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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우리가 가을을 잃어버린 줄 알았다.
뜨거운 여름 후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 올 때, 우리가 계절에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무섭게 깨달았다.
그리고 찾아온 가을같은 가을, 저절로 휴우 라는 한숨이 베어나올 만큼 마음이 놓였다.
단지 서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올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 종착역까지 정신없는 이슈 속에서 헤매고 있는 신세라니...
그래서 그런지 이번 9월의 신간에서 건져올린 책들도 그런 관심을 반영한다.
여론 조사라는 것은 객관적인 의사의 종합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의사를 그럴듯하게 속이는 조작의 기술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미 익숙한 구분법이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결과를 맞추는 게임으로서가 아니라, 특정되지 않는 대중의 의식적 흐름을 짚는 수단으로서 접근하는 것은 그리 익술한 문법은 아니다. 국내 유수의 여론조사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필자는 무수히 많은 여론조사의 결과를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둘러싼 구체적인 의식의 지도를 그려냄으로서 새롭게 조망하고 있다.
어쩌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던 레이코프의 한글판이 될지도 모르겠다.
높은 크레인을 표지로 삼은 이 책은, 이론서다. 요즘처럼 이론서가 호응받기 어려운 시절에 그래도 묵묵히 사회과학 도서를 내는 갈무리 출판사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한때 이성을 벗어나는 것만이 근대를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믿었다. 적어도 근대의 이성이라는 것이 거의 중세적 의미에서 주술적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근대 이후로 '해방'을 상징해온 이성의 다른 측면은 여전히 필요하며 오히려 세계적 위기라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이 과거 중세의 그늘을 걷어냈던 이성의 벼린 날을, 이제는 녹슨 칼집에서 끄집어 낼 수 있을까. 제목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스캔들은 재미있다.
이 책은 한 때 아는 사람사이에서는 무섭게 회자되던 스캔들의 한 복판에 있던 책이다. 동시에 번역서가 판을 치는 우리 지성계에서 번역의 윤리는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지 논란을 던졌다.
그 스캔들의 결과가 -지난한 법정 고발을 포함하여-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스캔들을 당사자였던 그 출판사에서 다시금 그 책을 냈다는 점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 밖에 판권을 무기로 오역본을 껴안고 있는 출판사들!! 각성하시길!!
이젠 스캔들은 뒤로 한 체, 왜 민주주의의 모델이라 일컫어지는 프랑스에서 바로 그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가 들끊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그 시선 그대로 우리의 앙상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직시할 때다. 때 아닌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논란 한복판에서, 어쩌면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를 경험적으로 미리 알고 있는지 모른다.
원체 발표되었던 글을 묶어놓은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중권이라면, 솔직히 관심있다. 하지만 잡지에서 보았던 그의 글들이 높은 시의성을 바탕으로 쓰여졌던데, 그것이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을 때 적절해 보일지 의문이다.
그저 시니컬하고 독설만 일삼는 3류 지식인처럼 보이는 진중권이 적어도, 이 연재글에서는 자신 안에서 곰삮고 있는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펼쳐보였다는 확신이 있기에 궁금하다.
통섭으로 유명한 윌슨은, 사실 생물학 중심의 학문적 패권을 역설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잘난 인간도 어쩔 수 없는 생명체에 불과하니 말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뇌 연구'도 마찬가지의 흥미로 보인다.
그런면에서 사회생물학이란 분야는 매우 흥미롭다. 이쪽에서는 도킨스나 데닛 같은 이들이 인간의 창조물인 사회와 주어진 자연이 상호 영향을 주면서 '공진화'한다는 발상이란, 왠지 DNA에 좌우되지 않는 자유를 말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사회'생물학'인 이유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논란을 불러일으켰을까. 슬프게도 과도하게 기독교화된 우리 사회의 특징 상 사회적 논쟁은 미비했으나, 학문적으로 끼친 역향은 심대했던 것 같다. 바로 이책에서 불려 나온 학자들의 면면을 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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