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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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연히 닥친 자연 재해, 우연히 죽은 사람

우하라 마도카는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훗카이도에 있는 외갓집에 왔다. 원래는 아빠인 젠타로도 함께 오려고 했지만 갑자기 잡힌 급한 수술 때문에 아빠는 같이 올 수 없었다. 할머니,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를 기다리는데 할아버지가 약주 한 잔 걸치고 운전을 하고 집에 온다고 고집을 부린다. 엄마는 발끈해서 음주운전은 안된다고 하며 엄마가 가서 운전하고 올테니 할아버지에게 기다리라고 한다. 마도카는 뒷자리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가가던 중.. 운이 없었다. 엄마는 갑자기 불어닥친 토네이도에 휩쓸리고 시신으로 발견된다. 마도카만이 겨우 살아 남았다.


몇 년 후..


다케다 도오루는 경찰출신 프리랜서 경호원이다. 새로운 경호의뢰를 받아 가이메이 대학에 가서 기리야마를 만난다. 그리고 굉장히 건방져 보이는 10대 중후반 여자아이에게 면접을 본다. 이 여자아이가 경호해야 할 대상인 마도카이다. 절대로 어떠한 질문도 하지 말 것을 다짐받은 후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채용 결정. 그런데 이 아이, 뭔가 좀 이상하다. 우연히 벌어지는 일들을 '미리' 예측한다. 예측 뿐만 아니라 분명히 상관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는데 그것이 '의도된' 것처럼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우연이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찜찜하다.


마에야마 요코는 아카쿠마 온천에서 마에야마 여관을 30년째 운영하고 있다. 얼마전에 미즈키 요시로라는 유명한 영화 프로듀서와 그의 아내 치사토가 여관에 묵었다. 그런데 부부가 산책하던 중에 미즈키 요시로가 땅에서 솟아 오른 황화수소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황화수소는 공기 중에 노출되자마자 공기중에 퍼지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사람이 죽을 정도로 농도가 짙어질 수 없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0%는 아니다. 남자가 운이 나빴다. 물론 거의 40살의 나이차가 나고 남편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것이 분명한 치사토가 의심을 사기는 했다. 미즈키의 어머니는 아내가 재산을 노리고 남편을 죽였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미즈키 요시로는 사고로 죽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곧 의심에서 벗어난다. 나카오카 유지라는 형사가 아무리 열심히 조사해 보고 다녀봐야 나올 것도 없다. 아오에 슈스케라는 지구과학 교수도 자주 와서 사고가 아니라 의도된 사건일 가능성을 찾아 보지만 별다른게 없다. 단지 걱정되는 건 사고가 나서 위험해 보이는 온천에 손님이 줄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벌어진 일이고 다시 발생하기 어려운 일이라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 중 한 명.



조금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라플라스의 마녀》는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었다. 게이고 데뷔 30주년 기념작이라는 떠들썩한 홍보도 주효했고, 유명한 '갈릴레오 시리즈'나 '가가 형사 시리즈'가 아닌 새로운 작품이라는 점도 어필 포인트였던 것 같다. 나에게는 게이고의 소설 중에 꼭 읽어봐야 할 몇 권 중에 한 권이었다. 아껴뒀다기보다는 게이고의 작품이 하도 많다 보니 사놓고서도 그냥 뒤로 미뤄 놓았던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책들을 모두 읽은 건 아니지만(사실 너무 많아서 모두 읽을 수도 없다. 이 책과 몇 권만 더 읽고 이제 그만 읽을 생각이다) 대체로 추리소설을 주로 쓴 작가라고 생각한다. 《라플라스의 마녀》 역시 추리소설의 탈을 쓰고 있다. 형사가 나오고 그 형사를 돕는 지구과학 교수가 나온다. 하지만 이전에 읽은 소설과는 다른 점이 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판타지라고 볼 수는 없고 추리소설을 쓰면서 SF적인 요소를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 SF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읽어 보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다.


소설은 온천을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 알고보면 능력자 배틀물

있을 수 없는 사고는 또 일어난다. 나스노 고로라는 무명배우가 또다른 온천여행지에서 역시 황화수소에 중독되어 사망한다. 이것 역시 첫번째 사망사건과 다를 바가 없다. 확률이 0%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또 일어난 것이다. 확률이 8백만 분의 1인 로또에 한 번 당첨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매주 누군가에게는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연속으로 로또에 당첨된다면 이건 행운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우연히 일어날 수 없는 사고가 한 번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우연한 사고가 두 번 발생한다면 이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 된다. 나카오카 유지 형사와 아오에 슈스케 교수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리고 두 사건 장소에 모두 나타난 마도카에게 주목한다.


