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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채집가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5
로이스 로리 지음, 김옥수 옮김 / 비룡소 / 2008년 1월
평점 :
고아가 된 소녀
키라의 엄마 카티나가 죽었다. 키라의 아빠인 키토퍼는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냥꾼이었지만 사냥중에 죽은지 오래되었다. 즉, 키라는 이제 고아다. 엄마의 시신을 '죽음의 들판'으로 옮겨 영혼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 엄마와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오니 움막은 이미 불타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키라를 쫓아내려는 중이다. 키라는 한쪽 발을 저는 불구인데다 이제는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주동자는 '반다라'. 흉터도 무섭고 덩치좋은 아줌마다. 마을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일촉즉발의 순간. 키라는 마지막 용기를 내어 '생명에 관한 판단'이라는 점을 들어 자신의 처분은 '수호자 협의회'에서 판단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키라는 협의회 건물에서 열두 명의 수호자들에게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로이스 로리 Lois Lowry 1937 ~ . 미국의 작가. 올해 나이 82세인데 여전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로이스 로리의 'SF 4부작' 중 두번째 소설
로이스 로리의 《더 기버: 기억전달자》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책이 묘하게 끝난다. 주인공이었던 조너스가 살던 마을에서 탈출하고 나서 끝이다. 뭔가 뒤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찾아 보니 역시 시리즈물이다. 낚였다는 마음과 안도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이렇게 낚이는 거야 크게 문제없다.
그런데 《파랑채집가》을 읽다 보니 이상하다. 이게 정말 후속편이 맞나? 《기억전달자》의 조너선이 살던 마을과 《파랑채집가》의 키라가 사는 마을은 전혀 다르다. 조너선의 마을은 모든 것이 시스템화되어 있고 인간의 본성까지 컨트롤할 정도로 극단적인 통제사회였던 반면, 키라의 마을은 법적 판단의 주체인 '수호자 협의회'가 있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사적 제재가 존재할 정도로 야만에 가까운 사회이다.
세계관이 문제가 아니다. 세계관이 '서로 다른' 것이 문제다. 나는 《기억전달자》의 다음 내용이 알고 싶었는데, 주인공이 다를 수는 있지만 세계관이 다르다면 전혀 다른 소설 아냐? 4부작이 그냥 SF 4부작이면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저 SF소설 네 권을 말할 뿐인건가? 조너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나?
소설 제목이 《파랑채집가》인데 주인공이 딱히 파란색 염색에 대해서 크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재능는 키라에게 삶의 길을 밝혀 주고..
키라는 살아 남는다. 그 뿐만 아니라 재판을 받으러 끌려갔던 수호자 협의회 건물 한 켠에 방을 배정받아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호사를 누리면서 산다. 키라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바느질을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키라는 예술가인 '수예가 키라'가 되어 살고 건너편에 사는 '조각가 토마'와 친하게 지낸다.
키라의 어머니 역시 뛰어난 수예가였다. 하지만 키라만큼 영감을 가졌던 것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너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서 키라에게 염색하는 법을 알려 주지 못했다. 결국 협의회에서 키라를 구해주고 보호자같은 역할을 하는 자미슨은 키라가 숲속에 있는 애너밸러 할머니에게 염색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돕는다. 할머니는 키라의 어머니를 가르치기도 했던 분으로 키라에게 염색하는 법을 열심히 가르친다. 그리고 모든 색을 염색할 수 있지만 파란색만은 청대를 구해야 하는데 구하지 못해서 만들 수가 없다고 한다.
작중에서 토마는 조각가로 나온다. 설정상 예술가들은 일종의 영감을 지니고 있으며,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
좀 밋밋한 설정
《기억전달자》를 꽤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후속편이라고 알고 읽기 시작한 《파랑채집가》도 큰 기대를 했다. 하지만 다 읽고 보니 《파랑채집가》는 《기억전달자》와 전혀 어떠한 접점도 없다. 최소한 이 책만 읽어봤을 때는 그렇다. 근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다는 것과 한 마을이 어느정도 고립되어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는 점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그나마도 설정이 《기억전달자》에 비해서 정교하거나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흥미면에서 상당히 떨어진다. 특이한 설정이라면 '예술가'가 그들의 영감으로 미래 모습을 표현할 수 있고, 그것들을 모아 한 해에 한 번씩 수호자 협의회 건물에서 공연을 한다는 점이다. 설정이 흥미롭지 않으니 《기억전달자》에서 보이지 않던 단점이 보인다. 《기억전달자》도 플롯이 그렇게 뛰어난 소설은 아니었다. 잘 찾아 보면 태클 걸 곳이 많지만 설정의 의외성으로 소설을 끝까지 밀어 붙였다.
하지만 《파랑채집가》은 설정이 매력적이지 않아 단순하고 긴장감 떨어지는 플롯이 너무 티나게 드러나 버린다. 키라는 처음에 위기에 처한 이후 완벽한 보호 아래 놓여 있어서 걱정이 되지 않는다. 키라 대신 위기의 주인공이 될만한 두 명 중 한 명인 토마 역시 그럴싸한 위기없이 키라처럼 안전한 곳에서 잘 산다. 맷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맹과 지혜가 하늘을 찌른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키라의 아버지까지 모셔 온다.
《파랑채집가》에서는 숲이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배경이면서 다른 마을과 연결되는 것을 방해한다. 두 작품 모두 하나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단절되어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림동화가 된 청소년 소설
결말 부분에서 맷이 키라의 아버지 키토퍼를 찾아서 함께 나타난다. 별로 놀랍지 않다. 소설 내내 자미스는 악한이고 키토퍼는 살아있을 거라는 티를 너무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등장하면서 너무 많은 것이 단번에 해결된다. 자미스의 악행이 드러나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도 풀린다. 아버지인 키토퍼는 맷과 만나서 얘기하던 중에 키라가 딸인 걸 확신하게 되고 키라 역시 키토퍼를 만나자마자 몇마디 말만 듣고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된다. 그나마 흥미있던 설정이 결말 부분에서 너무 개연성없이 해결되어 버리니 실망스럽다.
★★★☆
연작이 모두 네 권이라고 하는데 《파랑채집가》를 읽고 나니 다음 권을 읽을지 말지 주저하게 된다. 어차피 읽은 것도 있고, 책이 두껍지 않아 다음 두 권도 읽게 될테지만 크게 기대하고 읽을 것 같지는 않다. 뭣보다 작품간에 연결점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설정만 늘어 놓고 기-승-전 정도에서 소설이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쉬움도 남는다.
추천은..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