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수 없어한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 밖에 위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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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돼. 

그러다가 하늘 저편에서 푸른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 지 몰라.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

하늘에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거야..."

- 양귀자, '모순' 중에서 -


[201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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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한달 후, 일년 후』 프랑소와즈 사강














츠네오, 눈 감아봐. 뭐가 보여?

아무것도. 깜깜해.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데굴데굴. 데굴데굴. 데굴데굴....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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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트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네이트 실버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의 성적을 예측하는 시스템인 페코타를 개발해 놀라운 적중률을 보였다. 특히 2008년 미국 대선에서 50개 주 중 49개 주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고 총선에서도 35명 상원의원 당선자를 모두 맞춰 유명해졌다. 2012년 미국의대선에서도 여론조사기관이 롬니의 승리를 예측할 때 오바마의 승리를 예측하고 50개 주의 결과를 모두 맞췄다. 이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그토록 놀라운 적중률을 보였던 네이트 실버가 정작 트럼프의 당선을 맞추지는 못했다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는 책이다. 


오바마가 당선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생각은 이제 '인종주의'라는 것은 일부 극소수층의 백인들에게만 남아있을 것이란 믿음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이를 뒷받침 하듯 오바마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내 앞에서 혹은 전화로 당신은 '깜둥이'라는 단어를 쓰시나요. 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설사 상대를 처음 봤거나 목소리만 들을 뿐이면서도 '아니요'라고 답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흑인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오바마가 당선되는 날 오바마가 포함되는 검색어에는 '깜둥이'가 포함되었다. 심지어 일부 주에서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아니라 '깜둥이 대통령'을 더 많이 검색했다. 


저자는 구글에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은밀한 검색을 하는 것을 두고 '인터넷 자백약'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범죄자가 포털에 범죄의 방법 등을 검색한 기록 때문에 불리한 증거로 이용되는 경우를 종종보곤 한다. 그만큼 검색창에 쓰는 말은 개인적이면서도 솔직하다. 저자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다양한 정보를 분석하려고 시도한다. 심지어 '트럼프 클린턴'으로 검색하는 지, '클린턴 트럼프'로 검색하는 지에 따라 그 득표율이 달라진다. 당연히 지지하는 후보를 앞으로 놓고 검색하게 돼있으며 결과 역시 그랬다. 실제 클린턴의 승리가 점처지던 중서부 주요 주에서 트럼프를 앞에 놓고 검색하는 양이 늘어 났고 이는 트럼프 당선에 큰 힘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트럼프 지지율이 높았던 지역은 4년 전 '깜둥이'라는 검색이 많았던 지역이었음이 밝혀졌다. 