아마카스 겐토는 영화감독인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아들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마도카의 아버지인 젠타로가 시행한 뇌수술로 소생한다. 마도카의 어머니가 죽은 날, 젠타로가 수술하고 있었던 환자이다. 그런데 회복을 하는 동안 사물의 위치와 운동성을 파악하고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게다가 약간의 간섭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우연처럼 보이는 현상'을 조작할 수 있게 된다. 즉, 자연에서 벌어지는 온갖 현상들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이해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초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뇌를 수술한 탓에 우연히 갖게 된 능력이다.


마도카는 겐토와는 좀 다르다. 토네이도에 의해서 어머니를 잃은 후 자연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니가 수술한 겐토가 가진 능력이 바로 자신이 갖고 싶었던 능력이라고 생각해서 아버지에게 자신도 겐토와 같은 수술을 해 줄 것을 요청한다. 젠타로는 겐토의 능력이 정말 수술로 인해서 얻어진 것인지 다시 확인하고 싶었고, 때마침 딸이 조건에 딱 맞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원하기도 했기 때문에 윤리적인 압박감은 뒤로 한 채 딸에게 뇌수슬을 감행한다. 그리고 마도카 역시 겐토와 같은 능력을 지니게 된다. 겐토와 마도카는 중요한 연구자료로서 정부로부터 보호관찰을 받게 되지만 겐토는 복수를 위해, 마도카는 겐토를 막기 위해 대학 연구소를 탈출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한다.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Pierre Simon Laplace (1749. 3. 23. ~ 1827. 3, 5,)​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수리물리학, 천체역학 등에 업적이 있다.


라플라스의 악마

과학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라플라스의 악마'를 들어 봤을 것이다. 고전물리학이 뉴턴에 의해서 완성된 이후 우주에서 관측할 수 있는 모든 현상들이 설명가능하다고 과학자들이 생각을 했는데, 그 극단에 있었던 과학자가 프랑스의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이다. 라플라스는'어떤 지적인 존재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고 있고 이 모든 정보를 충분히 분석할 능력이 있으면 미래까지도 정확히 예측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결과 나온 결론이다. 그리고《라플라스의 마녀》는 이 악마가 된 두 소년소녀가 주인공이다. 라플라스의 악마를 알고 있다면 처음 마도카가 등장했을 때, 마도카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 태클을 걸어 보자면 라플라스의 악마는 없다. 하이젠베르크가 주창한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서 입자(미시입자를 말한다)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상태를 동시에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라플라스의 주장은 '입자의 위치와 운동상태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인데 애시당초 입자의 위치와 운동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거시적인 세계에서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이론이 미시 세계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라플라스의 마녀' 역시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라플라스의 마녀》의 소설적 상상력을 폄훼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이런 마녀를 생각한다면 오산.


참 대단한 작가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그동안 써왔던 소설과는 궤를 달리 하는 작품이다. 사실상 겐토와 마도카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전통적인 느낌의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상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리소설에 SF적인 요소를 슬쩍 첨가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충분히 즐길만 하다. 좋아하는 SF소설 중에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나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SF소설에 추리소설 요소를 집어 넣어서 흥미를 돋우는데 《라플라스의 마녀》는 비슷하지만 반대로 추리소설에 SF요소를 집어 넣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열 편 이상 읽었지만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더 많다. 몰입도가 뛰어나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을 수 없고, 금세 읽을 수 있어서 하루 이틀이면 모두 읽는다. 하지만 하도 많아서 도저히 그의 책을 모두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게이고의 소설만 읽을 수는 없으니 내가 읽는 책의 숫자보다 그가 써내는 책이 늘어나는 숫자가 더 크다. 대충 몇 권 더 읽고 나서 이제 그만 읽으려고 생각 중이다. 한때는 뒤에 고스트 라이터가 붙어서 책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기도 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혈 팬인 일본 친구와 얘기를 하다가 한 소리 듣고 그 의심은 거두기로 했다.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떠올리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아이디어들을 끊임없이 책으로 써내는 건 더 대단해 보인다.

거시세계에서 상식인 것이 미시세계에서는 상식적이지 못하다. 참 골치아픈 문제.


