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책을 왜 읽지?
일년이면 대략 70~80 권의 책을 읽는다. 아예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많은 양일수도 있지만 정말 많이 읽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리 많지도 않다. 무엇보다 스스로 만족할만큼 읽지 않고 있어서 항상 더 많이 읽을 것을 다짐하곤 한다. 읽는 책의 종류도 잡다하고 구태여 가리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대로 읽는 편이다. 최근에는 주로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책을 왜 읽는지 물어 보면 둘 중에 하나다. 지식을 넓히는 것이 첫 번째고, 재미를 위해서가 두 번째다.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 읽는 책들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재미'라고 한다면 결국 내가 책을 읽는 궁극적인 목표는 '재미'이다. 나에게 재미있는 책은 좋은 책이고 재미없는 책은 나쁜 책이다.
내가 구태여 책에 대한 감상 앞에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으면서 내 독서 행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봤기 때문이다.
앤드루 포터 Andrew Porter 1972 ~ . 미국 소설가. 영문학 전공. 예술학 석사. 현재 트리니티 대학 문예창작과 조교수.
우연히 읽은 소설
전혀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아마도 읽을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했을 책이다. 출근을 하면서 읽고 있던 책을 두고 집을 나섰고,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알라딘도서관에서 눈에 띄는대로 책을 골랐다. 책을 고를 때는 양자론이나 상대성이론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목을 보고 예상한 바와는 달리 소설책이었다. 게다가 어지간해서는 잘 읽으려고 하지 않는 단편 모음집. 별로 끌리지 않았으나 이왕 빌린 것,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소설인 <구멍>은 12년 전 3.65m 구멍에 빠져 죽은 친구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써 놓았다. 두 번째는 <코요테>, 어머니와 점점 멀어져 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아술>은 자녀가 없는 부부의 집에 하숙하는 교환학생인 고등학생에 대한 감정... 책을 읽으면서 슬슬 당황하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그런데 뭐? 이게 도대체 어떤 얘기지? 어쩌라는 거야?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앨범을 펼쳐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듯한 1인칭 시점으로 쓴 소설이다. 단편 소설 열 개가 실려 있다.
오래된 사진첩을 펼치고..
열 편의 소설은 모두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어떤 순간의 기억과 감정을 1인칭의 화자가 '담담한' 필치로 써내려가고 있다. 마치 앨범의 한 부분을 펼쳐 놓고 '맞아. 이 때 이랬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열 명 있는 것 같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별난 경험, 혹은 나의 감정을 격동시키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 경험들은 한 사람의 인생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고 오랫동안 기억속에 각인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경험한 것,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친구들과 얘기할 때 아무리 내가 열심히 얘기해도 상대방의 반응이 시큰둥할 때가 있다. 은근 부아가 치밀 수도 있지만 대체로 얘기하는 사람의 전달하는 기술이 떨어질 수도 있고, 상대방은 아예 관심도 없고 흥미도 못 느끼는 얘기를 할 때 그렇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으면서 내가 책을 읽는 방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다.
너무 담담하다
나에게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딱 그런 느낌이다. 소설 열 개의 소재는 하나하나가 굉장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읽는 동안은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냥 일상생활에서 벌어진 별거 아닌 일처럼 담담하게 느껴진다.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담담하게 써낸다'는 건 어떻게 들으면 굉장히 고급스럽고 감성적인 것 같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사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친구의 죽음, 서른 살 차이가 나는 연인, 강간사건이 담담한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작가인 앤드루 포터의 글쓰는 솜씨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얘기를 재미있게 쓸 줄 모르는 작가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책을 잘못 읽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일년 내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앞에 있는 두 편을 읽고 책에 대한 서평을 좀 찾아 봤는데 대부분 호평 일색이다. 어떤 SNS 친구는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았다고 한다. 이쯤 되니 나의 독해력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재미없게 읽었던 책이 몇 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차피 읽는 건 나니까..
음악이든 미술작품이든 문학이든 예술작품을 볼 때 전문가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 보고 싶고 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싶다. 대체로 일치하는 편이지만 심하게 다를 때는 아무래도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이런 나의 불안감이 가장 컸던 소설이다. 그리고 나에게 문학에 대한 감성이 부족하고 말초적인 재미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 봤다. 하지만 어차피 판단은 내가 하는 것. 수많은 호평 속에 그렇지 않은 의견 하나쯤 있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지루하고 재미없다. 단편소절집이면 한 편씩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몰입이 되지 않는다. 담담한 필치 속에 감성을 건드리는 것도 모르겠고 공감도 되지 않는다. 그냥 사건의 한 순간을 재미없게 담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서평을 읽던 도중에 이 책이 원래 출판되었다가 절판되고 소설가 김영하가 소설을 읽어 주는 팟캐스트에서 낭동한 후 재출간되어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미디어셀러 아닌가? 사실은 재미없는 소설인데 '김영하'가 읽어 줬기 때문에 뜬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아니면 명작의 재발견이었는데 내가 몰랐던 걸까?
★★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특히 나처럼 책 속에 면면히 흐르는 섬세한 감정을 잡아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사실 그런 섬세한 감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없는 책을 많은 사람들의 호평에 압도되어 재미있다고 착각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