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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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성하께서 돌아가셨다
급작스러운 일이다. 어제 저녁만 해도 문제없이 미사를 집전하셨던 교황 성하께서 돌아가셨다. 추기경단의 단장인 야코포 로멜리 추기경의 마음은 바빠졌다. 교황의 선종을 둘러썬 쓸데없는 추문을 차단하면서 슬픈 소식을 발표해야 한다. 그리고 전세계의 추기경들을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으로 불러 모아 추기경 중에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열고 주관해야 한다.

 

*콘클라베 Conclave : 라틴어.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 선출 의식을 말한다. 1268년 클레멘스 교황이 선종한 후 추기경들이 3년 동안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지 못하자 로마 시민들이 추기경들을 가두고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나오지 못하도록 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콘클라베의 절차는 교회법에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수석 추기경이 이 규정에 따라 진행한다. 교황의 후보는 따로 없이 모든 추기경들이 후보가 되고 한 표를 행사한다. 참석 추기경의 2/3 이상을 득표하면 교황에 선출된다. 원래의 뜻과는 달리 추기경들은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갇혀 지내지 않는다. 추기경들은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성 마르타의 집'이라는 숙소에 기거하고 투표할 때만 시스티나 성당으로 장소를 옮긴다. 투표는 무기명으로 진행되며, 투표용지는 확인 후 소각한다. 이 때 연기가 검은 색이면 교황이 선출되지 않은 것이고, 교황이 선출되면 흰 색 연기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알린다.

 

콘클라베는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로마 카톨릭의 가장 중요한 회의이며, 시스티나 성당에서 진행된다.


교회의 절대권력은 누구에게?
교황의 선종으로 전세계의 잠정적인 교황 후부돌인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려낸 소설이며, 콘클라베를 주관하는 추기경단의 단장인 로멜리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교회내에서 절대권력을 갖는 유력한 교황 후보는 네 명, 네 명의 추기경들은 때로는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교황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력을 행사한다. 거룩한 의지에 의해 선출될 것 같은 교황의 자리는 지역, 성향 등에 따라 이합집산이 거듭되는 추기경들에 의해 쉽사리 결정이 나지 않는다.


무난하게 진행될 것 같던 콘클라베는 회를 거듭할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로멜리 추기경이 내심 밀고 있던 벨리니 추기경은 예상외로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교황의 자리에서 멀어진다.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 것으로 예상됐으며, 두 차례의 투표에서 선두를 달리던 아데예미 추기경은 초보 신부시절 관계를 맺어 아이까지 낳은 수녀가 교황청에 나타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벨리니 추기경이 추천하고 나선 트랑블레 추기경은 전임 교황이 선종 직전에 모든 자격을 박탈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어 선뜻 밀기가 힘들다. 전통주의자이면서 과격하기까지 한 테데스코 추기경도 강력한 후보이지만 어떻게든 막고 싶다.


심지어 교황의 자리에 뜻이 없는 로멜리 추기경 자신에게도 표가 모이고, 교황이 선종 직전에 아무도 모르게 추기경으로 임명한 필리핀 마닐라의 대주교였던 베니테스 추기경이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서 몇 표 되지는 않지만 득표를 하면서 신임 교황의 자리가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교회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주님의 뜻은 누구에게 있을까? 콘클라베는 주님의 뜻을 올바르게 드러낼 수 있을까?

 

로버트 해리스 Robert Harris (1957 ~ ), 영국의 소설가. 대표작으로 로마사 3부작인 <임페리움>, <루스트룸>, <딕타로트>가 있다.


거룩한 의식, 비루한 인간
콘클라베 중에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 볼 수 있는 심각한 음모에 의한 극적인 반전이 발생하는 사건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같은 콘클라베를 소재로 삼은 소설인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는 교황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한 인물의 음모가 소설 내내 흐르고 있는 반면에 <콘클라베>는 그렇지 않다. 종교공동체에서 있을 수 있는 세속적인 사건들이 이어진다. 추기경들은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닌 각기 파벌의 손익을 생각하여 표를 계산하고 계속되는 투표 사이마다 유불리를 따져 나간다.


가장 거룩할 것 같은 카톨릭 교회 최고의 지도자들이 교회의 수장을 선출하면서 가장 세속적인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이 소설의 포인트. 이 과정에서 교회의 가장 은밀한 의식인 콘클라베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이다. 가장 중요한 교회의식을 치르면서 가장 거룩한 교회의 지도자들의 감추어진 인간적인 욕망이 드러나면서 도대체 하느님의 뜻이라는게 있긴 한 건지 의심이 든다. 그 와중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로멜리 추기경의 노력도 눈물겹다.

