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버린 세계의 허무함]
p204. 니힐리즘은 현대인의 조건conditio humana moderna이 되었다. 인식의 니힐리즘, 도덕의 니힐리즘, 미학의 니힐리즘. 아직도 철학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인간들에게 이 보편적 무의미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리라. 일찍이 니체는 허무와 마주치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한 바 있다. 하나는 허무를 이기기 위해 외부의 가치에 자신을 의탁한 채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떠받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허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부에서 새로운 도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떤 오류(?)가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된다면, 거기에는 어떤 절실한 요구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중세 이후에도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것은 과학에 무지해서가 아니다. 종교적 광신은 무너진 가치들의 폐허 속에서 허무를 극복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모든 흘러간 주의의 주창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삶이 무의미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종교와 이념의 신봉자들이 흔히 보이는 독단적 태도는 실은 타인의 비판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쫓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외부에 존재하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삶의 근원적 무의미를 망각해버리는 것이 노예의 도덕이다. 반면, 주인의 도덕은 모든 주의와 가치의 절대성을 부정하며 거기서 나오는 허무의 상태를 기꺼이 끌어안는다. 아마도 이것이 진정한 니힐리스트의 길일 것이다. 니힐리스트가 주의와 도덕의 싸움을 무의미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그 '놀이'에 꽤 열정적으로 참여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그는 자신이 변호하는 주의나 가치가 근원적으로 상대적이라는 의식을 놓지 않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지루함: ennui] - 무의미한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느낌
p206. "감각, 독약, 단검, 방화가 우리 불쌍한 인생들의 진부한 캔버스를 그 유쾌한 디잔인으로 수놓지 않았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혼에 담대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 우리 악덕의 추잡한 짐승들 중에, 더 추하고 더 악하고 더 더러운 놈이 있다. 비록 커다란 제스처를 취하지도, 커다란 울부짖음을 내지도 않지만, 그놈은 지구 위를 어기적거리며 커다란 하품 속에 기어이 세계를 감켜버리려 할 것이다. 그놈은 바로 지루함ennui이다! 독자여, 눈물이 고인 듯이 축축한 눈을 가진 그놈은 물 담배를 피우며 처형대를 꿈꾼다." (보들레르 <악의 꽃> 서문)
p207. 지루함에도 종류가 있다. 가령 외부의 대상에 대한 지루함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우리ㅡㄴ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지루함을 느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마도 내면에서 올라오는 지루함이리라. 삶 자체가 쳇바퀴처럼 돌고 있다는 느낌. 물론 지루함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 지루함은 휴식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며 우리를 새로운 창조로 이끈다. 하지만 그 어떤 삶의 행위로부터도 의미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절대적 지루함은 인간을 보들레르가 말한 "처형대"로 이끌 수 있다. 자살에 반드시 처절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p210. 삶에 의미란 게 있을까? 그런 것은 애초에 없을지 모른다. '의미'란 것은 근원적 지루함을 망각하기 위해 억지로 지어낸 '서사'에 불과하며, 삶의 '서사'란 그저 삶의 근원적 무의미를 감추기 위한 뻔뻔한 허구일지 모른다. 실제로 몇몇 종교에선 그렇게 가르치지 않던가. 하지만 종교에 귀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당에 올라가 영원히 예수의 설교를 듣거나, 해탈하여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현세에서 영원히 재방송을 보는 게 덜 지루해 보인다. 종교가 인간을 유한성에서 구할지는 몰라도 지루함에서 구해줄 것 같지는 않다.
삶의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크게 세 갈래의 길이 있을 것이다. 범죄, 창조, 자살이 그것이다. 먼저 '범죄'는 산문적 삶 속에 인위적으로 영웅적(?) 서사를 도입한다. '예술'은 창작을 통해 삶에 시적 리듬을 부여해 그것의 지루함을 견디게 해준다. '자살'은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으로, 삶이라는 지루한 산문에 그냥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길은 서로 합류할 수도 있다. 가령 총기 살인범들은 대개 범죄를 자살로 마감하고, 연쇄살인범들은 종종 범죄를 예술로 착각하며, 널리 알려진 것 처럼 미시마 유키오는 자살을 일종의 예술로 연출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영웅적인 것은 이 절대적 지루함을 분과 초 단위까지 충만하게 견뎌내는 인내심에 있지 않을까? 어느 에세에이에 나오는 발터 베냐민의 말이 혹시 답이 될지 모르겠다.
p211. "파괴적 성격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감정이 아니라, 자살이 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감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