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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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탈옥수, 최요섭


최요섭은 탈옥수이다. 어떤 죄를 짓고 수감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무기수이다. 탈옥 중에 한 여자아이를 인질로 잡아 경찰과 대치하던 중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다.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목에 걸고 있던 메달에 총이 맞으며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요섭은 메달의 원래 주인인 오나영에게 메달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 무성(지명)으로 향한다.


변호사, 최요섭


최요섭은 법무법인 '사해'의 변호사이다. 사해는 업계 순위 10위 이내에 들어가는 대단한 법무법인이다. 최요섭이 뛰어난 변호사라서 사해의 변호사가 된 것은 아니다. 능력있는 장선배와 연이 닿아 어영부영 사해에 합류했고 이후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잘 버티는 중이다. 연봉은 2억 1천 5백만원. 미인 아내와 야구에 소질없는 초등학교 야구선수 아들을 두고 있다.


우연히 회사 앞에 있던 연정호의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 강간 용의자인 연정호를 무료변론했다. 오로지 위로 올라가는 데만 관심이 있던 최요섭으로서는 어울리지 않은 일이었다. 오랜만에 실력발휘를 하고 승소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수임중이던 유학생 강간사건을 라이벌 후배 권기용에게 빼앗긴 후 그나마 버티던 회사에서 미운 털이 제대로 박히고 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아들의 과외선생과 바람이 나고, 홧김에 아내를 때리고, 집에서 쫓겨난다. 게다가 주식투자마저 실패하여 거의 빈털터리 신세.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요섭은 이 모든 불행의 배후에 회사의 개입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 그에 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최제훈 1973 ~ .


참 묘한 작가, 최제훈


세 권째 읽는 최제훈의 소설이다. 《퀴르발 남작의 성》은 현실에 상상을 묘하게 붙여놓은 후 마지막에 그 모든 이야기들을 붙여 놓고 연극화해 버렸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는 퍼즐 조각으로 쪼개 놓은 이야기를 일 붙이고 저리 붙여서 새로운 이야기를 직조해 냈다. 두 권 모두 정말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 《나비잠》 역시 큰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최요섭. 같은 이름을 가진 최요섭이 주인공인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누가 봐도 하나는 현실-아마도 변호사 최요섭-이고 하나는 꿈이나 환상-아마도 탈옥수 최요섭-이다. 두 이야기는 조금씩 겹치는 사람도 있고 결국 마지막에는 변호사 최요섭이 꿈이든 환상에서 깨어나 결말이 나는 것으로 예상했다.


의외로 평범하네.. 하지만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평범한 시작을 생각하면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어나가는데 역시 뭔가 이상하다. 굉장히 수상하다. 심상치 않은 전작들을 상기해 보면 이 책도 평범하게 풀고 나가지는 않을 것 같다. 혹시 변호사는 과거, 탈옥수는 현재일까? 아니 그렇다기에는 두 명의 변호사 뿐만 아니라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간극이 너무 크다. 아, 사실은 탈옥수가 현실이고 변호사가 꿈인가? 그런데 읽다 보니 그것도 아니다. 현실이라면 물속에서 자전거를 탈출하고 멧돼지가 사람을 뜯어 먹고, 소복입은 여자가 끊임없이 유혹하고 남편이 나타나 머리가 깨지는 타임루프가 있을 수는 없다.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하려는 걸까?



나비잠이 뭔지 몰랐는데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이라고 한다.


갈수록 가관인 탈옥수, 갈수록 몰락하는 변호사


탈옥수는 소복입은 여자를 만나 타임루프에 빠지는데 결국 소복여인을 인질 삼아 탈출하고 소복여인과 남편은 불에 타죽고 만다. 그 후 십자가에 달린 아버지도 만나고, 장미정원에서 빨간두건과 피노키오도 만난다. 아주 소설이 제멋대로 흘러간다. 갈수록 가관이다. (장미정원이 퀴르발 남작의 소유라는 건 일종의 작품개그.) 탈옥수가 현실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변호사는 아들의 중학진학을 위해 중학교 야구감독에게 뇌물을 줬다가 들키고 사회적 문제가 되어 회사에서 쫓겨난다. 잠시 기거하던 원룸에서 옆방 공시생과 싸우다 깨진 병을 밟아 발바닥에 열세 바늘이나 꿰맨다. 오토바이 양아치들에게 집단린치도 당하고.. 하지만 그중에 가장 가슴아픈 건 뇌물사건이 소문나 왕따에 시달리던 아들이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중태에 빠진 것. 점점 몰락해 간다.


