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리바이어던 - 협력은 어떻게 이기심을 이기는가
요차이 벤클러 지음, 이현주 옮김 / 반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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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통첩게임

어떤 심리학자(경제학자라고 해도 좋다)가 두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편의상 현주와 민수라고 하자. 둘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실험을 하는 동안 서로 마주치지도 않는다. 심리학자가 현주에게 10만원을 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민수에게 네가 주고 싶은 금액을 제안해 봐. 민수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제안한 돈은 민수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현주씨가 가지는 거야. 하지만 민수 씨가 제안을 거절하면 두사람 다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얼마를 제안할 거야?'


이 게임의 룰은 명확하다. 민수가 받을만한 제안을 현주가 하면 둘 다 돈을 가져갈 수 있다. 현주는 얼마를 제안하는게 좋을까? 5만원? 하지만 민수는 현주가 얼마를 제안해도 돈을 가져갈 수 있으니 이익이다. 5만원은 절반이니 너무 많다. 4만원도 많아 보인다. 이렇게 생각해 나가다 보면 이론상 현주가 천원만 제안해도 민수는 돈을 가져갈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이익이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성적이다. 그런데 정말 현주가 민수에게 천원을 제안하면 어떻게 될까? 나라면 어떨까? 아마도 십중팔구 현주는 누군지 모르는 제안자를 욕하면서 거절할 것 같고, 둘다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할 것 같다. 만원이면? 이것도 마찬가지. 나에게는 겨우 만원 던져주고 너는 9만원을 가져가겠다고? 만원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네가 돈을 가져가게 할 수는 없지.


민수의 이런 행동은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다.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민수가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은 이성이나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다. 천원만 받아도 민수는 이익이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같은 상황에 닥쳤을 때, 상대방을 욕하면서 거부할 것이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이것은 상당히 감정적인 문제이고 공평함에 대한 문제이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 소개하는 이 실험은 최후통첩게임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행동심리학(또는 행동경제학) 실험이며, 인간이 반드시 경제적인 이익만을 생각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실험 중에 하나다. 과연 인간은 이익(또는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 이상의 행동규범(협력)이 있을까?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이 문제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요차이 벤클러 Yochai Benkler 1964 ~ .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버크먼 센터 교수.

 


리바이어던, 보이지 않는 손, 펭귄

리바이어던은 성서의 욥기에 나오는 바닷속 괴물인 레비아탄의 영어식 발음이다. 토마스 홉스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규정했고, 이기적인 인간을 자연상태로 방치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즉 끝도 없는 혼란한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혼란을 막기 위해서 사회의 구성원이 계약하여 권력을 만들어 냈고, 이 권력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간의 이기심을 처벌하고 통제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이 권력을 비유한 말이 리바이어던이고, 가장 강력한 형태를 한 리바이어던은 국가이다. 홉스는 이기적인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력을 지닌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 역시 인간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홉스와는 좀 달랐다. 이기적인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판단을 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모든 사람이 이익을 위해 선택을 하면 결국 그 이익이 부딪히는 곳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를 볼 수밖에 없고,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조정과정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국가는 시장이 돌아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면서 간섭을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케인즈가 나오기 전까지 경제학의 모든 것이었던 '고전경제학'의 기본 철학이다.


리눅스는 간단하게 말하면 리누스 토발스라는 대학생이 만든 오픈소스 컴퓨터 운영체제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기여자들이 보상없이 프로그램 개발에 기여해서 현재는 세계 컴퓨터, 스마트폰의 절대 다수가 리눅스 기반의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발전한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다. 인간이 순전히 이기적이라고만 한다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리눅스의 상징이 책 제목에 있는 펭귄이다. 리눅스외에도 이기심보다는 협력에 의지하는 시스템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브리태니커의 영광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백과사전 자리를 차지한 위키피디아이다. 과연 인간은 이기적인 경향이 더 강할까, 협력적인 경향이 더 강할까?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던 1900년대 말까지 이기적이었다가 세기말을 지나 21세기가 되면서 협력적이 되었을까?

 

토마스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의 표지.


