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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휴일 1
나가하라 마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날을 위해 살아왔다. 순정만화가 다시 즐거워질 날을 위해서 말이다. 착한 척 하는 예쁘다 만 여중생이 약간 삐딱하고 반항기있지만 무지하게 잘생긴 남학생을 좋아하고 그의 노예가 되고 그와 이런저런 것들을 하는 이야기에 지쳤다. 내 나이가 몇이냐!
<소소한 휴일>은 연애 휴일 2000일째가 다 되어가는 어느 잘 안 나가는 순정소설 작가 이야기다. 나이는 29살. 은행 일을 관두고 작가가 되기로 한 지 5년 째이지만 뭐- 당연히 되는 일은 없다. 원고를 부탁받았던 기획은 엎어지고, 엄마한테는 구박을 받는 나날, 옛 학교 동창이 나타난다.
저 동창은 '그'가 아니다. 실생활에서는 절대 이 인간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안 가지만, 순정만화는 딱 보면 알 수 있다. 귀엽게 생긴 동창의 이야기가 1권의 1/3도 넘게 진행되지만- 얘, 이거 아닌데. 싶은 것이다. 결국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편집자다. 푸하하- (이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일단 편집자 야마모토 님은 무뚝뚝하고 전제적이시며 적절하고 날카로운 충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저런 편집자라면 나도 좋아하겠다.
30이 가까워오는 여자라거나, 연애가 잘 안풀리고(꼬이는 인간들도 남 줘버리는 연애루저 형이라면 더더욱), 원고 써서 먹고 사는(특히 소설) 여자들은 정말 감정 이입 장난 아니다. 야마모토 씨가 건실한 회사원의 전형 같은 양복 차림에 안경을 끼고 "이대로는 안되겠는데요"(편집자가 이 말을 하는 순간의 그 마조히즘적 쾌감!)라고 말하는 순간, "이 남자다!"하고 바로 꽂히는 것이다.
재미있는 대사들-----
"아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편은 인기있지 않대"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여성지도 챙겨 있고 남친도 있었을 땐... 팔이나 종아리의 털이란 털은 그냥 냅두지 않았었지... 나갈 땐 3시간 전에 일어나 매일 2시간 걸려서 화장하고 머리도 말고...
아뿔싸! 탱탱하고 귀여웠던 19~20살의 내가 그토록 노력해서 겨우 연애했는데, 29~30살을 앞둔 지금, 타성에 젖은 노력만으로 뭐가 잘 되겠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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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카의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대목도 귀엽다. 야마모토 씨가 뭐 갖고 싶냐고 물으니 호노카가 팬티만 남기고 옷을 다 벗은 야마모토 씨가 머리에 리본을 매고 쪼그리고 앉은 모습을 상상하는 대목은 거의 폭소의 도가니이며, "다 야마모토씨 덕분이옵니다"라는 호노카의 말에 여성에 대한 면역력이 거의 제로수준인 야마모토 씨의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같이 달아오르는 것은 귀여워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그는 형제들과도 매우 단란하다)
순정만화, 이래서 보는 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