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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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작가란 제 언어를 선택하고, 그 언어에 지배당하지 않는 자다. 그는 어린아이와 정반대다. 자신을 지배하는 것에 구걸하지 않고, 그것에서 해방되려고 힘쓴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19쪽, 을유문화사


파스칼 키냐르는 숙제처럼 느껴지는 이름이다.

처음으로 [은밀한 생]을 읽었을 때의 충격.

이건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이런 책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구속되지 않는 작가, 언어로 쓴 책 속에서 언어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 애쓰는 작가, 띠지에 적힌 '사유하는 독자라는 즐거운 착각을 안겨 주는' 작가(ㅋㅋ).


파스칼 키냐르 본인이 자신의 문학관과 문체론 등을 서술한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역시 너무나 키냐르스럽다.


'사색적 수사학'이라 명명한 키냐르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과 철학-'나는 콩트, 플롯, 뒤얽힘, 함축, 스토리, 이야기, 계보, 연대기, 시퀀스들의 정연한 질서 가운데 벌어진 일들의 열거를 구별 짓지 않는다.(126쪽)' 얼핏 다양한 종류의 파편들을 두서 없이 모아놓은 잡동사니 상자 같은, 무엇을 발견할지 알 수 없는 설렘을 즐기는 독자들에겐 꼼짝없이 취향저격인, 키냐르 수사학.


인간에게 익숙한 언어, 소설이라는 틀 그 무엇과도 일치하지 않는 키냐르만의 독보적 스타일이 맞지 않는 이라면 이게 무슨 글이냐며 화를 내며 책을 던질 것이고, 나 같은 인간들은 맹목적으로 동경하고 경외하며 이해할 수 없음 그 자체를 사랑하며 책을 끌어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안내가 없다. 어떤 신도 보여 주지 않고 부르지도 않는다. 모든 진정한 작품은, 모든 진정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과도 부합하지 않기에 무엇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알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작업해야만 한다. 따를 스승도 없고, 비평가도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그것을 기다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시장 조사를 할 것도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위한 어떤 학문도, 어떤 비평도, 어떤 조언도, 어떤 의지도 있을 수 없다. 안내하는 별도 없으니 언어의 부재하는 별을 단호히 따라가야 한다.

같은 책, 106쪽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알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작업하기,

문학이란 무엇인가 묻는 질문보다 문학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부터 질문하기.

답이 없는 질문을 하는 방법, 그래서 사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을 읽고 쓰는 이 글의 결론 역시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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