이기적인 인간이 협력하는 이유

저자인 요차이 벤클러는 인간이 이기적임에도 불구하고 협력이 발생하는 이유를 여러가지 연구성과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성장하면서 도덕성과 가치에 욕구가 강해지면서 협력하는 경향성이 강해진다고 한다. 더불어 상황이 어떻게 제시되는지에 따라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변하는 프레임 효과에 의해서 협력이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평판이나 인맥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반드시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협력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에게는 공감하는 능력이 있고 다른 사람과 연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감과 연대감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커뮤니케이션을 들고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면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결국 이기적인 마음을 누르고 손해를 보더라도 협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는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할만한 수많은 실험이 예시되어 있다.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 ~ 1790.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고전경제학의 아버지.

 


수많은 연구성과의 종합판, 그리고 리눅스와 위키피디아

《펭귄과 리바이어던》에는 저자인 요차이 벤클러가 수행한 실험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다른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유명한 실험과 책을 많이 인용했는데, 그동안 내가 읽었던 관련 서적들의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펭귄과 리바이어던》에는 위에서 설명한 최후통첩이론이라든지 공공재 게임, 신뢰게임 등 심리학과 경제학에 걸쳐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연구성과를 책 한 권으로 볼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책의 앞머리에는 협력이 창발하는 원인을 밝힌 유명한 책, 《협력의 진화》와 연관된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협력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두 책의 관점이 좀 다르다. 《협력의 진화》가 연속적인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자연적으로 협력이 창발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면,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인간의 본성에 협력이 창발할 수밖에 없는 씨앗이 있다고 설명한다.


요차이 벤클러가 협력의 결정체로서 가장 많이 예로 든 것이 위키피디아와 리눅스이다. 리눅스는 책의 제목에 상징물인 펭귄을 내세울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은데, 위키피디아는 오히려 리눅스보다도 더 많은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을 하고 있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브리태니커(우리 집에도 떡하니 한 질을 마련해 두고 자주 보고 있다) 사전의 명성을 불과 십수년만에 넘어서 버린 위키피디아는 수많은 사람의 기여로 만들어지고 있다. 저자는 우선 아무런 이익도 없이 기여하는 기여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내부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룰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라도 본문을 고칠 수 있지만 표제어 하나의 내용을 고치기 위해서는 제안을 하고 반론을 받고 토론을 하는 가운데 합의점을 찾아 내용이 수정되기도 한다. 물론 반달리즘이 없지는 않겠지만 협력의 큰 틀에서 봤을 때,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리누스 토르발스 Linus Benedict Torvalds 1969 ~ . 핀란드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리눅스 개발자.

 


★★★★☆

모든 구성원이 가장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때, 사회가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오래된 경제이론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폐기되었다. 인간의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를 기본적인 성격으로 규정하지 않고 이기적인 모습만을 본성으로 상정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이기적인 본성 외에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를 새로운 구성요소로 본다면 인간행동의 함수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워 지고 수학적인 그래프만으로 경제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해 질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이론에 문제가 있다면 복잡하더라도 새로운 (사실 이제는 그다지 새롭지도 않은..) 경제학 또는 사회학이 더 널리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위키피디아. 2001년 1월 15일에 탄생한 온라인 백과사전. 2018년 현재 약 4,500만개의 표제어(모든 언어)를 담고 있다.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사회는 몇 사람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네트워크의 발달 덕분에 집단지성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집단지성은 결국 이기심보다는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로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그런 면에서 그동안의 수많은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결론을 내려 놓은 결정판같은 책이다. 행동경제학, 협력의 창발에 관련된 책을 모두 읽는 것이 물론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부족하다면 이 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기본적인 개념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번역이 잘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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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을 넘어서 - 수학의 우주, 그 경계를 찾아 떠나는 모험
유지니아 쳉 지음, 김성훈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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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 dem Paradies, das Cantor uns geschaffen, soll uns niemand vertreiben können.
No one shall expel us from the Paradise that Cantor has created.
아무도 우리를 칸토어가 만들어낸 낙원에서 쫓아낼수 없다.
- David Hilbert 다비트 힐베르트 -


