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개념없단 말을 들어도 좋았다. 그 말에 애정이 담긴 어투가 감도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고쳤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었지만 굳이 고치지 않아도 나를 내치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이 내겐 있었다. 그렇게 몇몇 사람은 남았고, 몇몇 사람은 떠났다. 떠나는 사람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막말하는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몰랐기도 하거니와 잡지 않아도 친구들은 많았으니 절박하지는 않았다. 

 솔직한 게 매력이라는 말을 자기 방어의 방패이자 무기로 삼았던 것 같다. 의견이 다르거나,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반격하곤, 반격이라고 생각도 않고, 뭐 잊어버렸다. 가끔은 그 반격의 말이 상당히 가시돋혀있는 동시에 맞는 말이라 상대방의 의표와 자존심을 찔렀던 것 같기도 하다. 듣기 싫은 현실을 집어주는 자극적인 대화에 지인들은 익숙해져서 즐기기도 했지만, 마음 약한 이들은 견디지 못했나보다. 정말로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나의 의도가 상처주려고 손톱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일 것이다.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다. 이런 면모를 좋아해주거나, 무시하고 장점만 봐주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런데 얼마전 나와의 대화가 지금까지 스트레스였다는 말을 들어버렸다. 그것도 온라인에서의 인연에게. 정말 다정하고 친절하길래 혼자 오바하며 온갖 친한척 다 하던 사람에게 대놓고 그런 말을 듣다니. 위에 보라색으로 쓴 것처럼 쿨한척 해왔던 가면이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쪽팔리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하고 공황상태에 빠졌다. 와, 헤어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댓글 하나 남기면서도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몇번을 고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의 비참함이란. 

 어제 A와의 대화에서 '포장'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며 생각을 더 해봤다. 직장 상사가 엄청나게 자주 '일을 할 때 향기를 남기라'고 하는데, 난 그 말이 그렇게 불쾌할 수가 없다. 일 잘하는 척을 하란 말인데, 이건 내 능력 밖의 일이라 일 자체보다 더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경쟁구도에서는 이 포장이라는게 생존수단이기때문에, 상사의 조언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굳이 경쟁구도가 아닌 온라인에서의 관계에서도 포장이 중요하지 않은가. 나의 personality에 포장을 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니,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빈정거리며 화를 내도 미안하단 말뿐, 할 말이 없었다.

 포장의 중요성을 느낀 건 더이상 나의 성정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말과 같다.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서 화장을 짙게 하듯이, 앞으로 내 개성을 죽이고 더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포장을 열심히 하게 될까? 포장은 둘째치고라도, 하고 싶은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여러모로 사춘기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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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6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6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9-10-26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상황상황마다 다르니깐. 사람마다 다르니깐, 그때그때 알아서 반응하는 수밖에. 가면을 쓰고 모두 똑같아지는 것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함. 물론,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온라인에서의 만남은 실제 만남보다 쉽고, 다양하지만, 오해가 생기기 쉽고, 사실 그 사람은 나랑 안 맞는 경우도 많지. 그리고, '내가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과 '상대방이 나를 생각하는 것'의 간극도 쉽게 알아채기 힘들고.

결국 A와 B가 '그냥 아는 사람','댓글 주고 받는 지인' 에서 '친구'가 되려면, 이런저런 꼴도 다 봐가면서, 마음 터가는거겠지. 근데, '마음 여린 사람'과 '솔직함'이 강점이자 약점인 사람이 친구가 되기는 힘든듯. 미묘해. 그 사람한테 특히 신경써서 늘 말을 가리고 조심해야 한다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 하는 말이 사사건건 거슬린다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용인되는 각자의 기준이 있겠지. 그걸 맞춰나가는 것이 인간관계가 쉽지 않은 이유고.

다만, 일에서는 틀리지. 자신이 하는만큼 충분히 생색내고, 포장해야지. 일하는 척하는 것과는 틀린듯. 기껏 잘해놓고 그것을 돋보이게 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손해보는거고. 바보인거고.(내가 아끼는 후배중에 그런 후배가 하나 있어서, 늘 비슷한 이야기 해줌) 그와 같은 일에서의 혹은 일터에서의 '인간관계'에서의 포장은 성격이라기 보다는 '스킬'이라고 생각해. 일에서의 인간관계에서도 적당히 포장해야지. 적당히 가면도 써야하고.


