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기업하기 어렵다고 하죠? 에잉, 무슨 그런 말씀을. 한국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어디있다구요. 일례를 들어볼까요? 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수많은 기업들이 부정과 부패로 도산했지만 지금까지 감옥에 계신 CEO가 있으신가요? 없죠?  

97년 외환위기 때문에 세금으로 쏟아부은 공적자금이 150조가 넘는데, 그 중 환수된 것은 100조도 안된다는 것도 알고 계시나요? 게다가 정부는 매년 50조원 가까이를 공적자금 이자를 갚는데 쓰고 있다구요! 

기업이 잘 될때는 다 CEO가 경영을 잘해서고, 잘 안될때는 다 국제경기 탓이니 우리나라 CEO는 정말 천하무적인가봐요. CEO라는 것이 사실은, 회사의 소유자가 아니라 운영의 대행자라는 것은 알고 계시죠? 애들만 성적이 나쁘면 나머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CEO도 경영을 잘못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구요. 그게 상식이잖아요.  

그래서 말이죠,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통큰 독서'를 제안드려요. 반기업정서니 하면서 마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올 여름엔 도대체 '기업을 운영하는 목표는 무엇이고, 기업은 어떻게 생존하는가'를 잘 생각하시길 바래요.

  

 이 책은, '삼성'의 회장님께 드립니다. 비자금에, 불법상속에, 중소기업 특허권 편취에, 노동조합 탄압에, 노동자 산재 사망 무시에... 그러면서도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시는 그 분껜, 일단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은숟가락을 물고 태어났으면, 최소한 말이라도 '은값어치'는 나가게 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상식이 담긴 책을 권하는 것이에요.

   

 이 책은 기업이 '시장'의 유일한 행위자라고 믿는 자칭, 시장주의자 CEO께 권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시장이란 결국은 인간이 이루는 사회적 장치의 하나일 뿐이며, 그것 자체로는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바래요. 

특히 통큰 '정 회장'님께, 아르바이트생으로 통닭을 만들어 싸게 파는 것과 일가족의 생계를 걸고 통닭을 파는 것에 대해, 단순히 '가격'만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왜 요즘 젊은이들의 얼굴이 어두울까요? 회사를 둘러보면, 신입 사원들의 얼굴에서 피곤과 함께 절망감도 발견하시나요? 

그렇다면 이 책 한번 권합니다. 우리는 너무 착한 양과 같은 국민을 원합니다. CEO 분들은 착한 양과 같은 사원들을 원하겠죠. 하지만 분노하지 않으면 가치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CEO님이 계시는 회사가 단순히 물건을 팔아 버티는 그저 그런 회사가 아니라면, 이 시대의 '분노코드'를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 기네요. 하지만 이 책은 쉽게 읽을 수 있어요. 환경책 하면 너무 좋은 말만 하고 그래서, '이런 비관론자들'하거나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야'라며 투덜대셨죠? 

그래서 이 책을 권합니다. <성장의 한계>라는 환경분야 명저를 대중용으로 쉽게 써놓은 책인데요, 새로운 생각의 방법이나 사업구상을 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정책 툴이 제시됩니다. 

어짜피 우리 기업도 지구위의 '지장물'에 불과하다면, 지구를 치료하는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죠?

 

   

요즘, 희망버스 때문에 짜증나세요? 사람 짜르는 것 무서우면 기업 못한다고요?  

그래서 이 책을 권합니다. CEO분들이 보는 보고서에 숫자로 밖에는 나오지 않는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숫자를 줄이기 이전에 숫자 뒤의 사람을 보시길 바라는 마음에 권해드리는 책으로, CEO분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희망버스 촉매자, 고공 크레인의 김진숙 지도위원이 쓴 것이에요. 

같이 망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같이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CEO의 최고 덕목이 되면 안될까요? 솔직히 인간적으로 말이죠. 

