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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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믿고 간다.. 다나카 요시키..

​아주 어릴적부터 SF소설을 정말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추리소설과 SF소설을 읽기 시작해서 당시 학교 도서관에 있던 거의 모든 추리소설하고 SF소설을 섭렵하고 중학교 때 김용의 무협소설에 빠지기 전까지 엄청나게 읽어 댔으니 아마도 내 독서의 시작은 추리소설과 SF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SF소설 작가 중에 최고로 치는 작가는 아이작 아시모프이다. '로봇공학의 3원칙'을 중심으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 인간형 로봇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 '로봇'시리즈와 '심리역사학'을 창시한 해리 셀던을 중심으로 해서 장대한 미래의 인류를 다루다가 마지막에는 '로봇'시리즈와 연결해 버리는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정말 멋진 작품들이다.

또 하나의 걸작으로 꼽는 SF소설은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이다. 아시모프의 소설이 장대한 흐름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살펴 본다면 '은하영웅전설'은 미래 역사를 영웅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치, 문화, 역사를 엮어내는 것이 마치 삼국지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한 번 손에 잡으면 10권을 단번에 독파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흡입력도 좋아서 매니아층도 굉장히 두꺼운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다른 판타지 작품 '창룡전'은 조금 읽다가 ​손에서 놔 버렸고 그 외의 작품들은 읽지를 않다가 우연히 다나카 요시키의 한권짜리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읽기 시작했다.

​<이게 일곱도시의 지도다. 잘 보면 북극부터 북미, 남미, 남극까지를 가로로 돌려 놓고 약간 변형한 지도다.>

인류의 환경을 제한하는 특이한 설정​과 개성넘치는 인물들..

​처음은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을 동원한 환경 설정부터 시작한다. 달에 인류가 진출하여 거주하기 시작한 얼마 후 2088년에 지구의 북극점이 태평양 동북부로 이동하는 대전도에 의해서 지구는 온갖 재해에 휩싸이고 거의 모든 인류가 멸망한 후에 달에 살던 사람들이 지구에 남아 있는 인류를 모아 7개의 도시국가를 새로 만든다. 이 때 지구인들이 비행을 하지 못하도록 지상 500미터 이상으로 비행하는 물체는 모두 쏘아 떨어뜨리는 '올림포스 시스템'을 만들고 지구인들은 지상에 묶여 살게 된다. 하지만 얼마 후 운석의 바이러스에 의하여 달의 인류는 사라져 버렸지만 올림포스 시스템만큼은 자체 에너지 공급원으로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나 지구의 인구수가 5,000만명정도 되는 2190년부터 이 소설은 시작한다.

은하영웅전설처럼 이 책도 7개 도시의 전쟁과 정치를 다루고 있으며 그 와중에 영웅적인 인물들이 나와서 어떻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어리석은 위정자들과 지휘관들이 ​어떻게 국민들과 군인들을 도탄에 빠뜨리는지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수사는 여전히 화려하고 냉소하는 듯한 말투도 변함이 없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다나카 요시키의 수​사는 정말 화려하다. 각 인물들에 대해서 적절한 별명을 붙여 준다든지 어떤 상황을 설명할 때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여전하다. 이런 점은 다나카 요시키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멋진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불신하는 영웅적인 군사지도자들이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그런 공화주의적인 민주주의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서도 따르는 모습 역시 은하영웅전설의 '얀 웬리'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아마도 다나카 요시키는 공화주의의 시스템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작은 은하영웅전설.. 하지만 매력은 떨어진다..

너무나도 닮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쩐지 은하영웅전설의 프리퀄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일단 첫 전쟁인 북극해 전쟁에서 두 사람의 영웅이 나와 서로 이기지도 지지도 않으면서 각 도시의 영웅이 되는 모습은 은하영웅전설에서 얀 웬리와 라인하르트가 그랬던 것과 똑같다. 게다가 위에서 적은 것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그러면서​도 따르는 군사지도자들,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본국에서 편하게 있으면서 군인들을 사지로 모는 무능한 정치인들, 스토리는 분명히 별개인데 은하영웅전설과 너무 닮아 있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일단 소설이 너무 짧다. 다섯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결국 다섯개의 전쟁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치기 때문에 장대함에서 너무 부족하고 인물들의 개성을 너무 꼬아 놔서 매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게다가 소설을 쓰다가 중지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짧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전쟁의 진행상황도 간단하게 처리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전쟁의 모습을 좀더 현실적으로 그리기 위해서 공중전을 제한하고 육지와 바다에서만 전쟁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한정한 설정자체는 참 대담한 발상이었지만 결국은 그것 때문에 발목이 잡혀서 전술적인 재미를 주지 못한다.

