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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과 철학하기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12가지 행복 철학
김광식 지음 / 김영사 / 2016년 1월
평점 :
어떤 가수의 노래는 오직 그 노래 자체만으로 철학적이다. 대표적으로 고인이 된 신해철이나 실력있는 싱어송라이터 이상은의 노래가 그렇다. 오직 가사와 멜로디만으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무한정 남겨둔다. 그에 반하면 김광석의 노래는 그 자체로 철학적인 노래는 아니다. 사실 우리가 잘 아는 노래도 그가 직접 작사한 노래가 그렇게 많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김광석의 노래에 우리 인생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김광석의 노래가 오직 '노래'로서 따로 생명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김광석의 노래'로서 생명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그의 행동과 말투,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톤과 목소리 전체가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김수희의 '애모'나 나미의 '슬픈인연'을 떠올릴 때 나는 가수들을 떠올리지 않고 종종 그 곡 자체로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떠올리면 난 단 한순간도 김광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비극적인 죽음이 예술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잔인한 생각은 좀 버려두고서라도, 김광석은 항상 뭔가에 고뇌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금방이라도 탈선해버릴 것 같은 불안한 열차처럼, 질식의 끝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우리에게 절실함으로 기억된다. '김광석과 철학하기'라는 책이 어울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노래가 담고 있는 은유적 메시지가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김광석의 노래 12곡과 그에 어울리는 철학자 열 두 명(마지막은 저자)의 철학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김광석과 철학하기는 김광석의 노래보다 철학에 방점이 찍혀있다.개인적으로는 노래 가사 하나 하나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좀더 깊이 파고 들어 철학자들의 주장과 연결시켜 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큰 틀에서 철학적 주제를 잡고 끄집어 내서 이를 중심 주제로 해서 철학사와 연결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바람의 철학을 이야기 하기 위해 플라톤의 '이상의 철학'을 인용하거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서 창의 철학을 이야기 하기 위해 데카르트의 '이성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 식이다. 그렇다보니 안타깝게 매 챕터마다 나뉘어 있는 1악장과 다음 2악장 사이에 미묘한 캡이 존재한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3악장에서는 두 악장의 조화를 시도하지만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철학이라는 다소 껄끄럽고 부담스러운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책을 보는 사이 개념에 푹 빠질 수 있게 쓰여진 책이다.
트랙 3 '나무'라는 노래의 철학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나무'라는 노래는 김광석의 노래 중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은은하고 차분한 노래이다.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눈부신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소 / 누구 하나 나를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소' 동적인 쾌락이 아닌 정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나무의 모습이 연상 시키는 것은 에피쿠로스 학파이다. 쾌락보다 절제와 금욕이 중시되던 사회에서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이 좋은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들은 필연적인 법칙이나 운명에 따른 삶을 부정하고 '우연'과 '우발성'의 존재를 인정했다. 특별한 기준이나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은, 우리가 유동적이과 끝없이 변화하는 우주에서 존재 그자체로 살 수 있는 논리의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점이 '이데아'라는 외적 기준을 정해 놓고 이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소크라테스 사단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가능하게 했다. 나무처럼 바라지 않고 주어지는 대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은, 우리가 우리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도록 이끌고 격려한다. 가끔 이런 마음이 인문학이 우리에게 바라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밖에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에서 들어보는 헤겔의 '자유의 철학'이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서 보여주는 하이데거의 '아픈 사랑의 철학'도 읽을만 했다. 가끔 믿기지 않는 일들이 있다. 죽고 나서야 우리가 겨우 그 가치를 알게된 것인지, 그전부터 알았지만 그것이 더욱 올라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김광석이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과 고민을 남긴것만은 사실이다.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고민하지 않고 듣는 음악은 들을 가치가 없다'라는 생각을 늦은 밤 그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해본다.