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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 ㅣ 아우또노미아총서 27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11년 4월
평점 :
1.
이 책, 대단하다. 길이 때문만이 아니다. 하나의 입론을 상호모순적이지 않게, 그리고 의례 기발표글 묶음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동어반복없이 써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것은 조정환이라는 저자의 '윤리성'에 돌려져야겠다. 이 책은 매우 체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그저 이 책을 위해 쓴 글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높은 유기성을 지닌 글들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여기서의 재미는 절대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아니라, '생각을 달리 해볼 수 있는 재미'를 말한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자본의 구성으로 포획되어 있는지 설명하는데, 난해한 개념어의 연속으로서가 아니라 익숙한 상황과 개념을 바탕으로 말한다. 저자가 문학평론가 즉, 텍스트에 대한 2차 생산자가 아니라 철학자였다면 보기 힘든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주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 이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런 토종 이론서가 장사가 된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
2.
인지자본주의는 저자의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이스모 운동 즉 자율주의 운동을 계승하는 자율주의 이론가들이 신자유주의를 분석하며 내놓은 분석적 개념이다. 그리고 조정환 역시, 그가 몸담고 있는 다중지성의 정원과 함께 국내 자율주의 이론을 생산하는 몇 안되는 이론가이다. 911사태를 인자자본주의의 우세화를 증명하는 변곡점이라고 할 때(70쪽), 인지자본주의의 정체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간 자본은 공장안에서 노동력의 상품화를 통해 축적되었다. 그리고 이에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런 생산과정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인지자본주의 상황하에서 노동의 중지는 단순히 벌이의 중단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의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의 해악이 되는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즉, 더이상 노동은 공장안의 규율을 통해서 통제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관리된다. 쉽게 보면, 얼마 전 유성기업의 합법적 파업이 언론과 정부의 마타도어를 통해서 무너졌는지 떠올리면 된다. 고액 노동자들의 파업은, 파업의 논리 자체로 보면 의미없는 말이지만(왜냐하면 파업은 고액/소액의 구분없이 노동자의 법적 권리임으로) 사회적으로는 효과적인 노동통제의 수단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은 사라진다. 다만 비용이 지불되는 노동과 그 노동에 부과되는 노동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5장 '착취와 지배의 인지화'이며, 핵심 개념은 '지대'라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지대는 자원의 희소성에 의존하지만, 인지자본주의 하에선 '법적 조건'에 따른 독점에 의해 나타난다. 지적재산권이 대표적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500원짜리 음원 판매 수익 중 정작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돈은 100원도 되지 않는다. 나머진 인터넷이라는 유통수단을 소유한 지대추구자의 이윤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증과 울증은 감기와 같은 통상적인 병리현상으로 등장하고, 불편함과 불안함, 기회주의, 냉조주의 등 다양한 정동의 형태들이 등장한다. 이는 사람을 위축되게 하는 정서이지만, 조정환이 주요하게 인용하고 있는 비르노의 입론에 따르면(12장에 서술되어 있고, 특히 421쪽에 적어놓은) 이런 정서적 반응은 모두 지금의 인지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 정념의 양태로 전환될 수 있는 것들이다. 즉, 인자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이 그안에 그것을 극복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계기들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 이중적 체계이다.
3.
이 정도가 인지자본주의에 대해 이 책을 나름대로 소화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재미는 소위 베버리안 사회학자들의 경영담론 비판(서동진 등)과 비교해서 볼 때 돋보인다. 솔직히 그 책들을 봤을 땐 '뭘 해도 자본주의가 원하는 것'이라는 설명에 기가 질리게 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그럴 수록 구멍이 뻥뻥 뚤리는 것'이란 낙관적 전망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제13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 대한 해석과 간주형식으로 제시된 '메트로폴리스의 기억과 꿈'은 매우 시사적이다. 간주에서 조정환은 우리나라의 국토개발 특히 도시개발의 연대기를 살펴본다. 그것은 한국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세계적인 도시의 변화와 조응한다. 따라서 전세계 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저항들 역시 서울로 대표되는 우리의 도시에도 잠재되어 있다. 그것에 대한 전망은 '공통도시'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13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자유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추진되었던 우리의 신자유주의 체계 분석에서도 이어진다. 통상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매우 분리된 개념으로 보기 쉬운데, 조정환은 그것이 함께 등장한 것이 한국적 신자유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 형태라고 지적한다(463쪽).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이는 우리의 저항이 세계적 저항과 공명하면서도 우리의 길을 걸어야 함을 역설한다.
4.
그간 푸코류의 생정치 담론에 기인한 여러 분석들을 보면서 느꼈던 추상성이 얼마나 구체적인 분석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본문에서 써놓았듯이, 소위 정치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이 가지고 이는 불구성을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도시의 재개발(젠트리피케이션)과 공공예술 담론의 수렴에 관심이 많은데, 파스퀴넬리의 애니멀 스피릿이란 책(519쪽 15번 미주)을 알게해준것도 감사하다. 흠을 잡는다면 그 자체로 흠이 나올 수 있겠지만(이를테면 정동의 긍정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면서 '사랑의 재개념화'를 인지적 혁신의 힘으로 삼는 결론부분은, 자칫 믿음의 교리 즉 종교화의 우려가 보이는 부분이다. 506쪽), 장점이 단점을 넘어선다.
다만 제10장에서 보이고 있는 정치의 재구성이라는 부분이 좀더 별도의 연구를 통해 확장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지금 현실 정치에서 오가는 많은 논쟁들에 개입할 지점들이 보일 것이라 본다. 결국 실천이란 현실의 말에서 시작되는 것일테니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