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인간의행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0대 시절에 크게 다친 경험이있기 때문입니다. - P5

손실 기피 성향에 따르면, 우리 마음속에는 불행한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대상을 시도하려고 하지는않습니다. - P21

물론 저는 과학적인 설명을 할 때에도, 세탁기 뒤에는 양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 P37

첫 번째 요인은 우리가 아무런 목적 없이 기다리기만 할 때에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 P58

시간은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생후 몇 년 동안에는 모든 일들이 새롭습니다. 따라서 이런 일들이강한 인상을 남겨서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새롭게 경험하는 일들은 점점 줄어듭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미 많은일들을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행복을 훨씬 덜느끼는 이유는 세월이 흐르면서 일상생활에 얽매여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P74

여러분이 동료의 어떤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가, 나중에 취소되는 상황을 그려보세요. 그 상상을 하는 순간 행복해진다면,
여러분은 취소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고,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은 것입니다. - P127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을 때에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P240

우리가 어떤 대상을 잘 알고 있으면 지식의 격차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지식의 저주라고 합니다. - P249

실험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나쁜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돈과 관계가 먼 행동일수록 더 쉽게 합리화하게 됩니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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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약진이다 - 늑대를 속여야 하는 한 남자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5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심한 서민 유약진, 차용증을 잃어버리다

유약진은 하남지역 약수 사람이다. 공사장 밥집에서 요리를 하며 먹고 살고 있다. 42살이다. 유약진의 부인은 황효경이었다. 과거형이다. 황효경은 유약진의 초등학교 동창인 이갱생과 바람이 났다. 유약진은 바람난 현장을 덮치고 이갱생에게 따지려고 했으나 오히려 얻어터지기만 했다. 비참하기 그지없다. 어쨌든 화가 난 유약진은 아내와 이혼한다. 아내는 이갱생과 재혼을 하고 유약진은 아들 유붕거와 함께 살다가 북경으로 와서 혼자 산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황효경이 주겠다고 하는 아들의 양육비도 거절한다.


아내에게 양육비는 받지 않았지만 이갱생에게 위자료를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이갱생은 위자료를 줄 수는 있지만 유약진이 돈을 받은 후 다시 시비걸 것을 걱정하여 6년 동안 아무 말썽을 피우지 않으면 6만원을 주겠다는 차용증을 유약진에게 써준다. 이제 위자료를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유약진이 얼후를 연주하는 길거리 연주자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차용증이 들어있는 가방을 도둑맞았다. 하늘이 무너진 유약진. 절대 6만원(중국 돈이니 곱하기 180을 하면 우리 나라 돈으로 약 천만원인데, 물가 차이를 따지면 거기에 몇 배 더 해야 할 것 같다.)을 포기할 수 없는 유약진은 차용증을 되돌려 받기 위해 도둑놈을 찾아 나선다.


류전윈 劉震云 1958 ~ . 중국의 소설가


처음 읽는 중국 현대 소설

지금까지 읽어 본 중국 소설은 삼국지, 초한지, 수호지같은 역사관련 군담소설이 아니면 김용이 쓴 무협소설 뿐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류츠신이나 켄리우, 하우징팡같은 휴고상을 받은 SF소설이 독서목록에 들어 있다. 유명하다는 작품도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현대소설의 경향은 전혀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유약진이다》는 중국 현대소설의 첫 인상을 만들어 주는 뜻깊은 소설이다. 좀 오버스럽게 의미를 부여해 봤다.


끝없는 등장인물, 복잡한 인물 소개, 흥미로운 구성

소설을 읽을 때, 메인이 되는 줄거리를 놓치면 읽어도 머릿속에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처음 몇십페이지에서 설명하는 배경을 읽은 후에는 보통 분위기가 익숙해지고 빠르게 책장이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유약진이다》는 200페이지(총 524페이지 책이다)는 읽어야 드디어 '주요 사건'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유약진이 도둑맞은 가방 속의 차용증을 찾는 것이 중요해 보였는데, 사실은 청면수 양지가 훔친 핸드백 속의 USB(마지막에는 무려 70만원까지 가격이 붙어버린다)가 책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 모든 사람이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물건이다.