불가사의한 무한

숫자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유치원 때부터 1, 2, 3, 4를 배우기 시작하고 초등학교에서는 사칙연산을 배운다. 소수를 배우고 분수를 배울 때까지는 그나마 할 만하다. 하지만 무리수가 등장하고 드디어 허수까지 등장하면 이게 정말 숫자인가 싶다. 어떻게든 이해한 척하고 넘어가지만 마지막으로 도대체 수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끝판왕 '무한'이 등장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공부할 때, 삼각함수에서 일차로 공격을 받고 미적분에 들어가면 치명타를 입은 후에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가 되기 마련이다. 삼각함수나 미적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관련 전공을 하지 않는다면 그다지 입에 올릴 일은 없지만 '무한'이라는 말은 평생을 입에 달고 다닌다. 하지만 정작 무한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무한은 숫자일까? 아니면 한없이 커지는 상태일까? 밤하늘에 별이 무한하게 많고, 바다의 모래가 무한하다고 일상적으로 얘기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아무리 많아도 그 숫자는 '유한'하고 누구든지 별이나 모래알의 갯수보다 더 큰 숫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갯수를 알면 1만 더해도 되고, 갯수를 몰라도 어떤 자연수(제발 1은 고르지 말기를..)든 하나를 골라 계속해서 제곱해 나가면 언젠가는 넘어선다. 끝이 없이 큰 수, 도대체 '무한'이 무엇일까?


《무한을 넘어서》는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무한을 설명하는 책이다.

 

유지니아 쳉 Eugenia Cheng, 영국 햄프셔에서 태어났다. 셰필드 대학교 순수수학과 명예 선임연구원이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스쿨 과학자.


힐베르트의 호텔을 이용한 무한 설명

《무한을 넘어서》는 무한의 정체를 파헤쳐 나가는 책이다. '무한'이라는 개념은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표현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저자는 이해하기 힘든 무한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힐베르트의 무한호텔'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무한 개의 객실이 있는 호텔이 있어서 모든 객실에 손님이 가득차 있을 때, 1명의 손님이 오면 그 손님을 숙박시킬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무한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답은 모든 객실의 손님이 자기 방의 숫자에 1을 더한 숫자의 객실로 가고 새로 온 손님은 1번 방에 들어가면 된다.)


호텔에 오는 손님들이 유한할 때와 무한한 손님이 왔을 때 객실에 모두 투숙할 수 있다는 것까지 보여 준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무한 대의 버스에 타고 온 무한 명의 손님에게 객실을 배정하는 것까지 사고를 확장시킨 후 멋지게 그 방법도 설명해 놓았다. 책에서는 모든 무한 손님을 차례로 세운 후에 대각선으로 차례대로 배정하는 방법을 썼는데, 찾아 보니 소수(prime number)의 제곱을 이용하여 배정하는 방법도 있었다. 심지어는 이렇게 하면 객실이 남는다!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힐베르트의 무한호텔'은 무한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정말 탁월하다.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 ~ 1943. 독일의 수학자)는 무한한 객실이 있는 호텔을 예로 들어 무한의 개념을 설명했다. 이것을 힐베르트의 호텔(Hilbert's Hotel)이라고 한다.


무한도 크기의 차이가 있다

이후 자연수로부터 시작해서 정수, 유리수의 무한한 성질을 설명하면서 각각의 전체 숫자로 이루어진 무한집합의 개체 수가 같다는 것을 증명하는 법을 설명하고 실수가 유리수보다 숫자가 많다는 것까지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을 통해 설명한다. 알레프 (ℵ, Aleph)수를 설명하고 자연수, 정수, 유리수의 집합인 알레프0보다 실수 집합인 알레프1의 개체 수가 많다는 것까지 설명을 읽고 나면, 여기까지가 딱 내가 알고 있던 무한이다.


이후 저자는 사고를 확장시켜서 알레프의 단계가 더 늘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유리수와 실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데 실수의 집합보다 더 큰 뮤한집합을 만드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무한의 크기의 종류도 무한함을 보여 준다. 그러니까 알레프 수도 알레프0과 알레프1 뿐만 아니라 알레프2, 알레프3... 계속해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무한의 단계가 알레프0과 알레프1만 알고 있는 줄 알고 있었고, 딱히 두 단계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첫번째 장의 내용인데, 이해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게오르크 칸토어 Georg Cantor (1845~1918) 러시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안 수학자. 집합론의 창시자이다. 무한 연구하고 성질을 밝혀내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고 성과를 냈으나 그가 밝힌 무한의 성질이 직관과는 너무 달라서 당시의 수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궁핍하게 살다가 불행하게 사망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수학자 중에 한 명이다.