 

현재 카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 프란치스코. 266대 교황이다. 다섯 차례의 투표 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며, 소탈한 품성과 소외되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포용하면서 세계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결국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
인간의 욕망만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은 콘클라베, 소설의 9/10은 마치 교회를 비아냥거리는 것같이 진행된다. 정치적인 추기경단에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쫓는 자는 몇 명 되지 않는 것 같고, 콘클라베 도중에 생기는 여러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가운데 로멜리 추기경은 뜻하지 않게 가장 유력한 교황 후보로 발돋움한다. 책을 읽으면서 로멜리 추기경의 사심없는 신실한 마음을 훔쳐본 나로서는 로멜리 추기경을 응원하게 되고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단 한 사람 눈에 띄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 사람이 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인간의 생각은 하느님이 준비해 놓은 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보려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이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당한 길을 예비해 놓는다. 이 책의 결말 역시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끝을 맺는다.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시스티나 성당의 외관


★★★★
내용도 어렵지는 않고 쉽게 읽어 나갈 수 있는 반면 자극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뭔가 사건이 일어나는 건 책의 반 이상을 읽은 후다. 좀 심심한 느낌이 있지만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가려고 노력하는 로멜리의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교황이 되는 사람은 수긍할 만하고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사실 소설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교황이 되는 사람을 부각시키는데 애써 외면하기도 했던 것 같다. 전임 교황의 선종부터 콘클라베를 준비하는 과정이 그려지는 1/3까지는 콘 좀 심심하다. 본격적으로 투표가 시작되면서 재미있어진다. 재미를 느끼려면 좀 참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읽을수록 별점의 갯수가 늘어났다.


책을 읽으면서 콘클라베 의식과 카톨릭 사제들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다. 재미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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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이 악마야!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지막에 경악할 만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정말 그렇게 결말이 나도 괜찮은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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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범인 없는 살인의 밤 (개정판) -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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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마음이 닿으면 어떤 책이든 읽지만 일본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동안 읽었던 일본소설의 경험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일본소설은..
1. 자극적이고 참신한 소재로 금세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2. 호흡이 짧아서 읽기는 쉬운데 밀도가 낮다.
3. 중반까지는 흥미진진하지만 결말 부분이 허술하다.
4. 글로 쓴 만화책같다.
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참신한 소재와 짧은 호흡으로 중반까지는 몰입해서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중후반으로 가면 결말에 대한 부담감으로 무너져 버린다'고 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나의 일본소설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바꿔줄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장편이 아니네?
두번째로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이전에 읽은 책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상당히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소설이고 특이한 소재를 옴니버스식으로 잘 풀어내서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한 작품이 괜찮았으면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신뢰가 생기기 때문에 큰 고민없이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책을 골랐다. 책을 고를 때, 일부러 찾아서 보는 책이 아니면 정보를 미리 보지 않는 편이라 <범인없는 살인의 밤>도 어떤 정보도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단편소설집이었다. 첫 단편인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 날 때까지 몰랐다. 어.. 어.. 하는 순간 첫 번째 소설이 끝이 났다.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일곱 개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일곱 개의 살인사건을 다룬 단편소설집
정확히는 모두 살인사건은 아니고 일곱 개의 죽음을 다룬 단편소설집이다. 어느날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 살인사건도 있지만, 자살로 죽은 사람도 있고, 사고사로 죽은 사람도 있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범인들은 살인사실을 감추려고 하지만 결국, 형사(또는 형사 역할을 하는 지인)에 의해서 이해할 수 없었던 죽음의 미스테리가 밝혀진다. 모든 개별 단편의 구성이 그렇다. 죽음 → 미스테리 → 반전 결말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런 소설이라면 대체적으로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작가의 다른 작품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꽤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기 전에 기대가 컸다.
기대에 못 미친다


작가가 누구인지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예전에 멋진 아이디어로 소설을 쓰는 외국의 소설가의 단편집을 읽고서 굉장히 실망한 적이 있다. 장편소설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단편소설은 재미도 없었고 충격적인 반전을 주려고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확실히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같은 소설이라고 해도 작품을 구성하는 솜씨가 다른 것 같다. <범인없는 살인의 밤> 역시 그렇다.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에 범인 또는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모든 개별 소설의 결말이다. 하지만 너무 헐겁다.


