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 원하는 것이 선물처럼 주어질 때의 기적

[판결] - 카프카 

 

p256.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소망하던 바가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환희를 느끼게 된다.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환희를 느끼는 사람은 너무 여리다는 점이다. 소망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이루려고 하지도 않고, 혹은 기대감을 상당히 줄여 놓을 정도로 소심하고 여린 사람만이 환희라는 감정을 자주 느낄 것이다. 대학이든 회사든 합격자 발표문이 공고되는 날을 예로 들어 보자. 그곳에 몰려든 응시자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우선 합격자와 불합격자로 나뉘어야 한다. 그렇지만 합격한 경우에도 반응은 두가지로 나뉜다. 어떤 사람들은 환희나 감격에 빠져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시크하게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네."라는 표정만 짓고 만다. 전자는 소심한 사람들이고, 후자는 적극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불합격의 경우에도 유사한 패턴이 반복된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듯이 쿨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혀 믿기지 않다는 듯이 합격자 명단을 반복해서 읽는 사람들도 있다. 이 경우에는 전자가 소심한 사람들이고, 후자가 적극적인 사람들이다. 소심한 사람들은 이미 합격에 대한 기대를 줄였기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쉽게 흥분하고,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시크하게 결과를 받들인다. 반대로 기대를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던 적극적인 사람들은 원하는 결과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워하지 않던 결과에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 것이다. 매사에 환희를 느끼고 쉽게 감격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소극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타인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강하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 환희란 그다지 축복할 만한 감정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소극적이고 여리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공손: 무서운 타자에게 보내는 친절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p376.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첫째 부류는 모든 사람에게서 온화하다고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다. 두 번째 부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악당이라고 지탄받는 사람이다. 세 번째 부류는 칭찬도 받고 욕도 먹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 욕을 먹는 두 번째 부류의 인간은 그냥 쓰레기이니까 조심하면 된다. 반면 진짜로 위험한 것은 첫 번째 부류의 인간들이다. 자신의 욕망을 주장하기 보다 항상 타인의 욕망을 따르려고 하니 온화하다느니 공손하다느니 하는 칭찬을 받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타인의 욕망을 따르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폐인이 될 것이다. 살아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제거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죽은 자일 수밖에 없다. 반면 타인의 욕망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첫 번째 부류의 인간은 정말로 위험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억압된 욕망을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폭발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정에서 악한 아내나 자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자에게 굽실거리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약자를 공격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첫 번째 부류의 남자를 만날 때 여자들은 그의 공손함과 온화함에 속아서 결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들은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지 온몸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공손하고 온화한 사람을 조심하라!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을 조심하라! 법 없이 살 사람을 조심하라! 이건 생활의 철칙이다. 결국 우리가 가까이 해도 되는 유일한 인간들은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에 속한 사람은 타인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당당하게 표현하니, 적과 동지가 명확히 구분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칭찬도 받고 욕도 먹는 것이다. 만일 그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과 부합된다면, 이런 사람과는 주저하지 말고 사랑에 빠져도 된다.

 

끌림: 사랑으로 꽃필 수 업어 아련하기만 한 두근거림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p408. 너무나 서둘러 일찍 결혼하는 여성이 있다. 이건 그녀의 행복지수가 매우 낮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불행한 가족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은 행복지수가 매우 낮다.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각 조금만 잘해 주어도 금방 그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밥을 먹을 때마다 '식충'이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던 여자가 있다고 하자. 그녀에게 어떤 남자가 "정말 맛나게 잘 드시네요."라고 친근하게 이야기한다면, 그녀가 어떻게 그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곧 가족을 떠나 그와 새로운 삶을 꾸리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남자와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그녀는 금방 그에게 심드렁해질 것이다.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남자보다 조금 더 잘해주는 남자가 생기면, 그녀는 금방 새로운 남자에게 또 끌리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냈지만, 그 대가로 화려한 연예인이 되는 데 성공했던 여배우들의 경우에 대부분 결혼 생활이 비극적으로 파탄 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끌림은 사랑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음식이 배가 고파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과 내 입맛에 맞아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허기짐이 없을 때에만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나의 삶 자체가 지나치게 불행한 건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다시 말해 끌림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이 어느 정도는 행복하도록 스스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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