무한, 그 이상을 다루는 두 번째 장

《무한을 넘어서》는 두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앞서 첫번째 장에서는 수학적인 의미에서 '무한'에 대해서 설명하고, 무한을 다루는데 필요한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독자들은 첫번째 장을 읽으면서 무한이라는 개념에 익숙해 질 수 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안 그래도 기묘한 무한을 '수론'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본다.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무한으로부터 가볍게 시작하는 듯 하더니 차원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무한의 개념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 넣어 놓으면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들의 해결책이 눈에 보인다. 무한을 생각하면 보통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한대'인데, 무한에는 '무한소'도 있다. 대표적인 무한소에 대한 문제로 아무리 잘게 쪼개도 끝이 없는 무한소 때문에 발생하는 '제논의 역설'을 들어 설명한다. '제논의 역설'이 등장한 것이 굉장히 반가웠는데, 그동안 여러가지 설명을 들어도 딱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방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아니면 내가 명확히 이해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설명을 읽어 봐도 제논의 역설에 대해서 말끔해 지지는 않았다. 좀 아쉬운 점이다. 이후 정적분에 대해서 안내를 하고, 수열의 수렴과 발산이나 무한을 거꾸로 바라보는 방식같이 무한을 보는 다른 방식에 대해서 설명한다. 두번째 장은 첫번째 장과는 달리 처음 보는 내용들이 많아서 이해하기 좀 만만치 않았다. 후에 다시 읽어 봐야할 것 같다.

 

무한소의 문제를 다루는 '제논의 역설'.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은 여러 개의 역설을 주장했는데 결국 논점은 하나다. '두 점 사이의 거리는 무한하게 쪼갤 수 있기 때문에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제논은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은 모두 현상일 뿐이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인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수천년간 아무도 해답을 내리지 못하다가 칸토어가 무한의 성질을 밝힘으로써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난 아직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

무한은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복잡한 수식이 없더라도 생각을 확장해 나갈 수 있어서 나같이 수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부를 하고 수학기호만 보면 눈을 질끈 감아 버리는 사람도 조금만 머리를 쓰면 멋진 아이디어와 수학적인 사고를 즐길 수 있다. 또,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상한 세계를 만나게 되고 현실과 상관없는 새로운 세계로 나도 모르게 발을 들이는 것도 기묘한 재미가 있다. 이 책은 무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어서 꼭 수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에 관심이 있는 중고생들도 읽을 수 있고, 꼭 수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읽으면서 수학에서 사용하는 논리의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수식같은 건 거의 필요없으니 안심하고 읽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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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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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모기

인류에게 가장 치명적인 동물은 무엇일까? 소제목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지만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동물은 모기이다. 전쟁이나 살인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는 숫자가 더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다른 인간에 의해 죽은 인간은 1년에 약 475,000명인데 반해 모기에 의해 죽는 인간은 약 725,000명이다. 뱀은 약 50,000명, 개가 약 25,000명이니 다른 살인동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간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동물이 죽이는 인간보다 모기가 죽이는 인간의 수가 더 크다. 별다른 천적이 없어 보이는 인간에게 모기는 거의 유일한 천적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기가 사람을 잡아먹거나 상처를 입혀서 죽이는 것은 아니다. 모기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와중에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인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병, 일본뇌염 등 수십가지 질병을 옮긴다. 게다가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한 다른 동물들에 비해 모기는 완전히 차단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에는 많은 질병에 대한 치료약이나 예방약이 개발되어 있어서 그나마 걱정이 덜하지만, 모기가 원인이라는 것도 모르고 약도 없었던 시대에 인간은 아무 것도 모르고 호되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은 모기에 의한 질병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열 가지 약에 대해 안내한다.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동물은 모기. 모기가 옮길 수 있는 치명적인 전염병은 22종류라고 한다.

 


인류를 구한 약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은 만약에 이 약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비타민 C. 비타민의 존재를 몰랐던 때, 사람들은 장기간에 걸친 항해에서 괴혈병에 시달렸다. 항해사고나 정박지에서 원주민과 충돌해서 사망하는 선원들보다 괴혈병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았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병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고, 괴혈병은 대항해 시대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결국 라임같은 비타민 C가 풍부한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통해 문제는 해결되었다. 간단한 약(정확히 약은 아니지만)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문병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말라리아도 마찬가지이다. 2차대전 중에 극성을 부렸던 말라리아는 일부 전장에서는 전투에 의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냈다고 한다. 각 군의 지휘관은 전투에 승리하는 것만큼이나 말라리아에 의해 죽는 병사가 없도록 관리를 잘해야 했다. 심지어 교황이 선종했을 때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도 말라리아는 큰 문제가 되었는데, 모든 추기경이 한 곳에 갇혀서 다음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성베드로 성당에서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교황으로 선출된지 8일만에 말라리아로 사망한 교황도 있었다고 한다. 청의 강희제도 치료제인 퀴닌을 섭취하지 못했으면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을 뻔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정말 약이 세계사를 바꾸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가지 약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개발된 이후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약들이다. 역사상 많은 인물들이 약이 없는 질병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고, 어떤 인물들은 개발된지 얼마되지 않은 약을 복용하여 살 수 있었다. 외과적인 치료에 없어서는 안되는 마취약이나 상처에 감염된 세균에 의한 합병증을 크게 줄여주는 소독약은 외상환자의 치료에 큰 기여를 했다. 책에서 언급된 모든 약이 중요해 보이지만 내 생각에 다른 어떤 약보다도 중요한 약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탄생해서 인류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한 항생제인 페니실린이다.