도대체...... 두 이야기가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두 이야기에 모두 종규가 나오고 무성에 사는 오나영이 나오고 나영에게 돌려줘야 할 메달이 있고, 최요섭은 메달을 돌려 주러 무성으로 간다. 아버지는 여전히 목사님이고, 오소리는 나쁜 놈이다. 책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 두 이야기가 합쳐질 기색이 없다. 그리고 그냥 그대로 끝난다.


작품 내내 두 이야기를 교차시켜 놓고, 결말이 어떻게 될지 이리저리 상상하게 만들더니.. 심지어 뭔가 있을 것 같은 냄새를 펄펄 풍겨 놓고는 두 이야기가 원래 별개의 이야기라고 시치미를 뗀다. 그냥 한 책에 두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는 단편적인 이야기를 이리저리 쪼개고 붙여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내더니 《나비잠》에서는 이야기의 요소를 더 잘게 쪼개서 재조합하여 두 개의 이야기를 만들고 평범한 것처럼 뻔뻔하게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또 뒷통수를 된통 맞았다. 하지만 즐겁다.


레고블럭은 단품일 때는 멋진 작품이 되지만 여러 개의 박스를 모아서 만들면 괴물같은 모양이 만들어진다.


전통적인 플롯에 대한 반항


최제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연상되는 것들이 있다. 우선 《이기적 유전자》. 이야기 구조를 생명체라고 생각한다면 최제훈은 생명을 해채해서 유전자 단위로 쪼개고 그걸 재조합하는 것 같다. 비슷한 의미로 직소퍼즐도 함께 떠오른다. 아무 곳에나 꽂아도 들어맞는 직소퍼즐. 플롯이 흘러간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짜여진다는 느낌이다. 최제훈은 글을 쓸 때 워드프로세서가 아니라 스크리브너를 써서 문단을 이리저리 옮겨 놓으면서 쓸 것 같다.


소설가마다 책을 쓰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최제훈은 소설을 쓸 때 여러 가지 소재를 잔뜩 모아 놓았다가 어느날 그 소재들을 쫙 펼쳐놓고 마음에 드는 것을 이리저리 맞춰서 써내려갈 것 같은 느낌이다. 아, 그러고 보니 레고블록이 가장 비슷할 것 같다. 레고블럭은 원래 하나의 주제로 출시된다. 한 박스에 들어 있는 블럭들을 잘 맞추면 주제에 잘 맞는 레고작품이 된다. 하지만 여러 박스에 있는 레고블럭을 분해하고 그걸 이리저리 조립하면 괴상한 모양의 작품이 완성될 것이다. 최제훈의 소설이 그렇다. 그런데 뒤에 쓴 소설일수록 그 블록이 더 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읽는 내내 타로의 탑 카드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최요섭의 몰락에서 탑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연상된 것 같다.


★★★★☆


책을 2/3쯤 읽었을 때, 그냥 이대로 합쳐지지 않고 끝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고 예상이 들어맞았다. 세 권 쯤 읽으니 최제훈의 글에 적응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뒷통수를 맞기는 했어도 빗맞았으니 많이 아프지는 않다. 여전히 특이한 이야기 구조를 가졌고 각각의 이야기가 흡입력있게 흘러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예측을 벗어나는 책을 읽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세 권 읽고 난 후 최제훈은 내가 좋아하는 한국 소설가 중에 다섯손가락에 들 정도가 되었다. 이제 두 권 남았는데.. 아껴서 읽어야겠다.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는데,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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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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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벽이 있는 말더듬이 책사냥꾼이 마흔 살이 넘어 모든 책을 잃고 쓰는 회고록이다.


단 한 권의 책


'세계의 책'은 모든 책의 책이다. 이 책 이외의 모든 책은 '세계의 책'의 주석이며 이 책을 아는 사람은 찰리 한 명 뿐이다. 오래전 알 모히드 바함이라는 술탄의 의전담당 신하가 쓴 아홉권 째 책이 '세계의 책'과 내용은 같았다. 하지만 의미가 달랐기 때문에 술탄에 의해 참수당했다. '찰리 이야기'는 리차드 브라우티건이 지은 책 사냥꾼에 관한 책이고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는 '세계의 책'에 관한 책이다.


