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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의심한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마흔을 나타내는 말 중에 '불혹'이라는 표현처럼 식상한 표현도 없다. 어떤 때는 너무도 흔해서 조금 무성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꽤 근사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는 마흔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마흔이 되면 이제 세상일은 왠만큼 겪어 봤다는 자만감이 생겨 자기만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처럼 '원칙과 기본'을 지킨다는 말이 무서웠던 세상이 있나 싶다. 그 말은 과거에는 소신과 절개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고집을 뜻하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원칙을 지키겠다는 말은 내말이 맞으니 내 고집대로 하겠단 소리가 되었고, 기본을 지킨다는 말은 내가 기준이니 내 말대로 따라하라는 말로 변질됐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런 어른들이 더 무서웠다. 나를 의심하지 않는 어른. 거짓이나 틀린 말을 하는 어른보다도, 내가 지금 거짓이나 틀린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자신에 대한 의심이 조금도 없는 어른들이 백배는 더 무서웠다. (p. 13)
마흔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규정할 수 없는 현상으로 가득차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으로 가득하다는 마음으로 쓴 책이 바로 '나를, 의심한다'이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바로 이 에세이의 시작이면서 끝이다. 고작 지난 달에 내가 확신에 차 한말조차도 친구에게 다시 들었을 때 '내가 그런말을 했어?'라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우리의 근거없는 자신감은 왜 자꾸 '확신'을 강요할까. 그런 의문은 지금 내가 갖는 의문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에 이 책은 편하게 읽혔다.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을 한 마디로 정리 하자면, 그녀의 초기작 제목인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였다.
이제 마흔이 되어 버렸으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과거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 하고 세상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마흔이 되면 응당 사라져 버려야 할 의심과 유혹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오히려 자신은 여전히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른도 아니고 마흔은 그러기엔 또 너무 멀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녀가 어른이 아닌것은 아닐지 몰라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것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누구든 그러하지 않겠는가. 어느 누가 나는 이제 내가 과거에 보던 어른의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의심으로 가득찬 이 책이 그래서 읽는 내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친구의 꿈이야기이면서 자기의 이야기 같고, 다른 사람의 소설이야기인듯 하면서도 나의 꿈이야기 같은 책 한권은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두고 온 추억의 장난감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다. 이제 대부분의 시도는 하기도 전에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많은 현상에 대해서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서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그 여백에 놓여 있던, 다소 어설픈 상상이나 오류의 가능성은 철저하게 배제하는 능력까지 생겨났다. 그것은 내 짧은 인생의 경험을 통해 매번 확인되었고 나를 가장 많이 좌절시켰다.
누군가 나에게 마흔이 어떤 나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위(知位)'의 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말은 내 위치를 아는 나이라는 뜻인데, 단순히 객관적 직책이 아니라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 내가 그들 사이에서 갖는 의미, 내가 할 수 있고 없는 역량의 정도, 내 단점과 장점에 대한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결국 저자의 '의심'과는 의도치 않게 반대편에 놓여야 할 말처럼 보이지만, 끝없이 나의 존재를 확인하면서도 나를 의심하는 것이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확신 속에서도 그게 아닐 수 있다는 '의심', 순응하면서도 언제든 박차고 나가겠다는 '무모함', 어린 시절 잠들고 눈뜰때 꾸던 꿈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는 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