 

써놓은 글을 보니, 참 무리한 부탁들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경영의 기본은 원칙과 유연함 아니겠어요? 소태와 같이 쓴 말도 씹어서 삼킬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수백, 수천명의 운명을 좌우하는 CEO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그 정도는 되야 우리 CEO 앞에 '존경'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지 않겠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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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의 시대 - 생존을 위한 통찰과 해법
기디언 래치먼 지음, 안세민 옮김 / 아카이브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불안의 시대다. 그것은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느끼고 있다. 오히려 불안이 만성화되서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있어, 불안하지 않았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말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제로섬의 미래: 불안의 시대에 미국 파워'라는 원제를 '불안의 시대'로 번역하여 붙인 것이나, '우리가 낙관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부제는 호구력이 높은 표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우리'가 굳이 여기서 살고 있는 우리와 한울타리에 있는 것인가가 헤깔리기는 한다. 그렇기 때문이 이 책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불안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대략 80년간의 제국을 이끌어온 아메리카니즘의 불안감을 분석한 책으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불안은 모두가 공감하더라도 그 해법에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8년부터 1991년까지의 전환의 시대, 1991년부터 2008년까지의 확신의 시대, 2008년 이후의 불안의 시대라는 저자의 구분법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저자는 이 세 시기를 관통하는 정치사상으로 민주적 평화라는 이론을 제시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기술이 동시에 발전한다"(11쪽)는 것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민주적 평화라는 정치사상의 붕괴가 2008년 이후, 즉 불안의 시대의 출발점이라는 것인데, 이런 시각은 저자 특유의 아메리카니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각 시기의 주요한 행위자로 사실상, 중국, EU, 미국을 제시하는데 이런 거대 세력 중심의 균형이론은 미국의 국제정치를 이끄는 현실주의적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1979년 영국의 대처리즘, 1991년 소련의 붕괴, 1991년 미국에 의한 걸프전, 1999년 시애틀의 반세계화 시위, 2001년 911테러라는 주요한 연표상의 특이점을 중심으로 하는 서술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세력 균형을 근거로 하는 국제 정치경제의 이해방식에는 선뜻 동의가 안된다. 

이 책의 원제인 제로섬의 미래라는 것은 결국, 과거 확신의 시대가 보여주었던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장치로 이해된다. 그래서 길고긴 여정 끝에 도착하는 24장의 제목이 '세계를 구원하라'이며,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저자가 오바마 대통령에서 품는 희망의 말을 듣는 순간 아득한 메시아주의가 떠오른다. [끝]

   
 

 대공황이 일어난 지 80년이 지났다. 강하고 성공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미국의 모습이 안정과 번영을 약속하는 세계를 위한 최선의 희망이다.(374쪽)

 
   

 PS: 결정적인 악덕에도 불구하고, 마치 꼴라주 처럼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엮는 저자의 수려한 구성은 매우 설득력 있다. 또한 저널리스트로서의 저자 약력이 보여주듯이 쉽게 읽히는 글의 매력 또한 만만치 않다. 다만, 서구 중심의 주류 경제지 기자출신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인식적 한계는, 오히려 불룸버그의 보도를 신주단지 모시듯하는 우리의 금융 전문가들을 떠올린다면 그리 낯선 풍경만은 아니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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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데리다 평전 - 순수함을 열망한 한 유령의 이야기
제이슨 포웰 지음, 박현정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1. '그라마톨로지'도 안 읽고 평전을 읽다 

이 책의 저자는 영미권 학자이면서, 데리다의 입장에서 그를 둘러싼 논란을 적극 해명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오는 표현이 바로 '그라마톨로지' 등 데리다 저작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데리다의 철학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 역시 데리다의 저작은 후기 저작으로 분류되는 '마르크스의 유령등' 이후의 몇 권이 고작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초기부터 후기까지 '해체'의 일관된 철학적 전략에 충실했던 데리다의 여정에 끝 부분만 훔쳐본 셈이다. 그런데, 평전이라니...  

이 평전은 인물에 대한 스케치가 아니라, 저작의 통사를 중심에 놓은 '데리다 철학사'에 가깝다. 인물은 지적 행보에 가려지고, 남는 것은 무시무시한 지적인 여행기인 셈이다. 

2. 데리다는 '무엇'인가 

   
 

 그러나 앞선 철학적 조류에 맞추어 넣는 방식으로는 데리다의 독특한 읽기를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그때 그들은 데리다의 윤리학, 순수함과 최상의 것을 향한 그의 열망, 또는 미래나 존재자들의 본질에 대한 통찰, 그리고 민족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관심이나 그가 과거와 맺었던 관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24쪽)

 
   

 저자는 그동안 '데리다'에 대한 영미권 학자들의 읽었던 데리다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평전을 쓰는데, 그것은 위에 인용한 글의 정반대를 실현함으로서 그렇다. 그래서, 연대기적으로 데리다가 작성한 문헌들을 따라가며 이를 씨줄과 날줄 삼아 데리다라는 하나의 철학적 초상을 직조해낸다. 