 


대항해시대에 모험가들이 가장 무서워 했던 것은 해적이나 풍랑이 아닌 괴혈병이었다. 괴혈병은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먹어 비타민 C를 섭취하면 예방할 수 있다.


약의 역사도 이렇게 흥미진진하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에서 다루고 있는 약은 지금와서 보면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익숙하다. 하지만 그 약들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병에 대해서 인간들이 너무나도 무력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의사, 화학자들이 고군분투를 한 끝에 지금은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병도 있고, 아직 정복되지 않은 병도 있다. 마치 인류라는 영토를 침범하려는 병의 침략에 대항해 싸우는 의사라는 장수와 그 밑에서 함께 저항하는 이름없는 병사들의 끝없는 전쟁같다.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잘못된 대응으로 이유도 모르면서 끝없이 죽어나가고 겨우겨우 실마리를 찾아 물리치는 과정을 마치 전쟁사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는데 약의 역사 역시 다를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었던 세균 및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위한 연구가 가장 극적이다. 세균도 그렇지만 바이러스는 더더구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미경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원인을 특정할 수 없어서 정확한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찌어찌 과학이 발전하면서 소독약, 살바르산, 설파제, 페니실린으로 이어지는 약에 의해서 한 순간 정복이 되는 것 같았지만 약에 대해서 내성이 생긴 바이러스가 다시 나타나면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또다른 항생제를 개발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쫒고 쫒기는 이 전쟁은 아마도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인류보다 생명력이 훨씬 강한 바이러스가 결국에는 최후의 승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바이러스는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끈질긴 녀석들..)


아직도 정복되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있다. 오히려 정복된(것처럼 보이는) 질병이 몇 가지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개발이 되었으면 하는 질병은 치매 치료제이다. 몸은 정상인 상태이면서 정신만을 갉아 먹는 치매는 걸리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 같다. 게다가 고령사회로 접어 들고 이제는 초고령 사회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치매에 대한 치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굉장히 큰 사회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가끔씩 치매 정복의 실마리가 발견되었다고 뉴스에 뜨는 것 같은데 어서 빨리 해결되어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이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알렉산더 플레밍 경 Sir Alexander Fleming (1881 ~ 1955) 스코틀랜드의 세균학자. 세계 최초로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추출하여 항생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


약의 개발사를 재미있게 풀어 놓았다.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역사나 약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쓴 책이다. 분량도 많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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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매트 리스 지음, 김소정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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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죽었다

1829년 10월 9일. 모차르트의 여섯째 아들인 볼프강은 병석에 누운 고모를 찾았다. 모차라트의 아들의 고모이니, 어릴 때는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재능을 보였고, 모차르트, 아버지와 함게 연주 여행을 다녔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애칭 나넬, 소설 속에서는 나넬이라고 되어 있지만 난네를이 더 맞는 발음이다)이다. 나넬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다른 유산은 아들인 레오폴트(모차르트 남매의 아버지와 이름이 같다)에게 남기지만 볼프강에게 가죽으로 장정한 노트 한 권을 남긴다.


책의 내용은 1791년 12월의 기록이다. 나넬은 아버지 레오폴트가 모든 유산을 받은 후 수년간 소원한 사이였던 동생 모차르트의 소식을 듣는다. 동생이 죽었다. 35세라는 굉장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천재 음악가인 동생 모차르트가 죽었다. 이미 장례식은 엄수되었고, 나넬은 모차르트가 살던 빈으로 찾아간다.

