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어떤집을 가도 젤 먼저 보게 되는 것이 그 집의 책장이나 서재이다. 전여옥이 박대통령의 책장을 보고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의 책배치라고 말한적이 있었다. 책장만 보고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책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말이다. 책장에 책을 어떻게 배치하는지, 어떤 책을 모아놨는지, 어떤 작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최우선적으로 갖는 궁금증이다. 몇가지 질문으로 가장 관심 가는 작가에게 한 질문의 답을 모은 책이다. 알랭드 보통, 리처드 도킨스, 이창래 같은 작가들도 있어서 '작가란 무엇인가'에 이어 관심가는 책이다. 



항상 나의 주된 관심사인 인공지능에 대한 책이다. 제목부터 도발적이어서 '인간은 필요 없다'라니. 단순히 만들 수 있는데까지 만들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인공지능의 위협 앞에서 새로운 질문에 직면했다. 어디까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첫 장의 제목이 '컴퓨터에게 낚시 가르치기'인데 그것부터 흥미롭다. 



한나 아렌트는 많은 부분에서 남긴 유산이 많지만, 특히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도 많이 인용되고 관련서적도 많았다. 특히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면 어떤 이들의 어떤 주장이든 나름의 논리가 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충분한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집단이 과격해지거나, 감정의 논리를 내세울때이다. 이를 배제하기 위해서 좀더 접근하고 능동적으로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는 단순히 성적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면에서 평등하다고 믿는 이들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것들을 조장하거나 당연시 하는 케이스를 아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 있을 것이다. 



미술의 발전을 보면 인간의 의식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고대의 미술에서부터 초현실, 포스트 모더니즘 까지 미술사의 흐름을 철학교수의 시선으로 써 놓았다. 어떤 미술사 책보다 특히 관심이 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미야모토 테루의 전작 '환상의 빛'에서는 첫 아기가 태어난지 세 달 밖에 되지 않은 남편이, 술도 도박도 여자관계도 없는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자살을 한다. 남겨진 부인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왜 그랬을까? 사실은 뭔가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혹은 부담감이 극에 달하며 무게를 던져 버리고 싶었을까. 온갖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늘 써보지만 답은 구할 수 없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을 말한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었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는 뒤를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순식간에 멀어져 갔습니다. (P.60)

답을 구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삶. 혼자서 답안을 작성하고 스스로 채점해야 하는 여정. 그것은 그 과정 자체가 고통이고 징벌이다. 가쓰누마 아키는 이혼한 지 10년 된 남편 아리마를 우연히 만난다. 그녀는 이미 재혼한 상태였고, 그녀 옆에는 선천성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었다. 그녀는 10년 동안 묵어두었던 이야기를 편지로 쓰기 시작한다. 10년 동안 혼자 묻고 답해왔던 질문들을 조심스레 편지지에 옮겨본다. 왜 전남편 아리마는 호스티스 세오 유카코와 여관에서 자고 있었을까. 왜 그녀는 남편을 죽이고 자살을 했을까. 거기에서 가까스로 남은 남편은 왜 나에게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을까. 길고 긴, 말하자면 10년의 사연을 담아서 그녀는 아리마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열네번의 편지가 오가는 동안 그도 그녀도 모든 것이 어그러진 서로의 삶을 생각하며 많이도 울게 될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주 불가사의한 것을 모차르트의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p.86)

삶과 죽음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몇 번 나온다. 그 중 첫번째가 아리마와 유카타가 동반자살할 때 한 명이 죽고 나머지가 살아난 순간이고, 다음은 고양이가 쥐를 잡아 먹는 장면이 있고, 레이코의 할머니와 죽은 네 아들의 이야기가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결국 삶과 죽음은 같은 세계에서 하나가 사라진 후에야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존재하면서 거대한 세계의 법칙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마는 병원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비현실적인 경험을 하는 동안 그 둘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공존하는 것인지, 그리하여 스스로가 만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적어도 그가 전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삶과 죽음이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글귀를 이전에 한번 더 본적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이다.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상실의 시대 p.71, 문학사상사)

그것은 진리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의 말미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만다.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르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 p 440)