유약진과 청면수 양지의 상황이 정확하게 데칼코마니처럼 겹치도록 사건을 구성한 것도 굉장히 흥미롭다. 유약진의 가방을 청면수 양지가 훔치고 그 가방을 꽃뱀 장단단 일행이 빼앗아 간다. 중요한 물건은 가방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차용증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유약진은 양지를 찾아 다닌다. 이게 추격전의 한 축이다. 청면수 양지는 부촌에서 가주임과 인주임의 비리가 담긴 USB가 들어 있는 핸드백을 훔치는데 유약진이 그 핸드백을 가로챈다. 그런데 그 핸드백을 유약진의 아들인 유붕거가 훔쳐간다. 역시 이 사실을 모르는 양지는 유약진을 쫓는다. 중요한 물건은 역시 USB. 추격전의 다른 축이다. 마치 우로보로스의 두 마리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물려고 하는 것처럼사건이 꼬여있다.


이렇게 서로가 쫓고 쫓기는 과정이 《나는 유약진이다》의 주요 내용인데 그 와중에 얽힌 인물들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그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등장하는 사람이 태어난 지역부터 개인적인 사정까지 구구절절 읊어 놓는다. 도대체 왜 이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지 모르면서 읽고 있기도 한다. 마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데 보이는 모든 휴게소에 들러 먹고 쉬다가 다시 출발하는 것같은 느낌이다. 운전을 하는 사람(작가)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지만 조수석에 앉은 사람(독자)는 도대체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고 끌려가는 것 같다.


상당히 어지러운데 그래도 절반정도 읽어서 메인 스토리에 닿으면 목적지가 명확해져서 말끔해지고 여기까지 읽는 사이에 류전윈이 서술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게 되고 크게 혼란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나는 유약진이다》를 읽으면 베이징의 중하층 민중의 삶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독특한 표현을 읽을 수 있는 소설

《나는 유약진이다》를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한국소설이 한 권 떠올랐다. 천명관의 《고래》이다. 두 소설 다 왠지 얘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풀어내는 '썰'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 같다. 《고래》가 아낙네들이 빨랫터에 앉아 두런거리며 소문을 주고받는 와중에 만들어진 이야기라면 《나는 유약진이다》는 저잣거리에서 이야기꾼이 돈 몇 푼 받으면서 썰을 푸는 것 같다. 아마도 명, 청대 길거리에서 썰을 풀던 이야기꾼의 얘기를 받아 적어 놓으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읽다보니 이전에 김용이 쓴 역사소설에서 많이 봤던 표현들이 자주 나와서 반갑다. '신발이 헤지도록 찾아다녔다'든지 아마도 '기호지세'를 풀어 쓴 '호랑이 등에 타는 꼴'이라는 표현도 재미있었고, 굉장히 자주 나오는 '흰 칼이 들어가 붉은 칼이 되어 나온다'는 표현은 섬뜩하다. 거기에 'OO가 □□한 것은 XX하거나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기 때문이었다.'라는 표현이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데 이건 '독자 니들이 이렇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저런 이유 때문이야'라고 하면서 독자를 희롱하고 흥미를 돋우기 위한 방법인 것 같다. 뭐라도 예상을 하면 꼭 작가가 태클을 걸어 버린다.


2008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한 번 보고 싶은데 볼 수 있는 루트가 없다.


현대 중국의 중하층 삶을 살필 수 있는 군상극

내가 보기에 《나는 유약진이다》의 주인공은 세 사람이다. 공사판 요리사이면서 잃어버린 차용증을 찾으려는 유약진과 권력자에 줄을 대서 성공했으나 그 권력자 때문에 망하기 바로 직전인 엄격, 그리고 그 사이에 끼여 물건을 훔치고 잃어버린 청면수 양지이다. 이 세사람이 얽히는 사이에 수십명이 주변 인물들이 나름의 사연과 함께 곁다리로 끼어들어서 가시넝쿨같은 소설이 되었다. 그 와중에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군상들의 삶과 룰, 의리와 배신 등을 볼 수 있다. 소설 곳곳에 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포인트도 있어서 블랙코미디의 맛까지 잘 살려 놓았다. 번역도 말끔해서 읽는 동안 외국소설을 읽는 거부감도 없다. 처음 읽은 중국 현대소설인데.. 잘 골랐다.