그런데, 이런 저자의 데리다 읽기는 이 땅에서 나는 나에게 '낯선 대상'에 대한 '사용 설명서'를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나름의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느나 그것을 전혀 자각할 수 없었던 자로서 데리다는 그저 정체불명의 '물건'일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2중, 3중의 복잡한 문턱을 가지고 있다.  

3. 불필요한 변명과 충실한 문헌조사 

이 책에서 드러나는 데리다는 냉정한 해체의 마법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고정된 것들의 진동을 드러내는 윤리적 교사의 모습이다. 정신분석학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평생의 주제인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문제의식은 모두 열려있어 보이는 것의 닫힘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데리다가 '원하는 방식'이었을 뿐 그것이 데리다 철학의 원본인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데리다 철학이 해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문학이론가들에게 열정적으로 받아들여진 일이나, 나치의 유태인학살을 거부하는 신수정주의적 경향의 근원에 해체주의가 영향을 미친 것과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에코는 해체가 일종의 잡종적 산물(218쪽)이라고 말하고,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나 유럽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던 데리다 철학이 잡종 문화의 상징인 미국에서는 하나의 학파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해체주의 경향의 이론가인 폴 드만이 사실상 반유대적 경향을 지니고 있었던 '필화사건'에서 데리다가 드 만을 옹호한 것, 그리고 이스라엘에서의 강연에서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옹호한 일 등은 데리다 철학의 이론적 자장 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데리다의 미국 문화에 대한 편향은 분명히 그의 정치적 이해관계와의 상관성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부분적으로 220쪽에 이런 측면이 나와있기는 하다). 

그런데, 저자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좀더 완벽한 데리다의 초상인 듯하다. 즉, 상반된 지향으로 기워진 알록달록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의 색깔이 채도를 달리하는 그림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의도가 너무 강했다. 그런 점이 못내 앞서 언급한 데리다의 정치적 태도에 대한 저자의 이해관계가 껄끄로웠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이런 좁은 의미에서의 개인사적 의미가 아니라 여전히 제한적으로 알려진 데리다 철학의 문헌사적 치밀함에 있다. 솔직히 처음 듣는 책이나 논문의 제목과 그 내용의 요약을 읽는 것은 참 지루하고 어려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의 80년대 대표작인 '우편 엽서'가 일본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를 통해 역수출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 보면, 이런 치밀한 평전의 출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4. 기준제작자로서 철학자 

   
  '철학자'는 우리의 철학적 유산들이 아직까지 우세한 사법적이고 정치적인 체계의 구조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너무나 명백히 변화를 겪고 있는 이 관계에 대해 분석하고 그리하여 실용적이고 실효성 있는 결론들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일 것이다. '철학자'는 '이해하기'와 '정당화'를 구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455쪽 재인용)  
   

 어쩌면 이 책은 데리다의 철학하기에 대한 주석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이해에 구애받을 필요가 과연 있을까 싶다. 하지만, 위에서 인용된 데리다의 철학자에 대한 정의는 왠지 매력적이다. 이해하기와 정당화를 구분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해체의 윤리학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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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이... 어찌 할 수 없는 자신감이라니..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이택광>

 

 자신의 책에, 1문형의 제목을 다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런데, 이택광이란 사람 꽤나 용감하다. 물론 이런 저런 신문지면에 실린 글을 보거나 조정환과 가진 촛불논쟁을 기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박수를 쳐줄만한 자신감이라 생각한다. 

대중연예물에 대한 가쉽성 글이 문화평론이라고 칭해지며 쏟아지는 요즘, 저자는 문화비평을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될까.

 

 

 

 

 2. 새로운 사회를 원하는가, 그럼 혁신하라 <사회혁신이란 무엇인가, 제프 멀건>

 

  

저자는 영국의 사회재단인 영파운데이션의 설립자이다. 그리고 '데모스'라는 싱크탱크를  창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재단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 모델과 유사하다.  

사회혁신의 한계를 짚기엔 아직 섣부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엔 내놓고 비판할 만한 사회혁신의 사례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회혁신의 메뉴얼은 곱씹어 보고 실험해볼 것을 권한다.  

