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반 10분, 후반 20분은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결국 이야기보다 액션과 그래픽이 돋보였다는 얘기.
2. 영화를 보면서 세 번 울었다. (내 눈물은 어찌하여 이렇게 흔한 것인지...)
- 소화가 칼을 맞은 이곽을 위해 약초를 빻으면서 울 때
- 이곽이 잡혀간 소화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서 "소화!!!!!!!!!!!!" 라고 외칠 때
- 이곽이 소화에게 "꽃에서 향기가 나..." 했을 때.
3. 오랫동안 소재 검열에 갇혀있었던 후유증인가. 우리나라 어른 영화인들이 만드는 판타지 영화는 어떻게 된 일인지 소설보다도 그 상상력이 못하다. 상상력이 부족한 판타지가 재미없는 건 당연한 일. 일단 제목이자 영화의 배경인 중천의 세계가 너무 평범하다. 간단한 예로 중천 세계의 물이 현세의 물처럼 사람을 똑같이 적신다면 이건 너무 심심하지 않은가? 김태희의 연기력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배우에게 가혹한 일이다 싶다. 몇 가지 이유에서, 소화의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것은 배우보다 작가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연기를 논하려면 정우성이 도마에 올라야 한다. 오랜 세월 연기했는데도 연기가 늘지 않는 배우는 욕을 좀 먹어도 된다. 그러나 이곽 자체는 말할 것도 없이 멋있고 매력있는 캐릭터였다. 참고로 나는 대의명분 때문에 여자 가슴에 대못을 박는 남자를 '매우' 싫어한다.
《중천》은 영화 줄거리인 '이야기'보다 중천 세계를 다루는 '빈곤한 상상력'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시나리오를 누가 썼을까, 참 궁금해지는 대목. 그런데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각본에서《타짜》의 감독인 최동훈을 발견했다. 검색해 보니 71년 생이다. 국내산 진짜 판타지 영화를 보려면 머그게임과 함께 성장한 멀티미디어 세대이자 영상세대인 다음 세대의 몫으로 넘겨야 하는 걸까.
그래픽은 볼만하다. 이곽이 3만 귀신대군과 일전을 벌이는 장면은 손꼽을 정도로 잘 찍었다. 문제는 늘 그렇듯이 '이야기'인데, 일단 과도한 편집이 아쉽다.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를 잘 모르는 나조차도 편집의 독소를 느낄 정도. 한 마디로 이 영화는 미완성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언젠가 우리나라 TV만화의 성우와 관련해 들은 얘기 하나. 모 성우가 만화속 인물이 어른이어서 성우가 어른의 발성을 했더니 위에서 시정 지시가 내려왔는데, 이유인즉 '애들 만화에 어른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했다고...
- 이런 얘기를 듣고 나면 자국못지 않게 성우들의 캐스팅이 훌륭했던《카우보이 비밥》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애들 만화'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같지만《원더풀 데이즈》를 보면 그 편견이 새로울 것도 없다. 기술의 발달로 그래픽은 일취월장했으나 도무지 웃음도 나오지 않는 그 유아틱한 스토리라니. 요즘 애들, 똑똑하다. 치밀한 스토리와 섬세한 연출로 무장한 저패니메이션과 웬만한 판타지소설 못지 않게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스토리가 재미를 더하는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그들을 언제까지 '애들'이라고 치부할 건가.
한편으론 이러니 저러니 해도 훌륭한 원작을 제대로 말아먹은《퇴마록》에 비하면 그래도 이 장르가 나름 발전은 하고 있군, 싶기도 하고...
결론은. 빈곤한 상상력이 참으로 아쉽지만 어차피 영화는 종합예술 아닌가.
먹다만 단무지처럼 잘려나간 줄거리는 그만하면 즐기는데 부담이 없고(긍정적으로, 상상하는 즐거움은 있으니까) 그래픽은 좋았고 카메라의 시선도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