★★★★☆

사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지 않으면 인물이 헷갈려서 뒤에 가면 '이게 누구더라'하면서 읽을 수도 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항상 인물에 대한 기억력이 딸려서 고생하는 나는 사람이 나올 때마다 이름 적고 관계도를 그리면서 읽을 수밖에. 하지만 잘 갈무리하면서 읽으면서 인물들에 익숙해지면 긴장감이 고조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대체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비열하기도 하고 속고 속이는 등 의리도 없는데다 폭력을 휘두르고 칼질까지 난무해서 섬뜩할 때도 있지만 인물들의 배경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기 때문에 행동이 이해되기도 하고 정감이 간다. 그나저나 불쌍한 양지. ㅠㅠ 고자라니...


좀 두껍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 추천. 그런데 절판된 것 같으니 책을 구하기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제 류전윈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으니 작가를 잘 기억해 두고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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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강가에서 물에 빠졌을 때 손에 대나무 장대 하나만 있으면얼마든지 구해줄 수 있지만 바다 한가운데에서 고기를 잡다가 배가 파손되어 모두가 물에 빠졌을 때는 남에게 손을 내밀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일단 손을 내밀면 죽어도 그 손을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구하려 했다가는 자신도 함께 물에 빠져 죽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 P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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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의에 있는 이씨에게 쌀뜨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백육십 리길을 왔다 갔다 하고서 겨우 몇 원을 버는데, 저자들은 거저먹기로 저렇게 큰돈을 받고 있었다니, 저게 사람이 할 짓이야? 늑대나 다름없지. 사람 잡아먹는 늑대가 아니고 뭐겠어!" - P357

일단 남에게 빚을 지게 되면 호랑이 등에 타게 되는꼴이 되기 때문에 내리기가 힘든 법이었다. 그는 남들이 돈을 주겠다는 것 역시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것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 P395

큰일을 위해서는 담력이 작으면서도 작은 일을 위해서는 담력이 커지고, 남을 위해서는 담력이 작으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담력이 커진다는 것이 청면수 양지가 분석해낸 조리사 유약진의 본질이었다. - P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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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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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터졌다

모노의 아빠와 엄마는 게임광이다. 자연스럽게 모노도 어릴 때부터 게임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유럽을 무대로 기차여행을 하는 '헬로, 모노레일'이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 직원은 단 한 명, 고등학교 절친이자 단 하나 뿐인 친구인 고우창이다. '미스터 모노레일'은 의외로 엄청난 히트를 하면서 모노는 큰 돈을 벌었고 회사는 번창하고 직원도 많아졌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업무에 지친 모노는 여행 겸 새로운 사업구상을 위해 세 달 간 유럽여행을 계획한다. 회사의 업무는 고우창에게 맡기고 홀가분하게 도착한 유럽. 하지만 여행 9일 째 날, 지갑과 여권을 제외한 짐을 날치기 당한다. 그리고 그 순간 한국의 직원에게서 고우창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모노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노를 사모하는 우창의 동생 고우인에게 연락해 보지만 고우인도 오빠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슬슬 사건이 시작된다.


김중혁. 1971 ~ . 한국의 소설가.


세 번째 읽는 김중혁의 소설

그동안 김중혁의 소설은 두 권을 읽었다. 한 권은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라는 장편, 다음으로는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라는 단편집이다. 그런데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미스터 모노레일》마저 그저 그렇다면 김중혁과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소설가와 독자의 연을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앞서 읽었던 두 권에 비해서 《미스터 모노레일》은 훨씬 만족스럽게 읽었다.


고갑수는 '핀볼 성자'다. 핀볼 최고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드게임에서 볼교까지

책의 도입부는 모노(결국 끝까지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못 본 건가?)가 소설을 끌고 나간다. 보드게임을 개발해서 회사를 창립하고 순식간에 부자가 되고.. 사실 보드게임이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국내에서 몇 천개 팔기도 힘든 현실을 생각하면 꼭 만화같다. 마치 훌라후프를 발명해서 거부가 되는 주인공의 인생을 다룬 코미디 영화 <허드서커 대리인>과 비슷한 것 같은 초반 전개를 보여준다.