뭔가 복잡하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주인공인 반디가 자신의 경험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써내려 갔듯이 나도 읽은지 며칠되지 않은 《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의 내용이 가물거려서 정확하게 쓸 수가 없다.


오수완. 1970 ~ .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한 한의사. 《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으로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책사냥꾼에게 들어온 의뢰


반디는 한 때 유명했던 책사냥꾼이다. 책사냥꾼이 뭐냐구? 책을 찾는 사람의 의뢰를 받아 책을 찾아주는 사람을 말한다. 책을 '찾는 것'이 이들의 일인데 그 방법을 따로 가리지는 않는 것 같다. 때로는 책도둑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책강도가 되기도 하고 책사기꾼이 되기도 한다. 책사냥꾼은 불법적인 일을 하는 그들과 다르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딱히 합법적인 일만 하는 것은 아닌 걸 보면 많이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반디는 처음 '찰리 이야기'를 읽고서 책사냥꾼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그저 헌책방을 운영하는 중이다.


지루하게 헌책방을 지키는 반디에게 책사냥꾼 사이에 전설로 일컬어지는 책방인 '미도당(헌책방의 끝판왕)'으로부터 책을 찾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찾으려는 책은 '베니의 모험'. 이윤희라는 미도당의 실장이 찾아와서 의뢰한다. 원래는 검은별이라는 반디의 라이벌이기도 한 책사냥꾼에게 의뢰했으나 책을 찾던 검은별의 행방이 묘연하다. 어쩌면 검은별은 책의 가치를 알아채고 '베니의 모험'을 찾은 후 잠수를 탈 수도 있다. 검은별보다 먼저 책을 찾아 미도당에 가져오는 것이 반디의 미션이다.



현실과 상상을 교묘하게 묶어 놓았다


저자는 오수완. 한의사이면서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멋진 경력을 자랑한다. 아마도 다독가인 듯하다. 그리고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모두 아울러서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 낸 것이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이다. 설정이 흥미로운데, 오수완이 만들어 놓은 책의 지도에는 '세계의 책'이 그 정점에 놓여 있고, 그 주변의 다음으로 중요한 책 아홉 권이 자리잡고 있다. 아홉 권의 책을 찾는 실마리가 '베니의 모험'에 있고 '베니의 모험'은 반디를 다른 책으로 인도한다. 이 과정에서 유명한 다른 책들과 존재하지 않는 책들에 대해 내용까지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실제 책과 가상의 책이 섞여서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온다.


또다른 재미있는 설정은 책파동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한다든지, 미하엘 엔데의 《모모》, 《끝없는 이야기》같은 책들이 금서로 지정되어 있다는 점이다.(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들인데!) 이런 장치들을 굉장히 그럴싸 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새에 책파동 시위가 있었나 검색해 보기도 하고 있지도 않은 책이 정말 있는 책은 아닌지 찾아 보면서 책을 읽었다. 현실과 상상을 참 절묘하게 엮어 놨다.



모든 것은 미도당의 안배


우여곡절 끝에 반디는 모든 책을 찾고 미도당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거기서 미도당의 주인인 윤선생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는 반디에게 미도당을 물려받을 것을 제안한다. 이 노인을 찾아가는 곳은 미로인데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원이 연상되는 장치이다. 어쨌든 반디는 노인의 제안을 받으들이지 않고 열시 우여곡절 끝에 미도당의 서가는 허무하게도 불에 타고 소중하게 보관되어온 미도당의 고서들은 재가 되고 만다.


현학으로 도배되어 있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초반부를 읽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굉장한, 혹은 굉장해 보이는 '세계의 책'에 관한 역사를 늘어놓는데, 사실이 아니다.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 놓고 그 틈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역사의 한 부분을 새로 만들어 낸 현학적인 모습은 지적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도 싫어하는 글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어서 짜증이 올라왔다. 대명사를 남발해서 적절하지 않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소리와 만나는 장면에서 그렇다. 대명사를 온통 남발하고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 이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게 아니라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장치다. 덕분에 초반부에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대단하지도 않은 내용을 흐릿하게 표현하고 그 순간 알려 주지 않기 때문에 계속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부담감을 갖게 한다. 물론 뒷부분에 가면 그런 부분들은 잊혀진다. 70 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내가 이걸 끝까지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부는 읽는 속도도 나지 않는다. 어려워서가 아니다. 읽다가 앞에서 정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쓸데없이 계속해서 앞장을 들춰봐야 했기 때문이다.