아무리 완벽한 이성적인 결론으로도 답을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삶에는 너무도 많다. 아리마는 더이상 그러하지 않아야 했으므로 아키를 떠났고, 아키 또한 더이상 같이 할 자신이 없어서 헤어졌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후회하고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진리도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업보 


사전에는 '선악의 행업으로 말미암은 과보'라고 설명되어 있는 '업보'라는 단어가 소설에서 수차례 등장한다. 아리마는 편지에 "업보는 악과 선의 결정과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키 또한 그것이 그녀가 살아온 지금 모습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유카타, 아키, 아리마의 삶을 지배하는 관념은 그 단어일 것이다. 맨 처음 이 단어를 떠올린 것은 아리마인데, 14살의 어느 겨울 우연히 유카타와 방에서 같이 있던 추억에서이다. 그녀는 그의 볼을 잡고 차분한 동작으로 이마를 들이밀고 뽀뽀를 한다.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훗날을 좌우하게 될 업보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아키에게 '업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대상은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 기요타카이다. 그녀는 그것이 그녀의 업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바람만 피우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런 사고가 없었다면, 둘이 살았었다면 장애를 가진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생각한다.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지금'을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들은 단지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구나. 어떠한 답도 바란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겠지. 의외로 많은 말들이 답답한 심장을 빠져나오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법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광석과 철학하기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12가지 행복 철학
김광식 지음 / 김영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가수의 노래는 오직 그 노래 자체만으로 철학적이다대표적으로 고인이 된 신해철이나 실력있는 싱어송라이터 이상은의 노래가 그렇다오직 가사와 멜로디만으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무한정 남겨둔다그에 반하면 김광석의 노래는 그 자체로 철학적인 노래는 아니다사실 우리가 잘 아는 노래도 그가 직접 작사한 노래가 그렇게 많지도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김광석의 노래에 우리 인생이 담겼다고 생각한다왜 그럴까그것은 김광석의 노래가 오직 '노래'로서 따로 생명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김광석의 노래'로서 생명력을 가지기 때문이다그의 삶과 그의 행동과 말투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톤과 목소리 전체가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김수희의 '애모'나 나미의 '슬픈인연'을 떠올릴 때 나는 가수들을 떠올리지 않고 종종 그 곡 자체로만 생각할 수 있다하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떠올리면 난 단 한순간도 김광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비극적인 죽음이 예술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잔인한 생각은 좀 버려두고서라도김광석은 항상 뭔가에 고뇌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삶의 무게에 짓눌려 금방이라도 탈선해버릴 것 같은 불안한 열차처럼질식의 끝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우리에게 절실함으로 기억된다. '김광석과 철학하기'라는 책이 어울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노래가 담고 있는 은유적 메시지가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김광석의 노래 12곡과 그에 어울리는 철학자 열 두 명(마지막은 저자)의 철학 이야기가 담겨 있다솔직히 말하자면 김광석과 철학하기는 김광석의 노래보다 철학에 방점이 찍혀있다.개인적으로는 노래 가사 하나 하나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좀더 깊이 파고 들어 철학자들의 주장과 연결시켜 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하지만 이 책은 큰 틀에서 철학적 주제를 잡고 끄집어 내서 이를 중심 주제로 해서 철학사와 연결시키고 있다예를 들면,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바람의 철학을 이야기 하기 위해 플라톤의 '이상의 철학'을 인용하거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서 창의 철학을 이야기 하기 위해 데카르트의 '이성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 식이다그렇다보니 안타깝게 매 챕터마다 나뉘어 있는 1악장과 다음 2악장 사이에 미묘한 캡이 존재한다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3악장에서는 두 악장의 조화를 시도하지만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하지만 바꿔 말하면 철학이라는 다소 껄끄럽고 부담스러운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책을 보는 사이 개념에 푹 빠질 수 있게 쓰여진 책이다.

