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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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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매일 가정폭력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그에게 숨겨져 있는 유전자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가 폭력적인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폭력에 대한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폭력이 일상이 된 아이에게는 폭력적 상황은 special 한 것이 아닌 default 값이 된다. 그것이 단순히 한 아이의 성장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그나마 나을 수도 있겠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돈스키스 두 지성이 지적하는 바는 이러한 불감증이 사회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경외의 대상이든 두려움이나 비난의 대상이든 외부의 거대한 권력에 의미를 두었다. 오랜 시간을 '신'에 대해 생각했으며, 중세가 지나고 나면서 '이성'에 눈을 돌렸다. 그것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우리 삶이 옳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현세에서 즉각적이고 명료한 보상을 주는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자로 등장한 것은 주변인들이었다. 사회 구성원끼리 경쟁하고 배신하면서 개인은 파편화 되고 공감이나 소통이 설 자리를 잃었다. 


이 책의 두 저자가 지적하는 개인주의와 유대의 파편화 등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뒤로 하고 있다. 이는 그들 뿐 아니라 누구라도 알 수 있는 현재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이런 현상의 문제는 결국 아이히만 같은 실재하는 '악'에 대한 비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이히만이 사실은 '아주 평범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지금 시대에는 멀리가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내가 옆사람에게, 그들이 나에게 무관심을 무기로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한때는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경종을 울렸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고 그런 권력을 가질 정도의 사람이 아닌 아무런 힘도 없는 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단테는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격변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비워져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저자들 또한 '악은 독재자가 아니라 익명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 대해서 무감각할 수 있는 능력은 현대인의 기본 소양이 되었다. 무관심과 방관으로 타인의 상황을 지나치면서도, 가끔은 태연하게 상대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댄다. 이러한 도덕적 불감증의 상황을 지적하는 것조차도 조금 당연스레 여겨질 정도로 우리에게는 익숙해졌다.  


과거의 거대한 권력이나 정치의 힘이 아닌 우리 자신이 그러한 권력의 일부로 존재하게 되면서 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도덕성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대중 권력의 형성을 가져왔다 하더라도 그 새로운 조류가 긍정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런 도덕적 성찰이 동반되지 못하는 이러한 현상은 결국 우리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이 정치력을 뛰어 넘으면서 새로운 형태의 아고라가 형성되었지만 그곳은 윤리적 성장이 뒤따르지 못하는 덩치 큰 아이일 뿐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는 인간에게 인조인간이 묻는다. 왜 저를 만드신거죠? 인간의 대답은 무성의하다. '그냥 만들수 있으니까.' 이는 기술의 진보가 윤리의 발전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지금 우리시대가 겪는 공동체의 붕괴, 구성원의 개체화, 느슨한 유대의 등장은 우리에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감을 덜어주는 대신 공감의 부재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결국 어떠한 연대도 가져오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단결된 힘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들이 그리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은 당연히 디스토피아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우정, 사랑일 수밖에 없다.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서가 아닌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의미에서 읽어본다면 의미가 특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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