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는 숙제처럼 느껴지는 이름이다.
처음으로 [은밀한 생]을 읽었을 때의 충격.
이건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이런 책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구속되지 않는 작가, 언어로 쓴 책 속에서 언어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 애쓰는 작가, 띠지에 적힌 '사유하는 독자라는 즐거운 착각을 안겨 주는' 작가(ㅋㅋ).
파스칼 키냐르 본인이 자신의 문학관과 문체론 등을 서술한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역시 너무나 키냐르스럽다.
'사색적 수사학'이라 명명한 키냐르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과 철학-'나는 콩트, 플롯, 뒤얽힘, 함축, 스토리, 이야기, 계보, 연대기, 시퀀스들의 정연한 질서 가운데 벌어진 일들의 열거를 구별 짓지 않는다.(126쪽)' 얼핏 다양한 종류의 파편들을 두서 없이 모아놓은 잡동사니 상자 같은, 무엇을 발견할지 알 수 없는 설렘을 즐기는 독자들에겐 꼼짝없이 취향저격인, 키냐르 수사학.
인간에게 익숙한 언어, 소설이라는 틀 그 무엇과도 일치하지 않는 키냐르만의 독보적 스타일이 맞지 않는 이라면 이게 무슨 글이냐며 화를 내며 책을 던질 것이고, 나 같은 인간들은 맹목적으로 동경하고 경외하며 이해할 수 없음 그 자체를 사랑하며 책을 끌어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