 

트랙 3 '나무'라는 노래의 철학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나무'라는 노래는 김광석의 노래 중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은은하고 차분한 노래이다.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눈부신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소 누구 하나 나를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소동적인 쾌락이 아닌 정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나무의 모습이 연상 시키는 것은 에피쿠로스 학파이다쾌락보다 절제와 금욕이 중시되던 사회에서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이 좋은 것이라고 선언했다그들은 필연적인 법칙이나 운명에 따른 삶을 부정하고 '우연'과 '우발성'의 존재를 인정했다특별한 기준이나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은우리가 유동적이과 끝없이 변화하는 우주에서 존재 그자체로 살 수 있는 논리의 토대가 되었다이러한 점이 '이데아'라는 외적 기준을 정해 놓고 이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소크라테스 사단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가능하게 했다나무처럼 바라지 않고 주어지는 대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은우리가 우리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도록 이끌고 격려한다가끔 이런 마음이 인문학이 우리에게 바라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밖에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에서 들어보는 헤겔의 '자유의 철학'이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서 보여주는 하이데거의 '아픈 사랑의 철학'도 읽을만 했다가끔 믿기지 않는 일들이 있다죽고 나서야 우리가 겨우 그 가치를 알게된 것인지그전부터 알았지만 그것이 더욱 올라간 것인지 알 수 없지만김광석이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과 고민을 남긴것만은 사실이다.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고민하지 않고 듣는 음악은 들을 가치가 없다'라는 생각을 늦은 밤 그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덕적 불감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매일 가정폭력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그에게 숨겨져 있는 유전자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가 폭력적인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폭력에 대한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폭력이 일상이 된 아이에게는 폭력적 상황은 special 한 것이 아닌 default 값이 된다. 그것이 단순히 한 아이의 성장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그나마 나을 수도 있겠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돈스키스 두 지성이 지적하는 바는 이러한 불감증이 사회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경외의 대상이든 두려움이나 비난의 대상이든 외부의 거대한 권력에 의미를 두었다. 오랜 시간을 '신'에 대해 생각했으며, 중세가 지나고 나면서 '이성'에 눈을 돌렸다. 그것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우리 삶이 옳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현세에서 즉각적이고 명료한 보상을 주는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자로 등장한 것은 주변인들이었다. 사회 구성원끼리 경쟁하고 배신하면서 개인은 파편화 되고 공감이나 소통이 설 자리를 잃었다. 


이 책의 두 저자가 지적하는 개인주의와 유대의 파편화 등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뒤로 하고 있다. 이는 그들 뿐 아니라 누구라도 알 수 있는 현재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이런 현상의 문제는 결국 아이히만 같은 실재하는 '악'에 대한 비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이히만이 사실은 '아주 평범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지금 시대에는 멀리가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내가 옆사람에게, 그들이 나에게 무관심을 무기로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한때는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경종을 울렸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고 그런 권력을 가질 정도의 사람이 아닌 아무런 힘도 없는 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단테는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격변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비워져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저자들 또한 '악은 독재자가 아니라 익명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 대해서 무감각할 수 있는 능력은 현대인의 기본 소양이 되었다. 무관심과 방관으로 타인의 상황을 지나치면서도, 가끔은 태연하게 상대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댄다. 이러한 도덕적 불감증의 상황을 지적하는 것조차도 조금 당연스레 여겨질 정도로 우리에게는 익숙해졌다.  


과거의 거대한 권력이나 정치의 힘이 아닌 우리 자신이 그러한 권력의 일부로 존재하게 되면서 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도덕성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대중 권력의 형성을 가져왔다 하더라도 그 새로운 조류가 긍정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런 도덕적 성찰이 동반되지 못하는 이러한 현상은 결국 우리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이 정치력을 뛰어 넘으면서 새로운 형태의 아고라가 형성되었지만 그곳은 윤리적 성장이 뒤따르지 못하는 덩치 큰 아이일 뿐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는 인간에게 인조인간이 묻는다. 왜 저를 만드신거죠? 인간의 대답은 무성의하다. '그냥 만들수 있으니까.' 이는 기술의 진보가 윤리의 발전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지금 우리시대가 겪는 공동체의 붕괴, 구성원의 개체화, 느슨한 유대의 등장은 우리에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감을 덜어주는 대신 공감의 부재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결국 어떠한 연대도 가져오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단결된 힘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들이 그리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은 당연히 디스토피아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우정, 사랑일 수밖에 없다.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서가 아닌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의미에서 읽어본다면 의미가 특별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야구'처럼 생긴 '인생'의 이야기이다. 사실 야구 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당구의 의외성, 탁구공의 역회전, 축구의 사회성처럼 모든 스포츠는 인생을 담고 있다. 


