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 한왕 유방이 불시에 정도로 치고 들어 한신으로부터 제나라 왕위와 거느리고 있던 10여만 대군을 하루아침에 빼앗아간 일은 틀림없이 야속하고 서운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래잖아 한 고제가 된 유방의 배려로 그때 초나라로 옮겨 앉은 한신의 마음속에는 이미 작은 원망의 그늘도 남아 있지 않았다. - P13

한신은 장상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그 백정을 중위로 뽑아 썼다.
"하찮은 일에 목숨을 걸었지만 그것도 기백이라면 기백이다. 더군다나 네 그 기백이 과인을 격동시키고 분발케 했으니 어찌 그냥 넘길 일이겠느냐? 그 기백으로 이 하비 저잣거리를 잘 지켜 보아라." - P16

이려로 떠난 근시는 밤이 늦어서야 유자 차림을 한 종리매를 수레 안에 감춰 왕궁으로 데려왔다. 한신은 종리매를 미리 비워 둔 후원의 한 전각에 옮겨 숨게 하고 변화에 따라 대처하기로 했다. - P22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초나라를 들어 고제에게 맞서 볼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막상 군사를 일으키려 하고 보니 한신의 배포로는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 - P27

만약 대왕이 나를 잡아다 한제에게 바쳐 그 환심을 사고 싶다면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라도 기꺼이 죽어 줄 수 있소. 하지만 내가 죽은 다음에는 대왕도 곧 망해 죽게 될 것이오. - P29

"공이 한 말이 참되다 할지라도 종리매의 일은 용서할 수 없다. 짐의 엄명을 거스르고 몇 달이나 숨겨 주었으니, 비록 종리매와 사사로운 정이 깊었다 해도 남의 신하 된 자가 지킬 바른 도리가 아니다. 공을 초왕의 자리에서 열후(列侯)로 내친다."
고제는 그렇게 한신을 풀어 주며 고향 회음을 식읍으로 내리고 회음후(淮陰侯)로 삼았다. - P34

묵돌은 몰래 우는살을 만들어 자신이 이끄는 1만 기에게 그걸 쓰는 법을 가르쳤다.
"내가 이 화살을 쏘아 날리면 너희들도 모두 이 화살이 소리를 내며 날아가 맞는 곳으로 활을 쏘아야 한다. 누구든 이를 어기면 반드시 목을 벨 것이다!" - P43

고제에게는 뒷날 효혜제가 된 태자 유영이 있었다. 여후가 낳은 유영은 사람됨이 인자하였으나 유약한 데가 있어, 고제는 자기를 닮지 않았다고 하며 탐탁잖아 했다. 하지만 척 부인이 낳은 여의는 자기를 매우 닮았다고 여겨 누구보다 사랑했다. 때가 되면 태자 영을 폐출하고 여의를 대신 태자로 세우려 했다. - P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2020년 8월 4일 13시 3분
건조한 전자음이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울린다. 귀를 기울여 들으니 통화 연결음이었다. - P9

"근처에 무선기지국이 없어서 어차피 휴대폰을 못 쓰니까 상관없잖아. 나는 배터리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어. 이것도 기회니까 다들 디지털 디톡스나 하자고." - P23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역시 하나 뿐이다. 원래 인간은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서는 살 수 없는 생물이니까. - P27

저 여섯 명은 쓰레기 같은 것들이지만 저런 것들을 사랑하는 기특한 사람도 있다. 내가 여섯 명을 죽이면 아마 그들의 친구나 부모들은 나를 원망하고 내가 죽기를 바라겠지.
그러므로 나는 놈들의 최후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나서 죽을 것이다. - P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하가 그럭저럭 안정되자 제후 왕들과 장군, 대신들이 서로 의논하여 한왕 유방에게 청하였다.
"이제 함부로 패왕을 일컫던 큰 도적은 죽고 사해는 모두 우리 한나라에 귀복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어서 황제의 자리로 나가시어 여정의 분탕질 이래 끊어진 천하의 대통을 이으소서." - P251

한 5년 2월 갑오일, 한왕 유방이 범수 북쪽에서 단을 쌓아 하늘에 고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이가 곧 한나라 고제로서 시호로는 고조이다. - P252

"열후와 여러 장수들은 감히 짐에게 감추려 들지 말고 모두 그 진심을 털어놓으라. 묻노니, 짐이 천하를 얻게 된 까닭은 무엇이며, 항 씨가 천하를 잃게 된 까닭은 무엇이라 보는가?" - P258

한나라 제실이 장안으로 옮겨 앉으면서 논공행상을 둘러싼 쟁론이 다시 불붙었다. 낙양에 도읍하고 있을 때 시작되었으나 여러 신하들이 서로 공을 다투는 바람에 1년이 지나도록매듭짓지 못한 시비였다. - P283