이 책은..
1. 추리가 너무 허술하다. 허술하다기보다는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별로 추리가 없다. 그렇다고 추리소설이 아니라고 하기엔 모든 소설이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2. 반전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전개 내용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충격적인 반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중요한 정보들을 숨기고 마지막에 모든 정보를 보여 주며 결말을 짓는다.
3. 내용에 긴박감이 전혀 없다. 그냥 잔잔하다. 그렇다고 일부러 잔잔하게 쓴 것 같지도 않다.

 

읽는 내내 <명탐정 코난>이 오버랩됐다.


★★☆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페이지도 굉장히 빠르게 넘어간다. 이 책의 굉장히 큰 장점이다. 평소에 책 읽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큰 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과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다른 작품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 같다. <명탐정 코난>의 재미없는 에피소드를 보는 느낌이다. <소년탐정 김전일>이 아니라 <명탐정 코난>이라고 하는 건 두 만화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프로필을 살펴 봤는데, 엄청난 다작을 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좋아서 하나 떠오르면 순식간에 한 권의 책을 써내는 작가일 것이다. 다작을 하는 작가는 개별 작품의 편차가 큰 경우가 많은데,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수작은 아닌 것 같다. 맨 처음에 적어 놓은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일본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지는 못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미리 평을 읽어 본 후 잘 골라서 읽어야 할 것 같다.


가볍게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읽을 사람이라면 말릴 생각은 없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재미는 별로 없다.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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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 이은선 옮김 / 홍익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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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고 다시 읽는 사랑에 대한 고전
처음 이 책을 읽은 것은 중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교회에서 인기있었던 주일학교 선생님이 읽고 있던 책을 옆에서 보고 나도 따라서 읽었다. 그 분에게서 그 책을 빌렸는지, 아니면 한 권 사서 봤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첫 장부터 자신의 이름을 농담거리로 던지고서는 사랑과 교육에 대해 얘기를 하던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는 책을 통해서 인생을 얘기해 준 최초의 선생님이었다. 몇달동안 끼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이름이 '팰리스 레오버스카글리아'가 아니었어? '레오 부스깔리아'라고 적혀 있었던 책도 있었는데..)


오래 전에 읽었고, 그 당시에 읽었던 책이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던 책인지 기억도 나지 않던 와중에 새로운 개정판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어 다시 읽고 싶어졌다. 예민하고 다소 반항적이었던 나를 감동시키고 삶에 대해,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했던 책은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이 지난 나에게 여전히 유효할까? 기억이 나지 않는 세세한 내용들은 여전히 나에게 감동적일까?

 

레오 버스카글리아 Leo Buscaglia 1924 ~ 1998. 미국의 교육학자이자 교수. 오랜만에 이 분의 사진을 보니 옛 생각이 나서 좀 뭉클했다.


'사랑'을 주제로 한 강연을 옮겨놓은 책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인이다. 이 책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있었던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사랑학 강의를 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 강의는 아마도 교양과목의 하나였을 테니까 내용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번역도 매끄러워져서 번역된 책을 읽을 때의 생경한 느낌도 거의 없다. (아마도 내가 처음 읽었던 책은 번역자가 달랐을 것 같다.)


교육학자인 저자는 교육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녹여내서 강의를 진행한다. 풍부한 실례 중에는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게 되는 에피소드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도 충격적인 에피소드는 첫 강의에서 열심히 저자의 강의를 듣고 있던 여학생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강의를 듣고, 공감의 눈빛을 보내던 수강생이 어느날부터인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궁금해서 학생처에 확인을 해 보니 이 여학생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 '사랑학' 강의인데 말이다.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는 이 사건을 통해 지식을 쌓기만 하고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교육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삶도 배워야 하고, 사랑도 배워야 하고, 배움도 배워야 한다
교육자로서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당시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아이들의 개성을 해치고 창의성을 죽여 버리는 교육 행태를 꼽는다. 어른들이 바람직하다고 규정해 놓은 평균치의 아이들을 찍어내기 위해 아이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데 대해서 경고를 한다. 사랑과 이해가 없는 교육이 얼마나 위험한지 저자의 경험과 다른 교육자들의 실례를 통해서 설득해 나간다.


이탈리아 출신인 저자의 가족은 굉장히 스킨십이 좋았던 것 같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심화된 개인주의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불편해 하고 심지어는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고립의 시대에 저자는 끈임없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낯선 사람과도 관계를 맺고 가족 간의 관계도 발전시켜야 한다. 미국인의 일반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당시에 반향을 일으켰을 것 같다.