 

Matt Ross 1967 ~ . 영국의 소설가


미스터리 투성이(인 듯 보이는) 모차르트의 죽음을 소재로 한 팩션

모차르트의 죽음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그 이유는 어떤 음모나 미스터리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당시의 의학 수준이 낮아서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려진 사망원인은 발열과 좁쌀같은 발진이라고 되어 있는데, 발병한지 겨우 15일만에 급작스럽게 죽었다고 한다. 작곡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나이에 단명하고 말았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죽은 직후에도 음모에 의한 죽음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이 소문의 피해를 직격으로 얻어맞은 가장 억울한 사람이 당대 최고의 음악가이자 빈의 궁정악장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이다. 천재의 죽음에 납득하지 못한 민중들이 엉뚱한 누명을 살리에리에게 뒤집어 씌웠고, 지금 그의 음악은 거의 연주되지 않지만 악명만은 여전히 떨치고 있다. 심지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한 것이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살리에리의 독살설이 대중에게 퍼지도록 희곡을 쓴 피터 셰퍼가 제일 나쁘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역시 모차르트가 석연치 않게 죽은 것을 소재로 하지만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그의 죽음을 바라본다. 살리에리는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모차르트 추모 자선 공연에서 지휘를 하는 모습으로만 등장할 뿐 주요 인물이 아니다. 나넬은 모차르트의 죽음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빈으로 여행을 하는데 때마침 열리는 자선음악회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내정되어 있던 호프데멜 대신에 연주를 맡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나넬은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 뿐만 아니라 배우인 기제케, 황제인 레오플트 2세, 프러시아의 대사인 아코비 남작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모차르트가 죽기 전에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든지, 모차르트 주위의 사람들이 프리메이슨의 영향하에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결정적으로 황실도서관장인 슈비텐 남작으로부터 모차르트의 죽음이 알려진 바와는 달리 독살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모차르트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기로 마음먹는다.

 

모차르트 일가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 그리고 프리메이슨

이 책에서 말하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마술피리》이다. 극한의 기교를 지닌 소프라노 콜로라투라만이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끓어오르고>(흔히 말하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 정확하게는 밤의 여왕의 두 번째 아리아이다)가 있는 그 오페라이다. 모차르트가 말년에 프리메이슨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마술피리》에 프리메이슨과 관련한 여러가지 상징을 표현했다는 것도 여러 논문을 통해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마술피리》와 프리메이슨의 관계에서 소재를 잡아내서 모차르트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만들어 낸다.


나넬은 모차르트의 죽음을 파헤치던 중에 모차르트가 독일에 새로운 프리메이슨 지부를 만들면서 여성이 참가하는 지부를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리메이슨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회원을 받지 않고 있다. 즉,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어기는 지부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모차르트가 독살을 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오페라 《마술피리》의 한 장면,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아리아 중에 하나인 <Der Ho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끓어오르고)로 유명하다. 사진 속의 여왕은 디아나 담라우이다.


밋밋한 미스터리

《마술피리》는 모차르트 죽음의 미스터리를 나넬이 파헤쳐 나가는 형식이지만 너무 밋밋하다. 먼저 소재 자체가 특별할 것이 없는게 모차르트의 독살설이라든지 《마술피리》에 프리메이슨의 상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소재를 잘 엮어서(예를 들면 댄 브라운처럼) 미스터리를 촘촘히 잘 깔았으면 좋았을텐데,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 결국 미스터리의 핵심은 '모차르트를 독살한 범인이 누구인가'인데 책을 읽으면서 그다지 궁금증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궁금증을 풀어 나가는 방식에도 문제가 많은데 단지 '모차르트의 누나'라는 신분 외에는 권력도 지성도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 나넬이 추궁만 하면 모두들 중요한 비밀을 술술 불어 버린다. 나넬은 딱히 대단한 추리를 추리를 하지 않고서도 사건의 진실에 다가선다.나넬이 미스터리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개연성있는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감하기 어렵다.


더욱 이해가 안되는 것은 대단한 귀족도 아니었던 나넬이 추궁을 하자 백작이나 남작같은 귀족 뿐만 아니라 황제와 왕자까지 위축되고 우물쭈물대는 모습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준다. 특히 페이크 흑막인 페어겐 백작의 죄상을 황제 앞에서 밝힌 후, 황제가 여성이 가입할 수 있는 프리메이슨 지부의 창단을 거절하자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틀리셨습니다."라고 얘기하는 모습은 너무 심했다. 절대권력인 왕에게 기껏해야 하급귀족부인인 나넬이 그렇게 얘기를 하고서도 무사하다고? 작가는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는 당당한 여성상을 그리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설득력이 너무 떨어진다.