★★★


초반은 어지럽고 중반 이후는 명쾌하다. 초반에 읽다가 지칠 수 있다. 굉장히 여러가지 책을 요약했고 가상의 책을 만들어 냈고 또 그 책들을 인용했다. 각종 책들의 개요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좋았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았으면 쓸 수 없는 장치다. 좋게 말하면 지적이다. 나쁘게 말하면 너무 현학적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직후에 곱씹어 봐도 내용의 반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체적인 플롯이 흥미롭지는 않다. 특히 책을 찾는 과정이 정교하지 않다. 다음 책을 찾아가는 과정은 가장 중요한 주제는 아니더라도 가장 흥미로운 장치인데 도대체 별다른 실마리없이 다음 책을 찾고 또 찾는다. 전체구조는 만들어 놨지만 각주가 약했다. 추리소설에서 발생한 사건이 충격은 줬지만 트릭이 형편없어서 읽는 동안 투덜대면서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홍보용 수사이긴 하겠지만 하루키의 위트, 보르헤스의 상상력, 움베르토 에코의 지식을 모두 갖췄다고 쓰인 부분은.. 너무 나갔다. 각 분야의 끝판왕들을 모두 겸비했다고 평가를 받을 때, 나는 얼굴이 좀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초반의 지루함을 잘 이겨내야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중반 이후에는 읽는 속도가 잘 나오고 사뭇 흥미롭기도 하다. 책에 관한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부은 것은 좋지만 잘 정리되지 않아 번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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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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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연히 닥친 자연 재해, 우연히 죽은 사람

우하라 마도카는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훗카이도에 있는 외갓집에 왔다. 원래는 아빠인 젠타로도 함께 오려고 했지만 갑자기 잡힌 급한 수술 때문에 아빠는 같이 올 수 없었다. 할머니,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를 기다리는데 할아버지가 약주 한 잔 걸치고 운전을 하고 집에 온다고 고집을 부린다. 엄마는 발끈해서 음주운전은 안된다고 하며 엄마가 가서 운전하고 올테니 할아버지에게 기다리라고 한다. 마도카는 뒷자리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가가던 중.. 운이 없었다. 엄마는 갑자기 불어닥친 토네이도에 휩쓸리고 시신으로 발견된다. 마도카만이 겨우 살아 남았다.


몇 년 후..


다케다 도오루는 경찰출신 프리랜서 경호원이다. 새로운 경호의뢰를 받아 가이메이 대학에 가서 기리야마를 만난다. 그리고 굉장히 건방져 보이는 10대 중후반 여자아이에게 면접을 본다. 이 여자아이가 경호해야 할 대상인 마도카이다. 절대로 어떠한 질문도 하지 말 것을 다짐받은 후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채용 결정. 그런데 이 아이, 뭔가 좀 이상하다. 우연히 벌어지는 일들을 '미리' 예측한다. 예측 뿐만 아니라 분명히 상관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는데 그것이 '의도된' 것처럼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우연이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찜찜하다.


마에야마 요코는 아카쿠마 온천에서 마에야마 여관을 30년째 운영하고 있다. 얼마전에 미즈키 요시로라는 유명한 영화 프로듀서와 그의 아내 치사토가 여관에 묵었다. 그런데 부부가 산책하던 중에 미즈키 요시로가 땅에서 솟아 오른 황화수소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황화수소는 공기 중에 노출되자마자 공기중에 퍼지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사람이 죽을 정도로 농도가 짙어질 수 없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0%는 아니다. 남자가 운이 나빴다. 물론 거의 40살의 나이차가 나고 남편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것이 분명한 치사토가 의심을 사기는 했다. 미즈키의 어머니는 아내가 재산을 노리고 남편을 죽였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미즈키 요시로는 사고로 죽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곧 의심에서 벗어난다. 나카오카 유지라는 형사가 아무리 열심히 조사해 보고 다녀봐야 나올 것도 없다. 아오에 슈스케라는 지구과학 교수도 자주 와서 사고가 아니라 의도된 사건일 가능성을 찾아 보지만 별다른게 없다. 단지 걱정되는 건 사고가 나서 위험해 보이는 온천에 손님이 줄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벌어진 일이고 다시 발생하기 어려운 일이라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 중 한 명.



