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알고 싶었다. 아내가 언제 이런 마법을 부렸는지. 자신이눈멀고, 귀가 닫히고, 입이 막힌 상태로 장례식장에 처박혀 있던지난 며칠 중 어느 날에? 경찰서에 불려가 횡설수설을 거듭하고있을 때? 노아가 부검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던 그 막막한 시간에? - P235

왜 안 되는지, 그녀는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유나는 자신의 결정을 타의에 의해 바꾸지 않는다. 아니, 타의 자체를 불쾌해했다. - P323

때늦은 질문 하나가 그녀의 머리에 떠올랐다. 자신이 예감하고있는 어떤 일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리하여 유나를 잃게 된다면, 지유는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1 대답은 아니다‘ 였다. 그녀가 판단하기로 유나는 단순한 엄마가아니었다. 아이의 영혼을 지배하는 절대자였다. 유일무이한 세계였다. 유나를 잃는다는 건 모든 걸 잃는다는 의미였다. 자신은 바로 그런 일을 하려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서 유나를 빼앗는 일, 아이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일. - P327

유나는 삶의 매 순간에 몰입하는 여자였다. 그 바람에 감정적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았다. ‘이리 와‘와 ‘저리 가 사이를 무시로 오갔다. ‘이리 와‘ 시간에는 천사였고, 저리 가‘ 시간에는 미친 여자였다. - P354

짐작대로 지유는 아내에게 길이 든 아이였다. 다만 의외다 싶은것이 하나 있었다. 복종의 밑바닥에 도사린 저항감이었다. 은밀하지만 분명하게 감지되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어떤 일에 한정하는저항도 아니었다. 다분히 기질적인 것이었다. ‘엄마 말이 옳아‘ 하면 ‘네‘ 하고 돌아서서 ‘아니 내가 옳아‘ 하는 유의 저항. 예민한 아내가 그걸 포착하지 못할 리 없었다. - P457

이제 행복해?
아내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 - P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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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저절로 이뤄지는 듯한 때가 있다. 하늘이 자신을 위해 큰 그림을 그려주는 것 같은 때. 그때가 바로 그때였다. 그는온 우주가 보내는 호의적인 기운을 느꼈다. 운명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신을 돕고 있는 것 같았다. - P90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불시에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해올줄은 몰랐다. 사실을 말하자면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한이 없었다. 고민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는 머뭇대다.
대답했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 P112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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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리 먹이를 잘 만든다. 지유는 만드는 법을 잘 안다. - P9

엄마는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었다. 규칙을 어기면 벌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엄마에겐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용서를 빈다고 용서해준 적도 없었다. 지유는 가차 없이 벌을 받아야 했다.
고아가 되는 벌이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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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떠났다. 우리를 물속에 버려두고, 그들은우리를 커다란 비눗방울 같은 막에 넣고 바다에 던졌다. 우리는 투명한 막 속에서 몸부림치다 정신을 잃었다. 우리가 물 위로 떠오른 것은 그들이 대기권을완전히 벗어난 후였다. - P133

죽은 달의 바다. 탐라성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 조각의 띠다. 아니 띠라기보다는 껍질에 가깝다. 적도와 극지를 가리지 않고 제각각의 궤도로 탐라성을 돌던 수많은 위성은 이제 모두 충돌해 부서지고 크고작은 파편들만 남아 탐라성 주변의 우주를 맴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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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은."징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과 다르다고?" 유안이 대꾸했다.
"내가 상상했던 불멸의 존재들은… 뭐, 이들도 늙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네." - P36

새해는 텅 빈 거리에 서서 그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궁금해했다. 과거에 그들은 문과 창문을 꽉잠근 튼튼한 집 안에 있었지만 이제 모든 문이 활짝열려 있었다. 새해는 조금 짜증이 났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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