정보가 많다는 것이 곧 자산으로 생각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정보는 원하는 것 이상으로 주어지고 있으니 그것을 어떻게 분석하고 이해하느냐가 관건인 때가 되었다. 네이트 실버가 '신호와 소음'에서 지적하는 것 역시 수많은 소음 같은 정보속에서 어떻게 유의미한 '신호'를 잡아내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적어도 미국에서 구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것은 그 데이터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는 그만큼 솔직해지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은 적절하게 활용만 된다면 정치뿐 아니라, 상품 판매, 여론 파악, 경제 예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데이터 분석의 사례를 소개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역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누군가가 보행자를 뜻하는 pedestrian을 penistrian으로 잘못 썼다면 그것은 남성의 성기를 갈망하는 욕구의 분출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에러봇'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의 오타 빈도를 적용해 통계를 내 보았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성적으로 해석되는 실수를 유의미하게 많이 하지 않았다.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다른 이론(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같은)의 경우도 그의 주장만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욕망을 감추며 살아가는 것은 아님을 구글 트렌드는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밖에도 췌장암에 걸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검색하는 내용이나, 주택가격이 오를 때 미국인들은 '80/20 융자', '주택 건축업자', '평가율' 같은 문구를 검색하고 떨어질 때는 '쇼트 세일','언더워터 모기지', '융자구제' 같은 검색어가 급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지금처럼 코로나가 퍼지는 중이라면 아마도 '발열','두통','코로나 증상' 등의 검색이 급증하는 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발생할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의 이용은 이 책 전체에서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데 일례로 좋은 와인을 고르는 방법이 그렇다. 우리는 한 지역에서 나는 포도로 생산한 와인의 맛은 숙성연도의 차이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겨울의 강수량과 생장기 평균 기온이 플러스 요인, 가을의 강수가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책에는 정말 다양한 사례의 데이터 분석이 나와 있다. 물론 가장 개인적이면서 비밀스러운 이야기인 성적인 이야기도 상당부분 차지한다. 그런 사례 말고도 '뉴욕 메츠'를 간절히 응원하지만 동생은 하지 않는지, 폭력적인 영화가 정말 범죄율을 상승시키는 지, 구글이 이용자들의 패턴을 분석해서 검색결과를 10개만 보여주는 지, 20개 보여주는 지, 메뉴 구성은 어떻게 해서 효과를 극대화 했는 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책의 말미에 정작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에 대해 적어 놓았다. 우선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스티븐 레빗의 '괴짜 경제학' 때문이라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그의 책을 좋아해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고 실제 이 책의 구성이 '괴짜 경제학'과 유사한 구조를 띄고 있다. 조던 엘렌버그는 사람들이 책을 끝까지 읽었는 지를 밝히기 위해 빅데이터를 이용했는데, 책의 인용문이 앞부분에 집중 되었는지 뒷부분에 집중되었는지를 보는 식이다. 애석하게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7퍼센트 밖에 끝까지 보지 않은 셈이다. 굳이 나는 끝까지 읽었다고 표시하기 위해 여기 결론 부분의 글을 옮겨 놓는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적절한 방법으로 끝맺을 것이다. 데이터에 따라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에 따라서 말이다. 나는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하고 이 망할 결론을 그만 쓸 것이다. 빅데이터가 말하길 여기까지 읽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니까.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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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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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시는 그 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진짜라는 것을. 나는 그가 한 일을 보았다. 한때 나는 그 자의 눈앞에서 걸어 다녔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는 내 운명을 걸고 그 자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 .........  

당신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그들도 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알아차린다. 어쩌면 당신은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영혼을 내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자신은 그러지 않을테다.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p.12,13)


장담컨데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고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무슨 따분한 제목이란 말인가. 실제로 나도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이는 경로효친 사상 혹은 사회복지를 새삼 강조하고자 하는 코맥매카시의 메시지가 아닐까 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더 로드'를 먼저본 터라서,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하는 책을 썼으니 이번엔 아마도 아들이 아버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일거라 지레 짐작하기도 했다. 

성격 급하게 미리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 책의 제목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사실 노인을 위한 암시라기보단, 노인을 향한 경고에 가깝다. 

[사진은 영화의 스틸컷을 첨부했습니다]


'노인'이 갖는 상징성


노인을 향한 경고라는 것은 나이든 사람이 아니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그것은 장밋빛 뺨, 양두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의 싯귀를 읽고 나서 다시 맨 위의 보안관 벨의 독백을 보자. 그는 보안관이지만 안톤 시거 같은 살인마와 다시 마주치고 싶어하지도 않고 영혼을 걸지도 않겠다고 한다. 그는 노련하기 때문에 모든 사태를 쉽게 파악하고, 넘치는 지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자신의 영혼을 내건 모험을 하지도 않으며, 적극적으로 시거를 잡으려 하지도 않고 다만 가만히 서서 상황이 호전되기만을 기다린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는 것은, 그저 많이 알고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행동하지 않는 이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 같은 말이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 아니고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고 겁만 먹고 두려워하는 우리 대부분의 모습을 표현한 단어이다.