(희망제작소가 비리로 구속된 박주원 안산시장의 '실용적 지방자치론'을 발간한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 될만한 사건이지만 말이다)

 

  3. 바보야, 문제는 자본주의야! <휴버먼의 자본론, 레오 휴버먼> 

 

 조금만 바꾸면 괜잖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성장과 후퇴가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모든 것이 돈으로 결정되는 자본주의는 잠깐 고장이 났을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휴버먼의 생각은 다르다. 위기는 바로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는 언제나 약자들이 본다고 지적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순식간에 수만명의 실업자를 양산한 대우그룹의 김우중씨는 여전히 해외 곳곳에 별장을 가지고 있고, 한보그룹의 정태수씨도 여전히 떵떵 거린다.  

문제는 자본주의인 셈인데, 바꿀 용기가 없다면 최소한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라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휴버먼의 자본론은 어찌되었던 우리 삶을 가로지르는 자본주의의 속사정을 속 시원히 말해 줄 것도 같다.

 

   4. 회색조의 근대풍경이 선명해진다 <이상과 모던뽀이들, 장석주> 

 

 많은 책과 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우리의 근대를 다룬 책들을 보면 설렌다. 여전히 20세기 초반은 서구의 연표로 기억되고, 우리의 근대는 그렇게 회색조다. 

장석주 선생이야 워낙 글쟁이로 문명이 높고, 이상을 둘러싼 군상들의 풍경이 그려진다니 모처럼 경성을 주름잡던 모던뽀이의 세계를 들여다 볼까나.

 

 

 

  

5. 나와 영심이 사이.... 때론 그녀가 우월하다 <동물과 인간사이, 프리데리케 랑게> 

 

개를 키운다. 조그만 마르티즈 한마디. 그녀를 나는 영심이라 부른다. 그녀는 누군가 오는 소리를 나보다 먼저 듣고, 나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 아부를 떨 줄 알며 무엇보다 별 영양가 없는 나같은 이를 멸시할 줄 안다.  

물론 이 책은 이런 애완견 키우기따위와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동물로서 인간은 어째서 인간다운가라는 질문이 궁금하다면 볼 만하다고 본다. 즉 동물은 동물로서의 경로를 가지고 발전해온 것이며,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경로를 가지고 발전해온 것이다.  

실험으로서 이런 점들을 규명했다고 하니, 우리 영심이를 이해하는데 도움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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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 아우또노미아총서 27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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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 대단하다. 길이 때문만이 아니다. 하나의 입론을 상호모순적이지 않게, 그리고 의례 기발표글 묶음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동어반복없이 써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것은 조정환이라는 저자의 '윤리성'에 돌려져야겠다. 이 책은 매우 체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그저 이 책을 위해 쓴 글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높은 유기성을 지닌 글들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여기서의 재미는 절대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아니라, '생각을 달리 해볼 수 있는 재미'를 말한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자본의 구성으로 포획되어 있는지 설명하는데, 난해한 개념어의 연속으로서가 아니라 익숙한 상황과 개념을 바탕으로 말한다. 저자가 문학평론가 즉, 텍스트에 대한 2차 생산자가 아니라 철학자였다면 보기 힘든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주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 이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런 토종 이론서가 장사가 된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  

2.  

인지자본주의는 저자의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이스모 운동 즉 자율주의 운동을 계승하는 자율주의 이론가들이 신자유주의를 분석하며 내놓은 분석적 개념이다. 그리고 조정환 역시, 그가 몸담고 있는 다중지성의 정원과 함께 국내 자율주의 이론을 생산하는 몇 안되는 이론가이다. 911사태를 인자자본주의의 우세화를 증명하는 변곡점이라고 할 때(70쪽), 인지자본주의의 정체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간 자본은 공장안에서 노동력의 상품화를 통해 축적되었다. 그리고 이에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런 생산과정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인지자본주의 상황하에서 노동의 중지는 단순히 벌이의 중단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의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의 해악이 되는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즉, 더이상 노동은 공장안의 규율을 통해서 통제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관리된다. 쉽게 보면, 얼마 전 유성기업의 합법적 파업이 언론과 정부의 마타도어를 통해서 무너졌는지 떠올리면 된다. 고액 노동자들의 파업은, 파업의 논리 자체로 보면 의미없는 말이지만(왜냐하면 파업은 고액/소액의 구분없이 노동자의 법적 권리임으로) 사회적으로는 효과적인 노동통제의 수단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은 사라진다. 다만 비용이 지불되는 노동과 그 노동에 부과되는 노동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5장 '착취와 지배의 인지화'이며, 핵심 개념은 '지대'라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지대는 자원의 희소성에 의존하지만, 인지자본주의 하에선 '법적 조건'에 따른 독점에 의해 나타난다. 지적재산권이 대표적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500원짜리 음원 판매 수익 중 정작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돈은 100원도 되지 않는다. 나머진 인터넷이라는 유통수단을 소유한 지대추구자의 이윤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증과 울증은 감기와 같은 통상적인 병리현상으로 등장하고, 불편함과 불안함, 기회주의, 냉조주의 등 다양한 정동의 형태들이 등장한다. 이는 사람을 위축되게 하는 정서이지만, 조정환이 주요하게 인용하고 있는 비르노의 입론에 따르면(12장에 서술되어 있고, 특히 421쪽에 적어놓은) 이런 정서적 반응은 모두 지금의 인지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 정념의 양태로 전환될 수 있는 것들이다. 즉, 인자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이 그안에 그것을 극복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계기들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 이중적 체계이다.  