★★★★☆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SF가 붙어 있어서 사실상 추리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사람이 실체적 진실을 파헤친 후 그 근거를 설명해 줘야 하는데, 실체적 진실 자체가 상식에서 어긋나기 때문에 결론은 마도카의 입을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추리소설의 가장 큰 특징을 포기한 소설이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를 추리소설의 틀 안에 집어 넣어 설득력있게 써내려갔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엄청난 몰입감도 여전하다. 대표작 중에 하나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읽으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가 많이 떠올랐다.
추천한다.

東野圭吾, 히가시노게이고, 라플라스의마녀, 양윤옥옮김, 현대문학, 일본소설, 소설, SF소설,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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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이 한 번 임했다고 해서 그가 영원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늘 유혹과 시험이 있습니다. 그 유혹을 이기고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입니다.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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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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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쫓겨나 증권회사로..

한자와 나오키는 지난 1권과 2권에서 뛰어난 전략과 능력을 발휘하여 위기에서 벗어났다. 개인의 위기 뿐만 아니라 은행이 처한 위기까지 해결하며 에이스 중 에이스가 되......는 줄 알았으나, 기대와 달리 도쿄중앙은행의 산하 회사인 도쿄 센트럴 증권의 차장으로 발령받는다. 좌천된 것이다. 이제 에이스도 뭣도 아니고 원하지도 않았던 증권사 직원이 된 한자와 나오키. 산업중앙은행 출신인 한자와와 은행직원 시절에도 융화되지 못했던 도쿄제일은행 출신 직원 사이의 갈등은 증권사에 와서도 여전하다.


1. 은행 출신 직원들은 증권사를 좌천지로 여기고 다시 은행으로 돌아갈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2. 애초부터 증권사에서 시작한 직원들은 은행 출신 직원들이 낙하산으로 노른자위만 차지하는데 불만이 있다.

3. 게다가 한자와는 버블경제 시대에 사회에 나온 세대를 향한 버블 붕괴 이후 취업빙하기 세대 직원의 비판까지 받는다.

이런 3중의 갈등 속에 한자와 나오키는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케이도 준 池井戸潤 1963 ~ . 일본의 소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 번째 책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방영한 동명 드라마를 보고 나서 처음 알았다. 사카이 마사토, 우에토 아야, 카가와 테루유키같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당했으면 갚아준다. 두 배로 갚아준다.'같은 유명한 대사, 도게자같은 유행요소로 인기를 끈 선굵은 기업드라마로 재미있게 봤는데 한자와 나오키가 증권사로 좌천되면서 내용이 중간에 끝이 나 버린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 찾아 봤다. 원작이 있긴 한데 번역된 적도 없고 번역되는 것도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기쁘게도 인플루엔셜에서 1, 2권이 발매되더니 드디어 3권이 나왔다. 1, 2권도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이미 드라마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권은 다르다. 궁금했던 드라마의 뒷이야기를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 권째 책이지만 우리나라의 한자와 나오키 팬들에게는 가장 기다리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도 그렇다.



은행과 증권사의 갈등

한자와 나오키가 근무하는 도쿄센트럴 증권에 하드웨어 중심으로 발전한 '전뇌잡기집단'이 '도쿄스파이럴'에 대한 적대적 M&A를 의뢰한다. 하지만 의뢰는 은행의 증권영업부에서 가로채고 한자와 나오키는 곤란한 지경에 처한다. 한편, 검색엔진 중심으로 발전해 온 도쿄스파이럴의 사장은 우여곡절 끝에 도쿄센트럴 증권에 M&A에 대한 방어를 의뢰한다. 한자와의 부하직원인 모리야마 마사히로와 도쿄스파이럴의 사장인 세나 요스케가 학창시절 친한 친구였던 점이 인연이 되었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도쿄스파이럴을 매수하려는 전뇌잡기집단, 전뇌잡기집단에 대항하여 회사를 지키려는 도쿄스파이럴의 적대적 매수 전쟁. 그 중간에 도쿄스파이럴의 백기사로 위장한 '폭스'사가 자리잡아 회사의 명운을 건 싸움을 펼친다. 그 와중에 공교롭게도 은행 증원영업부는 전뇌잡기집단과 손을 잡고 도쿄센트럴증권은 도쿄스파이럴과 손을 잡는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서로 반대편에 서서 치열한 혈투를 펼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당연히 한자와가 근무하는 증권사는 은행으로부터 비난과 압력을 받지만 한자와는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한다.