Forgettable. 2009-10-26 13:06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면모가 비난을 받은 것이다보니, 엄청 혼란스러웠는데 페이퍼를 쓰고 댓글을 보니 약간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아는 사람 모두를 다 끌고가는 건 불가능하죠. 그래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해선 꽤나 쿨한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이게 비난이 되어서 꽂히니 전혀 쿨하지 않네요. 구질구질하게 페이퍼 쓰며 징징대고 ㅎㅎㅎ

이꼴저꼴 다 봐가며 마음트는 과정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싶어요.
일하는 태도는 정말 스킬을 쌓고 노력하면 되는거니까 인간관계보단 나은 것 같아요- 라고 쓰고 있었는데, 비슷하게 어려운 것 같네요 -_-;;;

여튼 조목조목 시원한 코멘트 고맙습니다. ^^

다락방 2009-10-26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겠지만요 Forgettable님.

정말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면 그 분도 순간의 기분으로 말을 한건 아니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Forgettabel님을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실 여태 Forgettable님과의 어떤 대화도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아는 어떤 서재인은 Forgettalbe님을 꽤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니 사람마다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것이 나의 단점에 관한 것이라면 사실 조금은 들을만 하지 않나 싶어요. 이건 Forgettable님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게 아니라요, 그런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서 생각해볼 계기가 될테니 말이죠. 저 역시 Forgettalbe님이 위에 보라색으로 쓰신것처럼 그런 생각들을 하며 살아왔었거든요. 근데 그런 제가 무서워서인지 사람들이 제게 별달리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눈앞에서 직접 그런 말을 듣게 됐어요. "너처럼 지나치게 솔직한게 반드시 좋은건 아니야. 때때로 어떤 말들은 하지 않는게 더 나을수도 있어."라고 말이죠. 그때 제가 얼마나 멍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말해준 상대는 제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되니까 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어쩌면 내가 여태 상처 입힌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꽤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람에게는 저마다 취약한 부분이 있고, 저마다 약한 부분이 있잖아요. 돈이 많은 사람에게 너는 거지같아, 라고 하면 농담이 되지만 돈 없는 사람에게 너는 거지같아, 라고 하면 그건 폭력이잖아요. 가슴을 후벼파는 거구요. 그러니 거지같아 라는 말을 얘가 농담으로 받아칠게 확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거지같다는 말을 하지 않는 쪽이 조금 더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겠죠.

'댓글 하나 남기면서도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몇번을 고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의 비참함이란.'이렇게 생각하기 보다는 댓글 하나 남기면서 이 사람이 혹시 기분 나쁘진 않을까 생각해서 고치는 섬세함 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Forgettalbe님이 그 다정한 사람에게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Forgettable님과 조금 더 잘 지내보고 싶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건 아닐까요? 실제로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의 관계에서도 절친한 친구들이 반드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취미를 가진건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의 단점들을 받아 들여가면서 계속 친구를 하죠. 가끔은 잔소리도 하고 가끔은 싸우면서 말예요. 잔소리 한번 하고 싸움 한번 했다고 친구사이가 공중으로 흩어지는건 아니잖아요. 가끔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더 단단한 사이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이럴때 한번쯤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자기 반성의 시간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말이에요.

저 역시 위에 쓰신 것처럼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다. 이런 면모를 좋아해주거나, 무시하고 장점만 봐주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라는 생각을 하고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나의 몰랐던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조금 고치려고 하고 모난 부분을 조금 깍기도 한다면 그런 면을 알아보고 더 좋은 사람이 내 주변에 더 오래 있으려고 할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사람이요. 전 좋은 친구를 많이 둔 사람은 그 자신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거든요. 포장이라기 보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고 자신을 가지되, 너무 툭 튀어나온 부분은 조금 깍아주는 쪽이 나을 것 같아요. 발톱도 너무 길면 스타킹이 빵꾸나요. 그러니 적당하게 잘라주자구요.


제가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저는 아직 Forgettable님의 뾰족한 부분을 보지는 못했어요. 그러니 제가 드리는 댓글이 '너 자신을 반성하라'라는 류의 댓글은 아니라는 걸 이해해주세요.