아마도 다나카 요시키는 3개의 국가를 벗어나 7개의 도시로 얽혀 있는 훨씬 장대한 대서사시를 그리려다가 포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공만 했으면 훨씬 멋진 작품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아이디어가 결국은 딸렸거나 작품을 쓰다 보니 은하영웅전설을 자기모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게 아닌가 싶다.

은하영웅전설 팬이라면 한 번 읽어 볼만은 하다.

은하영웅전설을 좋아했던 팬이라면 그냥 한 번 읽어 볼만은 하다. 워낙 필력이 좋은 작가이기 때문에 책 자체는 지루함은 없이 쉽게 넘어간다. ​한 권 읽는데 4시간 정도 걸렸으니 많은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니다. 그외에도 SF에 관심이 있으면 쉽게 읽어넘길 수 있으니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SF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책 이외에 읽을만한 SF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사실상 SF라기 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지구판 버전에 가깝다. (사실 은하영웅전설도 SF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기는 하다.)

SF 광팬에게는 추천.. 그외에는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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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 경제학 고전에 공동체의 행복을 묻다
조형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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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의해 망가져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다른 관점에서의 경제학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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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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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읽지 않고 책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지..

이 책에 대해서는 정말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고 제목만 보고 책을 구매를 했다. 읽어야 할 책은 너무나 많고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많고 어쩌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읽지 않은 책에 관한 내용이 주제에 오르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지적 열등감을 많이 느끼는 나로서는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정말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읽은것처럼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지적인 허세는 더욱 심해지겠지만, 궁금했다. 어떻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하고 말을 할 수 있는지..

​게다가 대충 목차를 봐도 딱 기분좋게 구성이 되어 있다. 책을 전혀 읽지 않거나, 대충 훑어 보거나, 그냥 들어서 알거나, 읽었지만 잊은 경우를 구분해 놓고 그런 책들에 대해서 얘기해야만 하는 경우를 제시하고 대처하는 방법까지 늘어 놓았으니 뭔가 가려움을 긁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가 평문을 써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 오스카 와일드 -

 

생각은 했지만 말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뻔뻔하게 드러내다..

일단 책 처음에 나오는 약호표도 재미있다. Op.cit.나 Ibid.​​같은 약호는 논문이나 책에서 많이 사용하는 거지만 저자는 읽지 않은 책은 UB로, 대충 뒤적거린 책은 SB로,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책은 HB로, 읽었지만 잊은 책은 FB로 약호를 정해 놓고 책 전반에 대해 책에 대해서 인용을 할 일이 있으면 이 약호들을 사용한다. 이 책 자체에서 자신이 읽지 않았으면서 인용하고 있는 책들에 대해 거리낌없이 밝히고 있다. (게다가 제대로 읽은 책은 거의 없다. 문학평론가인데 말이지..) 책 자체가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책에서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는 것이다.

모두 12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챕터마다 그 챕터에 적절한 책이나 상황, 영화같은 하나의 텍스트를 예시하면서 ​설명을 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쉽게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좀 이해하기 난감한 경우도 있고 저자 역시 그 책들을 완전히 정독은 한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니 우습기도 하다.

​책 자체보다는 책의 맥락과 개인의 창조성을 강조한다..

저자의 논지에 따르면 어차피 책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책이라는 것은 주변의 상황에 의해 규정되게 마련이고 결국은 그 규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주변 상황에 따라 대충 아무렇게나 지껼여도 (이때 필수적인 것이 두루뭉실하게 포장하는 것이다) 대충 들어 맞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책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히 사회적인 권위가 있는 사람이)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지껄인다면 그 의견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든 반어로 받아들여지든 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론적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결국 책을 읽고 그 책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내어주고 책의 보편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의 창조성이 희생이 되므로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끝까지 헷갈리다..