사회파 기업소설의 걸작

드라마를 본 후 읽었던 1, 2권과는 달리 책으로 처음보는 《한자와 나오키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이다. 한자와 나오키의 이미지는 배우인 사카이 마사토의 이미지가 계속 떠오른다. 궁금했던 증권사 좌천 후 한자와 나오키의 활약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점이 역시 제일 좋다. 이전에 어느 정도 편법을 써가며 전략적인 승리를 가져왔던 한자와는 이제는 편법보다는 정공법에 의지한다. 좀더 정의로워졌다. 이케이도 준 소설의 특징인지 이전 작품도 그렇지만 진행이 시원시원하다. 쓸데없이 뜸을 들이는 기교로 독자를 짜증나게 하지 않는 점이 《한자와 나오키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의 가장 좋은 점이다. 미스테리 소설이나 추리소설을 보면 쓸데없이 대명사를 남발해서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거 없다.


《한자와 나오키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거품시대에 취업한 사람들과 취업빙하기에 취업한 사회 구성원의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데, 2010년대 이후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이 어려움을 겪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은 점이 많아 공감이 된다. 일본은 단카이 세대로부터 시작해서 거품경제 세대, 취업절벽시대를 거치며 세대간 갈등이 많은데, 우리나라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 386세대, 2차 베이비붐 세대를 거쳐 현재 사회에 진출하는 세대간 갈등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씁쓸하다.


올해 2/4분기에 한자와 나오키 시즌2가 방영된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다. 아마도 소설 3편과 4편이 주요 내용이 될 것 같다. 카가와 테루유키가 나오면 좋을 것 같은데..


★★★★☆

전작과 전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기관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파헤치되 중요한 고리에 있는 사람의 거짓을 밝혀 궁지로 몰아 넣은 후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선과 악의 구도가 굉장히 선명하고 전형적인 권선징악으로 시원하게 끝난다. 권선징악으로 끝이 나긴 하지만 유치하지는 않다. 한자와 나오키의 정보원이 너무 좋아서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정보를 손쉽게 얻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원래 기업이라는 것이 연줄이 중요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읽으면 크게 상관없다.


한자와 나오키는 이전보다 더 정의로워지고 전략적인 능력은 더 일취월장했다. 규모는 더 커지고 내용도 더 매끄러워졌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 강력하게 추천한다. 물론 3권을 읽기 전에 1, 2권을 미리 읽어야 한다. 이제 마지막 4권을 기다린다. 드라마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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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채집가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5
로이스 로리 지음, 김옥수 옮김 / 비룡소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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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가 된 소녀

키라의 엄마 카티나가 죽었다. 키라의 아빠인 키토퍼는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냥꾼이었지만 사냥중에 죽은지 오래되었다. 즉, 키라는 이제 고아다. 엄마의 시신을 '죽음의 들판'으로 옮겨 영혼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 엄마와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오니 움막은 이미 불타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키라를 쫓아내려는 중이다. 키라는 한쪽 발을 저는 불구인데다 이제는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주동자는 '반다라'. 흉터도 무섭고 덩치좋은 아줌마다. 마을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일촉즉발의 순간. 키라는 마지막 용기를 내어 '생명에 관한 판단'이라는 점을 들어 자신의 처분은 '수호자 협의회'에서 판단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키라는 협의회 건물에서 열두 명의 수호자들에게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로이스 로리 Lois Lowry 1937 ~ . 미국의 작가. 올해 나이 82세인데 여전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로이스 로리의 'SF 4부작' 중 두번째 소설

로이스 로리의 《더 기버: 기억전달자》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책이 묘하게 끝난다. 주인공이었던 조너스가 살던 마을에서 탈출하고 나서 끝이다. 뭔가 뒤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찾아 보니 역시 시리즈물이다. 낚였다는 마음과 안도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이렇게 낚이는 거야 크게 문제없다.


그런데 《파랑채집가》을 읽다 보니 이상하다. 이게 정말 후속편이 맞나? 《기억전달자》의 조너선이 살던 마을과 《파랑채집가》의 키라가 사는 마을은 전혀 다르다. 조너선의 마을은 모든 것이 시스템화되어 있고 인간의 본성까지 컨트롤할 정도로 극단적인 통제사회였던 반면, 키라의 마을은 법적 판단의 주체인 '수호자 협의회'가 있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사적 제재가 존재할 정도로 야만에 가까운 사회이다.


세계관이 문제가 아니다. 세계관이 '서로 다른' 것이 문제다. 나는 《기억전달자》의 다음 내용이 알고 싶었는데, 주인공이 다를 수는 있지만 세계관이 다르다면 전혀 다른 소설 아냐? 4부작이 그냥 SF 4부작이면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저 SF소설 네 권을 말할 뿐인건가? 조너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나?