조금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라플라스의 마녀》는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었다. 게이고 데뷔 30주년 기념작이라는 떠들썩한 홍보도 주효했고, 유명한 '갈릴레오 시리즈'나 '가가 형사 시리즈'가 아닌 새로운 작품이라는 점도 어필 포인트였던 것 같다. 나에게는 게이고의 소설 중에 꼭 읽어봐야 할 몇 권 중에 한 권이었다. 아껴뒀다기보다는 게이고의 작품이 하도 많다 보니 사놓고서도 그냥 뒤로 미뤄 놓았던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책들을 모두 읽은 건 아니지만(사실 너무 많아서 모두 읽을 수도 없다. 이 책과 몇 권만 더 읽고 이제 그만 읽을 생각이다) 대체로 추리소설을 주로 쓴 작가라고 생각한다. 《라플라스의 마녀》 역시 추리소설의 탈을 쓰고 있다. 형사가 나오고 그 형사를 돕는 지구과학 교수가 나온다. 하지만 이전에 읽은 소설과는 다른 점이 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판타지라고 볼 수는 없고 추리소설을 쓰면서 SF적인 요소를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 SF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읽어 보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다.


소설은 온천을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 알고보면 능력자 배틀물

있을 수 없는 사고는 또 일어난다. 나스노 고로라는 무명배우가 또다른 온천여행지에서 역시 황화수소에 중독되어 사망한다. 이것 역시 첫번째 사망사건과 다를 바가 없다. 확률이 0%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또 일어난 것이다. 확률이 8백만 분의 1인 로또에 한 번 당첨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매주 누군가에게는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연속으로 로또에 당첨된다면 이건 행운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우연히 일어날 수 없는 사고가 한 번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우연한 사고가 두 번 발생한다면 이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 된다. 나카오카 유지 형사와 아오에 슈스케 교수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리고 두 사건 장소에 모두 나타난 마도카에게 주목한다.


아마카스 겐토는 영화감독인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아들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마도카의 아버지인 젠타로가 시행한 뇌수술로 소생한다. 마도카의 어머니가 죽은 날, 젠타로가 수술하고 있었던 환자이다. 그런데 회복을 하는 동안 사물의 위치와 운동성을 파악하고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게다가 약간의 간섭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우연처럼 보이는 현상'을 조작할 수 있게 된다. 즉, 자연에서 벌어지는 온갖 현상들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이해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초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뇌를 수술한 탓에 우연히 갖게 된 능력이다.


마도카는 겐토와는 좀 다르다. 토네이도에 의해서 어머니를 잃은 후 자연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니가 수술한 겐토가 가진 능력이 바로 자신이 갖고 싶었던 능력이라고 생각해서 아버지에게 자신도 겐토와 같은 수술을 해 줄 것을 요청한다. 젠타로는 겐토의 능력이 정말 수술로 인해서 얻어진 것인지 다시 확인하고 싶었고, 때마침 딸이 조건에 딱 맞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원하기도 했기 때문에 윤리적인 압박감은 뒤로 한 채 딸에게 뇌수슬을 감행한다. 그리고 마도카 역시 겐토와 같은 능력을 지니게 된다. 겐토와 마도카는 중요한 연구자료로서 정부로부터 보호관찰을 받게 되지만 겐토는 복수를 위해, 마도카는 겐토를 막기 위해 대학 연구소를 탈출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한다.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Pierre Simon Laplace (1749. 3. 23. ~ 1827. 3, 5,)​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수리물리학, 천체역학 등에 업적이 있다.


라플라스의 악마

과학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라플라스의 악마'를 들어 봤을 것이다. 고전물리학이 뉴턴에 의해서 완성된 이후 우주에서 관측할 수 있는 모든 현상들이 설명가능하다고 과학자들이 생각을 했는데, 그 극단에 있었던 과학자가 프랑스의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이다. 라플라스는'어떤 지적인 존재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고 있고 이 모든 정보를 충분히 분석할 능력이 있으면 미래까지도 정확히 예측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결과 나온 결론이다. 그리고《라플라스의 마녀》는 이 악마가 된 두 소년소녀가 주인공이다. 라플라스의 악마를 알고 있다면 처음 마도카가 등장했을 때, 마도카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 태클을 걸어 보자면 라플라스의 악마는 없다. 하이젠베르크가 주창한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서 입자(미시입자를 말한다)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상태를 동시에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라플라스의 주장은 '입자의 위치와 운동상태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인데 애시당초 입자의 위치와 운동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거시적인 세계에서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이론이 미시 세계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라플라스의 마녀' 역시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라플라스의 마녀》의 소설적 상상력을 폄훼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이런 마녀를 생각한다면 오산.