그런데 모노가 활약해야 부분에서 모노의 친구 아버지인 고갑수가 5억을 들고 유럽으로 튄 이후부터는 내용이 급변하면서 '조금' 만화같던 소설이 '굉장히' 만화같아진다. 고갑수는 움라우트가 붙은 발음이 있는 쾰른에서 발흥한 '볼교'의 신자였으며, 그냥 신도도 아닌 무려 '핀볼 성자'였다. 고갑수가 핀볼 성자인 이유는 핀볼 점수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5억을 들고 튄 이유는 볼교의 교주나 다름없는 '유니볼 성자'를 독대하기 위해서이다.


볼교라고 해서 (처음엔 나도 등장인물들처럼 불교라고 읽었다) 웃고 넘길 수만 없는 것이 나름 네 개의 계급(교주, 행정계급, 성자, 신도)를 갖추고 있고, 예언서 뿐만 아니라 본부와 성지까지 있는 어엿한 단체이다. 게다가 런던아이 지하에는 꼭같은 모양의 비밀 런던아이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 웃기다. 모든 동그란 것에 거룩함을 부여하고 광신에 빠지는 것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맹목적인 믿음에 빠진 광신도들을 풍자하고 있다.


소설의 결말은 런던 아이에서 벌어진다. 런던아이는 영국 템즈 강변에 있는 대관람차다. 당연히 강바닥에 쌍동이 런던아이 따위는 없다.


실화인 척 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뻔뻔함

몰입도가 좋은 소설을 읽으면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 듯 착각하면서 온통 감정이입을 해서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고 나면 감정이 격동되고 마지막에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몰입도가 뛰어난 소설들이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미스터 모노레일》은 다르다. 몰입도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주인공이 성공하는 소재가 보드게임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된다. 아마도 다섯 명의 고우창 추격자들이 유럽에서 쫒는 모습을 연결지으려 한 것 같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인물들을 보드게임의 말처럼 설명하는 것도 나오고 의도하지 않았던 곳으로 (마치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한 것처럼) 이동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볼교'. 종교라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정상적인 종교라고는 할 수 없다. 좋게 봐줘야 사이비 종교이고, 그냥 종교를 흉내낸 장치일 뿐이다. 기독교라든지 불교라든지 독자가 알고 있는 어떤 종교를 붙여 놓았다면 훨씬 몰입도가 강했겠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게 아닌 것 같다. 종교의 형태와 구성을 모두 갖춘 것 같지만 볼교가 뭐야, 볼교가.. 이건 '날으는 스파게티교'만큼이나 터무니없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전개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독자는 소설에 몰입한다기 보다는 약간 한 발 떨어져서 사건들을 지켜보게 된다.


날으는 스파게티 종교는 기존 종교를 조롱하기 위해서 만든 가상의 종교이지만 나름대로 교리도 있고 신자도 있다.


하지만 김중혁은 마치 볼교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글을 쓴다. 온갖 조직을 설정해 놓고 성자는 '핀볼 성자', '유니볼 성자' 등 뭐든 둥글기만 하면 성자라고 이름을 붙여줄 기세다. 그런데 이 만화같은 설정의 종교에 임하는 인물들의 자세가 사뭇 비장하다. 핀볼 성자는 교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결국 순교한다. 의외로 권력과 재물을 이용하여 사회를 움직이기도 하고 폭력배까지 동원된다. 만화적 설정과 그 설정 안에서 심각하게 움직이는 인물들. 이 사이의 괴리 때문에 독자는 어처구니없는 헛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런데 김중혁은 이 실화라고 우기는 설정을 뻔뻔하게 밀어 붙인다. 심지어는 '크리스티나 보네티로'라는 인물이라든가 볼교의 핵심 교리를 각주로 달아놓기까지 한다. 나도 멍청한 것이 각주에 속아 실제 그런 사람이 있는지 알고 검색해 봤다. 솜씨좋다.


★★★★☆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은 것이 참 다행이다. 만약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지 않았으면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솜씨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 같다. 다른 작품을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농담같은 비장함이 깃든 소설이 김중혁의 장기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대표작이 뭔지 확인해서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읽기도 어렵지 않고 중간중간 헛웃음짓게 하는 부분도 많은데 쓸데없이 비장하기도 한 질서있게 뒤엉킨 소설이다.


재미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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