 


이 안에 다 들어 있다.
오랜만에 읽은 책이고 많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릴 때 읽고 성인이 되어 읽어 보니 이 책은 나에게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내가 사람들과 하는 많은 대화가 사실은 이 책에서 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답은 네 안에 있다
사랑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위와 같은 말들은 내가 평소에 굉장히 자주 하는 말인데 아마도 이 책에서 처음 읽었고 기억해서 많이 했던 말이다. 그만큼 나의 삶과 함께 해왔던 책이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나 조언을 할 때 많이 쓰는 말들이다. 이런 말이 그 전에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린 왕자>도 이 책을 통해서 읽었고, SF소설, 추리소설, 무협소설만 줄창 읽어대던 내가 독서의 다른 방향을 잡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된 책이 이 책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생각하니 고맙다.

 


세월은 흘렀지만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빠졌다.

이 책은 1982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198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스테디셀러이며, 미국 사람들이 '내 인생의 책'으로 꼽는 책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렇다. 이미 수십년 전에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자신의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배우는 가운데 충실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데 대한 조언을 했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과연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외침을 듣고 발전했을까? 레오 버스카글리아가 지금 시대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오히려 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강화되고, 자유주의적 경제체제 때문에 돈이 최고가 되어 버린 사회, 테러가 더 활발해지고, 미국에서는 총기사건으로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회를 보면 어쩌면 더 절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이 나를 참 아프게 했다.

 


어릴 때 읽은 책이라서 추억보정 때문에 실제보다 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는데, 읽고 보니 오히려 어릴 때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더 많이 공감하고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누구라도 읽어 보면 도움이 되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중고생부터 성인 독자까지 모두 쉽고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다.


단지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내가 기억할 때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는 두 권으로 되어 있었는데(어쩌면 같은 저자의 다른 제목의 책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은 분량이 적고 기억나는 몇가지 에피소드가 빠진 것으로 보아서 두 권을 한 권으로 묶으면서 일부 내용을 빼고 편집해서 엮은게 아닌가 싶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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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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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모르고 읽으면 더 재미있을테니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책을 훔쳐 달아난 소년, 책 속에 빠져 들다
바스티안은 뚱뚱하고 허약하고 공부도 못하는 열한살 소년, 잘하는 것이라고는 상상을 하는 것밖에 없다. 비오는 날, 여느때와 같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피해 눈에 띄는 고서점에 들어 간다.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서점 주인은 바스티안에게 짜증을 내고, 그러던 중 전화가 와서 서점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바스티안은 서점 주인이 읽고 있던 책에 마음이 끌리고 순간적으로 책을 들고 서점을 나와 버린다.책들 들고 학교로 간 바스티안은 수업에 들어가기 싫었고, 퀘퀘한 학교의 창고에 틀어 박혀 그 책, <끝없는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다.

 

미하엘 엔데 Michael Andreas Helmuth Ende (1929 ~ 1995) 독일. 대표작으로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가 있다. 미하엘 엔데가 <끝없는 이야기>를 쓰기 전에 <모모>를 한국어로 처음 번역한 번역가 차경아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끝없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고서점 주인인 코레안더는 차경아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코리아에서 따왔을 것이라고 한다.


위기에 빠진 환상세계
환상세계는 위험에 빠졌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퍼지면서 환상세계를 잡아 먹고 있어서 세계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상세계의 주인인 '어린 여왕'이 병에 걸렸고, 병을 고치치 못하면 환상 세계는 없어질 운명이다. 어린 여왕은 카이론에게 환상세계를 구할 영웅을 찾으라는 명을 내리고, 카이론은 위기를 해결할 유일한 존재인 초록피부 종족의 아르테유를 찾아 간다. 용맹한 아트레유는 카이론에게서 어린 여왕의 힘의 증표인 아우린을 받아 들고, 환상세계를 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모르는 채로 모험을 떠난다.