참 대단한 작가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그동안 써왔던 소설과는 궤를 달리 하는 작품이다. 사실상 겐토와 마도카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전통적인 느낌의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상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리소설에 SF적인 요소를 슬쩍 첨가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충분히 즐길만 하다. 좋아하는 SF소설 중에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나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SF소설에 추리소설 요소를 집어 넣어서 흥미를 돋우는데 《라플라스의 마녀》는 비슷하지만 반대로 추리소설에 SF요소를 집어 넣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열 편 이상 읽었지만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더 많다. 몰입도가 뛰어나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을 수 없고, 금세 읽을 수 있어서 하루 이틀이면 모두 읽는다. 하지만 하도 많아서 도저히 그의 책을 모두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게이고의 소설만 읽을 수는 없으니 내가 읽는 책의 숫자보다 그가 써내는 책이 늘어나는 숫자가 더 크다. 대충 몇 권 더 읽고 나서 이제 그만 읽으려고 생각 중이다. 한때는 뒤에 고스트 라이터가 붙어서 책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기도 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혈 팬인 일본 친구와 얘기를 하다가 한 소리 듣고 그 의심은 거두기로 했다.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떠올리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아이디어들을 끊임없이 책으로 써내는 건 더 대단해 보인다.

거시세계에서 상식인 것이 미시세계에서는 상식적이지 못하다. 참 골치아픈 문제.


★★★★☆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SF가 붙어 있어서 사실상 추리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사람이 실체적 진실을 파헤친 후 그 근거를 설명해 줘야 하는데, 실체적 진실 자체가 상식에서 어긋나기 때문에 결론은 마도카의 입을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추리소설의 가장 큰 특징을 포기한 소설이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를 추리소설의 틀 안에 집어 넣어 설득력있게 써내려갔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엄청난 몰입감도 여전하다. 대표작 중에 하나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읽으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가 많이 떠올랐다.
추천한다.

東野圭吾, 히가시노게이고, 라플라스의마녀, 양윤옥옮김, 현대문학, 일본소설, 소설, SF소설,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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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이 한 번 임했다고 해서 그가 영원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늘 유혹과 시험이 있습니다. 그 유혹을 이기고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입니다.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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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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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쫓겨나 증권회사로..

한자와 나오키는 지난 1권과 2권에서 뛰어난 전략과 능력을 발휘하여 위기에서 벗어났다. 개인의 위기 뿐만 아니라 은행이 처한 위기까지 해결하며 에이스 중 에이스가 되......는 줄 알았으나, 기대와 달리 도쿄중앙은행의 산하 회사인 도쿄 센트럴 증권의 차장으로 발령받는다. 좌천된 것이다. 이제 에이스도 뭣도 아니고 원하지도 않았던 증권사 직원이 된 한자와 나오키. 산업중앙은행 출신인 한자와와 은행직원 시절에도 융화되지 못했던 도쿄제일은행 출신 직원 사이의 갈등은 증권사에 와서도 여전하다.


1. 은행 출신 직원들은 증권사를 좌천지로 여기고 다시 은행으로 돌아갈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2. 애초부터 증권사에서 시작한 직원들은 은행 출신 직원들이 낙하산으로 노른자위만 차지하는데 불만이 있다.

3. 게다가 한자와는 버블경제 시대에 사회에 나온 세대를 향한 버블 붕괴 이후 취업빙하기 세대 직원의 비판까지 받는다.

이런 3중의 갈등 속에 한자와 나오키는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케이도 준 池井戸潤 1963 ~ . 일본의 소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 번째 책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방영한 동명 드라마를 보고 나서 처음 알았다. 사카이 마사토, 우에토 아야, 카가와 테루유키같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당했으면 갚아준다. 두 배로 갚아준다.'같은 유명한 대사, 도게자같은 유행요소로 인기를 끈 선굵은 기업드라마로 재미있게 봤는데 한자와 나오키가 증권사로 좌천되면서 내용이 중간에 끝이 나 버린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 찾아 봤다. 원작이 있긴 한데 번역된 적도 없고 번역되는 것도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기쁘게도 인플루엔셜에서 1, 2권이 발매되더니 드디어 3권이 나왔다. 1, 2권도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이미 드라마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권은 다르다. 궁금했던 드라마의 뒷이야기를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 권째 책이지만 우리나라의 한자와 나오키 팬들에게는 가장 기다리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도 그렇다.