꿈에서 나는 아버지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그토록 춥고 어두운 세상의 어딘가에서 불을 피우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언제든 닿으면 아버지가 거기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p.339)



벨 VS (쉬거 혹은 모스)


소설의 전체 대결구도는 물론 시거와 모스이다. 모스는 쫓기는 사람이고 시거는 쫓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 둘은 또 벨 보안관과 대조를 이룬다. 그들이 한 편에 서서 벨과 대조를 이루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모스는 우연한 기회에 거액의 돈을 손에 넣는다. 이 돈은 마약상들의 거래 과정에서 우연히 모스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모스는 돈에 대한 열정으로 인생을 내던진다. 시거 또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 또한 돈에 대한 열정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그 열정은 돈보다는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에 대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 둘의 열정을 돈을 가지기 위한 젊은이의 무모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전체적으로 소설에서 흐르는 분위기가 단순치가 않다. 그들은 돈이 아니라 무엇이든 자신의 인생을 쏟아 부을 무엇인가가 있었다면 삶을 내던졌을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 열정이 빗나간 것이거나, 사회가 만든 기준에 맞지 않는 저급한 것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라며, 사회가 만들어 놓은 good과 evil 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good 과 bad를 행해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가 안된다고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내 열정이 그것을 원하고 있다면 하는 것! 그것이 시거와 모스가 가진 치열함이다. 



동전의 양면, 원칙(?)있는 살인




매우 전형적인 살인마의 행태를 보여주면서도 또 이전의 인물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인물은 단연 시거이다. 그의 살인행태가 이전 다른 소설이나 영화의 그것과 비슷한 이유는 무감각 하기 때문이다. 그저 본인에게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쉽게 사람을 죽이고도 일말의 감정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그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일 뿐, 그에게는 그가 갈 길만 남아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에게는 나름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죽이려고 했지만, 동전이 뒤집어져서 펼쳐지면 그냥 죽이지 않기도 한다. 그건 그가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피해자가 운이 좋은 것이다. 그는 '운'의 존재를 인정한다. 


22년이나 굴러다니던 동전이 상점 주인의 목숨을 구해주듯이, 우연히 선택한 길에서 살아난 사람은 그저 운이 좋은 것이다. 그는 그런 운명의 시계까지 억지로 되돌려 놓지는 않는다. 그는 나름 원칙이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잔인해서 차가 필요하면 그냥 운전자를 죽일 뿐이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가진 자를 죽이려 할 뿐이다. 단, 그가 운을 인정하는 범위는 자신의 라인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만이다.


1958년, 22년을 떠돈 끝에 여기에 온거요. 그리고 지금 여기 있소....

앞면이거나 뒷면이겠지. 당신이 말해 보시오. 어서.

내가 이기면 무엇을 얻는 겁니까?

전부를 얻소. 시거가 말했다. 전부.

(p.68)



욕망의 시험양 모스


모스는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인 캐릭터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그가 겪게될 난관에 비하면 너무 노멀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평범하게 살면서도 그런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갖지못하지만 갖고 싶은 것들을 탐하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노멀한 욕망이지만, 그 대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의 수준 그 이상을 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모스는 우연히 넣은 200만 달러의 돈으로 인해 인생 자체가 큰 시험에 빠진다. 운명에 대항해 보려고도 했고 그것을 피해보려고 발버둥도 친다. 하지만, 시거라는 큰 장애물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뿐이다. 결국, 부인도 잃고 자신도 잃고 돈도 잃고, 모든 것을 읽고 그에게는 이루지 못한 욕망만이 신기루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꿈꾸는 대부분의 욕망을 이루지 못한다. 다만 거기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벨처럼 멀리서 관망하며 '나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던지, 아니면, 모스처럼 '난 내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그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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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스타일 - 지적생활인의 공감 최재천 스타일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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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딱딱하지 않은 과학자의 에세이


