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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평점 :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경제는 발전할 것이고,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사람은 많아질 것이다. 세계는 평화로워질 것이고, 민주주의는 발전할 것이다. 정말일까?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를 쓴 두 저자는 미국을 예로 들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 책의 저자들은 2017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을 쓰면서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을 분석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사실 미국이 더 문제’라는 걸 새삼 깨달은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거꾸로 가는 미국 민주주의의 제도적인 문제점을 자세히 파헤친다.
우선 첫 두 장을 보자. 핵심을 추려보면 정치인들은 다시 승리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권력을 이양한다고 해서 재앙이 일어나지 않을 것라고 믿을 때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평화로운 권력이양이 어떤 조건하에 일어날 수 있는지 설명한다.
두 번째 핵심은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겉으로만 ‘충직해 보이는 민주주의자’를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책에 따르면, 충직한 민주주의자를 구별하는 방법은 쉽다. ‘자신과 관련된 세력’이 폭력, 반민주적일 때, 그들에 대한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 두 가지를 전제로 깔고 저자들은 어째서 현재 미국 모습이 민주주의에서 한참 벗어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설명한다. 미국 정치권은 패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겉으로만 민주주의자인 척 하는 정치인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이 비판은 미국 공화당에 그 화살이 겨누어져 있다.
저자들은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결의 원칙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미국의 제도들, 표가 적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든지, 주의 인구와 상관없이 두 명씩 배출하는 상원의원제도, 개리맨더링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지, 소수의견을 존중하는 제도로 찬사를 받아온 필리버스터가 어째서 문제인지 자세히 설명하다. 이 모든 것들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한 전략이 빚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다수결 제도를 설명할 때, ‘다수의 의견에 따르되,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하지만 소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말이 실제로 제도에 적용이 될 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의식이다. 소수 권력이 제도의 헛점을 제대로 이용하여 당연한 것을 무시하고 밀어붙일 때, 상식적으로 대응하는 다수가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
거칠게 얘기하면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원리는 다수결이다. 소수를 너무 배려해서 다수결을 포기하면, 소수가 다수를 꺾고 권력을 차지하게 된다. 우리가 미국정치를 예로 들어서 보여줄께.’라고 얘기한다.
세계에서 벌어진 정치사건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독자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해가 쉽다. 2024년 12월 3일 계엄으로부터 시작해서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정치적 격동기를 지나는 동안 이 책은 이해하기 쉽고 공감이 가는 책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의 불행이다. 원래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나 어필할 이 책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꼭 읽으면 좋을 필독서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어떻까? 이 책은 미국에서 2023년에 출판되었다. 저자들은 아마도 이제 이전과 같이 민주주의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하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2025년인 현재, 트럼프는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 민주주의는 더 망가지고 있는게 명백하다. 저자들은 지금 더 절망적인 심정으로 미국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복잡한 미국 정치사에 관심이 없다면 1장과 2장 만큼이라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현실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다수가 소수에게 휘둘리는지에 대한 일반론을 잘 설명해 놓았다. 거의 모든 문장이 밑줄을 긋고 머릿속에 담아둘 만하다.
두 저자는 이제 다음 책을 써야 할 것이다. 그들이 다음 책을 쓸 때,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당선이 되어 대통령이 된 것과, 계엄에 실패하고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탄핵당한 우리나라 대통령이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이 새로운 통찰력을 기대한다.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니 추천한다. 특히 1장과 2장은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어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