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세계사를 만나다 - 역사에 숨은 수학의 비밀
이광연 지음 / 투비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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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학이 좋다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수학성적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기억하기로는 고1 2학기 무렵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적이 올라가는 시점이 오는데 이때부터 수학 성적이 뚝뚝 떨어져서 점수가 썩 좋지 않았다. 대학에 갈 정도는 했지만 대학에서는 수학과 전혀 관계없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결국 손으로 수학문제를 풀고 계산할 일은 없어졌다.


수학이 단순히 문제를 풀고 계산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게된 것은 수학에서 손을 놓고도 한참 후의 일이다. 초보적인 수론이나 논리학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고, 머릿속으로 밥먹고 사는 것과 전혀 상관없이 뭔가 생각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 좋았다. (양자론이나 상대성이론도 마찬가지 이유로 좋아한다.) 지금도 수학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풀었던 미적분은 기호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상용로그나 삼각함수도 보면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밀레니엄 문제라든지 수학 7대난제같은 건 거의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나는 수학이 좋다.

 

 

저자 이광연. 현재 한서대학교 수학 교수.


세상사 모든게 역사 아닌게 뭐가 있겠어?

수학에 관한 교양서를 읽으면 마치 숫자와 기호만이 난무하는 수학책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학생 때 수학책이 다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런 책은 수학책이라기보다는 수학참고서를 생각하면 이해가 더 빠를 것 같다. 예전에 참고서에서 열심히 수학을 풀다보면 어느 구석엔가 '읽을거리'나 비슷한 이름으로 문제풀이를 멈추고 읽어보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어 있다. 혁명의 전사였던 갈루아가 여자문제로 결투를 예정한 전날 밤 죽음을 예감하고 급하게 논문을 쓰는 장면도 참고서에서 처음 봤다. 중국의 삼황 중에 복희씨는 굽은 자를 들고 여와씨는 컴퍼스를 들고 있는 그림도 참고서에서 처음 봤을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역사가 있고 연원이 있고 맥락이 있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는 가장 오래된 4대문명의 흔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학의 흔적부터 시작해서 세계사의 중요한 장면과 수학을 연결지어 설명한다. 수학참고서의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읽을거리를 수학만큼이나 큰 비중으로 늘려서 대충 1:1의 비율로 안내한다.

 

 

메소포타미아의 문자인 쐐기문자의 숫자


세계사? 수학사?

이제 슬슬 이 책의 정체를 살펴 보자. 이 책을 쓴 저자는 수학자이다. 아무래도 수학자가 수학에 세계사를 접목시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만 역사학자가 역사에 수학을 접목시키는 건 좀 상상하기 힘들다. 이 책은 수학자가 세계사에 관심을 갖고 세계사 속에 수학을 녹여낸 책이다. 그러니까 세계사 책은 아니다. 세계사 책이라고 하기엔 역사에 대해서 엄밀하지 않고 상식선에서만 다루었다. 그렇다면 수학사 책일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처음 4대문명의 초기 부분에서는 문명에 나타난 수학을 설명해 놓았는데 6장부터는 역사와 수학이 아무런 연관이 없다. 춘추전국시대와 조합을 연결지은 것도 그렇고 페르시아의 법과 진릿값을 연결지은 것도 그렇다. 아폴론의 신탁 부분에서 유명한 3대 작도 불능 문제를 다루어서 수학사인가 했다가 알렉산더가 자른 고르디오스의 매듭과 매듭문제는 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세계사의 중요사건을 펼쳐놓고 역사와 연관있는 수학사가 있으면 설명하고 없으면 역사를 소재로 수학의 이론을 설명한 책이다. 수학사도 아니고 세계사도 아니다. 앞에서 예를 든 것같이 참고서에 있는 '읽을거리'의 확장판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중인 복희여와도. 복희씨는 손에 직각자(곡척)를 쥐고 있고 여와시는 컴퍼스(규구)를 들고 있다.


'읽을거리'는 원래 재미있잖아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는 재미있다. 책을 사면서 나는 자세한 수학사의 에피소드가 담겨있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내용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책을 제목만 보고 살 때가 많아서 읽다가 후회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기대와는 달랐지만 책이 재미없지는 않았다.이런 것도 책을 읽는 재미 중에 하나다. 세계사와 수학을 엮는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정확히는 세계사의 에피소드나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수학지식을 풀어 놓아서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었다. 세계사 에피소드는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엄밀하지는 않다. 에피소드 위주로 소개를 했기 때문에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해 놓아서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흥미 위주로 가볍게 읽기 좋다.


역사와 연관해서 소개해 놓은 수학문제도 좋다.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에서 소개하는 수학문제들은 역사적 사건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오로지 추상적이기만 한 수학문제보다는 실생활에서 (꼭 적용가능하다고 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쯤 연결해 볼 수 있는 문제들이다. 혼자서 읽으면서 재밌고 끝나는 수학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강의나 수업, 아니면 친구들과 얘기할 때 분위기를 잘 타면 한 번쯤 꺼내볼 수 있는 수학 문제들이다. 그러고 보니 소개되어 있는 세계사의 사건도 마찬가지다.


흔히 보기 힘든 수학문제도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교양 수준에서 읽는 수학책들은 보통 수론이나 집합, 기하 등을 많이 다루는데 이 책에는 매듭, 수형도 같이 내가 그동안 본 다른 수학 교양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용들이 나와서 특이한 수학문제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델로스에 있는 아폴로 신전. 정육면체의 배적문제로 유명한 신전이다. 신전에 있던 정육면체보다 부피가 딱 2배 큰 정육면체를 만들라고 지시한 아폴론도 치사하지만, 그걸 또 자하고 컴퍼스만 가지고 두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끙끙댄 그리스인들도 참 고지식하다. 물론 그런 고지식함이 문명발전의 큰 힘이었을 테지.

 


잘 엮어 놓은 에피소드들

본격적인 세계사 책도, 수학사 책도 아니지만 나는 이 책이 좋다. 세계사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을 알 수 있도록 꽤 많은 내용을 담아 놓았고, 그에 연결되어 있는 수학문제도 흥미가 돋는다. 좀 억지스럽게 연결된 부분도 있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저자는 수학을 전공했는데 수학보다 오히려 세계사가 더 자세하다. 수학문제야 당연히 잘 알고 있겠지만 세계사까지 섭렵한 저자의 다양한 관심이 멋지다. 흔하지는 않겠지만 수학과 세계사에 둘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단, 글에서 계속 써놓은대로 에피소드 중심의 단편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본젹적인 세계사나 수학사를 책을 다루는 책은 아니라서 그걸 기대하는 독자는 실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수학부분도 너무 파편화된 내용만 있어서 좀 아쉽다. 즉, 단편적인 세계사와 수학상식을 머리 식힐겸  부담없이 읽고 싶은 사람에게 딱 적당해 보인다.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조각상. 아무도 풀지 못했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 버렸다. 창조적인 해결인지.. 억지인지.. 합리적인 그리스인들이라면 수긍하지 못했을 해결방법일 것 같다.

 


★★★★


각 단원이 읽기 편하게 나누어져 있어서 크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모르면 모르는대로 넘어가며 읽어도 좋다. 기본적으로 많이 어렵지 않고 흥미있는 내용 + 단편적인 잡다한 지식이 많이 들어 있어서 가볍게 세계사나 수학에 관한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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