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현감 귀신체포기 1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이가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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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내내 일기에 대해 생각했다. 일기란 무엇일까. 그 일기를 쓰는 나 자신을 포함햐서 누군가 다시 읽어 주기를 바라는 글이 아닐까. 내가 쓴 글로 나 자신을 위로하는 짓이 바로 일기다. 그만큼 은밀하면서도 타인을 의식하는 지독한 글쓰기.
-<부여현감 귀신 체포기> 김탁환 지음

처음에는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이 책이 현재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여 현감의 시대로,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셈이었고, 그 때까지는 영문을 모르는 책읽기를 계속해야 했다. 피를 빨려야 텅 빈 책에 빼곡한 글씨를 볼 수 있다니.

일단 백범영의 그림이 좋다. 그림책을 보는 듯 하지만 그림은 설명적인 동시에 모호하다. 빈 틈을 찾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림이 좋다. 때로는 상상 속의 요괴를 너무 쉽게 그림에서 보여주어 맥이 빠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림은 글과 같이 간다. 특히 본문의 내용이 그림에서 '이어지는'(반복이나 부연이 아니라) 경우가 꽤 있어서 결국 그림까지 꼼꼼하게 읽게 만들더라.

줄거리는,
<부여현감 귀신 체포기>는 '지괴(志怪)소설'이라는 레테르를 달고 있다. 한마디로 귀신에 관한 소설이라는 뜻이다. 고전소설 <전우치전>의 주인공 전우치와 그의 친구인 부여현감, 그리고 신비한 여승 미미가 힘을 합쳐 온갖 귀신들을 물리친다는 이야기 모음이다.
- 한겨레 최재봉 문학전문기자(2005-01-15)

음양사를 읽으며 세이메이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부여현감 귀신 체포기를 읽으면서는 전우치에 빠져들었다. 요괴들을 물리칠 뿐 아니라 심지어 부리기까지 하는 세이메이의 요망한 매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우치는 가까운 친구이자 허랑방탕한 여인네들의 연인으로 제격인 등장인물이다. 사투리를 쓰는 부여 현감이 사실 주인공.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래도 음양사와 인물 구도가 비슷.) 부여 현감은 푸른 눈의 미미 스님을 좋아하는데, 그 사랑 역시 쉬울 턱이 없다. 그래도 마지막 ** 장면은- 쓸 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솔직히 말해 대단히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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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휴일 1
나가하라 마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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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이 날을 위해 살아왔다. 순정만화가 다시 즐거워질 날을 위해서 말이다. 착한 척 하는 예쁘다 만 여중생이 약간 삐딱하고 반항기있지만 무지하게 잘생긴 남학생을 좋아하고 그의 노예가 되고 그와 이런저런 것들을 하는 이야기에 지쳤다. 내 나이가 몇이냐!

<소소한 휴일>은 연애 휴일 2000일째가 다 되어가는 어느 잘 안 나가는 순정소설 작가 이야기다. 나이는 29살. 은행 일을 관두고 작가가 되기로 한 지 5년 째이지만 뭐- 당연히 되는 일은 없다. 원고를 부탁받았던 기획은 엎어지고, 엄마한테는 구박을 받는 나날, 옛 학교 동창이 나타난다.

저 동창은 '그'가 아니다. 실생활에서는 절대 이 인간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안 가지만, 순정만화는 딱 보면 알 수 있다. 귀엽게 생긴 동창의 이야기가 1권의 1/3도 넘게 진행되지만- 얘, 이거 아닌데. 싶은 것이다. 결국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편집자다. 푸하하- (이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일단 편집자 야마모토 님은 무뚝뚝하고 전제적이시며 적절하고 날카로운 충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저런 편집자라면 나도 좋아하겠다.

30이 가까워오는 여자라거나, 연애가 잘 안풀리고(꼬이는 인간들도 남 줘버리는 연애루저 형이라면 더더욱), 원고 써서 먹고 사는(특히 소설) 여자들은 정말 감정 이입 장난 아니다. 야마모토 씨가 건실한 회사원의 전형 같은 양복 차림에 안경을 끼고 "이대로는 안되겠는데요"(편집자가 이 말을 하는 순간의 그 마조히즘적 쾌감!)라고 말하는 순간, "이 남자다!"하고 바로 꽂히는 것이다.

재미있는 대사들-----

"아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편은 인기있지 않대"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여성지도 챙겨 있고 남친도 있었을 땐... 팔이나 종아리의 털이란 털은 그냥 냅두지 않았었지... 나갈 땐 3시간 전에 일어나 매일 2시간 걸려서 화장하고 머리도 말고...
아뿔싸! 탱탱하고 귀여웠던 19~20살의 내가 그토록 노력해서 겨우 연애했는데, 29~30살을 앞둔 지금, 타성에 젖은 노력만으로 뭐가 잘 되겠냐구!!!

