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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ㅣ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평점 :
은행에서 쫓겨나 증권회사로..
한자와 나오키는 지난 1권과 2권에서 뛰어난 전략과 능력을 발휘하여 위기에서 벗어났다. 개인의 위기 뿐만 아니라 은행이 처한 위기까지 해결하며 에이스 중 에이스가 되......는 줄 알았으나, 기대와 달리 도쿄중앙은행의 산하 회사인 도쿄 센트럴 증권의 차장으로 발령받는다. 좌천된 것이다. 이제 에이스도 뭣도 아니고 원하지도 않았던 증권사 직원이 된 한자와 나오키. 산업중앙은행 출신인 한자와와 은행직원 시절에도 융화되지 못했던 도쿄제일은행 출신 직원 사이의 갈등은 증권사에 와서도 여전하다.
1. 은행 출신 직원들은 증권사를 좌천지로 여기고 다시 은행으로 돌아갈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2. 애초부터 증권사에서 시작한 직원들은 은행 출신 직원들이 낙하산으로 노른자위만 차지하는데 불만이 있다.
3. 게다가 한자와는 버블경제 시대에 사회에 나온 세대를 향한 버블 붕괴 이후 취업빙하기 세대 직원의 비판까지 받는다.
이런 3중의 갈등 속에 한자와 나오키는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케이도 준 池井戸潤 1963 ~ . 일본의 소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 번째 책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방영한 동명 드라마를 보고 나서 처음 알았다. 사카이 마사토, 우에토 아야, 카가와 테루유키같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당했으면 갚아준다. 두 배로 갚아준다.'같은 유명한 대사, 도게자같은 유행요소로 인기를 끈 선굵은 기업드라마로 재미있게 봤는데 한자와 나오키가 증권사로 좌천되면서 내용이 중간에 끝이 나 버린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 찾아 봤다. 원작이 있긴 한데 번역된 적도 없고 번역되는 것도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기쁘게도 인플루엔셜에서 1, 2권이 발매되더니 드디어 3권이 나왔다. 1, 2권도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이미 드라마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권은 다르다. 궁금했던 드라마의 뒷이야기를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 권째 책이지만 우리나라의 한자와 나오키 팬들에게는 가장 기다리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도 그렇다.
은행과 증권사의 갈등
한자와 나오키가 근무하는 도쿄센트럴 증권에 하드웨어 중심으로 발전한 '전뇌잡기집단'이 '도쿄스파이럴'에 대한 적대적 M&A를 의뢰한다. 하지만 의뢰는 은행의 증권영업부에서 가로채고 한자와 나오키는 곤란한 지경에 처한다. 한편, 검색엔진 중심으로 발전해 온 도쿄스파이럴의 사장은 우여곡절 끝에 도쿄센트럴 증권에 M&A에 대한 방어를 의뢰한다. 한자와의 부하직원인 모리야마 마사히로와 도쿄스파이럴의 사장인 세나 요스케가 학창시절 친한 친구였던 점이 인연이 되었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도쿄스파이럴을 매수하려는 전뇌잡기집단, 전뇌잡기집단에 대항하여 회사를 지키려는 도쿄스파이럴의 적대적 매수 전쟁. 그 중간에 도쿄스파이럴의 백기사로 위장한 '폭스'사가 자리잡아 회사의 명운을 건 싸움을 펼친다. 그 와중에 공교롭게도 은행 증원영업부는 전뇌잡기집단과 손을 잡고 도쿄센트럴증권은 도쿄스파이럴과 손을 잡는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서로 반대편에 서서 치열한 혈투를 펼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당연히 한자와가 근무하는 증권사는 은행으로부터 비난과 압력을 받지만 한자와는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한다.
사회파 기업소설의 걸작
드라마를 본 후 읽었던 1, 2권과는 달리 책으로 처음보는 《한자와 나오키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이다. 한자와 나오키의 이미지는 배우인 사카이 마사토의 이미지가 계속 떠오른다. 궁금했던 증권사 좌천 후 한자와 나오키의 활약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점이 역시 제일 좋다. 이전에 어느 정도 편법을 써가며 전략적인 승리를 가져왔던 한자와는 이제는 편법보다는 정공법에 의지한다. 좀더 정의로워졌다. 이케이도 준 소설의 특징인지 이전 작품도 그렇지만 진행이 시원시원하다. 쓸데없이 뜸을 들이는 기교로 독자를 짜증나게 하지 않는 점이 《한자와 나오키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의 가장 좋은 점이다. 미스테리 소설이나 추리소설을 보면 쓸데없이 대명사를 남발해서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거 없다.
《한자와 나오키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거품시대에 취업한 사람들과 취업빙하기에 취업한 사회 구성원의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데, 2010년대 이후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이 어려움을 겪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은 점이 많아 공감이 된다. 일본은 단카이 세대로부터 시작해서 거품경제 세대, 취업절벽시대를 거치며 세대간 갈등이 많은데, 우리나라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 386세대, 2차 베이비붐 세대를 거쳐 현재 사회에 진출하는 세대간 갈등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씁쓸하다.
올해 2/4분기에 한자와 나오키 시즌2가 방영된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다. 아마도 소설 3편과 4편이 주요 내용이 될 것 같다. 카가와 테루유키가 나오면 좋을 것 같은데..
★★★★☆
전작과 전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기관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파헤치되 중요한 고리에 있는 사람의 거짓을 밝혀 궁지로 몰아 넣은 후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선과 악의 구도가 굉장히 선명하고 전형적인 권선징악으로 시원하게 끝난다. 권선징악으로 끝이 나긴 하지만 유치하지는 않다. 한자와 나오키의 정보원이 너무 좋아서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정보를 손쉽게 얻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원래 기업이라는 것이 연줄이 중요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읽으면 크게 상관없다.
한자와 나오키는 이전보다 더 정의로워지고 전략적인 능력은 더 일취월장했다. 규모는 더 커지고 내용도 더 매끄러워졌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 강력하게 추천한다. 물론 3권을 읽기 전에 1, 2권을 미리 읽어야 한다. 이제 마지막 4권을 기다린다. 드라마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