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분은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순간 나는 질끈 눈을 감았고, 안도한 나머지 소리를 지를 뻔했다. 39시간 동안이나 한숨도 못 자고 대기하면서 나는 불확실성 쪽을 두려움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외과의사들로부터 크리스가 위독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거의 희망을 버리기 직전까지 갔을 정도였다. - P9

"미리 확인해 둘 점이 하나 있습니다. 고객님의 보험 약관은 새로운 몸이 성장하는 동안에는 의료 기관의 인가를 받은 생명 유지 수단 중에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을 쓴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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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보험사 입장에서는 뇌만 살려두고 싶다는 거군요. 그 방법이 가장 싸게 먹힌다는 이유로?" - P12

"이 과학기술은 누구에게든 완벽하게 정상적인 삶을 제공합니다. 병세가 아무리 위중해도,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부상이 아무리 심각해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들고, 가용 자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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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어떤 식으로든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현 정부는 그게 누구인지를 정하는 최선의 방법은 시장 원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 P18

의사들이 내 자궁에서 뇌를 꺼냈을 때는 적어도 안도감을 느꼈어야 마땅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감동도 없었고 희미한 불신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시련이 너무나도 오래 계속된 탓에 이토록 쉽게 끝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트라우마도 없었고, 거창한 의식도 없었다. - P33

지금 우리 모습을 보고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뇌를 마치 자기 아이인 것처럼 사랑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 P37

시드니 도심의 보행자 전용 도로인 마틴 플레이스는 점심시간에 몰려나온 인파로 평소처럼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을 초조하게 훑어보았다. 그 시간에 거의 가까워졌는데도 앨리슨은 아직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다. 1시 27분 14초. 설마 나는 이토록 중요한 일을 잘못 기록한 것일까? - P43

앨리슨이 말했다. "자, 가자. 음식은 한참 뒤에나 나올지도 모르지만, 기다리면서 서로 할 얘기도 많잖아. 모든 얘길 모조리 읽고 온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넌 정말 따분해할 게 뻔하니까." - P45

시간 역전 은하를 발견했다는 첸의 발표에 대해 학자들은 만장일치에 가깝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첸이 그 은하의 좌표를 공표하는 것을 거부했으므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 P47

대량의 진통제와 진정제를 투여받으면서 프리아는 내게 말했다.
"제임스, 난 이런 좆같은 경험의 진상을 절대 과거의 나에게 털어놓지 않을 거야. 얼마나 끔찍했는지도 절대 얘기 안 해. 그걸 읽으면 어린 나는 죽도록 두려워할 게 뻔하니까 말이야. 너도 그러는 편이 나을걸."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틀림없이 그러마 하고 맹세했다. - P54

2004년 9월, 12살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나는 거의 지속적으로 행복한 상태에 돌입했다.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학교 수업 중에는 지루한 것들도 물론 있었지만, 성적은 충분히 좋았기 때문에 마음 내킬 때마다 백일몽에 빠져들어도 아무 문제도 없었다. - P75

루엔케팔린은 고통이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긴급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분비되는 진통 물질이 아니었고, 상처가 나을 때까지 동물의 지각을 마비시키는 마취 효과도 없었다. 실은 이 물질은 행복감을 표시하는 주요 수단이며, 행동이나 상황이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에 분비된다. 이 단순한 메시지는 다른 수많은 뇌내 활동에 의해서도 조율되며, 그 결과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긍정적인 감정의 팔레트가 만들어진다. 루엔케팔린이 목표 뉴런과 결합하는 것은 다른 신경전달물질들이 만들어 내는 연쇄의 첫 번째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이런 복잡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의 단순하고 명명백백한 사실을 증언할 수 있다. 루엔케팔린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 P78

종양이 루엔케팔린의 농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였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뉴런 수용체의 수가 줄어들었거나, 헤로인 중독자가 수용체들을 차단하는 자연산 억제 분자를 만들어 냄으로써 마약에 대해 둔감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몸이 ‘루엔케팔린 내성‘을 갖추기에 이르렀는지 궁금했다. - P87

마침내 신경과 병동에 입원했을 무렵에는 MRI 스캔으로 내 뇌에서 죽은 부분들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기에 발견했다고 해도 그 진행을 막을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나의 두개골 안으로 손을 뻗쳐서 행복의 메커니즘을 부활시킬 힘을 가진 사람은 이제 없다는 점이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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