환상세계의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며 모험을 하던 아트레유는 죽음의 산맥에서 행운의 용인 푸후르를 만나 친구가 되어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 아트레유는 여행 중에 만난 남쪽신탁소에서 우유랄라를 만나 위기의 원인을 알게 된다. 환상세계가 사라지는 이유는 어린 여왕이 이름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고, 환상세계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누군가 어린 여왕에게 새 이름을 지어 줘야 한다. 하지만 환상세계의 존재는 아무도 어린 여왕의 이름을 새로 지어줄 수 없고, 다른 세계의 사람이 환상세계로 넘어와서 이름을 지어 줘야 한다. 아트레유는 구원자를 만나기 위해서 환상세계의 경계선을 찾아 나서지만 바람 거인들로부터 환상의 세계에는 경계선이 없다는 말을 듣고 절망하게 된다. 결국 어린 여왕을 찾아가 환상세계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는 보고를 한다.

 

가죽 장정이 멋진 <끝없는 이야기>.


구원자 바스티안 환상세계 속으로..
어린 여왕은 아트레유를 보고를 받았지만 아트레유는 이해할 수 말을 한다. 이미 구원자는 어린 여왕의 이름을 알고 있고, 단지 그 구원자가 어린 여왕의 이름을 불러 주기만 하면 된다. 아트레유가 한 모험은 구원자를 찾기 위한 모험이 아니라 구원자가 아트레유의 모험을 따라 가면서 어린 여왕에게 데려 오는 임무였다고 한다. 이쯤에서 책을 읽고 있던 바스티안은 구원자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어린 여왕이 등장하자마자 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은 '달아이', 구원자는 책을 읽고 있는 바스티안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린 여왕은 아트레유와 대화를 하면서 끊임없이 바스티안에게 이름을 불러 줄 것을 요청하지만, 바스티안은 믿을 수도 없고,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용기도 없어서 어린 여왕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어린 여왕은 어쩔 수 없이 '방랑산의 노인'을 찾아가는 마지막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방랑산의 노인은 환상세계의 모든 이야기를 적고 있는 존재인데, 어린 여왕의 부탁을 받아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처음에 바스티안은 방랑산의 새로 쓰기 시작하는 책이 무슨 내용인지 몰랐지만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서 그 내용이 책을 읽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친구들을 피하기 위해 고서점에 들어간 순간부터 책을 읽고 있는 바스티안, 그리고 아트레유의 모험을 거쳐 어린 여왕은 다시 방랑산의 노인을 찾아 가고, 노인은 또 처음부터 책을 쓰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마지막이 처음이 되어 <끝없는 이야기>가 끝도없이 이어진다. 바스티안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외친다.

 


달아이야! 내가 갈께!

 

판타지 세계라면 빠질 수 없는 용. <끝없는 이야기>에서 하얀 용인 푸후르는 아트레유의 친구로서 아트레유와 함께 모험을 한다.


매력적으로 연결된 현실과 판타지
현실세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어린애가 있다. 우연히 읽게 된 책 속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세계와 여왕과 영웅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아이는 매력적인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그 세계의 창조자가 되고, 영웅이자 주인이 된다. 대략적인 내용만 보면 전형적인 이세계 판타지물이다. 하지만 <끝없는 이야기>는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를 이어가는 방법이 굉장히 독특하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매력적인 환상 세계에 푹 빠져 읽긴 하지만 왜 바스티안이 그 책을 읽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조금씩 현실 세계의 일들이 책의 내용에 영향을 끼치고 아트레유는 거울 속에서 바스티안의 모습을 보기까지 한다. 급기야 책 속의 어린 여왕은 빨리 바스티안에게 오라고 독촉하기까지 한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미하엘 엔데가 쳐놓은 <끝없는 이야기>의 덫을 알게 되고, 끝없이 이야기에 빨려 들어 가게 된다. 줄거리를 모르고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내용이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바스티안이 스스로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며 구원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망설이는 장면에서 답답함이 느껴진다. 이름 한 번 부르면 되는데 그걸 하지 않아 어린 여왕이 방랑산의 노인을 찾아가게 만들고 환상세계가 끝없이 순환되는 장면에서는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바스티안이 눈물을 흘리며 어린 여왕의 이름을 부를 때,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아마도 어릴 때 이 책을 읽을 때 나도 어린 여왕의 이름을 따라 외치지 않았을까.

 

<끝없는 이야기>는 <Neverending Story>라는 제목으로 1984년에 영화로 만들어 졌다. 같은 제목의 주제가도 굉장히 유명했다.


동화같은 전반부, 그 이상을 담고 있는 후반부
<끝없는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에서는 바스티안이 책을 손에 넣고 학교 창고에서 책을 읽는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위기에 빠진 환상세계를 구하려는 아트레유를 바스티안의 시선으로 쫓아간다. 아트레유의 모험을 따라가면서 작가가 만들어낸 기기묘묘한 환상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어린 여왕, 갖가지 환상세계의 생물들, 판타지라면 빠질 수 없는 용 등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생물들과 이야기가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펼쳐진다.


