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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어찌 할 수 없는 자신감이라니..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이택광>

 

 자신의 책에, 1문형의 제목을 다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런데, 이택광이란 사람 꽤나 용감하다. 물론 이런 저런 신문지면에 실린 글을 보거나 조정환과 가진 촛불논쟁을 기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박수를 쳐줄만한 자신감이라 생각한다. 

대중연예물에 대한 가쉽성 글이 문화평론이라고 칭해지며 쏟아지는 요즘, 저자는 문화비평을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될까.

 

 

 

 

 2. 새로운 사회를 원하는가, 그럼 혁신하라 <사회혁신이란 무엇인가, 제프 멀건>

 

  

저자는 영국의 사회재단인 영파운데이션의 설립자이다. 그리고 '데모스'라는 싱크탱크를  창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재단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 모델과 유사하다.  

사회혁신의 한계를 짚기엔 아직 섣부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엔 내놓고 비판할 만한 사회혁신의 사례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회혁신의 메뉴얼은 곱씹어 보고 실험해볼 것을 권한다.  

(희망제작소가 비리로 구속된 박주원 안산시장의 '실용적 지방자치론'을 발간한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 될만한 사건이지만 말이다)

 

  3. 바보야, 문제는 자본주의야! <휴버먼의 자본론, 레오 휴버먼> 

 

 조금만 바꾸면 괜잖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성장과 후퇴가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모든 것이 돈으로 결정되는 자본주의는 잠깐 고장이 났을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휴버먼의 생각은 다르다. 위기는 바로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는 언제나 약자들이 본다고 지적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순식간에 수만명의 실업자를 양산한 대우그룹의 김우중씨는 여전히 해외 곳곳에 별장을 가지고 있고, 한보그룹의 정태수씨도 여전히 떵떵 거린다.  

문제는 자본주의인 셈인데, 바꿀 용기가 없다면 최소한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라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휴버먼의 자본론은 어찌되었던 우리 삶을 가로지르는 자본주의의 속사정을 속 시원히 말해 줄 것도 같다.

 

   4. 회색조의 근대풍경이 선명해진다 <이상과 모던뽀이들, 장석주> 

 

 많은 책과 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우리의 근대를 다룬 책들을 보면 설렌다. 여전히 20세기 초반은 서구의 연표로 기억되고, 우리의 근대는 그렇게 회색조다. 

장석주 선생이야 워낙 글쟁이로 문명이 높고, 이상을 둘러싼 군상들의 풍경이 그려진다니 모처럼 경성을 주름잡던 모던뽀이의 세계를 들여다 볼까나.

 

 

 

  

5. 나와 영심이 사이.... 때론 그녀가 우월하다 <동물과 인간사이, 프리데리케 랑게> 

 

개를 키운다. 조그만 마르티즈 한마디. 그녀를 나는 영심이라 부른다. 그녀는 누군가 오는 소리를 나보다 먼저 듣고, 나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 아부를 떨 줄 알며 무엇보다 별 영양가 없는 나같은 이를 멸시할 줄 안다.  

물론 이 책은 이런 애완견 키우기따위와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동물로서 인간은 어째서 인간다운가라는 질문이 궁금하다면 볼 만하다고 본다. 즉 동물은 동물로서의 경로를 가지고 발전해온 것이며,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경로를 가지고 발전해온 것이다.  

실험으로서 이런 점들을 규명했다고 하니, 우리 영심이를 이해하는데 도움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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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벌써 5월이다.  

때 늦은 봄비에도 멀쩡하던 벚꽃도 봄이 지나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떨어졌고, 몇 차례의 비와 황사,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봄의 신고신은 호되기만 하다.  

지난 달엔 유난히 정신이 없어서, 새책을 들여다 보지 못했다가 어제부터 쭉 살펴보니 심난한 마음에도 불끈불끈 책에 대한 욕심이 솟아난다. 

 

 이번의 첫 책은 <행복할 권리>다. 행복할 권리라니? 행복은 파랑새처럼 자신에게 이미 찾아온 행복의 찌꺼기를 모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었나?  

