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학교에 다닐 땐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했었다. 매일 다른 구두를 신고 다른 컬러의 섀도우를 바르곤 했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매일 만나는 친구들에게도 매일 매일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고(?)싶어 했었다. 난 "옷은 수수하게 차려입었으나 타고난 기품이 몸에 밴" 여인은 커녕 겉멋만 든 양아치였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느 순간부터 패션에 대한 집착의 끈을 놓아버리게 되었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거니와 무엇보다도 출퇴근 지옥철의 압박에 굴복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어느새 "옷은 수수하게 차려입었으나 타고난 얼굴도 마땅치 않아 그저그런" 찌질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요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찌질함과 품위에 집착하고 있음)
그러던 어느날 내 공상 속 친구인줄로만 알았던 친구가 내 일상으로 침투해왔다. 회사 앞이라고 잠시 얼굴이나 보자길래 난 우습게도 일거리를 들고 나갔다. 난 외출시간을 따로 만들 수 없는 말단직원이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쌩얼을 들이 밀며 우체국으로, 은행으로 데리고 다니며 난 이 친구가 내 일상에 들어올 수 있는지 실험을 해봤다. 신기하게도 난 2년동안 단 한번도 까먹지 않았던 통장 비밀번호를 까먹고는 초조해했고, 난생 처음으로 등기를 부치는 무인기계를 앞에서 우쭐해했다. 이 공상 속 친구는 당연하게도 나의 일상을 공상화하는데 성공해버렸다. 단 24분으로 24시간을 꿈같이 만들어주는, 외국인 여자친구를 갖고있을거라 추정되는 친구. (ㅋㅋ)
게다가 화장도 안하고, 옷도 거지같이 입고 있는 나같이 품위없는 찐따에게 볼매(불매아님)라는 문자까지 넣어주었다.
이거슨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