그중에 야구라니..


야구가 이 책의 소재인 광주민주화운동과 연결되는 이유는 너무 많다. 모두가 알다시피 야구는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시행한 3S정책의 대표적인 선봉주자이다. 광주 사람들은 야구에 열광 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광주일고, 군산상고를 응원하는 마음의 연장선상이 아니라, 광주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마음에서였다. 이는 축구 한일전에서 우리가 일본만큼은 이기고 싶어하는 억울함과 처절함의 마음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타이거즈는 열악한 자본으로도 곧잘 우승을 이끌어 내며 그들의 한을 잠시나마 씻어줬다. 


주인공 사내는 어머니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광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생각한다. 박하사탕의 설경구 처럼.. 

'내 인생 이렇게 조진놈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는 5.18 당시 동생을 죽였던 계엄군 '염소'를 떠올린다. 그것은 오래 전에 이뤄졌어야 할 복수이지만, 현실적인 이유를 핑계로 미루고 미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거둬줄 곳 없는 아들을 눈 앞에 둔 막다른 골목에서 다시 염소가 떠오른 것이다. 


승부의 중심은 복수


스포츠에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9회말 투아웃 만루에서도 져도 그만이고 이겨도 그만이라면, 7:8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장한 타자가 쳐도 그만 안쳐도 그만이라면 그것은 그냥 장난일 뿐이다. 어떻게든 스토리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그 순간부터 진정한 승부인 것이다.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이었지만 어찌됐건 타이거즈는 라이온스를 이겨야만 했다. 그것은 이기고 싶은 맘이 아닌, 처절한 절박함이었다. 


사내는 염소를 찾아내서 죽여야만 했다. 그걸로서 그의 스토리는 완성되는 것이다. 한 번 받았으니 응당 다시 돌려줘야만 이야기는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30년을 미뤘지만 여전히 그를 가로막는 현실은 그의 편이 아니다. 


주사위, 칼.. 그리고 청산가리


그가 길을 떠나면서 챙긴 세 개의 물건. 주사위, 칼, 청산가리... 어찌보면 칼과 청산가리는 연결이 되지만 주사위는 좀 의외다. 어떤 조합일까. 

이 세 개의 조합은 바로 '죽음'과 직결되어 있다. 

주사위는 과거에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간 복수의 상징물이다. 칼은 당연히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간 염소의 죽음을 가져올 것이며, 청산가리는 마침내 동생의 복수를 마친 내가 취할 죽음의 종류를 알려준다. 그는 염소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바로 서울로 올라간다. 


야구는 결국 홈(home)으로 돌아오는 경기


그의 염소를 찾기위한 여정은 어색한 관계인 아들과의 동행 때문에 복잡성을 띤다. 다소 자폐의 성향이 있는 그의 아들은 노란색에 집착하며, 지도를 비정상적으로 잘 보고, 시간을 과할정도로 정확하게 지킨다. 결국은 9회가 끝나야 야구는 종료되지만, 중요한 것은 1회부터 8회까지를 어떻게 보내느냐이다. 그래서 작가는 아들과 한 팀이 되어 싸우는 사내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파울라인을 다시 긋는 모험에 아이는 기꺼이 동참한다. 파울라인을, 주루 선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다시 긋는다는 즐거움에 손전등을 앞장 세우고 깡충거리며 1루로 향한다. 사내는 희미해진 석회가루 위에 염소를 조금씩 뿌린다. 3루를 돌아 홈으로 간다. (p250)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부자는 잠실야구장에 들어선다. 그들은 1루를 돌았고, 2루를 밟았으며, 3루를 찍고 홈으로 기어들어가는 중이다. 그 목적이 주심을 방망이로 때려 눕히는 것인지, 상대 투수를 공으로 내리 찍는 것인지, 홈에 안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국 야구는 홈으로 들어가는 게임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