 모두다 행복을 말할 요량으로 다른 말을 한다. 집, 대학, 돈, 결혼. 왠지 이런 것들은 권리라기 보다는 쟁취해야 할 것에 가깝고, 그래서 행복은 결핍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만약 이 책이 그런 저런 자가발전적 교양서였다면 눈길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마이클 폴리는 이 책에서 행복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라는 구절이 없었다면 말이다. 어쩌면 행복의 파랑새를 찾는 일따윈 그만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는 파랑새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그들과의 대화와 나의 고민들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니. 아무래도 이 책을, 봐야겠다.

 

두번째 책은 문학평론가이자 정치경제학자인 조정환의 신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운영되는 몇 안되는 자율적인 학문공동체인 '다중지성 정원'의 대표이기도 한 저자는, 가장 최신의 인지과학을 바탕으로 변형된 자본주의의 속살을 해부한다. 

우리에게 노동은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작업장을 나온지 오래고, 일과 여가의 구분이 사라진지도 오래다. SNS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전통적인 공적-사적 경계의 무너짐은 무채색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촉수를 가지고 있는 히드라와 같다. 

조정환은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려 하지 않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 곧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는 혁명의 말이다. 

 

  

돈은 그저 대리자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알량한 지폐 뒤에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올라타 있고, 그것은 우리 부모와 나의 친구들이 흘린 땀으로 표상되는 노동의 결과라 믿었다. 

 하지만 돈이 그런 것이라면, 어떻게 그런 돈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는 걸까. 2008년 금융위기에서 반토막이 난 펀드 투자금은 어떻게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질 수 있을까. 

  <돈의 본성>은 그간 돈에 대해 쓰여졌던 감상을 일거에 흔든다. 돈은 사회관계의 표상이며, 더 나아가 권력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돈은 상당히 엉성한 모래 위에 터잡고 있는 궁전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돈의 본성을 알려준다면, 돈에 대한 오해를 접고 냉정한 시선을 가져볼 수도 있겠다.

   

 

유시민이라는 '저자'는 참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가 국가를 들고 나섰다. 아무래도 현실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이 오버랩 될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이라는 스테디셀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대학 초학년 용 교양서라면 실망이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장절의 구성을 보면 어디로 수렴하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국가관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동의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별개로 칸트와 베버, 베른슈타인을 거쳐서 연합정치와 책임윤리로 귀결되는 그의 여정이 궁금하다. 과연 그는 '국가'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무엇이 보고싶었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몇년간 혹독하게 모든 국민의 과학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과학의 오염을 보았다. 가치중립적이고, 절대 진리를 추구한다는 그 과학이 얼마나 편파적일 수 있으며 어떨때에는 거짓말을 하는지도 말이다. 

<법정에 선 과학>은 과학을 우리 삶 가운데 옮겨 놓자고 주장하는 듯 하다. 과학이란 무균질의 실험실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소하게 내리는 판단에서 부터, 생사가 갈리는 법정에서까지 우리 삶의 깊숙히 들어와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과학은 과학자들에 의해서만 지켜지는 성배가 아니라, 그에 영향을 받는 이들의 참여를 통해서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음을 말한다. 실제로 과학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상식'을 만들어 왔을까?

 

 

이렇게 정리를 해놓고 보니, 세상엔 참 읽을 책도 읽고 싶은 책도 많구나라는 실없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아침나절 내리쬐던 봄볕이 어느덧 구름 뒤로 사라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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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서재 활동도 잘 못해온 나를 덜컥 신간평가단에 넣어준 걸 보니, 알라딘 담당자의 마음이 너그럽기도 하다^^;;몇 가지 눈에 띄는 신간을 주섬 주섬 담아본다. 이름하여, [4월의 낚시]~~!!  

참 나름대로 정한 나의 책 선정 기준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책의 맥락을 중시한다. 왜냐하면 책이라는 것은 사적인 대화보다는 공적인 대화를 위한 도구라는 생각이 강하고, 그런면에서 나에게 책은 그것을 선택한 출판사와 역자, 혹은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대화의 제의에 내가 기꺼이 응할 만한 책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책의 내용을 보기도 전에 고르는 신간추천은 올 곧이 내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가라는 이끌림의 정도를 드러내는데 적절한 공간이다. 그렇게 해서 고른 다섯권의 책은 이렇다. 

