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반장 추억 수첩 - (외전)
요번 글은 그냥 외전입니다.
군대 있을 때 썼던 글에 제 설명이 붙은 게 아니라
그냥 제가 쓰고 싶은 데로 쓴 군대 관련 글이라고 할까요?!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이맘 때
저는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교 다니는 것도 재미없고 해서 1학년 1학기만 달랑 마치고 휴학을 했지요.
빨리 군대에 가고 싶다고 병무청에 들락날락거리기를 수차례...
결국 입대 날짜를 받았으니 그 날이 바로 97년 11월 18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군대를 빨리 갔다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웬걸?
막상 입대 날짜가 잡히니깐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하더군요. 헐 헐 헐.
입대 날짜가 잡히고 나서
제 일상생활 중에 달라진 점 하나는
사람들이 저한테 “터치”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거였지요.
휴학을 하고 나서부터는 특별히 어떤 일을 했던 것도 아니고
그 좋은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며 반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허구한 날 늦잠이나 자고...
그래서 아버지와 엄마는 저한테 자주 잔소리를 했었습니다.
그러던 게 입대 날짜를 받아두니 잔소리가 싹없어 지더군요.
허 허 허 완전히 제 세상이었지요.
그러다 군 입대 몇 주 전...
하루는 엄마가 저한테 이런 이야기 하시더군요.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 접종을 한다고 하더라.
그 주사를 맞으면 다른 감기도 함께
예방이 된다고 하니까 너도 군대가기 전에 꼭 맞아라.”
라구요.
하지만 저는 예방 접종을 받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만사가 다 귀찮았거든요.
허구한 날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되풀이해서 그런지 움직이는 게 싫었고,
또 하나!
20살 넘게 먹은 사내 녀석이 쪽 팔리게 어떻게 주사 같은 것을 맞을 수 있냐는
되도 안한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추운 11월에 군대를 갔습니다.
신교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2주차인가에 덥석 감기몸살에 걸려버렸지요.
나름대로 동기들이 저를 챙겨준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엄마만 하겠습니까???
(외국 나가면 애국자 되고, 집 떠나면 효자 된다는 말이 참말입니다.)
아픈 몸으로 겨우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서 불 꺼진 내무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독감 예방 주사가 생각 나더군요.
엄마 생각이 너무 너무 간절했습니다.
'아~~~~~
그 때 엄마가 독감 예방 접종을 받으라고 할 때 주사를 맞는 거였는데...
그 때 주사를 맞았으면 지금 이렇게 감기 몸살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을 건데...
그 때 주사를 맞았어야 했는데...
왜 그 때 주사를 맞지 않았을까...
그 때 주사를 맞지 왜 안 맞았을까.......'
주사를 꼭 맞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잠자리에서 동기들 몰래 모포를 뒤집어쓰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집 떠나와 엄마처럼 돌봐주는 사람 없이 아팠다는 서러움에
엄마 말 듣지 않아서 벌 받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참 잘 나더군요.
다짐을 했지요.
제대하면 그 때는 꼭 독감 예방 접종을 받아야지.
남들이 뭐라 하든 안 하든 꼭 챙겨 맞아야지.
꼭 맞아야지, 꼭 챙겨 맞아야지.... 라구요.
나중에 제대하고 TV를 보고 있는데 한 의사가 나와서 이런 말하더군요.
"흔히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면 다른 감기도 함께
예방이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잘못된 속설입니다.
독감과 감기는 다른 겁니다.
독감 예방 접종은 독감에만 효과가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저희 엄마가 잘못 아시고 저한테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라고 하셨던 겁니다.
하지만 그게 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 아닙니까.
그 때 눈물 흘리며 느꼈던 그리움과 바로 그 서러움 때문에
제대하고 나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독감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 또 슬슬 예방 접종 시즌이 돌아오는군요.
오늘이나 내일 짬을 내서 독감 주사를 맞으러 가야겠습니다.
보건소에 가면 4000원인가? 5000원에 독감 주사를 맞을 수 있으니 짬을 내서 한 번 가보세요.
이게 싸게 치는 겁니다. (^0^)
독감 주사 때문에 옛 생각이 나서 이것저것 끄적거려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