동화같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바스티안이 책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후반부에 이르러 분위기가 많이 바뀐다. 책을 읽으면서 환상세계에 깊은 애정을 느낀 바스티안은 그 속의 인물들의 바람을 듣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영웅이 되고 칭송을 받는다. 이제 임무를 마친 주인공은 위인이 되어 역사에 남고 멋지게 현실세계로 돌아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끝없는 이야기>는 그런 예상을 비틀어 버린다. 바스티안은 칭송을 받을수록 교만에 빠지고, 환상세계 속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트레유와 사이가 멀어진다. 교만해질대로 교만해진 바스티안은 크사이데의 꼬임에 빠져 황제가 되기 위한 대관식을 거행하다 아트레유의 공격을 받아 제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환상 세계에서 바라는 것을 하나씩 이룰 때마다 현실 세계를 잊게 되고, 늙은 황제들의 도시에 가서는 바스티안 이전에 환상 세계를 만들어 냈던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까지 보게 된다.


전반부가 재미를 선사한다면, 후반부에서는 깊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보여 준다. 환상에 사로잡혀 몰두하게 되면 현실을 잊게 된다고 경고한다. 운이 좋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위치를 차지했을 때 교만하면 어떤 결과를 빚게 되는지도 보여 준다. 자신을 진정으로 걱정해 주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잘 살펴보라고 충고하고, 달콤한 말만을 일삼는 사람을 곁에 두고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당할 수 있는 처지에 대해서도 보여 준다. 멋지게 금의환향을 할 바스티안을 기대했는데, 점점 나쁜 길로 빠지는 바스티안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노골적으로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충고를 하지만, 이미 소설 속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유치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외에도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가 굉장히 많다. 어릴 적의 꿈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꿈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지는 어릴 적 상상의 세계, 장자의 호접몽과도 연관이 있어 보이는 구성, 우로보로스, 카이론, 스핑크스 등 곳곳에 등장하는 신화와 상징체계 등도 함께 생각하면서 읽으면 의외로 지적인 흥미도 느낄 수 있다.

 

우로보로스 Uroboros. 우로보로스는 원래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으로 그려지며 영원한 회귀와 끊임없는 재생을 상징한다. <끝없는 이야기>에서는 희고 검은 두 마리의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책의 표지와 어린 여왕의 펜던트인 아우린에 새겨져 있다. 마지막에 바스티안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통로의 역할도 함으로써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의 역할을 한다.


어릴 때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감동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하도 어릴 때 읽었기 때문에 대략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만 세세한 내용은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라는 것, 주인공이 책 속의 세계를 다시 만들어 낸다는 것, 나중에는 어떤 문제가 생긴다는 것 정도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기억 속의 <끝없는 이야기>는 재미있는 동화책이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다시 읽어 보려고 책을 샀는데, 무척 두껍다.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데다가 양장본이라서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워서 한참을 읽지 않고 놔두었었는데, 다시 읽으니 정말 재미있다. 간혹 추억보정으로 재미없는 책을 재미있다고 기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거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어린 아이 때 읽으면 정말 좋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트레유와 함께 모험을 하고, 바스티안과 함께 환상 세계를 만들어 내는 신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좋은 조언도 얻을 수 있다. 어른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 후반부에서 바스티안의 잘못된 선택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책이 두꺼워서 한 번 읽으려면 큰 맘먹고 달려 들어야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손에 잡으면 페이지는 금세 넘어가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끝없는이야기,미하엘엔데,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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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 (양장) - 최고의 수학 난제가 남긴 최고의 수학소설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풀빛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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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안에든 골칫덩어리가 한 명쯤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집안에서는 페트로스 삼촌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P. 20

 


알고 보니 위대한 수학자였던 삼촌에게 속다
페트로스 삼촌은 그야말로 집안의 골칫덩어리일 뿐이다. 아버지와 아나기로스 삼촌은 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 받아 착실히 가정을 꾸리면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 있다. 페트로스 삼촌은 결혼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으면서 체스나 두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페트로스 삼촌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나'는 삼촌에게서 실패한 인생의 흔적을 찾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페트로스 삼촌은 다른 형제들에 비교해 보면 훨씬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삼촌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어느날 집으로 걸려 온 전화 한 통은 삼촌이 쓸모없는 실패한 인생이 아닐 것이라는 나의 생각에 확신을 심어 주게 된다. 삼촌은 무려 수학자였다. 그것도 뮌헨대학의 '전' 해석학 교수였다. 게다가 어릴 때는 천재로 소문이 자자한 자랑스런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었다고 한다. 갑작스레 치밀어 오르는 존경심. '나'는 삼촌에 대한 동경으로 수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을 했지만 삼촌은 찬성하지 않는다. 결국 삼촌은 나에게 간단해 보이는 증명을 하나 성공하면 수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찬성하고 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걸 보여봐라.


