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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1 ㅣ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상품검색에서 바람의 그림자 1권을 선택하고 별 다섯개를 찍고, gorgeous 카테고리를 고른 후 한 5분을 앉아 있었는데도 독후감의 첫머리를 시작하기가 어렵다.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역시나 가장 먼저 보는 것은 표지이다. 그렇지만 비평가나 신문 기사의 칭찬으로 도배해 놓은 책은 대개 그저 그런 작품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몽테크리스토 백작 뒷면에 써 있는 마르케스의 한마디는 제외), 이 책의 뒷면을 뒤덮은 칭찬들은 [바람의 그림자]에 대한 나의 기대감을 꺾어버리기에 충분했다. -> 오히려 다행이야. 사실 기대감을 만족시키는 작품도 참 좋지만 예상치 않았던 충격의 작품이 더 좋지 아니한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난 좌절했었다.
1. 부잣집 딸래미인 나는 상금이 1억인 헌터들의 대회에서 마지막 과제물이었다. 시험을 통과한 100명의 헌터들이 나를 잡으러 길을 나선다. 나는 물을 만나면 물고기가 될 수 있는데, 헌터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긴장과 절박함이 어우러진 감동의 추격씬!
2. 난 친구들과 놀러 갔다. 그러다가 마녀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 먹었다. 그 댓가로 우린 그 마녀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그러다가 마녀의 살인 유희의 희생양이 되는데, 그 첫번째는 경사진 언덕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서 굴려버리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맨홀 뚜껑을 열고 폭탄과 친구의 머리를 넣고 뚜껑을 닫는다. 폭탄이 터지고, 점점 나의 차례가 다가오는데.........
'이야기'라고 하면 무슨 잡탕같은 이따위 몽상만 하는 나로썬, 저자의 방대한 상상력과 수많은 이야기들의 그 결집력에 놀라고 또 좌절했다. '난 아니구나' (알고는 있었다 ㅋㅋ)
수많은 미사여구와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쓸만한 공감용 혹은 있어보이는 문장들도 매우 볼만했지만 무엇보다도 정말 너무너무너무 재미있고 숨막힌다. 게다가 하늘하늘 아름다운 여인네들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나로썬, 클라라와 누리아, 페넬로피, 베아로 이어지는 욕망의 주체들에게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긴장감있는 굵은 스토리라인과, 수많은 잔가지 이야기들, 게다가 아름다운 여인들이 잔뜩 나오는데 누가 이 책을 욕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야. 난 [타인의 삶]을 울면서 보고 2권을 들었는데, 이 둘 사이엔 뭐랄까 매우 끈적한 끈으로 덕지덕지 이어 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와도.
나와, 비즐러와, 훌리오와, '주인공(이름이 생각 안나네, 미안)'은 모두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누가 안그렇겠냐마는, 특히나 도시의 한 건물 속에 틀어박혀서 있지도 않은 '신나는 일'에 집착하고 있는 난... " 지금 그 사람 신경 쓸 때가 아냐, 당신의 비참하고 고독한 삶부터 좀 어떻게 해봐!"라고 충고해 줄 수가 없었다.
사연이 많은 음울한 대저택과, 저주 받은 수녀원(혹은 감옥?), 쇠락해가는 모자가게, 부잣집 애들만 다닌다는 학교, 비가 오는 바르셀로나의 골목골목. 책을 덮고난 후 마음을 따라가느라 지쳐버린 눈이 얼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