소설 제목이 《파랑채집가》인데 주인공이 딱히 파란색 염색에 대해서 크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재능는 키라에게 삶의 길을 밝혀 주고..

키라는 살아 남는다. 그 뿐만 아니라 재판을 받으러 끌려갔던 수호자 협의회 건물 한 켠에 방을 배정받아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호사를 누리면서 산다. 키라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바느질을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키라는 예술가인 '수예가 키라'가 되어 살고 건너편에 사는 '조각가 토마'와 친하게 지낸다.


키라의 어머니 역시 뛰어난 수예가였다. 하지만 키라만큼 영감을 가졌던 것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너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서 키라에게 염색하는 법을 알려 주지 못했다. 결국 협의회에서 키라를 구해주고 보호자같은 역할을 하는 자미슨은 키라가 숲속에 있는 애너밸러 할머니에게 염색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돕는다. 할머니는 키라의 어머니를 가르치기도 했던 분으로 키라에게 염색하는 법을 열심히 가르친다. 그리고 모든 색을 염색할 수 있지만 파란색만은 청대를 구해야 하는데 구하지 못해서 만들 수가 없다고 한다.


작중에서 토마는 조각가로 나온다. 설정상 예술가들은 일종의 영감을 지니고 있으며,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


좀 밋밋한 설정

《기억전달자》를 꽤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후속편이라고 알고 읽기 시작한 《파랑채집가》도 큰 기대를 했다. 하지만 다 읽고 보니 《파랑채집가》는 《기억전달자》와 전혀 어떠한 접점도 없다. 최소한 이 책만 읽어봤을 때는 그렇다. 근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다는 것과 한 마을이 어느정도 고립되어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는 점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그나마도 설정이 《기억전달자》에 비해서 정교하거나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흥미면에서 상당히 떨어진다. 특이한 설정이라면 '예술가'가 그들의 영감으로 미래 모습을 표현할 수 있고, 그것들을 모아 한 해에 한 번씩 수호자 협의회 건물에서 공연을 한다는 점이다. 설정이 흥미롭지 않으니 《기억전달자》에서 보이지 않던 단점이 보인다. 《기억전달자》도 플롯이 그렇게 뛰어난 소설은 아니었다. 잘 찾아 보면 태클 걸 곳이 많지만 설정의 의외성으로 소설을 끝까지 밀어 붙였다.


하지만 《파랑채집가》은 설정이 매력적이지 않아 단순하고 긴장감 떨어지는 플롯이 너무 티나게 드러나 버린다. 키라는 처음에 위기에 처한 이후 완벽한 보호 아래 놓여 있어서 걱정이 되지 않는다. 키라 대신 위기의 주인공이 될만한 두 명 중 한 명인 토마 역시 그럴싸한 위기없이 키라처럼 안전한 곳에서 잘 산다. 맷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맹과 지혜가 하늘을 찌른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키라의 아버지까지 모셔 온다.


《파랑채집가》에서는 숲이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배경이면서 다른 마을과 연결되는 것을 방해한다. 두 작품 모두 하나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단절되어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림동화가 된 청소년 소설

결말 부분에서 맷이 키라의 아버지 키토퍼를 찾아서 함께 나타난다. 별로 놀랍지 않다. 소설 내내 자미스는 악한이고 키토퍼는 살아있을 거라는 티를 너무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등장하면서 너무 많은 것이 단번에 해결된다. 자미스의 악행이 드러나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도 풀린다. 아버지인 키토퍼는 맷과 만나서 얘기하던 중에 키라가 딸인 걸 확신하게 되고 키라 역시 키토퍼를 만나자마자 몇마디 말만 듣고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된다. 그나마 흥미있던 설정이 결말 부분에서 너무 개연성없이 해결되어 버리니 실망스럽다.


★★★☆

연작이 모두 네 권이라고 하는데 《파랑채집가》를 읽고 나니 다음 권을 읽을지 말지 주저하게 된다. 어차피 읽은 것도 있고, 책이 두껍지 않아 다음 두 권도 읽게 될테지만 크게 기대하고 읽을 것 같지는 않다. 뭣보다 작품간에 연결점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설정만 늘어 놓고 기-승-전 정도에서 소설이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쉬움도 남는다.


추천은..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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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이라고 할 만큼 기이한 시대를 만들어내고 붕괴시킨 사람은 누구인가? 그 장본인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 세대는 아니다.
그런데 취직도 못 하고 온갖 손해를 보는 것은 그들 세대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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