이 책은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의 에세이이다. 이 책은 그와 관련된 사람이나 개념, 또는 서적을 소재로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이야기 해 나가는 형식의 에세이다. 과학자가 쓴 글이라 그런지 전체를 꿰뚫는 주제가 일관되고, 다른 에세이에 비해 조금은 덜(?) 감성적이다. 내가 최재천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통섭(consilence)이라는 단어를 접하면서이다.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제자이기도 한 저자는 스승의 책을 우리나라 말로 ‘통섭'이라고 번역해 국내에 출판했다. 통섭이라는 개념은 최재천 교수를 알게 해주는 두 단어 중 하나이다. (또 하나는 아마도 ‘다윈'이겠지) 통섭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 교육의 아킬레스건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학교에 다니는 음악에 재주있는 아이들은 악보나 악기에 대해 배우기 전에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주변의 사물에 눈을 뜬다. 우리라면 어떨까? 피아노 신동이라고 밝혀지는 순간 학원에 보낸다. 하루 12시간씩 피아노만 배우고 국어며 수학이며 다 빼고 연주만 하게 한다.  유도 신동은 열 두시간 유도만 하고, 피아노 신동은 열두시간 피아노만 친다. 그런 엘리트 교육이 우리나라를 외향적으로 최고의 수준에 올려놨을 지는 모르지만, 거기에서 순위에 들지 못한 대부분의 인생을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숙제로 남겼다. 조금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통섭은 하나의 전문분야로는 완벽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의 편향된 교육과 많이 닮아 있다.


통합, 융합 아닌 통섭


통섭은 하나의 학문으로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여러 학문을 모아 분석함으로써 최상의 답을 찾아낸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좀 더 다방면으로 공부하고, 다양한 자료를 모아야 하며,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가 돼야 더 완벽한 답을 찾는다. 음악 공부하는 아이들이 음악만 공부하지 않고 눈을 감고 새소리, 물소리를 듣는 이유는 그런 교육 속에서만이 진정한 마에스트로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라 할지라도 다른 분야의 지식을 배경으로 할 수 있어야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또 결국 진화론으로 이야기로 돌아간다. 통섭이라는 개념을 생물학 쪽에 적용 시키다 보면, 저자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필연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인간은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최재천 교수가 만든 용어이다. 저자의 책이나 강의를 듣다보면 알게되는 사실이지만, 사실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알면 사랑한다'이고,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바로 ‘호모 심비우스'이다. 진화론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학문에 대해 지식을 쌓는다는 의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그걸 강하게 느끼는 것이 저자의 글을 볼 때이다. 


진화는 어느 한 개체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살아남은 후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다른 종의 개체가 서로 도우며 살아 남은 증거이기도 하다. 진화는 결코 1등이 살아 남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나는 가수다'에서 한 명만 제외하고 나머지가 살아 남듯, 진화 또한 앞선 6명의 개체가 살아 남는 것과 같다. 나머지 개체들은 서로 생존에 도움을 주며 공생하고 있으며 이런 개념이 '호모 심비우스'의 중요 개념이다. 저자는 늘 그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진화에서 살아 남은 종은 특별히 우수하다고 판명된 것이 아니라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교수는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서,

“만일 우리가 지구의 역사가 담긴 영화를 다시 돌린다고 할 때 마지막 장면에 우리 인간이 또 다시 등장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말한다.

인간이 생겨나 생존한 것은 다른 생명체보다 훨씬 뛰어나서도 아니고, 유난히 적응을 잘해서도 아니다. 인간은 무계획적이고 비효율적인 자연 선택 과정의 우연한 결과물일 뿐이다. (다윈지능 p.67)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 스티븐 제이굴드]


그런 생각 때문인지 에세이 곳곳에 겸손함이 묻어나고 공생을 강조한다. 인간이라고 해서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다룰 권리를 가진 것이 아니며, 우리가 피해를 주게 된다면 그 영향은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 말하고 있다. 특히 제인 구달 박사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그 느낌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너무도 많은 악영향을 끼치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극곰은 얼음과 얼음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줄 모른다. 예전에는 그런 걸 측정할 필요가 없었다. 얼음이 늘 그들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p.60)


호모심비우스 즉 공생하는 인간을 그가 강조하는 것은, 모든 지식이 서로 연결되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통섭'의 개념처럼, 모든 생명체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완벽한 공존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려 했던 것은 과학자 최재천이 아니라, 인간 최재천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읽다보면 결국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고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 최재천을 보여주는 일이 곧 과학자 최재천을 보여주는 일이고 그래서 더욱 진솔한 느낌이 나는 에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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