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동 태비는 아주 고약하니 빨리 소상을 내려버려요. 그 자리에다 진 군사의 소상을 놓아두세요! 국성야와 함께 있어야죠." - P82
대만 사람들은 모두 동태비를 뼛속 깊이 증오했다. 반면 진영화 군사는 땅을 개간하고 학교를 세웠으며, 사회적인 폐단을 없애고 몸소 애민을 실천해 다들 그를 ‘대만의 제갈공명‘이라 불렀다. 정극상이 국정을 운영할 때는 어느 누구도 감히 나서서 동 태비를 비방하지 못하고, 진영화를 찬양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위소보가동 태비의 소상을 없애고 대신 진영화의 소상을 모시라 하자 다들 통쾌해 했다. 그리고 위소보가 국성야의 소상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니 백성들은 너무나 감격했다. - P82
위소보는 갑옷에다 완전무장을 갖췄지만 여전히 시시덕거리는 것이, 전혀 북벌대장군다운 위엄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들은 그가 배운게 없는 시정잡배 출신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나 대사를 망쳐 국체에 큰 손상을 입힐까 봐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는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측근 중의 측근이니 누가 감히 불만을 내색할 수 있겠는가? 왕공대신들은 겉으로 억지웃음을 자아내며 속으로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 P119
위소보가 그에게 물었다. "정말 항복하지 않을 테냐?" 톨부친은 당당하게 소리쳤다. "죽어도 항복 안 한다!" 위소보가 말했다. "좋아! 그럼 널 야크사성으로 돌려보내주마!" 그는 정말 홍조에게 병사 500명을 이끌고 톨부친을 야크사성으로 데려다주라고 명했다. - P143
이제 러시아 병사들은 더 이상 눈치 볼 것도 없이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벌떼처럼 밖으로 몰려나왔다. "항복! 항복!" 그 고함 소리가 천지간을 진동시켰다. 위소보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 기분이 너무 좋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뭐라고 막 언성을 높여 명을 내리기는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청군의 장수들은 전투경력이 많아 ‘명을 받들겠습니다!‘를 연발하며 스스로 알아서 항복한 러시아 병사들을 정리하고 성안으로 들어가 무기를 압수하는 것부터 제반 일을 질서정연하게 처리했다. 대원수인 위소보의 호령과는 전혀 상관없이 일이 척척 진행되었다. - P170
"쌍아가 그 지도를 맞추느라 얼마나 애를 많이 썼어. 우린 드디어 녹정산에 왔고, 황상이 날 녹정공에 봉했으니 이 성을 나한테 맡길 게 분명해. 산 아래 무수한 보물이 묻혀 있으니 천천히 다 캐내자고. 그럼 이 위소보도 이름을 위다보로 고쳐야 될 거야." 쌍아가 말했다. "상공은 이미 많은 금은보화를 모았으니 평생 쓰고도 남을 거예요. 더 많은 보화가 생겨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니 그냥 위소보로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P177
위소보는 생각을 굴렸다. ‘황상은 나더러 러시아와 가능한 한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도록 협상을 하라고 했는데.. 이 두 녀석을 시켜 소피아 공주에게 편지를 보내봐야겠군.‘ 그가 넌지시 말했다. "공주에게 전해줄 편지를 써야 하는데, 난 러시아의 지렁이 글자를 쓸 줄 모르니 대신 좀 써주겠소?" - P181
선교사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건 말도 안 돼. 세상에 러시아 남자 말고는 중국 남자만 있나?‘ 그는 이런 무례한 말을 공주에게 전할 수 없어 다른 공손한 말로 바꿔썼다. 이 중국 장군은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고친 부분은 라틴어로 썼다. 다 쓰고 나니 스스로도 흡족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 P184
위소보는 두 사람의 놀란 표정에서 자신의 공간이 주효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난 러시아 공주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데 어떻게 그 스…무슨 시시한 나라와 결맹을 하겠소? 우리 중국 황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만약 러시아가 성의를 갖고 우리랑 우호관계를 맺는다면 내가 상경해서 그 스... 무슨 나라의 사신들을 바로 쫓아버리겠소!" - P205
표도르 역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중국 흠차대신이 착각하고 있는 거요. 여긴 러시아 사황의 영지요 네르친스크요새는 러시아 사람이 쌓은 겁니다." 양국의 국경선을 확정 짓는 것 또한 이번 협상의 주요 안건 가운데 하나였다. 양국의 흠차대신은 정식으로 협상 탁자에 앉기도 전에, 만나자마자 네 땅이냐 내 땅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 P214