삼촌은 나에게 3개월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 너무나도 간단해 보였다. 모르는 말은 하나도 없고, 겨우 딱 한 줄짜리 증명문제였다. 하지만 의기양양했던 나는 증명에 실패하고 말았다. 삼촌과의 약속에 따라 수학을 포기하고 경제학과에 진학을 했다. 삼촌의 마각은 대학 3학년 때 드러났다.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새미는 수학의 천재였고, 삼촌이 내어 준 문제의 답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새미는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분노했다. 삼촌은 나에게 수백년 동안 그 어떤 수학자들도 풀지 못한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라고 했던 것이다.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Apostolos Doxiadis (1953 ~ ) 호주 브리즈번에서 태어나 그리스에서 활동하는 작가. 수학자. 영화감독.


수학사상 양대 악마.. 골드바흐와 페르마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은 수학에 관한 소설이다. 제목에 나와 있듯이 수학사상 최악의 난제라고 할 수 있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친 수학자에 관한 소설이다. 수학의 난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20세기의 시작점에는 '힐베르트의 23가지 문제'가 있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는 '밀레니엄 7대난제'가 있다. 그외에도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한 수많은 문제들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최악의 문제를 '골드바흐의 추측'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고 생각한다.


다른 문제들은 문제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다. 리만가설이라든지, 호지 추측이라든지 문제를 한참 쳐다보고 있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골드바흐의 추측'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다르다. 중학생만 되어도 문제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쉽기 때문에 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한 번쯤은 해답을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때로부터 지옥문이 열린다. 책의 한 컨에 페르마가 끄적여 놓은 '페르마의 대정리'를 앤드류 와일즈가 풀 때까지는 무려 350여년이 걸렸다. 앤드류 와일즈는 페르마가 알지도 못했고 상상도 못할 정도로 복잡한 수식을 써가면서 겨우겨우 풀었다.


'골드바흐의 추측'도 마찬가지다. 이해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손쉽게 달려들지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보다도 더 증명이 어렵다. 단 한 줄로 표현된 문제다. 하지만 저 속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수론에서 소수와 관련된 문제들은 모두 난제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소수의 규칙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연수의 무한한 성질까지 다루어야 하는 것 같다. 400경자리까지의 소수는 '골드바흐의 추측'이 사실임이 밝혀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증명은 다른 문제다. 소수의 규칙성을 찾지 못한다면(또는 소수에 규칙성 따위가 원래 없다면), 아마도 '골드바흐의 추측'은 영원히 증명되지 못할 것 같다. 더불어 소수를 다룬 '리만 가설'도 마찬가지로 증명되지 않을 것 같다.

 

소수는 1과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자연수를 말한다. 아직까지 어떤 규칙성도 발견되지 않았다.


순진한 수학자. 사랑을 되찾기 위해 '골드바흐의 추측'에 도전하다
순진한 조카를 속인 페트로스는 항의하러 온 조카에게 자신의 삶을 들려 준다.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차린 할아버지는 페트로스를 유명한 수학자였던 카라테오도리 교수에게 맡겼다. 어떤 사람은 때때로 뜬금없는 이유로 인생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이졸데는 카라테오도리 교수의 딸이었고 페트로스 삼촌에게 뜬금없는 이유는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이졸데였다. 겨우 몇개월간의 밀회를 즐긴 후 페트로스에게 큰 흔적만을 남기고 이졸데는 근사한 중위와 결혼을 한다. 페트로스는 이졸데의 사랑을 되찾기를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위대한 수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페트로스가 생각하는 위대한 수학자의 조건은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를 밟아 나가기 위해서 애써 노력하다 보면 원래의 목표는 잊고 중간단계에 매몰되기도 한다. 페트로스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졸데는 잊고 문제 자체에 매몰되어 버린다. 물론 쉽게 풀릴 리가 없다. 자신이 '골드바흐의 추측'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연구자들이 협업을 제안할 수 있고, 중간 과정을 발표하면 다른 연구자들이 거기서 힌트를 얻어서 먼저 증명방법을 알아낼 수도 있다. 다른 수학자가 먼저 증명해 낼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페트로스는 연구사실을 숨기고 고립된 상태에서 연구를 하기로 결심한다.