​이 책은 정말 그럴듯한 논지를 가지고 책을 읽지 않고도 떠들 수 있는 여러 방법과 상황과 태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 도대체가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진심인지 아니면 저자의 반어적인 독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끝까지 읽은 후에는 그게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지금도 조금은 의심하는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읽지 않은 책'이라는 것은 사실상 평론의 대상이 되는 문학에 대해서 얘기한 것이지 지식을 쌓는데 필요한 책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긴, 어차피 문학이라는 것이 되는대로 지껄이면 그게 평론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긍이 가기는 한다. 예전에 문학에 관한 리포트를 쓸 때를 생각하면 대충 세부적인 사항은 얼버무리고 특이한 관점 하나만 ​잘 포장하면 좋은 리포트가 되었던 걸 생각해 보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함정은 있다..

책을 읽지 않고 책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건 이 책을 읽으면 잘 알 수는 있지만 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은 이미 많은 독서량으로 인해서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책 한권한권을 대충 읽고 떠드는 것은 그 전에 수많은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않기 때문이다. 평생 소설이라고는 하나도 읽지 않았던 사람이 어떻게 햄릿에 대해서 읽지 않고 들은 얘기만 가지고 평가를 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사실 이 책은 책 자체에 모순을 가지고 있다. 저자도 딱히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런 사실을 감추려고 하지는 않는다.

즉, '이미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창조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게 이 책의 대체적인 내용이다.​

책 자체의 모순.. 하지만 재미는 있다..

그리고 책 제목 자체가 일단 모순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말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다니.. 이건 단식기도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는 어떤 목사의 얘기하고 마찬가지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미있다. 예시하고 있는 많은 상황들도 재미있고, 읽다 보면 지식인의 허세를 어떻게 역이용하는지도 나와 있기 때문에 슬슬 웃음을 지으면서 읽을 수도 있다. 책 내용 자체도 크게 어렵지 않아서 책장도 쉽게 넘어 간다.

독서의 반대 개념을 읽지 않음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규정을 한 것이 아니라 비독서라는 적극적인 읽지 않는 표현으로 바꾼 것도 참 재미있다.

독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읽을만하다.

그리고 난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했다.

뭔가 좀 억울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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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사건들 - 현재의 소설 : 메모, 일기 그리고 사진
롤랑 바르트 지음, 임희근 옮김, 박상우 해설 / 포토넷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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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징그러운 이름.. 롤랑 바르트..

정말 오랜만에 롤랑 바르트의 책을 손에 쥐었다. 책을 어느 정도 읽기 시작한 때부터 신화와 원형, 기호에 관심이 많았었던 나에게는 롤랑 바르트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롤랑 바르트의 책도 학교 다닐 때는 꽤 읽고 지금도 몇권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구조주의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다. 사실, 이제는 문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를 계속한 것도 아니니 롤랑 바르트를 알 필요도 사실은 거의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손에 쥐게 된 롤랑 바르트의 책. 그냥 이름만 봐도 일단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또 뭘 분석하고 있는 걸까?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생각보다는 깐깐하게 생기지 않고 미남이다>

전혀 어렵지 않은 롤랑 바르트의 책이 반갑다..

이름만 듣고 식겁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절대 어려운 책은 아니다.

책의 소제목을 보면..

1. 남서부의 빛

2. 소소한 사건들

3. 팔라스 클럽에서, 오늘 저녁...

4. 파리의 저녁들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저 작가의 일상을 적은 글일 뿐이다. 그것도 상당히 건조하게 글을 적어 나가고 있고 어려운 내용도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읽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크게 긴장하고 책을 집어 들었던 것에 비하면 이건 뭐 그냥 편안한 느낌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뭘까?

이 책은 분류상 에세이로 분류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읽으면서도 에세이라는 분류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에세이인가? 일단 아무렇게나 펼쳐서 눈에 들어온 페이지 하나를 보면..

"하얀 젤라바를 전신에 둘러 쓴 흑인이 그 옷 때문에

어찌나 까맣게 보이던지 나는 그의 얼굴이 웬 여자가

뒤집어쓴 까만 베일인 줄만 알았다."​ (p.124)

​뭐. 이런 식의 글이다 1장, 3장, 4장은 나름 길게 쓴 글인데 반해 2장은 약 120여 페이지에 걸쳐 이런 식의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짧은 글이 계속 이어진다.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소소한 사건들'이므로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은 아마도 2장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처음 읽을 때는 도대체 뭔가 싶다.