3.  

이 정도가 인지자본주의에 대해 이 책을 나름대로 소화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재미는 소위 베버리안 사회학자들의 경영담론 비판(서동진 등)과 비교해서 볼 때 돋보인다. 솔직히 그 책들을 봤을 땐 '뭘 해도 자본주의가 원하는 것'이라는 설명에 기가 질리게 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그럴 수록 구멍이 뻥뻥 뚤리는 것'이란 낙관적 전망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제13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 대한 해석과 간주형식으로 제시된 '메트로폴리스의 기억과 꿈'은 매우 시사적이다. 간주에서 조정환은 우리나라의 국토개발 특히 도시개발의 연대기를 살펴본다. 그것은 한국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세계적인 도시의 변화와 조응한다. 따라서 전세계 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저항들 역시 서울로 대표되는 우리의 도시에도 잠재되어 있다. 그것에 대한 전망은 '공통도시'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13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자유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추진되었던 우리의 신자유주의 체계 분석에서도 이어진다. 통상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매우 분리된 개념으로 보기 쉬운데, 조정환은 그것이 함께 등장한 것이 한국적 신자유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 형태라고 지적한다(463쪽).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이는 우리의 저항이 세계적 저항과 공명하면서도 우리의 길을 걸어야 함을 역설한다.  

4.  

그간 푸코류의 생정치 담론에 기인한 여러 분석들을 보면서 느꼈던 추상성이 얼마나 구체적인 분석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본문에서 써놓았듯이, 소위 정치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이 가지고 이는 불구성을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도시의 재개발(젠트리피케이션)과 공공예술 담론의 수렴에 관심이 많은데, 파스퀴넬리의 애니멀 스피릿이란 책(519쪽 15번 미주)을 알게해준것도 감사하다. 흠을 잡는다면 그 자체로 흠이 나올 수 있겠지만(이를테면 정동의 긍정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면서 '사랑의 재개념화'를 인지적 혁신의 힘으로 삼는 결론부분은, 자칫 믿음의 교리 즉 종교화의 우려가 보이는 부분이다. 506쪽), 장점이 단점을 넘어선다.  

다만 제10장에서 보이고 있는 정치의 재구성이라는 부분이 좀더 별도의 연구를 통해 확장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지금 현실 정치에서 오가는 많은 논쟁들에 개입할 지점들이 보일 것이라 본다. 결국 실천이란 현실의 말에서 시작되는 것일테니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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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meral 2011-08-3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웹진 <자율평론>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연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냥이관리인 님이 작성하신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서평글을 오는 9월 초 발행 예정인 <자율평론> 36호 게재할 수 있을지 문의를 드립니다.

<자율평론>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총 35호의 웹진을 발행한 계간 정치철학 웹진이며,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는 copyleft 웹진입니다. 그간 <자율평론>에 게재되었던 모든 원고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aam.net/xe/autonomous_review

<자율평론>은 인문학 강좌 공간인 다중지성의 정원, 독립 출판 활동을 하는 갈무리 출판사, 세미나 공간 다중지성 연구정원의 마디 단위로, 위 공간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지적 활동들의 성과들을 모아내고, 우리들의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원고료를 드리기는 어렵지만, 게재를 허락해 주신다면 웹진이 발행되는 대로 PDF 파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모쪼록 긍정적인 검토를 부탁드리며, 더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다면 아래 연락처로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자율평론> 편집위원회 김정연 드림
daziwon@waam.net / 02-325-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