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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 이은선 옮김 / 홍익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읽고 다시 읽는 사랑에 대한 고전
처음 이 책을 읽은 것은 중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교회에서 인기있었던 주일학교 선생님이 읽고 있던 책을 옆에서 보고 나도 따라서 읽었다. 그 분에게서 그 책을 빌렸는지, 아니면 한 권 사서 봤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첫 장부터 자신의 이름을 농담거리로 던지고서는 사랑과 교육에 대해 얘기를 하던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는 책을 통해서 인생을 얘기해 준 최초의 선생님이었다. 몇달동안 끼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이름이 '팰리스 레오버스카글리아'가 아니었어? '레오 부스깔리아'라고 적혀 있었던 책도 있었는데..)
오래 전에 읽었고, 그 당시에 읽었던 책이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던 책인지 기억도 나지 않던 와중에 새로운 개정판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어 다시 읽고 싶어졌다. 예민하고 다소 반항적이었던 나를 감동시키고 삶에 대해,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했던 책은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이 지난 나에게 여전히 유효할까? 기억이 나지 않는 세세한 내용들은 여전히 나에게 감동적일까?
레오 버스카글리아 Leo Buscaglia 1924 ~ 1998. 미국의 교육학자이자 교수. 오랜만에 이 분의 사진을 보니 옛 생각이 나서 좀 뭉클했다.
'사랑'을 주제로 한 강연을 옮겨놓은 책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인이다. 이 책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있었던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사랑학 강의를 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 강의는 아마도 교양과목의 하나였을 테니까 내용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번역도 매끄러워져서 번역된 책을 읽을 때의 생경한 느낌도 거의 없다. (아마도 내가 처음 읽었던 책은 번역자가 달랐을 것 같다.)
교육학자인 저자는 교육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녹여내서 강의를 진행한다. 풍부한 실례 중에는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게 되는 에피소드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도 충격적인 에피소드는 첫 강의에서 열심히 저자의 강의를 듣고 있던 여학생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강의를 듣고, 공감의 눈빛을 보내던 수강생이 어느날부터인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궁금해서 학생처에 확인을 해 보니 이 여학생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 '사랑학' 강의인데 말이다.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는 이 사건을 통해 지식을 쌓기만 하고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교육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삶도 배워야 하고, 사랑도 배워야 하고, 배움도 배워야 한다
교육자로서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당시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아이들의 개성을 해치고 창의성을 죽여 버리는 교육 행태를 꼽는다. 어른들이 바람직하다고 규정해 놓은 평균치의 아이들을 찍어내기 위해 아이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데 대해서 경고를 한다. 사랑과 이해가 없는 교육이 얼마나 위험한지 저자의 경험과 다른 교육자들의 실례를 통해서 설득해 나간다.
이탈리아 출신인 저자의 가족은 굉장히 스킨십이 좋았던 것 같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심화된 개인주의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불편해 하고 심지어는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고립의 시대에 저자는 끈임없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낯선 사람과도 관계를 맺고 가족 간의 관계도 발전시켜야 한다. 미국인의 일반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당시에 반향을 일으켰을 것 같다.
이 안에 다 들어 있다.
오랜만에 읽은 책이고 많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릴 때 읽고 성인이 되어 읽어 보니 이 책은 나에게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내가 사람들과 하는 많은 대화가 사실은 이 책에서 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답은 네 안에 있다
사랑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위와 같은 말들은 내가 평소에 굉장히 자주 하는 말인데 아마도 이 책에서 처음 읽었고 기억해서 많이 했던 말이다. 그만큼 나의 삶과 함께 해왔던 책이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나 조언을 할 때 많이 쓰는 말들이다. 이런 말이 그 전에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린 왕자>도 이 책을 통해서 읽었고, SF소설, 추리소설, 무협소설만 줄창 읽어대던 내가 독서의 다른 방향을 잡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된 책이 이 책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생각하니 고맙다.
세월은 흘렀지만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빠졌다.
이 책은 1982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198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스테디셀러이며, 미국 사람들이 '내 인생의 책'으로 꼽는 책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렇다. 이미 수십년 전에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자신의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배우는 가운데 충실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데 대한 조언을 했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과연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외침을 듣고 발전했을까? 레오 버스카글리아가 지금 시대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오히려 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강화되고, 자유주의적 경제체제 때문에 돈이 최고가 되어 버린 사회, 테러가 더 활발해지고, 미국에서는 총기사건으로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회를 보면 어쩌면 더 절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이 나를 참 아프게 했다.
어릴 때 읽은 책이라서 추억보정 때문에 실제보다 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는데, 읽고 보니 오히려 어릴 때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더 많이 공감하고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누구라도 읽어 보면 도움이 되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중고생부터 성인 독자까지 모두 쉽고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다.
단지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내가 기억할 때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는 두 권으로 되어 있었는데(어쩌면 같은 저자의 다른 제목의 책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은 분량이 적고 기억나는 몇가지 에피소드가 빠진 것으로 보아서 두 권을 한 권으로 묶으면서 일부 내용을 빼고 편집해서 엮은게 아닌가 싶다.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