​그리고 해설을 읽고 나서는 이 책이 정말 에세이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복잡한 얘기는 걷어 치우고 롤랑 바르트는 '현재적 관점에서의 글쓰기를 통한 소설 창작'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결국 내 생각에는 이 책에 써 있는 글들이 일종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되살려 쓰는 글은 왜곡이 되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보이는대로 적은 것을 소설로 생각한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면 소설하고 에세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으니..

스냅사진과 하이쿠..​

그리고 이 책의 2장은 한편한편이 상당히 짧은데 모두들 어떤 풍경을 스냅사진 찍듯이 표현했다. 모든 글들이 결국은 하나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약에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면 빈 여백에 그 풍경을 하나씩 그려가면서 책을 읽으면 그것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는 일본의 5.7.5조의 전통 정형시인 하이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알파벳을 모아서 하나의 음절이 만들어지는 프랑스어를 가지고선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음절을 이루는 일본의 시의 표현 방식을 따를 수 없을테니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난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추천? 비추천?

이거 참 애매한 문제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온갖 상상을 하면서 장면도 상상하고 롤랑 바르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읽었는데, 전체적인 일관적인 스토리는 없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불호가 굉장히 크게 갈릴만한 책인 것 같다.

일단 롤랑 바르트라는 위대한 석학이 이론적인 면을 쏙 빼고 글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의 책 한 권 정도는 읽었다고 허세 떨고 싶은 사람(개인적으로는 책이나 음악을 들은 후에 허세를 떠는 것도 선택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 편하게 읽고 롤랑 바르트라는 사람의 책을 읽었다고 하기 좋다.

하지만 뭔가 스토리가 있는 글이나 재미있는 글을 읽고 싶은 사람은 불만스러울테니 안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래전 읽었던 롤랑 바르트의 책을 부담감없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롤랑 바르트에 관한 짧은 논문을 다시 읽어 볼 기회도 됐고.. 개인적으로는 중간중간에 글의 내용과 분위기가 비슷한 사진이나 삽화가 들​어가면 참 좋았을 것 같지만 그랬다가는 롤랑 바르트 선생님께서 자신의 글을 왜곡했다고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 같으니..

편하게 손에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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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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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드디어 손에 잡은 넬레 노이하우스..

일단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 놓고 본다. 사놓고서 ​수십년동안 안 읽는 책도 물론 있고, 사자마자 바로 보는 책도 있다. 이 책의 발매일을 보니 2011년 2월이다. 아마도 산지는 꽤 됐을 것 같은데, 일단 책 두께가 꽤 돼서 손에 잘 잡히질 않았다. 그러다 출장오면서 들고 와서 저녁마다 틈틈히 읽어서 드디어 클리어~, 한참동안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였고 큰 서점이고 인터넷 서점에 가면 항상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

넬레 노이하우스가 누군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책을 읽을 때 보통 배경지식을 가지지 않고 그저 읽는 편이기 때문에 이름이 영국사람은 아니고 어디 독일계통 사람이라는 건 알 것 같았지만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여자인지도 몰랐다.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 그리고는 계속해서 발간되는 시리즈.

누명을 쓰고 10년을 복역한 억울한 죄수가 집으로 돌아오다..

소설의 시작은 비슷한 종류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뭔가 음침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바로 주인공인 토비아스 자토리우스가 교도소에서 석방되고 집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여자친구였던 두 명의 여자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10년형을 받았지만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었던 토비아스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마을에서 자신의 집은 살인자의 집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고립되어 살고 있고 부모님은 이혼하고 아버지는 마을의 유지인 클라우디우스 테를린덴의 도움으로 근근히 살고 있다.