 

프리메이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 직각자와 컴퍼스. 분별과 심판을 통해 피조물의 삶을 설명해 준다. 로지 마스터의 상징으로 회원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윤리적 규약을 의미하며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을 모아 조화롭게 만드는 도구의 상징이다.


★★☆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미스터리를 구성할 소재는 다 준비해 놓았다. 천재의 급작스런 죽음, 죽음의 미스터리, 사건을 좇는 누나, 죽음의 위협, 프리메이슨과 장미십자회같은 비밀결사단체, 범인을 잡아내는 극적인 장치, 마지막에 독자의 뒷통수를 강하게 치는 반전까지. 하지만 이런 좋은 소재들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은 아니다.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으니 마지막에 미스터리가 해소되는 과정에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모차르트 당시의 상황을 조합해서 팩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당시 빈의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좀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이 구성되었으면 좋았을텐데.. 많이 아쉽다.


책을 읽으면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음반을 다시 듣고 싶어져서 여러번 들었다. 담라우의 힘넘치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다시 찾아 보기도 했다. 그건 좋았다. 하지만 이건 소설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모차르트에 대한 몇가지 음모론을 알 수 있는 소설, 딱 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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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살인 - 벼랑 끝에 몰린 가족의 고백
마에다 미키 외 지음, 남궁가윤 옮김 / 시그마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 사회가 늙어가고 있다

전체 인구 중에 만 65세 이상의 인구가 7%가 넘으면 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만 65세 이상의 인구가 14%를 넘어서면 고령사회라고 한다. 바로 작년인 2017년 우리나라는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2018년 현재 우리나라의 고령인구비율은 14.3%이고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달려 가고 있다. 초고령 사회의 기준은 20%이다. 2017년의 합계 출산율(한 여성이 15~49세의 가임기간 동안 출산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산아 수)은 1.05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KOSIS 국가통계포털 자료 참조) 출산을 꺼려할 뿐만 아니라 비혼가구마저 늘고 있다. 사회가 혁명적인 변화를 겪지 않는 한 이제 달려가기 시작한 기차를 멈출 방법은 없어 보인다.


사회가 늙어가면서 많은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는 것은 당연하고,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간의 복지비용을 둘러싼 대결 양상도 펼쳐지고 있고, 일자리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때, 간병을 하는 가족들의 고통 역시 아직은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 않지만, 누구나 주변에 간병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을 지인이 있거나 본인이 간병을 하고 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모두들 알고 있는 문제다. 장수는 복일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고 가난하면서 오래 사는 것은 너무나도 큰 고통이다. 문제는 당사자 한 명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큰 고통을 주며, 결국에는 가족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거다. 《간병살인》은 오랜 간병으로 인해 파괴된 가정을 취재한 기록이다.

 

고령사회에서 치매는 가장 비극적인 질병 중에 하나이다. 특히 치매는 회복의 희망이 전혀없이 나빠지는 것만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점 때문에 절망스럽다.


'살인자'를 취재한 마이니치 신문사의 《간병살인》 취재반

《간병살인》은 마이니치신문의 기자 세 명이 취재한 기사를 새롭게 엮어서 써낸 책이다. 시민의 애환을 그린 다른 기사 시리즈인 <애환기>를 취재하던 중에 간병을 둘러싼 비극이 4건이 되는 것에 주목하여 새롭게 팀을 짜서 취재했다고 한다. 기자들이 취재를 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특히 비극의 현장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의 어려움은 더욱 클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간병을 하다 한계에 도달하여 환자를 살인한 사람은 분명히 범죄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취재과정이 순탄하지 않다. 죄책감과 상실감 때문에 잊고 싶은 기억을 끄집어내기 싫은 취재대상으로부터 그들의 진심을 끌어내는 과정이 절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기다림과 설득을 통해 취재를 해낸 기자들의 취재과정에 박수를 보낸다. 마에다 미키오 前田幹夫, 시부에 치하루 渋江千春, 무코하타 다이지 向畑泰司, 세 명 기자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한 번 언급은 하고 가자.