Forgettable. 2009-10-26 23:56   좋아요 0 | URL
오 이런 편지라니, 감동입니다. ^^
사실은 제가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락방님이 저를 싫어하는건 아닐까;; 란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는데 아니라니 다행이고요. ㅎㅎ
그렇지만 앞으로 며칠동안은 제 지인들을 만나면 내가 까칠한지, 내게 불편한 점이 뭐 있었는지 엄청 물어보고 다니겠네요. 실제로 오늘도 물어보고 왔고요;;;

그 다정하셨던 분은 마음이 여린 분(이라고 생각) 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기까지 많이 참으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잘 지내보고 싶었다기 보단, 한계점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어요. ^^
뭐, 다 맞는 말이고 제가 인정하고 있는 부분들을 조언해주시니, 공감도 가고 고맙기도 하고 마음도 놓이고 그래요. 좋은 말씀만 해주셔서 뭔가 보답으로 저도 길게 편지댓글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저 끄덕끄덕일 뿐이네요;0;

다락방님 고맙습니다. 나중에 삼겹살에 소주로 보답을..+_+

바밤바 2009-10-2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모두에게 사랑 받고 싶어 하지요. 저도 예전엔 그런게 심했어요. 그러다보니 타인이 나에 대해서 불쾌하게 여기는 걸 못받아들이곤 했죠. 그러면서 고민하고 또 머릿속 생각 때문에 일에 집중 못하기도 하고. 내가 믿었던 사람한테서 안좋은 소리를 듣는다면 정말 충격이 클 것 같아요. 모두가 모두에게 소중할 순 없기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힘내세요~ 화이팅!! ㅋ

Forgettable. 2009-10-26 23:40   좋아요 0 | URL
전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사랑받으면 되는데, 제가 좀 쉽게 사람을 잘 좋아하고 믿고 그런가봐요. ^^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건 정말 고달프죠. 불가능하기도 하고.

여튼 바밤바님 고맙습니다.
푸념글인데 신경써서 댓글을 달아주셔서 힘이 나네요!!

2009-10-26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6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10-26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님은 좋겠다^^
저는 따로 얘기하지 않겠어요. 하이드님과 다락방님, 바밤바님이 다 얘기해줬으니까요. 비밀글님들도^^

Forgettable. 2009-10-26 23:22   좋아요 0 | URL
맨 처음으로 조언해주셨으면서 무슨 ㅎㅎㅎㅎㅎㅎㅎ
지금 세수하다가 갑자기 아치님 생각이 나서, 우린 생각이나 취향이 다른게 많은데 난 이사람에게 왜이렇게 매력을 느끼는걸까 궁금해져서 아치님 서재가서 기웃거리다가 또 'unforgettable'을 듣고 있었는데 메일이 왔네요. ㅋㅋ 신기함 ^^

Arch 2009-10-27 11:44   좋아요 0 | URL
뽀님이 이렇게 하는데, 응? 세수 하면서도 날 떠올리는데, 응?
뽀님만큼이나 나도 뽀님이 좋아요. 좋아요가 오래오래 지속되고, 이꼴 저꼴 험한꼴 다본 후에도 좋은거면 더 좋겠구요.

Forgettable. 2009-10-27 22:39   좋아요 0 | URL
^^♡

무해한모리군 2009-10-2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향을 다녀온 사이에 이리 큰 일이 있었군요.
그런 일이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지만 또 무심히 지내다보면 금새 괜찮아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힘내요 힘!!

2009-10-27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7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8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장문의 댓글이 많네요 ㄷㄷ
이렇게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회복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도 제 자신을 포장하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하지 않아요. 아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하다거나, 사는 곳이 원더랜드라서 삶에 상처가 없는 게 아니라, 포장하는게 굉장히 번거롭더라구요. 잘 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포장한 자신과, 포장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괴리감이, 스스로도 부담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남이 알면 실망할까봐 두려웠어요;
그럼에도 저도 모르는 사이, 저는 조금씩 저를 포장하고 있겠죠. 화장은 해 보지 않아 모르겠는데, 그, 두꺼운, 가면을 그리는 수준의 화장과, 흔히 쌩얼 화장이라 부르는 화장과의 차이랄까... 아무튼 포장 여부에 대한 괴리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범위 내의 포장은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정도의 포장은, 자기 자신을 채찍질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그냥 편한 대로 생각하고 산다능-_-;;

Forgettable. 2009-10-29 09:17   좋아요 0 | URL
네, 힘든 일 있을 때 여기에 쓰면 다정한 님들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어루만져주시기 때문에 금방금방 회복되요. 암튼 요즘 많이 업됐다능!! 코님에게도 유머러스한 친구분들 많아서 부러워요 ^^
으흠, 포장 여부에 대한 괴리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정도라.. 그러게요. 생각은 복잡한데 뭐라 말하기 어려운 걸 잘 집어 주셨어요.
결국 그냥 편한대로 생각하고, 맛있는거 먹으면 기분좋아지고 하면서 사는게 좋긴 해요.
사실 업된 것도 어제 숙대앞에 닭도리탕 맛집가서 배터지게 먹고 신난 걸지도 ^^; 아, 놀라운 음식의 세계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