그 시점에서 올리버 폰 본덴슈타인이라는 형사반장과 피아 키르히호프라는 형사는 폐쇄된 비행장에서 발견된 시체와 연관된 사건을 맡게 되고 이 시체가 토비아스가 죽였다고 여겨지던 로라 바그너의 시체로 밝혀 지면서 알텐하인으로 향하게 되고 11년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된다.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물..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하 '백설공주')은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이라는 형사반장과 피아 키르히호프라는 여자 형사가 살인사건을 추적하고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처음 책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이 책이 '댄 브라운'의 소설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미스터리한 프롤로그.. 중요한 장면에서 흐름을 끊고 짧게 여러장면을 교차시키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극대화시키는 기법, 추리소설에서 많이 사용하는 뭔가가 일어나는 장면을 묘사하기는 하지만 누군지 밝혀 주지는 않는 기법 등이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는 이 작가는 분명히 댄 브라운의 소설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확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댄 브라운의 소설처럼 이 소설도 일종의 영화 시나리오처럼 보이는 것이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책을 쓴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재미는 있지만.. 너무 전형적이고 엉성하다..

책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다. 맨 처음에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기억하기가 힘들어 메모지에 인물관계도를 적어가면서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나오면 메모지를 살펴보며 읽느라 힘은 좀 들었지만 (나중에 왜 그렇게 인물들이 많은지도 알게 되고..​) 쉽게 슥슥 넘어간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책의 구성자체가 미스터리물에 적합하기 때문에 궁금증 유발도 되고 흥미진진하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렇게 끊어서 구성하는 소설이 이제는 좀 짜증난다. 호흡이 너무 짧고 흐름이 뚝뚝 끊어지다 보니까 집중이 되는듯하면서도 한권의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꽁트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미스터리라고 하기에 좀 아쉬운 부분은 너무 자백에 의해서 사건들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수사가 원래 그런거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중요한 사실들은 형사들이 알아내거나 주인공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범인들의 자백에 의해서 밝혀지기 때문에 뭔가 좀 어설프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이 소설은 미스터리물은 될 수 있지만 추리물은 될 수 없는 책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종류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 느끼게 되는 직감적인 범인에 대한 윤곽이 거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얘측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극적인 반전이라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마지막 한 방도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책을 다 읽고 알게 된 사실..

책을 읽다 보면 분명히 주인공은 토비아스 자토리우스인데 주요 줄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형사인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과 피아 키르히호프의 주변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데다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의미도 없어 보이는 형사과의 자세한 내용이 자꾸 나오길래 도대체 왜 이렇게 번잡한가 짜증을 내면서 책을 읽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책이 보덴슈타인/피아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타우누스라고 하는 시리즈 소설의 4번째 책이었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인물들은 아마도 앞의 3권에서 캐릭터 설명이 다 되어 있는 인물들인 것 같다. 댄 브라운이 존 랭던이라는 기호학 교수를 주인공으로 삼아 기호와 역사를 무대로 벌어지는 시리즈 소설을 만들어 냈듯이 넬레 노이하우스는 보덴슈타인/피아 형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강력계를 무대로 하는 시리즈 소설을 만들어 냈다. 이러니 점점 더 영화화를 염두에 뒀다는 의심이 벗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넬레 노이하우스가 소세지 공장을 운영하는 20세 연상의 남편과 살면서 40대에 이런 소설을 펴냈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다. 40이 넘어서 첫 책을 출간하는 사람들 참 좋아한다. 그리고 확실히 여성작가의 스릴러라서 그런지 사람사이의 감정에 대한 심리묘사는 뛰어난 데가 있어 보인다. 스릴러 자체도 나쁘지 않지만 바람난 부인에 대한 보덴슈타인의 고민을 묘사한 장면은 꽤 치밀하고 좋았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피할 수 없는 책..

어지간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고민이 되는 것이 처음에 나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헷갈린다. 그런 면에서 보면 넬레 노이하우스의 앞의 책들을 '사랑받지 못한 여자'부터 차례차례 읽으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내가 읽지 않은 앞의 세권의 책이 재미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 앞의 책부터 읽으라고 권하지는 못하겠다.

일단 이 책을 읽으려면 메모지 하나를 책에 끼워 두고 펜 하나 들고 나오는 사람들 이름을 '형사과', '마을 사람들', '보덴슈타인 주변인물', '피아 주변인물' 정도로 구분해서 인물관계도를 적어 가면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독일식의 이름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머리에 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읽으면서 좀 고생을 했다.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특히 댄 브라운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읽을만할 것이다. 하지만 머리 복잡한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책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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