"우리 중국에선 ‘녹정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의 작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표도르가 대답했다. "각하는 녹정공입니다. 우리 러시아어로 말하자면 ‘고조략 공작’이 되겠죠." 위소보는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그렇다면 지금 날 완전히 무시하고 깔아뭉개겠다는 게 아닙니까? 내가 녹정공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의 녹정산을 차지하겠다면, 나더러 녹정공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까?" - P218
위소보가 웃으며 말했다. "북경에서 ‘나몰라시발’까지 가려면 석 달 넘게 걸리니까, 너무 멀어서 그 ‘나몰라시발‘은 중국 땅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모스크바에서 네르친스크까지 오는 데 석 달 넘게 걸렸으니 결코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없죠. 그러니 네르친스크는 당연히 러시아 땅이 아닙니다." 표도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 반박할 말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 P222
위소보가 설명했다. "그게 국경선을 정하는 가장 공정한 방법이에요. 우리가 마주치는 그 지점을 국경선으로 정하는 거죠. 그곳은 북경에서 한 달 반이 걸리고, 모스크바에서도 한 달 반이 걸리니, 그쪽도 손해보지 않고, 우리도 밑지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싸워서 한 판을 이겼는데, 그것도 없었던 일로 할 태니, 따지고 보면 러시아가 즉을 본 셈이 되겠죠." - P230
‘러시아 사람은 야만스럽고 막무가내라는데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아. 그들과 점잖게 정식으로 협상을 하면 손해 보기 십상일 거야. 황상께서 위 공작을 협상 대표로 보낸 것은 역시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거야. 저런 야만인들은 바로 학식이 없고 시정잡배같은 위 공작이 상대해야만 이에는 이, 억지에는 억지... 비로소 제압할 수가 있겠어.‘ - P232
그다음 날도 협상은 이어졌고 나흘째 되는 날 비로소 ‘네르친스크 조약‘의 여섯 조항이 체결됐다. 위소보는 색액도와 동국강의 설명을 듣고 조약의 내용이 중국에 매우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중국은 강희의 유시보다도 더 많은 땅을 확보했다. 조약은 모두 네 부로 작성되었다. 한 부는 중국어로, 한 부는 러시아어로, 그리고 두 부는 라틴어로 작성했다. 만약 양국의 조약문구에서 뜻이 좀 어긋난 경우에는 라틴어 조약문을 기준으로 삼기로했다. - P265
"위소보! 이 배은망덕한 개똥잡배 같은 녀석아!"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라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체구가 우람한 사내가 지붕 위에서 길 한가운데로 뛰어내리며 계속 욕을 했다. "위소보! 이런 난도질을 해서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놈! 멀쩡한 한인이 만주 오랑캐 황제 놈한테 투항해서 앞잡이 노릇을 하다니! 형제들을 죽이고 사부님까지 죽여 공작이고 후작이 돼서 부귀영화를 누리니 개 눈깔에 보이는 게 없냐? 이런 시부랄 놈! 네놈의 몸뚱어리를 십팔 번 찔러도 한이 풀리지 않을 거다! 어서 이리 썩 나오지 못해! 상판대기나 한번 보자!" 사내는 웃통을 완전히 벗고 있는데, 가슴에 숭숭 털이 나 있었다. 짙은 눈썹에 눈은 부리부리하고 흉광이 이글거렸다. 다름 아닌 바로 왕년에 위소보를 경성으로 데려온 그 모십팔이었다. - P275
‘어떤 놈이 황상한테 쓸데없이 내가 진근남을 해쳤다고 진언한 거지? 물론 날 위하고 황상께 충성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겠지만, 그 바람에 난… 파렴치한 놈이 돼버렸으니 앞으로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하나?‘ 그는 분하고 답답하고 조급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그만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모 대형! 소전, 쌍아. 난 정말… 정말 사부님을 해치지 않았어!" - P280
어디 그뿐인가! 위소보가 사람을 시켜 형장에다 차일을 치면서, 이미 인사불성이 된 풍석범을 뒤쪽에 숨겨놓은 사실 또한 알 리가 없었다. 모십팔의 신원을 다시 확인하고 차일 밖으로 끌어내는 순간, 위소보는 춘화가 수놓인 여러 장의 손수건을 꺼내 다륭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친위병들과 미리 짜놓은 대로 모십팔과 풍석범을 바꿔치기한 것이다. - P316
생각할수록 머리가 어지러웠다. 전에는 입궐하면 강희와 시시덕거리며 아주 재밌게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이 흘러 황제는 갈수록 더 위엄이 있고… 이젠 말도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강희는 더 이상 다정한 사이가 아니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무원대장군이고 일등 녹정공이고.… 다 무의미하고 재미도 없었다. 차라리 어릴 때 여춘원에서 즐겁게 놀던 시절이 그리웠다. - P3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