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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뭐하냐는 말에 박해일이 '방닦아' 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A님의 댓글에서 본 적이 있는 장면이라 아, 이거였구나 했던거 말고도 방닦는 남자는 어쩐지 당황스럽게 다가왔다. 구질구질해보이기도 하고 쿨해보이기도 하고, 깨끗한 남자인가 싶기도 하면서 능력없어보이기도 하는, 이상하게도 묘한 이미지다. 방 닦는 남자와 함께 살고 싶긴 하지만 연애는 하고 싶지 않은 남자라고 하면 내가 너무 속물인가. 

내가 기억하는 박해일의 정사씬은 예쁜게 없다. 조급하고, 몸서리쳐질만큼 현실적이거나, 말도 안될만큼 찌질하거나. (예외로 [모던 보이]에서의 김혜수와의 키스씬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섹스에 대해 별다른 환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사씬 전까지는 친동생인줄 알았던 하숙집 딸과의 섹스는 그야말로..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친동생인줄로만 알아서 더 놀라기도 했지만, 털실이 가득찬 방바닥에서 이불도 안깔고 옷도 다 입고 엉덩이만 까고 다급하게 끝내기 위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섹스는 불쾌한 충격이었다.

하얗고 고운 얼굴로 어찌 저런 역할만 맡아서 할까 싶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는 배우다. [질투는 나의 힘]에서의 앳된 박해일이 정말로 사랑했던 건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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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같이 보던 친구에게 '저런 남자랑 왜자?' 라고 했더니 '왜요, 저런 남자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나요?'라고 친구가 대답해서 고개를 저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나 역시도 문성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더라. 편집장이라는 사람이 애교섞인 목소리로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라고 엥엥거리는데, 혀를 차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사람이다. 일이 잘 안풀리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다가도 다정할 땐 참 오글거리면서도 예뻐해줄 수밖에 없는 남자.  

문성근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단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나온 영화를 본 적도 없었고, 어렸을 때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며 그냥 딱딱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는데, 노래방에서 배종옥에게 조금만 더 있다 가라며 칭얼대는 모습은 그야말로 대발견이었다. '참 싫다..' 싶으면서도 '이런 남자에게도 이런 면이???????' 라며 놀라기도 했으니까. 영화를 볼 때마다 찾게 되는 나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 지향하는 캐릭터라면 나는 문성근을 꼽겠다. 

박해일의 여자들은 물론, 질투어린 마음에 미워하는 마음만 갖고 다가온 박해일도 유혹할 정도의 치명적인 매력이라면 어떤 사람인걸까.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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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도 있고, 매력도 있는데, 이 여자. 삶에 의욕이 없다. 항상 졸리거나 술에 취해있거나 해서 눈이 반쯤은 풀려있다. 자기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잘 알면서도 귀찮아서 자기랑 자고 싶어하는 남자랑 자버리고, 자길 좋아하는 남자 잡지도 못하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될대로 되란 식이다. 강아지 제왕절개 수술할 때, 손으로 잡아야 느낌이 제대로 온다며 장갑도 끼지 않는 성격이 살아가는 태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저 편한대로. 

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모텔에서 옷을 훌러덩 벗어 던져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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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10-12-23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문성근은 사람이 쫌...

2010-12-23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10-12-28 19:30   좋아요 0 | URL
나 뽀빠이 먹다가 뿜을 뻔. 으음... 어쩜 좋아.

다락방 2010-12-2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안봤는데 [옥희의 영화]에서의 문성근 캐릭터와 이 영화의 문성근 캐릭터가 좀 비슷한것 같은데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의 박해일이 강혜정하고 같이 나왔던 그 영화속의 박해일과 또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영화에서는 둘다 교사인데, 박해일이 강혜정을 엄청 쫓아다니거든요. 한번만 자자고. 그런데 강혜정이 계속 싫다고 해요. 그러다가 한번은 연수를 갔나, 암튼 어떤 방에 둘이 들어가게 됐는데, 그때 박해일이 강혜정을 눕히고 강제로 막 할라고 하면서 강혜정이 싫다고 하니까 '넣기만 할게, 넣기만 할게' 이러거든요. (으윽- 쓰면서 좀 끔찍하다)
그 캐릭터가 퍼뜩 생각나요. 으윽.

Forgettable. 2010-12-24 14:4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옥희의 영화]는 조만간에 보게 될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얘길 많이 들어서...

그 영화 ㅋㅋㅋㅋㅋㅋ 애인이랑 봤었는데, 전 괜찮았는데 애인이 막 저한테 짜증냈던거 같아요. 괜히 이런거 봤다고;;;; 그래서 저까지 괜히 기분 나빠져갖고 다들 영화 좋았다고 하는데 혼자 뚱해있었네요. ㅋㅋ 암튼 박해일은 특이해요. [살인의 추억]에서도 그렇고.. 맡은 역할만 보고 보면 진짜 좋아할 수가 없는 ㅋ 그만큼 연기를 잘하는거겠죠?

무스탕 2010-12-23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성근 그러면 전 '꽃잎' 영화가 생각나요. 거기서 가수 이정현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나오는데 데려다 집에서 같이 사는 그런게 있어요.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그 툭툭 던지는 말투랑 별 의미 없다는듯 쳐다보는 눈길이랑 참 종잡기 어려운 배우에요. 그는
저 영화 보고 싶었는데 못 본 영화에요. 담에 기회 닿으면 봐야지..

Forgettable. 2010-12-24 14:46   좋아요 0 | URL
그 영화 제가 어렸을 때 야하다고(?) 뭔가 그랬던 영화 같은데. 참 어릴 땐 그런게 뭐가 그리 중요했는지. ㅎㅎㅎㅎ 제가 기억하는 한에서 문성근을 제대로 본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에요.

그냥 제가 느끼고 해석한 캐릭터얘기만 줄줄 써놓은 페이퍼인데도 의외로 영화 안보신 분들의 댓글이 달려있어서 반갑네요. 이 영화 참 독특한 거 같아요. 저도 얘긴 많이 들었었는데 우연히 보게 됐어요. 실망안하실듯^^

2010-12-24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0-12-2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딱 한 씬만 기억이 나는데,
배종옥이 집에 박해일 데리고 갔나 그랬을 때, 물 없냐고 하니까 없다면서 그냥 귤 먹으라고 했던 거. 대동감했거든요. ㅋㅋ

Forgettable. 2010-12-28 09:56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그장면 보면서 푸~하고 웃었었어요. ㅋㅋㅋ
시간이 지나면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을까 궁금해지네요.

pb 2010-12-2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이 영화 엄청 좋아함ㅋㅋㅋ
보면서 박해일이 문성근 너무 선망하는게 불쌍했지만...질투=애정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행복의 황정민이 되어가는 중간과정 같았어요. 물론 허진호3부작과는 상관없는 영화이지만.


Forgettable. 2010-12-28 09:58   좋아요 0 | URL
저도 진짜 좋았어요. 박해일과 그의 옛여자와 배종옥과 문성근의 4각구도가 인상적이더군요. 예전에 봤던 [워터 드롭스 온 버닝락]이라는 영화에서의 관계와 좀 비슷하기도 하고.. 재밌었어요.

저도 며칠전에 봄날은 간다 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유지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