사냥에서 짐승이나 토끼를 쫓아가 잡는 것은 사냥개지만, 개의 줄을 놓아주며 사냥감이 있는 곳을 일러 주는 것은 사냥꾼이다. 지금 그대들은 억센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달아 다만 짐승을 잡아 왔을 뿐이니 그 공로는 사냥개와 같다. 그러나 소하는 개의 줄을 놓아주며 짐승이 있는 곳을 가리켜 준 것과 같은일을 했으니 그 공로는 사냥꾼과 같다. - P284

소하의 위계를 으뜸으로 하면서 아울러 여러 특전을 내렸다. 칼을 차고 신발을 신은 채 전상에 오를 수 있고, 황제를 배알할 때도 걸음나비를 좁게 하여 총총히 걷지 않아도되는 것 따위였다. - P287

"폐하께서 미워하시는 줄 모두가 다 아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미운 사람이 누굽니까?"
장량이 대답 대신 그렇게 되물었다. 고제가 한번 멈춰 생각해보는 법도 없이 말했다.
"옹치와 묵은 원한이 가장 많소. 그놈은 일찍이 짐을 저버리고 떠나 여러 번 욕보이고 오래 애를 먹여 죽여 버리고 싶으나, 짐에게 돌아온 뒤로 세운 공이 많아 차마 그러지 못하고 참고 있는 중이오." - P2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스라엘의 기록문화는 아마도 기원전9~8세기부터 페니키아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이 틀림없다. - P17

《구약성서》의 <느헤미야>에 따르면,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율법학자 에즈라가 율법서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 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 P19

기원전 3세기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유대인 공동체는 어찌나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지,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유대인들의 ‘법‘을 희랍어로 번역하라고 요구했을 정도였다. - P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항우가 오늘날 이 지경에 몰린 것은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 깨끗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 까닭이오. 나는 그가 한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소. - P201

"항우가 떠난 뒤에도 남아서 진채를 지키던 초나라 군사 2천여 명이 마침내 항복해 왔다고 합니다. 그들에 따르면 항왕은 강동병 8백여 기만 이끌고 남쪽으로 떠났다고 하는데, 회남왕의 진채를 돌파하면서 몇 십 기가 꺾였다고 하니, 항왕을 따라 빠져나간 것은 넉넉하게 잡아도 8백 기를 크게 넘지는 않을 것입니다." - P201

내가 군사를 일으켜 천하를 종횡한 지 어느덧 여덟 해가 되었다. 그동안 몸소 나가 싸우기를 일흔 번이 넘었으나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마침내는 천하의 패권을 움켜잡게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 갑자기 이처럼 고단한 지경에 빠진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해서이지 싸움을 못한 죄가 아니다. - P211

하늘이 이미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내가 구차하게 물을 건너 무얼 하겠는가? 지난날 나는 준총같은 강동의 자제 8천명과 이 물을 건너 서쪽으로 왔으나, 이제 한 사람도 나와 함께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 P217

5천의 한군을 단병으로 맞싸워 이기기에 패왕이 이끈 스물여섯은 너무 적었다. 곧 화톳불에 떨어진 눈송이처럼 하나 둘 자취 없이 스러지고 패왕 혼자만 남았다. - P219

"내가 들으니 한왕은 내 머리를 천금의 상과 만호의 식읍으로 사려 한다고 하였다. 이제 지난날 알고 지내던 정으로 그대에게 은덕을 베풀 터이니, 이 머리를 한왕에게 가지고 가서 상과 벼슬을 청하여라."
그러고는 들고 있던 보검의 날을 안쪽으로 돌려 스스로 목을 베었다. - P220

군명을 받드는 것은 신자된 이들의 도리이되, 이미 죽은 노공을 위해 10만 군민이 함께 목숨을 바친다면 옛적 미생이나 양공의 어리석은 신의보다 나을 게 무엇이겠소? - P234

"한신은 과인의 대장군으로 제나라를 평정한 뒤 광무산에서 궁지에 몰린 과인을 겁박하여 스스로 제왕이 되었소. 그러고도 외로운 과인을 돕지 않아 고릉의 낭패를 보게 하더니, 진성 동쪽의 땅을 받고서야 겨우 대군을 이끌고 과인에게로 왔소. 비록 해하에서 항우를 꺾은 공이 크다 하나 그 기군망상의 죄 또한 그 공에 못지않을 것이오. 이제라도 정도로 가서 그 죄를 물어야겠소!" - P236

그래도 한왕의 노기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닥쳐라! 아직도 네 죄를 깨달을 줄 모르니 너는 그 완악함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허나 해하에서 세운 공이 있어 목숨은 붙여 놓을 것이니, 너는 이제라도 네 죄를 깨달아 뉘우치고 하늘의 호생지덕을 누리도록 하라!"
그러고는 한신에게서 제왕(王)의 옥새를 거두어들인 뒤 그 군사들까지 모두 빼앗아 버렸다. - P2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