---------------

호노카의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대목도 귀엽다. 야마모토 씨가 뭐 갖고 싶냐고 물으니 호노카가 팬티만 남기고 옷을 다 벗은 야마모토 씨가 머리에 리본을 매고 쪼그리고 앉은 모습을 상상하는 대목은 거의 폭소의 도가니이며, "다 야마모토씨 덕분이옵니다"라는 호노카의 말에 여성에 대한 면역력이 거의 제로수준인 야마모토 씨의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같이 달아오르는 것은 귀여워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그는 형제들과도 매우 단란하다)

순정만화, 이래서 보는 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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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5-02-24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답니다. 소소한 휴일, 제목도 멋들어져요. ^^

marina🦊 2005-03-20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즐겁죠. 히힛.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 An Inspector Morse Mystery 1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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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문에서 모스 경감 시리즈가 나오는군요. 시리즈 첫 권으로 나온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을 읽었습니다. 모스 경감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200페이지 정도로 양이 많지 않은데다가 워낙 유머러스하게 쓰여져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의 뒷표지에는 "영국인들이 '셜록 홈즈'보다 더 좋아하는 '모스 경감'"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정말 그런지 모르겠네요.

모스 경감이 인기가 있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홈즈와 캐릭터도 매우 다릅니다. 모스 경감은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지녔는데, 홈즈처럼 천재적이고 다소 퇴폐적(혹은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는 않는 거죠. 말하자면 모스 경감은 홈즈보다는 프렌치 경감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프렌치 경감보다는 좀 더 자유분방하달까요. (프렌치 경감은 고지식하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말입니다. 아주 우직하고.)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에서 모스 경감이 입원한 병원에서 선정적인 대중소설 <블루 티켓>을 슬쩍슬쩍 보다가 세번이나 망신(?)당하는 장면에서는 낄낄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꿈까지 꿉니다! 이 정도면 모스 경감 캐릭터가 머릿속에 떠오르시는지?

책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큰 줄거리는 모스 경감이 위장병 때문에 병원에 실려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모스 경감은 간호사들에게 별명을 붙입니다. 예쁘고 젊고 친절한 아가씨에게는 '피오나 공주'라는 별명을, 엄격한 수간호사에게는 네시(네시 호에 사는 괴물 네시)라는 별명을 붙입니다. 부하인 루이스 형사도 모스를 자주 찾아옵니다(야한 소설과 술도 반입해주지요). 어느날 옆 침대의 환자가 죽고 그 미먕인이 약간 괴이하게 모스에게 책 한권을 건넵니다. 그 책 제목이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입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에 대한 르포 형식으로 씌여진 책이지요. 이제 (영화식으로 말하면) 교차편집으로 책 속 살인사건과 모스 경감의 현재를 번갈아 보여줍니다.

1859년 초여름, 조안나 프랭크스라는 한 여자가 옥스퍼드 운하에서 죽은 채 발견됩니다. 강간과 강도를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체는 대중의 공분을 자아냅니다. 그녀를 향해 음탕한 눈길을 던졌고(행동으로도 옮긴 것으로 추정되자) 결국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4명의 선원이 체포되어 몇명은 교수형을 당하고 한 사람은 호주로 보내집니다. 모든 용의자는 죽는 순간까지 범행을 부인합니다. 모스 경감은 책을 읽으며 살인사건에 뭔가 의심쩍은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20년 전의 살인사건을 수사해 합니다. 처음에는 자료만으로, 그리고 퇴원한 뒤로는 발로 뛰지요.

아무래도 추리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모양이라, 금새 사건의 진상을 알아차리겠더라구요. 하지만 많은 훌륭한 추리 소설이 그렇듯이, 결말을 알아도 책은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일단 모스 경감이라는 인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해학성이 발군입니다. 그리고 역사 속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현재의 많은 농담과 놀이에 암시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예상대로의 결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어어!"하면서 앞 장을 뒤적이게 만드는 구석도 있어요. 아무래도 즐겁게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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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thele 2004-12-28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영국에선 셜록 홈즈 만큼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몇 가지 속사정이 있습니다만... TV시리즈로도 만들어져 1천만이 시청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었죠.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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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격 전쟁이 이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지백과 부차의 일을 거울로 삼지 않는가? (사람을 거울로 상으면) 전쟁이야말로 흉물임을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382쪽

맨 꼴찌는 마음 편한 자리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아마 가장 철학적인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기를 쓰고 달려가야 할 곳이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지요-103쪽

평탄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지나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어렵지만 마음을 곧게 가지고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마라. 식복이 있으리라.-113쪽

君子不器 -p.150(논어 중 위정)
해설: 군자는 그릇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구절의 의미입니다...(중략) 전문화는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아래층에서 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차를 전문적으로 모는 사람, 수레바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 배의 노를 전문적으로 젓는 사람 등 전문성은 대체로 노예 신분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였습니다. 귀족은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육예를 두루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모두 익혀야 했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들은 시도 읊고 말도 타고 활도 쏘고 창칼도 다루었습니다. (중략)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입니다.-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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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관 2 - 법의관 스카페타 시리즈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6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4년 11월
합본절판


"제가 여자라서 표적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자네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일세."
포토시스가 말했다.
"자네에게도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는 걸 남자들이 깨달을 때까지는 계속 표적이 될거야. 자넨 이빨이 있잖나."
박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보여주게."-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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