 

'골드바흐의 추측'은 1742년, 골드바흐가 오일러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함께 희대의 수학 낚시 문제.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수학자에게 닥친 두 번의 치명타
무려 10년, 혼자서 연구를 하던 페트로스는 결국 자신이 그동안 발견해 낸 정리를 모아 '분할 문제에 대한 몇 가지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쓰고 발표를 준비한다. 혼자서 연구하는데 너무 지쳤고, 이 논문만으로도 충분히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립된 상태에서 연구를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페트로스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이미 2년 전에 다른 젊은 수학자가 발표해서 수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후였다. 페트로스가 받을 수 있었던 영광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페트로스가 받은 첫번째 치명타였다.


페트로스가 받은 두 번째 치명타는 괴델의 '불완정성의 정리'였다. 평생을 '골드바흐의 추측'의 증명에 매달렸던 페트로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괴델은 '정수론에서 증명이 불가능한 참인 명제가 있으며, 그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미리 알 수 없다'고 증명을 해 버린 것이다. 페트로스는 앨런 튜링으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괴델을 찾아가 거칠게 다그치지만 이미 논리적으로 증명된 사실에 대해 따져 물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증명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써왔던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짝수 n을 다른 두 소수의 합으로 표시하는 방법을 표시한 그래프. 뭔가 규칙성이 있어 보인다.


깨알같이 등장하는 수학사의 천재들
이 소설은 수학의 난제인 '골드바흐의 추측'을 풀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천재 무명 수학자에 대한 얘기이면서 수학사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페트로스는 뛰어난 수학자였기 때문에 유명한 수학자들과 이런저런 교류를 하기도 하고 다른 수학자들의 연구성과에 대한 소식을 듣기도 한다. 당대 영국의 최고의 수학자였던 고드프리 하디의 강의를 듣는다. 하디와 많은 연구를 함께 했던 존 리틀우드와도 교류가 있었고, 요절한 인도 최고의 천재 수학자인 라마누잔과는 절친한 친구였다. 암호학의 대가이자 실질적으로 컴퓨터의 이론을 만들어낸 앨런 튜링은 독일어 논문 번역의 도움을 받고자 페트로스를 찾아 온다. '불완정성의 정리'를 발표한 괴델도 등장한다. 수학의 역사에 길이 남을 천재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그들과 교류하고 논쟁을 벌이는 모습은 수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느낄 것이다.

 

쿠르트 괴델 Kurt Gödel (1906 ~ 1978) 체코 출신의 수학자. '불완전성의 원리'를 증명함으로써 수학체계의 완전성을 증명하려고 했던 힐베르트의 걔획을 산산조각내 버렸다.


풀었다고 믿고 싶다
페트로스는 조카의 충동질에 낚여서 조카에게 자신이 증명하려 했던 방법을 조카에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힌트를 얻고 다시 한 번 증명에 열을 올린다. 어느날 갑자기 전화가 걸려 오고 페트로스는 수학자와 함께 빨리 자신의 집으로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급하게 의사와 함께 페트로스를 찾은 조카는 웃는 모습으로 영원히 잠든 삼촌의 시신을 맞이하게 된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말이 있다. 역사에 의하면 페트로스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지 못했다. 설사 증명을 했더라도 발표를 하지 못하고 영원히 역사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왠지 페트로스가 증명했다고 믿고 싶다. 비록 세상에 알리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믿어 주는 것이 평생을 골드바흐와 싸워 온 수학자에 대한 경의의 표시일 것 같다.


수학에 관한 소설이라 수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꼭 수학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이라는 절대무림의 왕좌를 향해 나아가는 재야의 고수의 일생을 다루는 것 같은 긴박감이 넘친다. 가상의 인물을 수학사에 절묘하게 끼워넣은 점도 굉장히 재미있고, 책의 내용이 실제 인물의 생애를 다룬 것같은 현실감을 준다. 이 책을 읽고 비슷한 책을 읽고 싶다면 '사이먼 싱'이 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류 와일드는 페트리스의 현실 버전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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