직도 정복되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있다. 오히려 정복된(것처럼 보이는) 질병이 몇 가지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개발이 되었으면 하는 질병은 치매 치료제이다. 몸은 정상인 상태이면서 정신만을 갉아 먹는 치매는 걸리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 같다. 게다가 고령사회로 접어 들고 이제는 초고령 사회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치매에 대한 치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굉장히 큰 사회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가끔씩 치매 정복의 실마리가 발견되었다고 뉴스에 뜨는 것 같은데 어서 빨리 해결되어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이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알렉산더 플레밍 경 Sir Alexander Fleming (1881 ~ 1955) 스코틀랜드의 세균학자. 세계 최초로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추출하여 항생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


약의 개발사를 재미있게 풀어 놓았다.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역사나 약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쓴 책이다. 분량도 많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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