  

1. 고진을 탐독하다  

 

가라티니 고진의 '문자와 국가'는 아마도 3월에 발간된 책들 중 단연코 눈에 띄는 책이다. '트랜스크리틱'의 후속작 격인 '세계사의 구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컷지만, 이 책이라도 어디냐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고진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이들 중 한명이라는 점과, 이번에 번역된 문자와 국가 역시 그런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응대하고 싶은 대화의 주제는, 근대와 국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국민이 되었나, 그리고 우리는 왜 그 '주어진 것'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나라는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다. 더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2. 도시에 대한 권리를 말하다 

 도시 개발을 둘러싼 욕망의 지도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때때로 우리 모두 길을 잃기도 하는 그 욕망의 길 모퉁이에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가 있다. 앙리 르페브르의 수십년전 속삭임을, 현재의 도시 풍경에서 불러내는 이는 바로 돈 미첼이다. 

 이 책은 2003년 '도시에 대한 권리' 바로 이전에 저자가 심화시켜온 문화지리학의 단층을 보여준다. 지리학자인 그에게 도시는, 그리고 공간은 문화로 표상되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경연장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사회과부도로 표상되는 교과서적인 지리학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삶의 배경으로서 공간을 마주하게 하는 중요한 시도로 여겨진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과 젠더화 된 공간의 맥락을 풀어내고 있는 책의 내용은, 과연 일상의 우리 공간을 어떻게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호기심을 가지게 한다. 

 

 

3. 러셀, 혹은 '로지코믹스'의 외전?  

 러셀의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이미 많이 소개된 러셀의 책에 한 권을 추가하는 의미 이상이 있다. 특히 최근 일본에서 발생한 재앙과도 같은 공포는, 마찬가지로 핵에 의해 멸망할지도 모르는 문명의 위험에 맞선 러셀의 회의적 합리주의가 일종의 처방제일 수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로지코믹스'가 러셀의 논리학자적인 측면에 비중을 두었다면(책의 주요한 플롯은 2차세계대전 시기이지만), 이 책은 분야별로 러셀이 썼던 글들을 선변해서 뽑아놓은 선집에 해당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러셀이라는 공적인 인간의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중요한 것이다. 

과연 러셀의 글은, 절망과 어찌할 수 없는 무능력에 빠진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가. 이 책의 출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4. 책은 사회에 어떻게 책임지는가?  

책을 공적인 대화의 제안으로 볼 때, 이미 출간 책에 대한 최대한의 책임은 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앞선 책의 공과를 다시금 살펴보는 후속작의 출간일 것이다.  

박용남의 '꾸리찌바 에필로그'는 책의 책임성을 웅변하는 책이다. 알다시피 저자가 21세기 초반에 내놓은 꾸리찌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서울에서 하고 있는 버스 준공영제와 중앙차로제가 바로 꾸리찌바에서 영감을 얻는 도시교통정책의 산물임을 고려한다면, 저자의 꾸리찌바 소개는 영향력있는 사회적 제안이었다. 

그리고 다시 꾸리찌바다. 물론 꾸리찌바로 한정되어 있진 않지만, 그럼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꾸리찌바 그후 10년의 이야기다. 과연 꿈의 도시 꾸리찌바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게 그 변화를 지속시키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책을 통해서 차분히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5. 밖에서 보는 중국을 넘어서 

우리에게 중국은 경제의 위협대상이자, 남북관계의 불편한 중재자 일 뿐이다. 그래서 그럴까. 주변에서 중국과 관련된 언론보도나 이야기들이 부쩍 많아졌으나, 왠지 있는 그대로의 중국이 아니라 보고싶은 중국만을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장리자의 '중국만세!!'는 분명, 미국적 삶에 익숙해진 중국인의 눈으로 그려진 중국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쿠바에 망명한 구체제 집단의 글에서 볼 수 있는 맹목적인 비하나 자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볼 수 있겠다고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바로 '제목' 때문이다. 

출판사는 이를 역설이라고 했고, 실제로도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중국식 사회주의를 조롱하거나 혹은 일방적인 호의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내부자였던 시기에 개인의 삶과 국가의 삶의 교차하면서 벌어지는 과정들을 늘어놓는 방식은 나름 기대를 갖게 하는 매력이다. 

과연, 중국은 어떤 속살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이라면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든다. 

 자, 난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 어떤 책이 정말 내게 말을 걸어 줄 것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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