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가 오늘날 이 지경에 몰린 것은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 깨끗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 까닭이오. 나는 그가 한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소. - P201
"항우가 떠난 뒤에도 남아서 진채를 지키던 초나라 군사 2천여 명이 마침내 항복해 왔다고 합니다. 그들에 따르면 항왕은 강동병 8백여 기만 이끌고 남쪽으로 떠났다고 하는데, 회남왕의 진채를 돌파하면서 몇 십 기가 꺾였다고 하니, 항왕을 따라 빠져나간 것은 넉넉하게 잡아도 8백 기를 크게 넘지는 않을 것입니다." - P201
내가 군사를 일으켜 천하를 종횡한 지 어느덧 여덟 해가 되었다. 그동안 몸소 나가 싸우기를 일흔 번이 넘었으나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마침내는 천하의 패권을 움켜잡게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 갑자기 이처럼 고단한 지경에 빠진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해서이지 싸움을 못한 죄가 아니다. - P211
하늘이 이미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내가 구차하게 물을 건너 무얼 하겠는가? 지난날 나는 준총같은 강동의 자제 8천명과 이 물을 건너 서쪽으로 왔으나, 이제 한 사람도 나와 함께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 P217
5천의 한군을 단병으로 맞싸워 이기기에 패왕이 이끈 스물여섯은 너무 적었다. 곧 화톳불에 떨어진 눈송이처럼 하나 둘 자취 없이 스러지고 패왕 혼자만 남았다. - P219
"내가 들으니 한왕은 내 머리를 천금의 상과 만호의 식읍으로 사려 한다고 하였다. 이제 지난날 알고 지내던 정으로 그대에게 은덕을 베풀 터이니, 이 머리를 한왕에게 가지고 가서 상과 벼슬을 청하여라." 그러고는 들고 있던 보검의 날을 안쪽으로 돌려 스스로 목을 베었다. - P220
군명을 받드는 것은 신자된 이들의 도리이되, 이미 죽은 노공을 위해 10만 군민이 함께 목숨을 바친다면 옛적 미생이나 양공의 어리석은 신의보다 나을 게 무엇이겠소? - P234
"한신은 과인의 대장군으로 제나라를 평정한 뒤 광무산에서 궁지에 몰린 과인을 겁박하여 스스로 제왕이 되었소. 그러고도 외로운 과인을 돕지 않아 고릉의 낭패를 보게 하더니, 진성 동쪽의 땅을 받고서야 겨우 대군을 이끌고 과인에게로 왔소. 비록 해하에서 항우를 꺾은 공이 크다 하나 그 기군망상의 죄 또한 그 공에 못지않을 것이오. 이제라도 정도로 가서 그 죄를 물어야겠소!" - P236
그래도 한왕의 노기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닥쳐라! 아직도 네 죄를 깨달을 줄 모르니 너는 그 완악함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허나 해하에서 세운 공이 있어 목숨은 붙여 놓을 것이니, 너는 이제라도 네 죄를 깨달아 뉘우치고 하늘의 호생지덕을 누리도록 하라!" 그러고는 한신에게서 제왕(王)의 옥새를 거두어들인 뒤 그 군사들까지 모두 빼앗아 버렸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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