글의 서두에서 고령화 사회에 대해서 다루었지만 '간병'이 꼭 노인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선천성 환자도 있고, 젊은 나이에 사고로 거동을 할 수 없는 장기환자도 있다. 그래도 역시 간병이 가장 필요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은 고령으로 인해 신체 또는 정신에 문제가 생긴 노령층이다. 특히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치매환자가 늘어난 것이 최근에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치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활동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나 정신의 이상 때문에 간병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고, 잠깐 동안의 방심으로 인해 화재 등의 큰 사로고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재의 대상 중에 상당 부분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취재한 총 44건의 사례 중에서도 20건이 치매를 앓는 환자의 사례이다. 그 외에 조현병, 우울증, 사고나 병에 의한 마비환자들도 취재했다.

 

스스로 거동을 할 수 없어서 간병이 필요한 환자는 본인이 불행한 것 뿐만 아니라 가정까지 파괴할 수 있다.


벗어날 수 없는 간병의 늪에 빠진 가족들의 절망

《간병살인》 취재반은 꽤 다양한 사례를 취재했다. 그런데 모든 사례들에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간병살인》에 등장하는 '살인자'들은 자신의 가족인 환자를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적게는 십수년, 많게는 30~40년 동안 간병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슬프긴 하지만 기꺼이 가족의 간병을 시작하고 책임감있게 간병을 해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물론이거니와 잠잘 시간마저 부족해 져서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그 결과 심각한 우울증 증세로 이어진다. 게다가 장기간의 간병으로 인해 수입은 없어지고, 돈마저 다 떨어지고 나면 경제적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상태로 몇 년간 더 지속하다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환자를 살해하거나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집에 간병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가족 중에 누군가 병석에 눕고 거동을 할 수 없게 되면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간병을 시작한다. 하지만 하루이틀 지나고 일년이년이 지나가면 간병은 이제 환자 한 명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웃음을 앗아가 버리고 집안에서는 없앨 수 없는 환자의 냄새로 가득찬다. 직접 간병을 하지 않는 가족은 집에 들어 오는 것을 꺼려해서 바깥으로 나돌게 되고, 결국 가족도 해체되기 시작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가 죽기를 바랄 수도 없다. 이 절망감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정도로 커서 환자의 가족들을 비난하는 것은 말도 안되고, 섣부른 동정마저도 가족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환자 가족에게 있어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은 너무나도 잘 들어 맞는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서 사랑하는 가족을 살해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 어떻게 이 사람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도 '간병살해'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용적으로 판결하여 집행유예나 단기 징역혁을 선고한다고 한다.

 

거동을 할 수 없는 환자에게는 온전히 한사람 몫을 넘어서는 간병이 필요하다. 결국 환자 한 명으롱 인해 가족 한 명이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간병비용은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가족의 경제상황은 파탄날 수 밖에 없다.

 

사회를 향한 기자의 질문

이 책은 '일본'의 기자들이 취재한 사례들을 편집하여 펴낸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병에 대한 지원이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의 성향'(이 성향이 일본인들만이 가진 특성인지에 대해서는 따지지 말고 넘어가자)이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딱히 일본에 비해 환자가족에 대한 지원이 나을 것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아직 일본만큼의 '간병살인'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주목을 하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는 걸까? 나는 전자이기를 바라는데,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결국 간병에 대한 문제는 한 가정이 책임지기에는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불가능한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장기환자 한 명은 한 가정을 파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게 필요한 문제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공적인 지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그저 '더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도에서 끝을 맺는다. 기자들은 파헤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지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간병살인》 시리즈 취재 후에 일본의 매스컴에서 간병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하니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낸 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답변은 정부와 사회가 할 차례이다. 이 기사가 나간 후 일본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일본은 이미 2006년에 세계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을 했고, 65세 이상이 아니라 70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2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얼마 안 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넋놓고 있다가는 일본이 겪고 있는 문제에 그대로 맞닿뜨릴 수 밖에 없다. 미리 고민해서 알맞은 방안을 준비해 두지 않으면 몇십년 후, 아니 빠르면 몇년 후면 우리에게도 분명히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 정부에서는 '치매국가책임제' 등 고령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으니 기대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더불어 고령인구가 아닌 다른 간병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함께 고려하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 못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 개인과 함께 사회도 함께 대비하는 것만이 불의의 사태를 맞아 개인이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는 방법이다.


★★★★☆
이 책의 마지막에는 기사를 읽은 사람들의 편지 일부가 실려 있다. 하나같이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과 사회의 지원을 바란다는 내용이다. 비록 상황은 우리와 다르지만 읽어 보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부디 환자를 간병하는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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