은행과 증권사의 갈등

한자와 나오키가 근무하는 도쿄센트럴 증권에 하드웨어 중심으로 발전한 '전뇌잡기집단'이 '도쿄스파이럴'에 대한 적대적 M&A를 의뢰한다. 하지만 의뢰는 은행의 증권영업부에서 가로채고 한자와 나오키는 곤란한 지경에 처한다. 한편, 검색엔진 중심으로 발전해 온 도쿄스파이럴의 사장은 우여곡절 끝에 도쿄센트럴 증권에 M&A에 대한 방어를 의뢰한다. 한자와의 부하직원인 모리야마 마사히로와 도쿄스파이럴의 사장인 세나 요스케가 학창시절 친한 친구였던 점이 인연이 되었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도쿄스파이럴을 매수하려는 전뇌잡기집단, 전뇌잡기집단에 대항하여 회사를 지키려는 도쿄스파이럴의 적대적 매수 전쟁. 그 중간에 도쿄스파이럴의 백기사로 위장한 '폭스'사가 자리잡아 회사의 명운을 건 싸움을 펼친다. 그 와중에 공교롭게도 은행 증원영업부는 전뇌잡기집단과 손을 잡고 도쿄센트럴증권은 도쿄스파이럴과 손을 잡는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서로 반대편에 서서 치열한 혈투를 펼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당연히 한자와가 근무하는 증권사는 은행으로부터 비난과 압력을 받지만 한자와는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한다.



사회파 기업소설의 걸작

드라마를 본 후 읽었던 1, 2권과는 달리 책으로 처음보는 《한자와 나오키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이다. 한자와 나오키의 이미지는 배우인 사카이 마사토의 이미지가 계속 떠오른다. 궁금했던 증권사 좌천 후 한자와 나오키의 활약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점이 역시 제일 좋다. 이전에 어느 정도 편법을 써가며 전략적인 승리를 가져왔던 한자와는 이제는 편법보다는 정공법에 의지한다. 좀더 정의로워졌다. 이케이도 준 소설의 특징인지 이전 작품도 그렇지만 진행이 시원시원하다. 쓸데없이 뜸을 들이는 기교로 독자를 짜증나게 하지 않는 점이 《한자와 나오키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의 가장 좋은 점이다. 미스테리 소설이나 추리소설을 보면 쓸데없이 대명사를 남발해서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거 없다.


《한자와 나오키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거품시대에 취업한 사람들과 취업빙하기에 취업한 사회 구성원의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데, 2010년대 이후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이 어려움을 겪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은 점이 많아 공감이 된다. 일본은 단카이 세대로부터 시작해서 거품경제 세대, 취업절벽시대를 거치며 세대간 갈등이 많은데, 우리나라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 386세대, 2차 베이비붐 세대를 거쳐 현재 사회에 진출하는 세대간 갈등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씁쓸하다.


올해 2/4분기에 한자와 나오키 시즌2가 방영된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다. 아마도 소설 3편과 4편이 주요 내용이 될 것 같다. 카가와 테루유키가 나오면 좋을 것 같은데..


★★★★☆

전작과 전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기관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파헤치되 중요한 고리에 있는 사람의 거짓을 밝혀 궁지로 몰아 넣은 후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선과 악의 구도가 굉장히 선명하고 전형적인 권선징악으로 시원하게 끝난다. 권선징악으로 끝이 나긴 하지만 유치하지는 않다. 한자와 나오키의 정보원이 너무 좋아서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정보를 손쉽게 얻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원래 기업이라는 것이 연줄이 중요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읽으면 크게 상관없다.


한자와 나오키는 이전보다 더 정의로워지고 전략적인 능력은 더 일취월장했다. 규모는 더 커지고 내용도 더 매끄러워졌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 강력하게 추천한다. 물론 3권을 읽기 전에 1, 2권을 미리 읽어야 한다. 이제 마지막 4권을 기다린다. 드라마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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