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10차선 간선도로를 차들이 쉼 없이 오가고 있었다. 퇴근 시간대라 인도에도 행인이 많았다. 진수는 인도 가장자리에 서서 누렇게 단풍이 들어가는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P8
나는 실수한 것일까. 좋아하는 작가 취향에도 모범답안이 있다니. 실기가 아니라 면접 때문에 불합격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 P13
약자가 말이 많은 게 아니었다. 강자가 말이 많았다. 정확히는, 강자에게 선택권이 있었다. 강자가 말을 하면 약자는 듣고 강자가 침묵하면 약자는 눈치를 살피며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 P21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늘 비슷비슷했다. 선생들은 수업을 했고 학생들은 수업을 듣거나 혹은 듣지 않았다. - P34
글을 쓰다 보면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내 곁을 떠나간 것들에 대해서. - P50
"지게에 어떤 물건 실었을 때가 제일 무거워?" "아무것도 안 실은," 한 박자 쉬고 나서. "빈 지게가 제일로 무겁다." 할아버지는 마저 대답했다. - P54
멀리 창밖이 소란스러웠다. 중고 가전제품 삽니다. 고장 난 제품 수거합니다. 확성기 소음을 이불처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그는 눈을 떴다. - P60
"미래가 궁금하면 과거를 잘 살펴보게. 과거는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젊은 양반이 사주를 너무 믿으면 안돼. 점쟁이도 인간이야. 부처도 불경을 잘못 읽을 때가 있는데 점쟁이라고 실수를 안할까?"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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